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성 여행 나흘째, 다리 고성을 출발한 버스는 한 시간 반 만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구조였고 화장실은 넓고 깨끗했다. 다진 고기를 넣고 부쳐낸 중국식 호떡을 사서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다리를 출발한 지 세 시간 반 만에 리장고성에 있는 리장왕푸호텔(丽江王府饭店)에 도착했다. 호텔은 나시족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은 건물과 중앙에 정원을 품고 있는 회랑구조로 고풍스러웠다. 입구엔 전통 복장의 커플들이 호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서 이번 여행의 이벤트, 룸메이트 제비뽑기를 했다. 결과는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후배와 3박 4일을 함께하게 되었다. 짐을 풀어놓고 호텔 주변에 있는 전서왕자(滇西王子)라는 나시족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관광 코스와 정보를 교환했다.
해발 2,400m에 있는 리장고성(丽江古城, 여강고성)은 나시족의 역사와 문화, 자연이 어우러진 고대도시다. 산골의 오지마을이 1996년 윈난성 대지진과 복구과정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본성인 대연고성(大硏古城), 고성 북쪽의 속하고진(束河古镇)과 백사고진(白沙古鎭)을 묶어 리장고성으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송나라 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중국의 역사·문화 고도 중 유일하게 성벽이 없는 고성이다. 옥룡 나시족자치현(玉龙纳西族自治县)이란 지명처럼 옥룡설산 아래에는 물이 있는 곳엔 어디나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나시족이 살고 있다. 나시족(納西族)은 못을 사용하지 않는 전통 목조가옥, 동파교(東巴敎)와 동파문자, 나시어를 사용하는 모계중심사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은 고성 북쪽에 있는 흑룡담(黑龙潭)에 모였다가 옥하(玉河)를 거쳐 고성의 북문 대수차(大水车)가 있는 광장으로 흘러든다. 성안의 물길은 동류, 중류, 서류로 갈라져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고 전통 가옥들은 물길 따라 지어져 산과 강, 마을과 조화를 이룬다. 이 물은 다시 수많은 인공수로로 갈라져 고성 안의 골목과 집 앞으로 흘러든다. 물과 생활이 어우러진 고성은 동양의 베네치아라고 불린다.
우리는 물길 따라 사방가(四方街), 대수차(大水车), 만고루(万古楼), 목부(木府) 순으로 둘러보기로 했다. 투명할 정도로 맑은 물길을 따라 걸으며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들이 어우러진 고가(古家)를 사진에 담았다. 옥룡설산의 맑은 물이 마을을 돌아 내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수로와 길가의 전통가옥은 대부분 상점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데 너무 상업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고도 교역 물품의 집산지이자 상인들로 인해 형성된 마을이라 생각하니 어느 정도 이해되었다.
고성의 광장이자 중심가인 사방가(四方街)에 도착했다. 사방가를 중심으로 상점들이 밀집한 여덟 갈래의 길이 뻗어 있다. 노동절 연휴라 사람들이 많고 나시족 전통 복장으로 사진을 찍으며 다니는 젊은이들이 이국적이고 활기찼다.
옛날에는 차마고도를 오가는 상인들의 시장이었는데 이제는 문화의 광장이자 관광안내소가 있는 만남의 광장이 되었다. 대부분의 안내판이나 상점 간판은 동파문자, 한자, 영어 세 가지로 표기되어 있다. 동파 상형문자를 보고 무엇을 파는 가게인지 추측해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사방가에서 옥룡설산이 보이는 북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참을 걸어 대수차(大水车)가 있는 광장으로 갔다. 고성의 북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광장은 북적인다. 물레방아 뒤에는 동파 문화와 상형문자, 나시족 고대 음악가를 조각한 붉은 벽이 있다. 포토 존이 있을 정도로 고성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곳이라 사진을 찍으며 잠시 머물다 음악 소리가 들리는 골목으로 갔다.
골목 곳곳에 북처럼 생긴 타악기를 연주하는 가게가 있어 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 나시족 음악에 맞춰 타악기 연주 방법을 가르쳐 주고 레슨비를 받거나 악기나 관련 물품을 판매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걸어 왔는데 사방가가 나왔다. 생각 없이 골목길을 구경하다 보면 사방가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다.
고성의 전경과 옥룡설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사자산(狮子山)의 만고루(万古楼)로 발길을 돌렸다. 가파른 계단 길을 올라 사자산 입구에 도착했다. 들어가려다 친구들이 보이지 않아 되돌아 찾아보니 전망이 좋은 카페에서 고성의 전경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만고루 구경을 포기하고 푹신한 의자에 주저앉아 달콤한 휴식을 즐겼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다 희미하게 보이는 옥룡설산과 다닥다닥 붙은 지붕들을 보니, 흰말을 타고 옥룡설산으로 향하는 나시족 연인의 슬픈 뒷모습이 떠올랐다.
사자산을 내려와 목부(木府)로 갔다. 목부는 리장을 지배하던 나시족 통치자 목씨 일가의 저택으로 리장을 다스리는 관아였다. 웅장하고 아름다워 고성 내의 자금성이라 불린다. 비가 오고 입장료도 비싸 들어가지 않고 주변만 구경하다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부근에서 옥룡설산 등반에 필요한 산소통과 물품을 산 다음 저녁을 먹고 컨디션을 점검했다. 내 몸은 쿤밍과 다리, 리장을 거치면서 고산지대에 서서히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2026.5.22.(87)
첫댓글
좋은 곳에 여행하셨군요. 여행은 때로는 좋은 글감을 줍니다. 그리고 다음 여행을 가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줍니다.
옥룡 설산에 나도 가보고 싶어요. TV에서 나시족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잘 읽었습니다.
멋진 여행 하시는 모습 늘 부럽습니다. 옥룡설산 을 아이젠 착용하고 등반 하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