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팔복중에 세 번째 복인 "온유한자가 받는 복"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온유'란 우리말 사전에 보면 '온화하고 부드러움'을 말한다. '온'자가 따뜻할 온자이다. 다시말해 '온유'란 따뜻하고 부드러움을 말한다. 헬라어 원어 성경에는 '프라우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침착한, 신중한, 얌전한, 친절한, 너그러운, 겸손한, 인내하는, 이해심이 있는, 예의바른'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5-16세기에 걸쳐서 살았던 이탈리아 사람, 마키아벨 리가 쓴 책중에 '군주론'이란 책이 있다. 거기에 보면 군주가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군주가 사랑과 덕으로써 다스리는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철장을 사용해서 폭력과 공포로 다스리는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철장을 사용해서 폭력과 공포로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둘중 어느 방법이 보다 더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정치가 될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아마 누구든지 사랑과 덕으로 다스리는 첫 번째 방법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인 마키아벨리는 청장으로 위협하면서 다스리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불행하게도 그 동안의 세계 정치사는 마키아벨리의 의견처럼 폭력과 전쟁과 공포가 지배하는 힘의 정치가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이 사실이다.
찰스 다윈은 이러한 현상을 자연 생태계와 연관시켜 '양육강식'이라고 불렀다. 즉 이 세상에서는 그것이 인간 세계이든지 혹은 동물 세계이든지 간에 강한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게되고, 이기는 자만이 끝까지 살아 남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이론들은 매우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헛된 이론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여러분! 동물들 중에서 가장 사납고 힘센 동물이 무엇입니까? 육지에서는 사자나 호랑이, 코뿔소, 코끼리 등일 것이고 공중에서는 독수리, 매 등이며 물속에서는 고래나, 상어 등일 것이다. 만일 양육강식, 적자생존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시킨다면, 아마도 땅이나 공중이나 바다에는 사자나 호랑이, 독수리, 고래나 상어들만 날뛰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요 사슴이나 토끼, 양, 비들기, 작은 물고기는 살 곳이 없어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강하고 사나운 맹수들이나 고래와 같은 것들은 오히려 그 수가 점점 줄어져서 앞으로 얼마 안 있으면 멸종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들을 많이하고 있다. 이에 비해 오히려 약해보이고 힘이 없는 동물들은 멸종은 고사하고 오히려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이나 국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힘세고 강한 사람이나 민족만이 세계를 지배할수 있었다고 한다면, 이 땅 위에는 알렉산더나 시저, 나폴레옹, 히틀러를 비롯하여 앗수르나 바벨론, 헬라, 프랑스, 독일 등이 이 세계를 영원히 지배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힘이 세고 폭력을 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식의 격언이 진리로 간주되어져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적인 현실은 어떠합니까? 한때 세계를 한 손에 쥐고 흔들었던 소위 영웅호걸들이나 제왕, 제국들은 지금 그 흔적조차 찾아볼수 없고 단지 역사적인 기록들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오늘 본문 말슴에서 예수님은 "온유한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슴하셨다. 당시 로마의 절대적인 힘이 세계를 지배하고 돈과 권력이있는 자를 강자라고 부르고 있었을 그때에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게 될것이라고 예수님의 말씀은 듣는자들에게 매우 어색하면서도 전혀 이해될수 없는 말씀으로 받아 들여졌을 것이다.
1.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를 의미한다.
민수기 12: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는 말씀이 있다. 즉 모세를 온유함의 전형적인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이 말씀의 바로 앞 부분에 보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아내로 취한 사건이 소개되고 잇는 것을 찾아볼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모세에게는 엄연히 조강지처인 이드로의 딸 십보라가 있었다.
그 무렵 그녀가 이미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수 없지만, 어쨋든 한 민족의 최고 지도자가 그것도 함의 자손이며 이방인인 검은 피부의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과 형 아론이 노골적으로 모세를 비방하고 나섰는데 바야흐로 인류최초의 인종차별문제에 대해 논쟁이 일어 난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그일에 대하여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잇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친히 판단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모세의 온유함이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책망하시고 미리암을 문등병에 걸리게 하심으로써 온유한 사람 모세의 편을 들어주셨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도 역시 온유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다. 삼상16장에서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하여 피난길에 올랐을 때 게라의 아들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을 향하여 돌을 던지면서 저주의 말을 하게 됩니다. 이때 아비새가 "저 죽은 개와같은 자가 왕을 저주하니 가서 단칼에 목을 베게 해 달라" 고 요청했다. 그때 다윗은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라고 말하였다. 다윗은 자신을 욕하고 저주하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겸손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후에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되돌아 보면서 시편 37편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니라"(1절). 그리고는 계속하여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sp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4, 5절). 그리고 결론적으로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11절)라고 노래하고 있다. 말하자면 끝까지 온유한 자만이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을 즐기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멀리 내다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스스로의 무지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조용히 여유있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바오 이것이 온유의 힘, 온유의 권세이다.
2.자기 자신을 다스릴줄 아는 자를 의미한다.
온유의 어원중에는 '조절하다, 다스리다, 안정을 되찾다, 길들이다' 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만일 어떤 환자가 고열이 나서 의사가 준 약을 먹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을 때에는 "프라우스!" 즉 '온유해졌다'라고 말한다. 뜨거운 태양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때 어디에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이때에도 사람들은 "프라우스"라고 말한다. 또한 사나운 짐승들을 길들일 때 잘 훈련이 되어졌을 때에도 "프라우스"라고 한다. 다시말하자면, 어느 한쪽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적절하게 잘 조절된 상태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곧 온유라는 것이다.
온유는 마치 물과 같다. 아마도 이세상에 물처럼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물처럼 강하고 큰 힘을 지니고 있는것도 역시 없다고 하겠다. 망치를 가지고 바위에 구멍을 뚫거나 삽이나 곡괭이로 산을 무너뜨릴수는 없지만, 계속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고, 큰 물줄기가 태산을 무더뜨릴수는 있다. 마찬가지로 온유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이 세상에서 무서운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고, 못하는 일도 없다.
3.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지는 자를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마11:29-30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농사를 짓는 소에게 멍에를 쒸우는데, 두 마리가 같은 멍에를 쓰고 일하도록 되어있다. 이때 몸체가 크고 힘이 센 소와 함께 일하게 된 다른 소는 별로 힘을 안써도 편하게 일할수 있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향해 말씀하신다. "내가 멍에도 다 지고, 힘도 다 쓸 터이니 너는 단지 와서 나와 함께 멍에만 매기만 하라." 이 멍에는 곧 온유와 겸손이라는 멍에이다. 물론 다른 성품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은 내 스스로가 지닐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있어야만 비로소 지닐수 있는 그러한 마음이다. 예수님이 온유하시니 나도 온유해지고, 예수님이 겸손하시니 나도 자연히 겸손해기게 되는 것이다.
초대교회 첫 순교자인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이것이 온유한 마음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일이 스데반에게 가능하게 되었나요? 그것은 그가 먼저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우편에 서 계신 주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십자가 위에 달려 돌아가시면서도 오히려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던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유한 마음을 지니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지시기를 바랍니다. 겸손한 마음을 지니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닮기를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온유한 자에게는 복이있다. 그 복은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되는 복이다. 일찍이 청교도들은 오직 믿음만을 가지고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갔다. 거기에서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요로운 땅을 얻을수 있었다. 그런데 거의 비슷한 때에 유럽의 상인들이 금광을 찾아 돈을 벌기위해 먼길을 떠났습니다. 오늘날 그들은 돈도 벌지 못했을 뿐만아니라 그 좋은 자연 환경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전 유럽을 차지하다시피한 프랑스의 천재 군인 보나팔트 나폴레옹은 센트 헬레나섬에서 귀향살이를 하면서 이런말을 했다. "나는 칼로 세계를 정복하였으나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자는 고사하고 한 치의 땅도 얻지를 못하였도다. 그러나 저 나사렛 예수는 가난하게 살다가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었지만 그는 세상을 정복하였고 이제는 수억의 사람들이 그를 위해 순교하였구나!"
그렇다. 한때 프랑스인들은 육지의 제국을 얻었다. 영국은 바다의 제국을 얻고, 독일은 공중의 제국을 얻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결코 쇠하여 없어지지 않은 영원한 기업, 하늘나라를 우리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분명히 약속하셨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바라기는 오늘 이저녁에 온유한 자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이 말씀을 들으신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 속에 풍성히 차고 넘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