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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92년 12월 8일 토요정례법회
□ “원불교를 만나서” - 박만오 교우님 강연
□ 질문과 답변
Q. 김명선 : 당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우리의 교법을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주고 싶습니까?
A. 박만오 : 회사에서는 원불교적인 철학을 담은 회사를 만들고, 거기 직원들이 늘어나면
원불교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늘어난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Q. 진대성 : 아까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하셨는데 뭔가를 실행하여야 행복이 커진다.
우리는 대종사님 공부를 하며 행복을 찾는다. 그 일환으로 헌배와 강연을 하지 않으신가 싶다.
앞으로 우리의 삼학공부라 해야 할까, 어떤 부분을 놓치지 않고 하겠는지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A. 박만오 : 몸을 쓰는 것은 계속 하고 싶다. 헌배, 교전사경 다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쓰다 보면 내가 그냥 읽었을 때와 다른 것이 좀 있다.
□ 교전 사경에 대한 윤길준 교도님 감상담
사경은 헌배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루만 빠져도 하기 힘들다.
내가 사경을 하면서 느낀 점.
사경을 전체를 쓰든 부분을 쓰든 다 쓰시고 큰 기쁨을 맛보시기 바란다.
□ 질문과 답변
Q. 이진성 : 하루 속에서 한번은 스승님을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그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경계나 문제상황에서 취사를 하는 데 있어 사경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A. 윤길준 : 처음에 사경할 때는 한번도 내가 교전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다음에는 어떤 법문이 나올까를 궁금해하였다. 그것을 쫓아가다보니 사경을 많이 하게 되었다.
사경을 하면서 1/3쯤 갔을 때, 나는 대종사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Q. 사경을 하면서 오탈자가 생겼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A. 윤길준 : 사실 오자가 생기면 다시 써
탈자가 생기면 찢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집중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마다 많이 다르겠지만, 나는 노트 1장 정도 쓰는 데 25분 정도가 걸렸다.
그러므로, 16쪽을 썼을 때는 정말 아침부터 10시까지 썼다. 예약이 하나도 없는 날이었다.
그 정도 하면, 내가 교무님에게 처음에 쓸 때는 손가락에 못도 박히고 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반정도 쓰고 나니까 못박힌 것이 다 없어지더라.
그리고 볼펜을 선택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 김제원 교무님 설법
반갑습니다.
오늘 무엇이 많습니다. 강연도 만오교우님이 특이한 화법으로 잘 하여주셨고, 공연도 멋있었고,
황원공 교우님, 이연교우님도 소개 잘 해주셨다. 다 은혜이다.
강연 준비하는 데 아마 쉽게 준비하지 않으셨을 것이고, PPT도 윤길준 님 강연도
그냥 쉽게 우연히 들러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많으니까 간단히 한시간 정도만 할까?? (^^*)
작년에 가수 서영은을 돈 300만원을 주고 불렀었는데 만오교우님이 그인연으로 왔다니,
하여간 그 덕에 하나 건졌네요. “네가 300만원짜리다”~ (웃음)
우리 만오교우님은 특이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 글을 많이 읽은 사람같다.
표현 자체가 문어체인 것이다. 내용이 철학적인 내용이었으며 본인의 사유세계를 잘 반영한 것 같다.
아까 이상과 현실이라고 표현을 하여 주셨는데, 이상을 쫓다보면 현실이 어렵고 현실을 쫓다보면
이상을 달성하기 어렵다.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킬까 하다가 원불교를 알았다.
우리의 사은이 정말 근원적인 은혜라는 것을 알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천지 부모 동포가 원만하게
제 기능을 발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의 은혜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어떤 종교를 다 떠나서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은혜이다. 그러므로 미련하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은 하였다.
만오교우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되는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맞지요?
정말 꿈과 이상을 나누어서 내 뜻대로 내 자유대로 살 수 있다면 ...??
겸손과 대치되지 않은 자신감, 조화되는 삶이 무엇인가.
많은 사람은 겸손 속에서 자신감에 빠지고, 자신감 속에서 오만함에 빠지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 대종사님 법으로 얼마든지 적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보겠다. 내가 우리 교당에서 공부하여 우리는 하나다,
내가 텅 빈 존재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교만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정말 결단력을 가지고 해 나간다면?? 그리고 자기 내적으로는 공부심에 바탕한 하심이 있다면?
그리하여 내 목표가 근원적 진리에 근간하지 않을 때 오만함에 빠지거나
혹은 하심에서 자신감 없음으로 빠져버릴 수도 있다.
목자는 양을 친다고 한다.
사람은 사람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이면서 둘임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우주 만유가 다 하나이나, 사람이 있고 동물과 식물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또 구별과 분별있게 볼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차별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대통령후보를 보니 다 경제 경제 하고 있다. 정경이 유착되면 오히려 문제가 아닌가.
사람 마음을 돌보아야 나라가 튼튼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10년, 20년, 30년 40년보다 얼마나 더 잘사는가.
원불교 대종사님 법을 믿는 사람은 주종과 본말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 들어서 이 세상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근간은 사람이요 사람 마음이다. 그리고 경제는 아닌 것이다.
크게 볼 때는 하나이다. 경제를 움직이는 것이 사람 아닌가.
대종사님 법으로써 지도자를 보고,
우리 중생들이 물질 물욕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대종사님이 개교의 동기를 내놓으신 것 아닌가.
하도 물질 물질 하니까, 대통령 출마한 사람들도 다 경제 경제 한다.
대선을 통하여 보니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대중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대중이 된다.
헌배를 한다는 것은, 육신을 숙이면서 헌배를 하는 마음.
육신을 움직이면서 정성, 이것이 신앙과 수행의 총체이다.
그 안에 신앙과 수행이 다 들어있다. 그러므로 술 먹고 헌배하면 안된다.
그러나 안한 것보다는 낫다!
헌배하려니 술을 줄여야겠다. 좌선을 하려니 일찍 자야겠다, 일찍 자야하니
낮에 열심히 살아야겠다, 하면서 일과가 잡힌다. 일즉다의 원리가 여기에서 잡힌다.
젊은 사람들의 가치가 이러하다.
중도, 표준을 잡지 못해서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다.
오늘 정산종사법어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전서 882쪽을 같이 보았으면 한다.
병자의 맥이 너무 급하면 낮추는 처방을 해야하고,
“사람의 성질이 침착하기만 하여도 안되고 활발해서도 안되며 한가지에 침착하면 원만하지 못하니...
원만한 인격을 길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약을 쓸 때 그렇다고 한다. 너무 열이 많다거나 차다거나 한편에 기울어졌을 때
다시 정상의 자리를 찾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듯이 병자가 너무 급하면 느리게 하고 미하면 강하게 써서 중도를 잘 맞추어서
건강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법문에 아이를 보는데 꽉 묶어놓으면 얼마나 아기가 답답하겠는가.
자유롭게 놀게 하면서 위험할 때만 돌보면 될 것이다. 운동을 할 때 뛰기만 한다면?
일한다고 해서 밤늦도록 일만 한다면?
대종사님은 이것을 공부와 사업으로도, 성격의 측면으로도 다 밝혀주셨다.
그런데 정산종사님은 이것을 구체적으로 심법에 의하여 밝혀주셨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보고 너무나 좋지 않은가?
오늘은 한번 이름을 거명하면서 한번 해 볼까??
(웃음)
“정각정행”에 보면 “과불급이 없는 원만행”이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가 모든 것이 “과”가 되면 골치아파진다. 차도 과속, 음식도 과식, 술도 과음이 되면 문제가 된다.
또 한편으로 불급, 미치지 못해도 문제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중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공무원들도 열심히 하자니 시행착오가 나온다. 그래서 복지부동을 하자는 것이 나오는 것이다.
인생의 가치관이 그렇게 되면 안된다. 중간이 중도가 아니다.
나갈 자리에 나가고, 물러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중도이다.
여러분들 이 법문을 잘 공부하여야 한다. 어떤 사람은 불이 났을 때 마음공부를 한다고
그때 그때 일심을 놓지 않고 “지금 불이 났습니다” 라고 느리게 읽었다고 한다.
불났을 때는 아주 급하게 “불났으니 모두 피하십시오!”라고 해서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중도를 잘 잡아서 해야 한다.
성질이 침착하기만 하면 그 사람은 조그마한 경계에도 넘어서지 못한다.
활발하기만 하면 너무 허허하여 실속이 없는 병이 있다.
너무 정중한 사람은 민첩하지 못한 병이 있다.
(그런 사람은 차분한 법문만 좋아한다. 느리고 게으르면서 자신을 합리화한다.
너그럽고 용서하는 법문만 좋아한다)
재주만 있고 보면 경망하고 박덕한 병이 있다.
뜻이 고상하기만 하면 현실의 세속적 삶을 우습게 알고 오만할 수 있다.
너무 마음이 겸손하면 향상이 적은 병이 있다. 관계형이 먼저 하시오,
먼저 하시오 하여 항상 뒤끝이 확실하지 못한 면이 있다.
과일이 열려서 끝까지 매달려 있으면 새밥이 될 것이며, 떨어질 때는 떨어져야 한다.
마음이 대범하면 작은 것을 챙기지 못할 수 있다. “큰일하고 있으니 방청소쯤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세밀한 사람은 대체와 강령을 잡지못하는 병이 있다.
지금 교단도 세계 교화를 위해서 포석과 강령을 두고 있다. 그런데 좁은 시각으로 보아서는 될 것이다.
열성이 너무 과한 사람은 걸핏하면 승기자를 미워하는 병이 있다. 사교형은 사교형을 미워하기도 한다. 항상 자기가 드러나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드러나니 왜 밉지 않겠는가.
뜻없이 평범하기만 하면 모든 일에 열의가 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빠져있다. 배우면 고생이 많으니 평범함을 주장한다.
이 사람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는 평범하지 않다. 평범함 속에서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평범하다고 할 때, 그 평범이 돌고 도는 생생약동함에
의한 평범이라면 괜찮지만 비전과 목표가 없는 평범은 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사람은 가능하면 무엇을 안 하려고 하며, 적당히 하려고 한다.
나는 평범함을 원했기 때문에 늘 1등을 할 기회가 있어도 2등을 했다.
평범함을 주장할 때는 평범해야 하고, 특별함을 주장할 때는 특별해야 한다.
우리 주산님은 자기가 직접 나가서 방송도 하곤 하였다.
위엄만 있는 사람은 온순한 태도가 없는 면이 있다.
능소능대해야 한다. 크기만 하거나 작기만 해도 안되며, 밝기만 하거나 어둡기만 해서도 안된다.
대 자리만 밝혀도 안되며, 소 자리만 밝혀도 안된다. 우리 원불교 마음공부를 탁 체를 잡아야 한다.
대종사님이 그렇게 하셨다.
내가 교무를 하면, 아침에는 초상집 가서 천도독경 해주고
원불교, 그 일 그 일에 일심해야 한다.
작은 것을 너무 크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뜻없이 화하기만 하면 청탁을 가리지 못하는 면이 있다.
그냥 다 좋다고만 하면 오해도 사게 되고, 못할 것이 얽히게 된다.
너무 강한 사람은 잔인한 병이 있다.
내가 그런 면이 있는가?
어떻게 다 살릴 수 있겠는가?
때로는 두드려 패기도 하고 때로는 말을 해서 결국은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너무 자기의 스탈일이라면서 자기를 올가미에 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스타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심지는 원래 스타일이 없나니” 절대로 착각하지 말라!
경계 따라 있어지는 것이며, 업력 따라 있어지는 것이다. 자기를 착각하지 말아라.
유하기만 하면 모든 일에 결단력이 없다.
여러분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작은 일과 큰 일에 선후본말 주종을 알아야 한다.
이런 저런 것들이 겹치면, 어렵지만 겹칠 때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결단력이 없어서 여기 저기에서 신용없는 사람이 되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만오교우님께서 “나는 몸으로 하는 것이 좋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조금 그렇다.
몸으로 하는 것도 좋고, 정신으로 하는 것도 좋아야 한다.
공부는 귀신도 모르게 흔적없이 하라고 하였다. 형식만 갖추어서는 안된다.
우리 원불교 공부는 형식만 갖추어서는 안된다. 형식 속에 내용이 있어야 하며,
그 안에 여의보주로 조화가 일어나야 한다. 남이 보일 때만 하고, 안 보일 때 안하는 것은
형식 속에만 파묻힌 것이 아니겠는가.
공부 잘하면 혜족족, 사업 잘하면 복족족한 사람이 된다.
우리에게 지혜가 있다면 어떤 것도 답답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길만 몰라도 얼마나 헷갈린가.
우리가 사은에 보은을 한다면 누가 싫어하겠는가.
사심있는 사람은 사심있는 사람도 싫어한다.
공심있는 사람은 사심있는 사람도 좋아한다.
대종사님께서 하라고 한 것은 해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잘못된 것이 아니면 한번 해보라고 하셨다.
내가 받은 은혜를 정말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닐 것이다. 질문 있으면 해 주시기 바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심지는 원래 스타일이 없나니"......에고이스트들을 안타깝게 생각하게 됩니다(원만한 사람이 돼어야지(이런 에고는 봐줍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