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릴 글은 태자 전하께서 이미 [자료]에 어느 드라마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시면서 소개해주신 일본 소설『토쿠가와 이에야스(한국판 제목: 대망)』에 나오는 한 인물과 무휼과의 비교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무휼과 비교하고자 하는 사내는 영화 '카게무샤'로도 유명한 인물이었던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입니다.
'타케다 신겐?'
고개를 갸우뚱하실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저 유명한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토쿠가와 이에야스 등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선배격인 당대 아시아 제일의 군략가였죠(물론 육군만).
이 신겐의 젊은날 행적을 가만 살펴보면 시대의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무휼과 흡사한 점이 의외로 많습니다.
한 번 살펴보지요.
1. 잘 생긴 젊은이였다.(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설들과『바람의 나라』의 영향이 큽니다만….)
2. 군략에 있어서 각자의 시대에 대가였다.(이 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인정받는 형편입니다.)
3. 정실은 정략결혼, 애정은 측실에게.
4.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별세했다.
5. 당사자들 사후 그들은 가문을 지키지 못했다.
뭐 대충 꼽아보면 이렇습니다.
여러분들이 무휼에 관한 것은 '의당히' 잘 아시리라 믿고('『바람의 나라』' 텍스트만 충실해도 무휼에 관한 역사적 지식은 그다지 틀림이 없으니까요^^) 여기서는 신겐의 야그를 하고자 합니다.
무휼이 차비인 연과 먼저 혼인하고 원후인 이지와 나중에 혼인한 것과는 반대로 신겐은 '정실'인 산조 부인과 먼저 혼인한 후 여러 측실을 얻습니다(이 점 무휼과는 큰(!) 차이가…. ^^;;;).
그 측실들 가운데 '부여와 고구려', 좀 더 정확하게는 '연과 무휼' 비슷한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여인이 스와 씨인데 무휼이 평생 사랑한 자식이 차비 해 연의 소생인 호동이었던 것 처럼 신겐이 사랑한 자식은 그 스와 씨의 소생인 4남 타케다 카츠요리였지요.(바로 오다 노부나가에게 얻어 터지는(!) 그 타케다 카츠요리입니다.)
이 카츠요리는 호동과 상당히 대조적인 면이 많아 꽤나 재미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후에 호동과 함께 다루도록 하지요).
그야 어떻든 신겐은 무휼과 비슷한 면모를 많이 보여줍니다.
그가 가진 영지 코슈는 고구려처럼 상당히 '가난하고 척박한' 영토였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무휼이 주변국과 최씨 낙랑국을 쳤듯이 신겐도 부유한 영지인 시나노와 스루가를 정복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측실인 스와 씨 같은 희생자도 나오게 되지요.
연이 그 동생인 용과 큰 할아버지 대소 왕을 무휼에게 잃듯 스와 씨도 그녀의 아버지와 일족들을 잃게 됩니다.
신겐의 꿈도 무휼보다 스케일이 작다(!)는 것일 뿐 그 근본은 같습니다.
"내 평생 소원은 미야코에 타케다의 깃발을 휘날리는 것이다."
'미야코'. 즉 당시 일본의 수도인 쿄토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무휼이 '한의 경사' 즉 당시 동한의 국도인 뤄양 즉 낙양에 태양의 깃발을 세우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맙니다.
무휼이 당시 한반도 북부 전체를 호령하는 '호전적인(!) 강국'이었던 '최씨 낙랑국'을 쓰러뜨렸어도 '혼일사해'는 고사하고 '반도 통일'도 마무리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신겐도 이름난 적인 호죠 우지야스(여기 이 사람은 '후마(風馬)'라는 닌자 부대를 거느린 사람으로도 유명하고 저 드라마 여인천하의 세자(후일의 조선 인종)와도 '동갑'이라 또 유명함)를 물리치고 토쿠가와 이에야스를 깨뜨리는 등 활약하지만 기어이는 천하통일 일보 직전에서 병으로 죽고 맙니다.
하지만 제가 결정적으로 무휼과 신겐을 동질의 인간이라 본 이유는 이들의 인생 방식이나 전략이『손자』병법 제7편 군쟁편과 흡사하다는 점입니다.
참고로『바람의 나라』에서 (최) 운이 무휼을 두고 한 말(독백?)이 있습니다.
'그는 무던히도 기다린다.'
자 그러면 이제『손자』병법 제7편 본문을 살펴보지요.
"그러므로 그 빠르기가 바람과 같고[其疾如風],
그 느리기가 숲과 같으며[其徐如林],
적지에 들어갈(침략할) 때는 불과 같고[侵掠如火],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과 같다[不動如山]."
이『손자』병법의 구절을 좋아한 신겐이 만든 '네가지 부대'가 바로 '풍, 림, 화, 산'의 부대입니다.
한데 신겐이 늘 입버릇 처럼 말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영화 카게무샤에서도 나옵니다.)."
바로 무휼의 "무던히도 기다린다"는 이치와 한 치의 차이도 없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싸울 때는 바람처럼 빨라야 한다"는 이치를 이미 익히고 싸우는 사람들이기에 '부동여산'의 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무휼이 보여준 '부동여산'의 솜씨는『바람의 나라』에서 배 극을 칠 때 우리가 잘 보았던 '기질여풍'과 더불어 지금 상황(제22권까지)에서도 매우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데 인간은 역사에서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는 것일까요?
신겐도 그 점에서는 무휼 못지 않습니다(소설『토쿠가와 이에야스』,『야망패자』를 읽어 보시면 대략 아실 수 있을 듯합니다.).
여하간에 그들은 난세의 남자들로서 최선을 다했고 단순한 사리사욕을 위해서 싸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진정 말하고 싶은 것은 왜 '우리나라가 요 모양 요 꼴(물론 X선 시대 중기와 후기보다는 훨 낫습니다만)'이 될 수 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감히 주장하고 싶습니다. "무휼의 정신과 방법을 제대로 이어 받지 못해서 그렇다"라고.
아니면 어느 양반(들)처럼 '무늬만 고구려'인 성과를 만들려는 분들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그야 어떻든『바람의 나라』에서 무휼은 19권에서 태후 송 서화에게 조차도 '부동여산'의 자세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무휼의 태도 앞에서 송서화는 물론 그 배후의 이지조차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X선 몰락의 신호탄임을 여실히 보여준 드라마 '여인천하'의 여인들 모습은 '고삐 풀린 원후 이지의 확대판'이라고 보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아니라 해도 저 혼자라도 주장할랍니다).
만약 조선 중종이 후궁들이나 공신들에게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면 지금 우리 나라가 '요 모양 요 꼴'이 되었을까요?(물론 현실적 여건이 불리한 점은 감안해야 하겠습니다만.)
우리가 '『바람의 나라』'를 이어받지 못하고 '여인천하'에서 허우적 거릴 때 저들은 '카게무샤'의 정신을 이어받았기에 오늘의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 저로서는 감히 주장하는 것입니다.
더구나『바람의 나라』에 비해 여인천하가 더욱 심각한 점은 '여권'이 언뜻 여인 천하 쪽이 높아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낮은 시대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나마 고려의 유풍이 이어져서 상류층이라도 여권이 높은 것이지만 후대로 갈 수록 X선 시대의 여권은 처참한 지경에 이르지요.
그 점은 카게무샤도 역시 문제지만 말입니다.
"뭔 영화나 드라마에 심오(?)한 철학 찾냐!"하신다면 제가 '자원'해서 '돌무덤'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만『바람의 나라』가 주는 '의의'가 그저 뮤지컬 혹은 만화에 그치는 것이 아닌 것이라 판단하여 외국과의 사례도 비교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거리를 여기 감히 쫘-악 벌여보는
것입니다.
첫댓글 대망 읽고 싶어요!!!!!! ㅠ.ㅠ 재미있네요, 이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