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대축일 새벽 2023. 12. 25.
루가 2:8-20.
놀라움으로 고백을!
성탄 새벽, 우리는 루가복음 탄생 이야기 2탄을 듣습니다.
밤새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마구간 구유에 누운 아기와 그 부모를 만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난 목자들은 낮은 계급의 사람입니다.
목자들은 천사에게서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듣고 마구간으로 갑니다.
마구간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놀라운 광경입니다. 온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가 초라한 곳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놀랍고, 그럼에도 그것이 장차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된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목자들이 양띠를 버리고 갈 만큼 들뜬 사실도 놀랍고 목자들이 떠들고 다닌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도 놀랍습니다.
이 말씀을 쓰고 듣고 읽었던 초기 신앙인들의 담대한 복음 선포 자체도 놀라운 일입니다.
잘못한 만큼 벌을 받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금과옥조였던 당시에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선포하신 예수님의 그 행동도 놀랍습니다.
그냥 놀라기만 할 뿐이었다면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닌 군중에 불과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놀라울 뿐이었으니, 기적을 바라고 낫고 먹기를 바라던 순진한 백성들에게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스도 신앙인은 맨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놀라움으로 채워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그저 놀라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예수 탄생의 사실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모든 일을 당신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고 오늘 복음이 전합니다. 그 마리아의 모습이 우리 신앙인의 모본이 되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잉태 사실을 알고 순종하며 자신의 기도를 힘껏 바칩니다.
말씀을 영접하는 신앙인은 복음 앞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긴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그분의 하신 모든 일들을 마음에 되새기며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마음에 되새기는 사람은 마음에 새긴 대로 실천합니다.
이렇게 신앙의 출발점은 놀라움입니다. 그것은 비상식적일 수 있습니다.
놀라움에만 머물러 있으며 또 다른 놀라움, 더 크고 충격적인 놀라움을 좇을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그 놀라운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깊이 묵상하며 실천하도록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마음에 새기고 고백한 대로 실천하는 것이 기도이자 공부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가 함께 고요히 바치는 이 시간도 바로 마음에 새기는 시간입니다.
떠들썩하고 술과 잠에 취해 있는 세상에서 성탄의 진짜 의미를 찾고 고백하고자 함께 모여 머리를 숙이고 간구하니, 우리가 놀란 만큼 주님께서도 놀라셨으리라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임에 분명합니다.
결국 우리가 주님의 역설적인 삶의 자리에 오심을 놀라워하듯이 주님도 우리의 고백과 실천으로 놀라워하실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폴 틸리히는 인간과 피조물이 존재하기에 하느님도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앙이란 결국 ‘궁극적 관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과 대답입니다. 예수님의 ‘궁극적 관심’은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그것은 생명, 정의, 자유, 사랑이라는 단어로 압축할 수 있는데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셨습니다. 자기 부정과 자기희생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온전히 이루신 것입니다.
하느님과 끊임없이 상호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 역시 예수님의 ‘궁극적 관심’인 하느님 나라의 실현과 희생에 의해 날마다 회복되고 새롭게 변화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 없이 사회적 관심사만 얘기하거나 사회의 문제에 대한 의식과 참여 없이 복음만 말하려는 경향 모두 예수님 탄생의 놀라움을 실현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놀라움을, 역설의 신비를 몸으로 체현해 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몸으로 살아내는 존재임을 기억합니다.
그 놀라움이 성찰의 근본이 되고 성숙한 고백이 될 것입니다.
그 성숙한 고백은 우리의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하느님 존재의 이유가 되는 순간입니다.
우리의 이런 마음과 고백과 행동 그 한가운데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습니다.
놀라움에서 마음 깊이 새김으로 고백 되는 놀라운 시간입니다.
두렵고 떨리지만, 우리의 숙고와 고백 그 한 가운데 예수님이 오실 자리를 만들어, 함께 놀라고 함께 기뻐하는 성탄 새벽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