어깨의 뽕 빼는 시간
김금자
산천초목이 연둣빛 새살을 틔워내는 바야흐로 완연한 봄이다. 겨우내 딱딱하게 굳어있던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저 여린 싹들을 보라.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처럼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모습으로 태어나 온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이는 생명력의 신비 앞에 숙연해지는 계절이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는 이토록 유연하건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인 나의 삶은 여전히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삐걱거리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힘”으로 통한다. 물리적인 힘부터 상대를 설득하는 말의 힘, 그리고 생을 버티게 하는 삶의 의지까지다. 우리는 흔히 힘이 있어야만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역설되게도 진정한 고수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가장 먼저 요구되는 조건은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힘을 빼는 것”이다.
글쓰기에 발을 들인 후, 나는 매주 수요일을 기다리는 설레는 학생이 되었다. 등단이라는 과분한 이름을 얻고 난 뒤 선생님 격려의 말씀을 칭찬으로 해석한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나는 정말 마음속으로는 고래처럼 춤을 추며 이제까지 지냈던 것 같다. 내 글이 실린 책들을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며 마치 대단한 벼슬이라도 거머쥔 양 장황한 설명까지 곁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자화상이다. 잘 쓴 글이란 독자가 스스로 느끼는 법이거늘, 내 힘이 과하여 독자의 몫까지 내가 가로채려 하였다.
최근에는 본의 아니게 모임의 단체 회장직까지 맡게 되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으나 상황에 떠밀려 앉게 된 자리이었다. “아뿔싸”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임기를 마칠 때까지 가야 할 길이 산 넘어, 또 산이다. 회장 자리는 내가 힘을 주려 한 것도 아니건만, 그 책임의 무게는 어깨를 짓 누른다.
글쓰기에서는 기교를 빼면 된다고들 한다.그러나 실질적인 역할이 부여된 자리에서 힘을 뺀다는 것은 참으로 난해한 숙제이다. 이런 고민 때문인지 글쓰기는 등단 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 어느덧 대문호라도 된 듯이 어깨에 힘을 주고 새벽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 머리를 짜내고는 한다.
문득 예전에 골프 배울 때 강사가 했던 말이 귓전을 울린다. “사모님, 자세는 완벽하니 힘만 조금 빼면 딱 좋겠습니다.” 그때는 그 말이 참 이상하였다. 멀리 보내려면 힘껏 휘둘러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힘을 빼라니 그러나 억지로 휘두른 채는 늘 궤도를 벗어났고 몸엔 무리 오기 일쑤이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맡길 때야 공은 비로소 곧게 뻗어 나갔다. 이제 나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려 한다. “힘을 뺀다.”라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과잉된 자아를 덜어내고 객관적인 나를 마주하는 용기다. 삶의 정점은 화려하게 채우는 순간이 아니라 군더더기를 모두 덜어낸 담백한 상태에 있다. 삶도, 글도, 그 비워진 유연함에 도달하기 위한 긴 여정일 것이다.
오래전 다도(茶道) 수업할 때 차인(茶人)들과 함께 강진으로 다산 정약용과 초의 선사에 대한 현장 수업으로 긴 시간 버스 안에서 “동다송”을 외워가며 갔다. 정약용은 차를 매우 사랑하여 스스로 “다산(茶山)”이라 부를 정도이다. 다산 선생은 일찍 초의의 영특함을 알아차려 초의라는 호를 지어주고 차의 법(제다법)과 차의 정신을 전수하였다. 초의선사가 지은“동다송”은 우리나라 최초의 차 전문서로 한국의 “다도”를 정립한 기념비적인 저술이다. 그때를 다시 떠올려 보며 다산의 가르침을 되새겨 본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여유당(與猶堂)”이라는 당호가 떠오른다. 여유라는 이름은 흔히 우리가 쓰는 “여유롭다.”라는 뜻이 아니다. "겨울 시냇물을 건너듯 조심하고(與), 사방 이웃을 두려워하듯 주저하라(猶)." 는 그 이름 속에는 천재적인 재능조차 누르고 살았던 선생의 절제된 힘 빼기가 담겨 있다. 그가 열여덟 해의 유배 생활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힘이 빠진 시기에 오백여 권의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권력의 힘” 대신 “사유의 부드러움”을 채웠기 때문이다.
꼿꼿한 선비의 기개조차 부드러운 “머뭇거림” 뒤에 숨길 줄 알았던 그 지혜가 지금 내 글의 기교와 회장직이라는 직함 아래 잔뜩 경직된 내 영혼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듯하다. “조금 더 머뭇거려도 괜찮다. 조금 더 주저하며 힘을 빼도 좋다.”고 말이다.
어젯밤에도 힘 빼기 연습한답시고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잠 섞인 목소리 “ 김 작가님 글에서 힘 빼신다고 어깨에 뽕은 잔뜩 넣고 뭘 그렇게 용을 쓰십니까? 제발 잠잘 때만이라도 힘 좀 빼고 주무시지요.” 그 말에 빵 터져 웃음이 나고 말았다. 그렇다. 무슨 대단한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밤을 새우는 것 자체가 이미 힘이 잔뜩 들어갔다는 증거이다. 솔직히 좋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문장을 이어가지 못함일 때이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전원을 끄고 침대 속으로 몸을 던졌다. 어깨의 힘을 툭 내려놓으니 그토록 찾으려 애썼던 문장 대신 깊고 달콤한 잠은 나를 먼저 찾아온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문장이 매끄럽게 이어지질 않음에도 밤을 새우며 기다린들 내가 요구하는, 아니 마음에 와닿는 문학적인 단어가 나오질 않는다. 힘 빼기가 별거인가 조용히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생각하고 많은 책을 더 읽어보는 것으로 내 안의 강한 기운을 다스려 힘을 빼는 방법이 되겠다. 이 화창한 봄날 여리디여린 연둣빛 새살처럼 부드럽게 차근차근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을 정리하여 평온함을 안고 "수요일愛수필쓰기" 수요일을 기대해 본다.
(20260417)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