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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바텀 라인(Double Bottom Line)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자리잡은 가방회사, ‘팀북투(Timbuk2)’에 투자한 퍼시픽지역사회벤처(PCV)는 3년여 만에 4배반에 달하는 수익을 거뒀습니다. 팀북투 지분을 사모투자펀드(Private Equity Fund)에 매각해 차익을 얻은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팀북투의 종업원 40여 명은 이익배분(Employee Wealth Sharing) 프로그램을 통해 100만 달러를 현금으로 배분받았습니다. 종업원 대부분은 샌프란시스코의
저소득, 소외층이 직원이 팀북투가 이만한 경영성과를 올린 건 사업의 혁신성 덕분입니다. 이 회사가 판매하는 가방은 소비자가 직접 나만의 스타일로 색깔을 칠할 수 있다는 독특함 덕분에 3년여 간 매출이 3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커윈 테스델 지역사회개발벤처캐피털협회(CDVCA) 회장은 “미국에서 많은 회사들이 중국, 인도 등 임금이 싼 지역으로 공장을 옮기고 있지만, 지역사회에서 고용을 창출하는 지역사회개발형 벤처들은 경영효율과 기술력을 높여 일자리와 수익을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적 비즈니스가 세계 각국의 정부와 시민사회, 기업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사회적 비즈니스란,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해서 수익을 내고, 그 수익으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사업을 벌이는 경영행위를 뜻합니다.
사회적 비즈니스를 통해 시민사회와 정부는 적은 돈으로 실업, 공해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양질의 사회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기업에서 쓰는 경영기법을 도입하려고 합니다. 기업은 소비자, 투자자가 원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때로 사회가 원하는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하면서 안정적 매출, 수익기반을 얻으려 합니다.
이러한 시류에 따라 사회적 목적과 경제적 수익을 동시에 충족하는 더블 바텀 라인(Double Bottom Line) 기업이 뜨고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결산 맨 마지막 줄의 재무적 수익 부문(Bottom Line)만 신경 쓰는 일반 기업과 달리,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두 번째 수익부문(Double Bottom Line)을 함께 평가 받습니다.
일부 경영학자들은 재무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더블 바텀 라인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기업과 사회에 모두 안정적인 수익을 준다고 주장합니다.
제롬 S. 엥겔 버클리대 경영대학원(Haas) 교수는 “일반 기업은 경기 변동에 따라 수익이 크게 출렁거리지만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기업은 그 사회가 사회적, 정치적 지원을 통해 수익기반을 지지해주기 때문에 수익변동성이 적다”고 분석합니다. 이 때 기업이 속한 사회는 안정적 일자리, 안전한 상품, 사회적 서비스 등 사회적 가치를 얻게 됩니다.
이에 덧붙여 제롬 교수는 “소비자, 투자자들이 기업의 경영행위에 들어가는 환경, 교육 등 사회적 비용을 알게 되면서 점차 개인적 이득과 함께 사회적 이득을 함께 고려해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재무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등 혼합가치(Blended Value), 더블 바텀 라인(Double Bottom Line)을 충족하는 기업의 수익이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책임투자, 사회적 기업이 모두 이러한 트렌드 변화의 연정선 상에 있습니다.
주류 경영학자들과 시장의 관점 변화 속에, 하버드대 등 영미권의 유명 MBA들은 1990년대 이후 앞다투어 사회적 기업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탠포드대와 컬럼비아대 등 일부 MBA에서는 졸업생이 비영리단체나 사회적 기업에 취직하면 학자금을 탕감해주는 프로그램(Loan Forgivenes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컬럼비아대, 버클리대, 예일대, 런던비즈니스스쿨, 인도비즈니스스쿨 등 미국, 영국, 인도의 MBA들은 2000년부터 세계사회적벤처경연대회(Global Social Venture Competition)를 경영학도와 경영인을 대상으로 열고 있습니다.
사회적 비즈니스의 효과는 사회복지에서도 나타납니다. 사회소외계층을 노동시장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자활사업’을 운영하는 프랑스는 사회적 비즈니스를 통해 상당한 세출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지역자활지원협회가 2002년 르와르 지방의 자활사업 효과를 연구한 결과, 이 지방에서만 연 4,200만 유로, 우리 돈 504억여 원의 사회적 부조금이 절약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크 뒤게라(Jacque Dughera) 전국자활지원협회 사무총장은 “이전에는 자활사업에 대해 국가가 사회적 배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많이 쓰는 부문이라고 여겼지만 최근 이 부문에 경영기법이 도입되면서 일반기업처럼 부를 창출하면서 국가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부문으로 사회관점이 바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더블 바텀 라인은 이제 선진국과 후진국, 영미국가와 유럽국가,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국내에서도 ‘더블 바텀 라인’이란 용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책임투자, 사회적 기업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경영인, 투자자, 시민단체 활동가 사이에 서서히 퍼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국제연합(UN)과 캘퍼스(CALPERS) 등 해외의 대형 연기금들이 책임투자원칙을 천명하고 국민연금 등 국내 대형 연기금이 사회책임투자펀드에 투자를 시작한 뒤, 사회책임투자펀드와 편입종목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급속도로 높아졌습니다.
파리10대학 사회경제학 박사과정의 김신양 씨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유럽형 복지국가 모델에 위기가 오고 다인종, 다조건 사회인 미국에서는 사회통합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다”면서 “이에 따라 국가가 제대로 하지 못하는 기능이 기업, 시민사회 등 민간으로 이전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즉, 기업의 지나친 탐욕으로 환경오염, 저숙련 노동자 착취 등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자 시민사회는 소비자운동, 주주운동 등 간접적인 기업통제에 나섰습니다. 사회서비스 프로그램의 비효율이 문제시되자 시민과 기업진영에서는 경영노하우를 사회적 문제 해결 과정에 도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기업은 사회적 효과를,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시민사회는 경영의 효율성을 서로 결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입니다.
‘메가트렌드 2010’에서 미래학자 패트리셔 애버딘은 최근의 변화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비즈니스 게임은 끝났다. 자본주의의 그늘에 감춰진 탐욕과 기만을 자유의지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제 장벽에 부딪혔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것을 보아왔고, 그 결과를 참아왔으며, 우리들의 집단적 선택을 만들었다. 그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애버딘이 ‘깨어있는 자본’이라고 표현한 21세기형의 새로운 자본은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기금 등 대형금융자본의 사회책임투자(Social Responsible Investment), 다국적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Sustainable Management), 사회적 기업 등 사회적 연대조직.
1. 프랑스의 사회적 기업, 에스파스(Espaces)
“우리가 하는 건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에요. 일을 못해서, 할 기회가 없어서 일하는 법을 모르거나 잊은 사람들한테 일할 수 잇게 해주는 곳입니다. 이건 경제적 문제가 아니에요.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안 됩니다.”
강 건너 긴 시멘트 벽에 ‘필요(Needs),’라는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습니다. 르노 자동차 공장이 빠져나간 빈 자리입니다. 그 뒤로 파리의 빌딩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중세의 성처럼 굳건하게 어깨를 겯고 섰습니다.
1995년 에스파스가 설립된 건 어찌 보면 르노 공장 이전 때문입니다. 1991년, 르노자동차 공장이 빠져나간 거대한 부동산에서 투기 붐이 일어날 것을 우려한 끝에 ‘푸른 센 계곡’이라는 환경단체 사람들은 센강 주변에서 각종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강변을 떠도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깨끗한 강둑을 원하는 사람들과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모여 에스파스를 만들었습니다.
에스파스는 생태적인 환경정비사업을 벌여 지역에서 돈도 벌고 일자리도 만들어냅니다. 자활참가자가 하는 일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무너진 강둑엔 땅을 건강하게 해주는 식물들을 골라 심어 침식을 막습니다 생태를 파괴하는 수종이 번성하면 번식을 억제해 주변을 살립니다. 기술은 에스파스 기술부의 전문가가 제공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일이 사람을 바꿨습니다. 자기 손 아래 살아나는 자연을 보면서, 의욕을 잃었던 사람들은 일하는 기쁨을 되찾아갔습니다. 환경도 살리고 노동력도 살리고, 일거양득입니다.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 묻지 않으세요?”
지라르끌로 국장이 눈을 찡긋하며 묻습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아마 이전에 에스파스의 성공사례를 견학하러 온 한국의 시찰단들이 비용, 규모 등 경제적 효과를 주로 물었던 탓이리라.
일단, 숫자로 보면 에스파스는 여느 한국의 자활사업장과 비교해 일자리 창출효과나 재정적 독립성이 그다지 뛰어나 보이지 않습니다. 기술부원 25명을 포함해 실무자 40명에 자활근로자가 130명입니다.
에스파스의 연 재정은 300만 유로, 우리 돈으로 36억여 원입니다. 이 중 87%를 도, 지방, 코뮨 등 공공부문에서 조달하고 매출 등 사적영역에서 10%, 재단과 은행 등 기부로 3%를 충당합니다.
그러나 에스파스가 일으키는 변화의 질적 측면은 좀 다릅니다. 현재 에스파스 직원 40명 중 5명이 자활근로자 출신입니다. 즉, 자활근로자는 기술훈련만 받는 게 아니라 사회적 기업의 지도자로도 양성된다는 뜻입니다. 지자르끌로 국장은 “직원들이 가능성 있는 자활근로자를 찾으면 처음에는 기술훈련 조교를 맡기다가 학위(국가의 직업교육센터과정)을 받도록 돕는다”고 말합니다.
‘참여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 프랑스 사회적 기업의 차별성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적경제개발지원조직인 아비즈(AVISE)의 파트릭 제즈 사무총장은 사회적 기업현황보다 먼저 거기에 속한 한 사람의 일상부터 설명합니다. 직장 일은 물론 병원, 은행, 보험, 자녀의 가정과외, 연극 관람, 심지어 축구경기일정을 확인하는 일까지 사회적 기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봐선 일반은행, 기업을 이용하는 한국인의 삶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안에서 일어나는 과정이 다릅니다. 가치창출, 가치교환, 이익배분의 과정에 ‘연대’와 ‘호혜’의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가령, 에스파스의 작업장에선 돈을 받고 일하는 자활근로자와 내 지역을 아끼는 자원봉사자가 함께 일을 합니다. 덕분에 사회적 기업은 작업에 드는 인건비를 낮출 수 있고, 지역민은 생태친화적 환경 조성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익분배과정도 다릅니다. 제즈 사무총장은 “사회적 기업은 수익, 비수익 어느 부문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면서 “다만 사적 기업의 목적이 개인적 부의 창출인데 비해 사회적 기업은 수익을 집단적 목적에 사용한다는 게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집단적 목적이란 기업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서비스나 상품을 창출하는 것, 또 기업을 둘러싼 멤버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 충족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적 기업이 지분비중에 따라 투표권을 갖는 데에 비해 사회적 기업은 모든 이해관계자가 1인 1표를 행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런 스타일로 운영되는 사회적 기업 부문이 프랑스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합니다. 에스파스와 같은 자활작업장, 인력파견단체, 지역관리기업 등 정부의 자활사업(IAE)과 관련된 곳만 4,000여 곳이 넘습니다. 전체 사회적 기업의 수는 80만여 개를 넘어섭니다. 종사자수는 1,800만여 명으로, 경제활동인구의 8.7%에 이릅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은 프랑스에서는 협동조합, 시민단체 등 비영리기구도 경제적 목적을 추구하면 사회적 기업으로 분류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곳은 비영리기구라 해도 영리기업처럼 재정적 위험에 대비하고,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일자리도 창출합니다. 즉, 경영기법을 사회사업과 결합한 사회적 비즈니스를 합니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사회적 기업 부문은 좌파, 우파 양측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우파 쪽에서는 “일반 기업보다 효율성과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이고, 좌파 쪽에서는 “저임금 일자리를 양산해 일자리 양극화를 고착화시킨다”는 비판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프랑스의 사회적 기업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존재기반에 있습니다.
거기엔 프랑스 혁명 직후 초기 사회주의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회합의의 전통과 뿌리가 있습니다. 파리10대학 언론정보학 박사과정의 이진랑 씨는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은 프랑스 경제의 한 부분으로서, 특히 국가의 정치적 프로젝트로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 속에 존재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2. 이탈리아 사회적 협동조합, 프라떼르니따(Fraternita)
“와아, 로마에서 20유로 하는 알레포 비누가 여기선 2.3유로네요.”
지역 주민 한 명이 상점 입구에서 탄성을 지릅니다. 그는 “올리브로 만든 시리아산 천연비누인데 아토피 피부에 좋다”면서 세탁비누처럼 투박하게 생긴 비누 네댓 개를 집어 들고는 다른 진열대의 상품을 살핍니다.
70여 평 상점 안에는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알로에 화장품부터 그리스에서 만든 목욕용 제품, 말레이시아에서 온 나무 장식품까지 갖가지 가정용품이 가득합니다. 모두 자연성분 그대로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한 설명서가 붙어 있습니다. 가정용품들 가운데 십여 권의 책과 안내서가 놓인 진열대가 도드라져 보입니다.
“공짜에요. 가져가세요.” ‘협력(Cooperazione)의 기적’이라고 쓰인 책을 집어 들자 점원이 계산대 너머로 손짓하며 설명합니다.
“그건 1900년에 지오바니 본시뇨리(Giovanni Bonsinori) 신부가 쓴 책인데, 그 분은 브레시아 지방에서 처음 협동조합 운동을 벌였어요. 그 옆에 것은 우리 프라떼르니따(Fraternita) 설명자료이고요.”
사회적 협동조합 ‘프라떼르니따’가 운영하는 ‘녹색상점(La Bottega Verde)’은 상품만 팔지 않습니다. 공정무역제품, 친환경제품, 재활용품을 왜 써야 하는지, 사회적 연대와 협동이 왜 필요한지 판매, 접객을 통해 직접 보여줍니다. 새로운 가치관의 전시관인 셈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동쪽, 인구 20만여 명의 작은 도시 브레시아는 사회적 연대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주는 산 교육장입니다. 정신질환자 등 노동력이 없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곳부터 그들을 훈련하고 스스로 약간의 돈을 벌게 도와주는 곳,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는 곳, 그들이 만든 상품을 파는 곳까지 갖가지 형태의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제비(La Rondine)’란 의료조합에서 일하는 정신과 의사 자코모 필리피니 씨는 심신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노동시장에 재편입되기까지 보통 5단계의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훈련, 실습입니다. 여기서 일하는 기술을 배운 참여자는 사회화 단계를 거칩니다.
특이한 점은 1, 2단계를 ‘치료 과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일하는 과정 자체가 살아있다는 기쁨, 자존감을 되찾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 2단계는 원예, 정원 가꾸기 등 단순하면서 스스로 성과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작업, 자연 속에서 호흡하는 작업들로 구성됩니다.
이 과정에서 의사와 사회복지사가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사람은 가족의 동의를 거쳐 3단계 작업장에 투입됩니다. 이 때부터 일하는 시간만큼 정부가 급여를 줍니다. 종일 일할 수 있는 사람은 4단계로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일반 직원과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 일합니다. 이 중 어떤 이는 정부의 알선을 받아, 어떤 이는 자기 힘만으로 일반기업에 취업하기도 합니다. 일반 노동시장으로 편입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외계층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는 ‘사회적 협동조합법’을 만들어 여러 형태의 비영리기관들을 지원합니다. 이 기관들은 ‘수혜자’를 ‘고객’이라고 부릅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면 ‘입찰’에 참여해야 합니다. 아니면 서비스 ‘수요’를 증명해야 합니다. 일반기업이 투자나 사업권을 얻어내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노숙자, 알코올중동자가 쉬어가는 브레시아 지역생활센터는 10여 년 전 자원봉사자들이 시에 제안해 만든 곳입니다. 책임자 마우로 리또벨리 씨는 “이탈리아에선 법적으로 정부가 노숙자나 부랑자를 보호할 의무가 없지만 지역민과 자원봉사자들이 이 서비스의 필요성을 설파해 관공서로부터 센터 설립을 지원받았다”고 말합니다. 그 역시 자원봉사자 출신입니다.
입구에서 보기엔 이 센터는 깔끔한 카페 같습니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노인 서너 명이 바에 기대 음료를 마시거나 테이블 축구를 즐깁니다. 안쪽에선 네댓 명의 중년 남자들이 안락의자에 길게 누워 텔레비전을 봅니다. 정원을 두고 양쪽에는 알코올중독 등 정신치료를 위한 작은 진료공간과 부랑자를 위한 입소시설이 보입니다.
지금은 평온해 보이는 이 센터는 4년여 전, 주민들의 요청으로 위치를 브레시아 시 한가운데에서 범죄 우발지역으로 옮기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센터가 자리잡은 후 근처 부랑자와 알코올중독자가 머물 곳이 생기면서 오히려 범죄가 줄어드는 예상치 못한 효과를 얻었습니다.
사회적 협동조합 ‘프라떼르니따’는 이 다음 단계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프라떼르니따는 이름 그대로 ‘협동조합 그룹’입니다. 노인, 장애인 등 소외계층에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A유형’ 4곳과 이들을 위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B유형’ 10곳이 한 데 모여 있습니다.
프라떼르니따는 원래 1978년 소외층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는 구호소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구호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선 최소 생계비는 직접 벌어들여야 했습니다. 1980년 구호소는 원예 등 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재창립됐습니다.
일부 종사자의 임금을 정부로부터 보조받기는 하지만 이 조합이 직접 일으키는 매출도 상당 규모에 달합니다. 원예, 농업, 환경, 자동차 정비 등 각 분야에서 거둬들이는 연 매출액은 1,700만 유로(약 204억원), 고용인원은 350명에 이릅니다. 지난 6년간 매출액증가율은 208%, 고용증가율은 176%였습니다. 기업으로서도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셈입니다.
성공한 기업이 그러하듯 사회적 협동조합의 성공에도 장기투자자본과 우수한 인력은 필수요소입니다. 이탈리아에는 윤리은행, CGM금융, COSIS 등 대안금융기관이 있어 예금, 기부금, 공적 기금 등 다양한 재원을 마련합니다. 사업계획서를 쓸 수 있는 전문인력들은 그 자금을 끌어와 사회적 서비스, 환경친화적 상품을 사회에 제공합니다.
사회적 비즈니스로 모여드는 인력이나 자본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돈’ 즉 재무적 가치 말고도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정보기술 엔지니어 출신인 에치오 플라타 프라떼르니따 농업조합 대표는 “급여가 줄어든 건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기쁨이 더 크니까요.”
3. 이탈리아 대안금융기관
어느 나라에서든 가난한 돈에의 젊은이가 취직하기 가장 쉬운 일자리가 있습니다. ‘범죄조직’.
이탈리아에서는 얼마 전 “나폴리에 안전한 곳은 한 곳도 없다”는 내용의 경찰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나폴리의 교도소가 수용능력이 한계에 달했다며 10대 후반 재소자 2,700여 명을 무더기로 출소시킨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나폴리 주민들은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지역 경제 침체와 일자리 부족”이 청년들을 마피아로 몰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폴리에서는 마약거래 망보는 일자리로 한 달에 1,500유로(약 180만원)를 벌 수 있습니다. 경찰 월급보다 많습니다.
이탈리아에서 18~25세 젊은이들의 실업률은 24%로, 전체 실업률의 2.5배가 넘습니다. 경제성장률은 내내 선진국 중 최하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 편입 후 적자재정정책을 펼 수 없게 된 이탈리아 정부가 할 수 있는일은 별로 없습니다. 정성장 경제, 정치적 혼돈 속에 이탈리아에서는 ‘일자리를 만들겠다’, ‘환경친화적 기업을 키우겠다’고 나서는 자본, 자본가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기업개발회사란 뜻의 코시스(COSIS)와 윤리은행(Banca Ethica), 마이크로크레디트 ‘막(MAG)’같은 대안금융회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1995년 유럽고용재단이 세운 코시스는 시중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사회적 기업, 사회적 협동조합과 그 종사자들에게 5%대의 융자를 제공합니다. 이탈리아 시중금리가 7.5~9%인데 비하면 낮은 금리입니다.
대안금융기관이지만 활동 규모와 내용은 어지간한 저축은행에 비견할 만합니다. 코시스는 지금까지 400개 업체에 5,700만 유로, 우리 돈 684억원을 지원했습니다. 자본금은 2,130만 유로(256억원)에 달합니다.
재원을 확보하는 방식도 기업적입니다. 코시스는 1997년 이탈리아 최초의 윤리채권인 ‘연대-
또, 1998년엔 EU지역개발기금으로부터 지역개발용 자금 1,560만 유로를 유치하는데 성공해 ‘오아시스(OASIS)’ 프로젝트를 출범시켰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사회적 기업을 육성해 지역의 사회서비스 수요츨 충족시키고 고용취약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1998년 설립된 또 다른 대안금융인 윤리은행은 일반은행과 똑같이 예금을 받고 대출합니다. 단, 예금 받은 돈은 철저히 사회적 목적을 위해 대출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 은행의 대출대상은 사회협동조합이나 사회적 일자리, 환경단체와 영농조직, 제3세계 협동조합 발전과 공정거래, 문화∙교육활동으로 제한됩니다.
윤리은행을 잉태한 막두에 파이낸스(MAG2 Finance)는 1980년 설립된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입니다. 성폭력 피해여성, 세르비아계 문인 등 기회가 없는 계층에 단체당 3만 유로, 1인당 1만5천 유로까지 대출해 줍니다.
이탈리아의 대안금융기관들은 사회를 생각하는 자본가와 전문인력이 결합해 만들어졌습니다. 알베르토 마넬리 코시스 이사는 “코시스의 85% 대주주인 유럽고용기금은 카톨릭적 윤리관을 기반으로 세워진 로마저축은행협회가 기부해 만든 것”이라면서 “이사회 역시 변호사, 교수 등 전문직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다”고 말했습니다.
4. 미국 원월드헬쓰(One World Health)와 벤처자선가들
원월드헬쓰(One World Health)는 투자자 이름만 봐도 쟁쟁합니다. 빌 게이츠 MS 창업자와 제프 스콜 이베이 공동창업자, 리먼 브러더스. 다들 기업공개(IPO)를 통해 떼돈을 번 성공적 벤처기업가, 투자자입니다.
이 기업이 설립 6년 만에 끌어온 자금은 1억300만여 달러, 우리 돈으로 963억원이 넘습니다. 2006년 6월 세계적 갑부 워런 버핏이 300억 달러를 빌&멜린다 재단에 기부한다고 했을 때 멜린다 게이츠가 이 기업을 협업 파트너로 언급했습니다. 어떤 기업이기에 이렇게 돈과 투자자가 몰리는 걸까?
이 기업에 투자해 IPO로 돈 벌어볼 욕심을 냈다면 얼른 그 기대를 접어야 할 것입니다. 원월드헬쓰는 제약회사이지만 미국 501(c)3법을 적용받는 비영리기구(NPO)입니다. 이 기업은 가난한 환자들이 많은 저개발국 풍토병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 목적인 ‘사회적 기업’입니다.
빌&멜린다 재단은 지난 2006년 11월, 이 회사의 약 개발 프로젝트에 4,600만 달러를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이 재단이 이 회사에 기부한 자금은 총 1억1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944억여 원에 달하게 됐습니다. 이 밖에 스콜 재단, 리먼 브러더스 재단, 화이자 재단 등 22개의 재단과 수백 명의 개인 기부자가 이 회사 프로젝트에 적게는 수백 달러, 많게는 수십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영리 목적의 회사도 설립 6년여 만에 1천억원에 가까운 투자금을 모으기 쉽지 않은 터에 비영리를 표방한 사회적 기업이 이렇게 많은 자금을 모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혁신성’이었습니다. ‘저개발국 빈민층의 건강을 증진하겠다’는 목적에서 원월드헬쓰는 어느 벤처 기업 이상 혁신성을 발휘합니다.
혁신의 방향은 두 가지입니다. 제약회사들조차 채산성이 맞지 않아 만들지 못하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술 혁신, 그리고 그 약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경영혁신입니다.
원월드헬쓰의 창업자이자 CEO인 빅토리아 헤일 박사는 美 식약청(FDA)에서 일하다가 풍토병으로 죽어가는 저개발국 빈민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저개발지역의 풍토병 치료제는 빈민이 고객이라 기대수익이 낮습니다. 당연히 영리를 추구하는 제약회사는 이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헤일 박사는 비영리 제약회사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짜고는 1998년 첫 종자돈을 투자했습니다. 헌신적인 약학자, 국제적 기생충 전문가들도 모았습니다.
헤일 박사가 회사를 설립한 것은 2000년, 빌 게이츠 재단의 첫 기부금 460만 달러를 받은 것은 2002년, 인도 정부로부터 ‘리슈만편모충증 치료제’를 승인받은 것은 2006년 8월로, 창업부터 자금조달, 기술인정과정이 마치 기술벤처의 성장사를 보는 듯합니다.
기술력 뿐만 아니라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이 기업성장에 박차를 가했다는 점도 기술벤처와 비슷합니다. 지난해 말부터 인도 비하르 지방에서 판매되고 있는 리슈만편모충증 치료제는 하루 두 번, 21일 체료과정에 단 돈 10달러를 받고 있습니다. 헌신적 연구자를 모아 약을 개발한 후 제조법을 현지 공장에 무상이전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낮춘 덕분입니다. 샤가스병(수면병), 설사병, 말라리아 치료제도 이런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기업혁신만으로 기업성장의 토대가 마련되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성패의 리스크를 함께 나눌 혁신적 투자자가 필요합니다. 미국의 정보기술혁명을 이끈 ‘동업자’, 벤처기업가와 모험적 자본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미국의 사회문제해결분야에서 변혁을 이끌고 있는 주역 역시 벤처기업가와 모험적 자본가입니다. 빌 게이츠, 제프 스콜, 피에르 오미디야르 등 성공한 벤처창업가들은 속속 벤처자선가(Venture Philanthropist)로 변신했습니다.
버클리대 MBA(Haas)의 제롬 엥겔 교수는 “벤처자선가가 출현한 이후 기부에 있어서도 효율과 효과의 극대화를 중시하는 조류가 나타났다”고 지적합니다.
경영인이었을 때 그랬든, 이들은 사회문제해결에서도 ‘혁신성’을 중시합니다. 이베이 창업자인 피에르 오미디야르는 골드만삭스재단과 함께 세게사회적벤처대회를 후원하고, 사요카 등 사회적 벤처캐피탈에 투자합니다. 영화제작자로 변신한 제프 스콜은 스콜 재단을 세워 사회적 기업의 투자, 자원연계, 홍보를 지원합니다.
투자자가 투자 대비 수익(ROI)를 보는 식으로, 모험적 자본가들은 기부에서도 투자 대비 사회적 효과(Social Return on Investment, SROI)를 따집니다. 워런 버핏이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이 아니라 빌&멜린다 재단에 기부금을 맡긴 이유도 그 재단의 사회적 효과를 높이 산 데에 있었습니다.
벤처적 성격을 띤 기부자금의 규모는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2006년 말 현재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가 빌&멜린다 재단에 기부한 금액만 해도 총 600억 달러에 이릅니다. 빌&멜린다 재단의 규모는 미국 GDP의 0.53%에 달해 어지간한 소국의 GDP를 능가하는 규모를 자랑합니다.
일부 벤처적 개인재단은 다른 기부자의 요구에 의해 공적 재단으로 변모하기도 합니다. KKR펀드의 공동설립자 조지 로버치가 세운 사회적 기업 육성기관 ‘REDF’가 그런 예입니다. 원래 REDF는 로버츠의 기부금올 운영되는 개인재단이었지만 이젠 로버츠가 기부하지 않아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재정자립도가 높아졌습니다. 사회적 기업 육성을 통해 빈곤 퇴치, 소수민족 청소년 교육 등 지역사회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보고 UBS, 휴렛팩커드 등 다른 기부자들이 상당 규모로 기부하기 시작한 덕분입니다.
엥겔 교수는 “벤처자선가들은 주어진 시간의 제한 속에서 더 효율적으로 더 큰 사회적 효과를 얻길 기대한다”고 설명합니다. 미국의 벤처정신이 이벤엔 사회변혁의 분야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5. 美 사회적 금융기관과 사회적 투자자
60년 전 꽃다웠던 신부, 로즈 윌리엄 할머니는 미국 뉴욕 할렘가의 자기 집 거실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80 평생 할머니에게 ‘집’이라는 따뜻한 말이 가리키는 공간은 이 곳, ‘안뜰(Garden Court) 아파트’ 뿐이었습니다.
이 곳에 사는 150가족 대부분이 그랬습니다. 어릴 적 자기가 놀던 안뜰에서 자기 아이들이 뛰어 노는 것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늙어갔습니다. 그 추억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었지만 그 집은 수십 년이 지나도 그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부보조로 사는 가난한 할렘가 주민에게 집 살 돈을 꿔주는 은행은 없었습니다.
로즈 할머니와 아파트 주민은 지난해 드디어 집주인이 됐습니다. 살고 있는 집을 내 집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뒤, 1990년대 내내 로즈 할머니는 ‘안뜰주택발전조합’을 결성해 주민들을 가입시켰습니다. 또 지역사회단체를 찾아다니고, 변호사들을 만나고, 다른 주민들에게 확신을 심어줬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 조각이라도 내 것을 갖길 원했어요. 내 힘으로 뭔가 가질 때 스스로 느끼는 자부심이란 게 있잖아요.”
‘내 추억이 깃든 집을 내 집으로 만들자’는 소박한 열망이 로즈 할머니와 주민들에게 1년여 세월 동안 꿈을 포기하지 않는 힘을 줬습니다. 하지만 소득이 낮고 담보가 없으면 은행 돈을 꿔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한국의 서민들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가 할렘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꿔줬을까?
은행과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그 곳에 사회적 자본가, 사회적 금융기관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자본가들은 지역사회발전융자기금(Community Development Loan Fund, CDLF), 지역사회발전은행(CDC)과 신협(CDCU), 지역사회발전벤처캐피탈(CDVC) 등 사회적 금융기관들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 저개발지역, 비영리단체(NPO), 사회적 기업에 돈을 투융자해줍니다.
로즈 할머니와 주민들에게 모기지론을 빌려준 곳은 ‘저소득층투자기금(Low Income Investment Fund, LIIF)’입니다. CDLF인 LIIF는 저소득층을 위한 모기지대출 뿐만 아니라 아동보육서비스, 교육, 지역사회를 개발하는 NGO들한테도 융자를 제공합니다. 이자율은 7.5~8%.
이렇게 낮은 금리로 자금을 제공할 수 있는 건 3~4%대 자금을 빌려주는 사회적 자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질리언 모시 LIIF 지역사회개발부장은 “씨티, 아메리카은행(BOA), 웰스파고, JP모건체이스 같은 은행들과 캘버트재단 등 민간재단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한다”고 말합니다. 정부에서 조달하는 자금은 미미합니다.
이 대목에서 또 하나의 의문이 떠오릅니다. 영리를 추구하는 미국의 은행들이 3~4%대 저리로 사회적 금융기관들에 자금을 공급해주는 이유는 뭘까?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지역재투자법(Community Reinvestment Act)에 따라 예금이나 투자자금을 받은 지역에 일정 비중 이상을 투융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점을 개설하거나 다른 은행을 인수합병하지 못하는 등 사세확장에 규제를 받습니다.
은행들과 달리, 민간재단과 사회책임투자자들은 더 자발적으로 사회적 금융기관에 자금을 빌려줍니다. 사회적 금융기관들이 내는 사회적 파급력을 보기 때문입니다. 모시 부장은 “1984년 이후 5,700달러(약 530억원)를 저소득층, 시민단체들에게 융자해줬는데 실제로는 46억 달러(약 4조2,780억원)를 지원한 효과를 봤다”고 말합니다.
원리는 매우 시장적입니다. 우선 LIIF가 신용이 거의 없는 저소득층, 시민단체 중 앞으로 소득이나 정부보조금, 기부금이 생길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과 단체를 골라 부동산 담보대출을 해줍니다. 빌딩 등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게 되면 담보력과 신용이 생깁니다. 그러면 다른 금융기관도 이들에게 신용을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손실률은 오히려 기존 금융기관 대출보다 낮습니다. LIIF융자자금의 손실률은 1% 미만입니다. 모시 부장은 “부동산 담보대출을 해주면 부동산비용이 낮아지고 개인은 더 좋은 일자리, 시민단체는 더 많은 기부금을 얻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쓸 수 있기 때문에 돈을 갚을 여력이 오히려 높아진다”고 설명합니다.
미국엔 이런 사회적 금융기관에 투자하는 전용 채권까지 있습니다. 캘버트재단이 발행하는 캘버트지역사회투자채권(Calvert Community Investment Notes)이 대표적인 상품입니다. 이 채권은 조달자금을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데 쓰지만 캘버트재단이 원금은 물론 0~4%의 이자까지 보장합니다.
이 채권의 투자자가 낮은 이자율을 선택하면 그 차액만큼 자기가 원하는 자선사업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캘버트재단은 투자자한테 ‘기부펀드(Giving Fund)’라는 개인계정을 만들어, 마치 펀드투자자가 펀드계정을 보듯 자신이 기부한 자금의 효과를 볼 수 있게 했습니다.
한편, 채권으로 조달된 자금은 LIIF같은 CDFI들에 98%가, 사회적 기업에 2% 정도가 대출되는데, 손실률은 0%에 가깝습니다. 비결은 ‘심사력’. 이 재단의 23명 직원 중 9명이 MBA출신으로 투융자 전문가들입니다.
일라이자 에릭슨 캘버트재단 투자책임자는 “자금을 대출해주기 전에 3년 정도의 재무상태와 경영능력을 점검한다”면서 “우리가 대출해주면 다른 금융기관도 대출을 해 줄 정도로 우리의 심사과정은 엄격하다”고 말합니다.
400여 개 시중 금융기관에서도 판매되는 캘버트채권은 2006년 9월 현재 총 9,300만 달러(약 865억원)가 판매됐습니다. 이 중 75%는 교회 등 종교단체와 개인투자자가, 25%는 캘버트재단이 직접 투자했습니다. 이 재단 자체가 사회책임투자펀드 운용사인 ‘캘버트투자’의 사회공헌사업을 수행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회적 기업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금융기관에도 두 가지 요소는 필수적입니다.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투자자, 자신의 능력을 거기에 기꺼이 쓰고자 하는 전문인력. 덕분에 내 집을 마련한 로즈 할머니는 행복합니다.
6. 세계적 커피 체인 스타벅스
전세계 1만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세계적 커피체인 스타벅스. 중국의 잠재력을 높이 보고 시장확대에 주력하고 있으며 이집트, 러시아, 브라질 등 신시장 진출을 위한 노력도 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벅스가 진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글로벌 시장 확대가 아니라 매장이 운영되고 있는 지역사회입니다.
스타벅스는 ‘새로운 시장이나 이미 진출한 시장에서의 성공 여부는 매장이 위치해 있는 곳의 고객과 지역사회와 중요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지역사회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경영방침에 아예 ‘회사는 지역사회와 환경보호에 적극 기여할 것’이라고 못 박았을 정도입니다.
뉴욕 맨하탄 파크 애비뉴 29번가에 자리한 스타벅스 매장은 3곳의 비영리 기구와 제휴를 맺고 있습니다. 시티 앳 피스 뉴욕과 커뮤니티 프리패러토리 스쿨, 시티 하비스트 등 3곳과 제휴를 맺고 지역사회와 긍정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시티 앳 피스 뉴욕은 10대들의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창조하도록 도와주는 비영리기구입니다. 올해로 3년째 파크 애비뉴 29번가 스타벅스로부터 현금지원을 받고 있으며 또한 매장 직원이 자발적으로 이곳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매장은 뉴욕시 전역의 기아 퇴치를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기구인 시티 하비스트에 남은 빵과자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프리패러토리 스쿨과 문제학생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기술 등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스타벅스가 지역사회에 투자하는 방법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기구에 대한
ü 현금기부
ü 스타벅스 제품 및 자원의 지원
ü 직원의 자발적 참여와 매칭 기프트 제도
ü 스타벅스 재단에 기부하는 방안
등 여러 가지입니다.
2005 회계연도 중 이뤄진 스타벅스의 현금 및 물품 지언 규모는 3,030만 달러입니다. 스타벅스 세전 순이익의 3.8%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스타벅스는 “기부활동이 지역 프로그램에 의한 것이건 글로벌 차원으로 진행된 것이건 항상 지역관련적인 것이 되고 전략적 방향과 같은 선상에 놓이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스타벅스는 2005년 회사내 지역사회활동팀을 확대하는 등 지역사회와 보다 강한 관계 형성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또한 해당 지역이 맞닥뜨린 이슈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고 특정 지역사회의 경제활동에 힘을 더할 수 있는지를 알아가기 위해 미국 시장협회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스타벅스 뉴욕 영업부의 마케팅 매니저인 댄 루이스는 “우리는 매장의 영업성과와 매장이 있는 지역사회의 체력간 연관성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매장직원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고 일하고 있는 지역사회에 있어 좋은 이웃, 그리고 활동적인 기부자가 될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보니 지역사회 활동을 통해 스타벅스가 얻는 가장 큰 이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지역사회가 잘 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루이스는 “매장이 성공과 지역사회의 더 나은 삶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직원들과 함께 더 강한 지역사회를 형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매장별 지역사회 활동은 전적으로 매장운영자가 결정하는 부분입니다. 루이스는 “회사에서 매장차원에서 해야 할 활동에 대한 일부 가이드라인은 제시하고 있으나 각 매장이 윤리적이고 지역적으로 적절한 활동에 참여하는 한 그 결정권은 매장 운영자에게 맡겨둔다”고 설명했습니다.
스타벅스는 또 지역사회와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매장 모습도 정형화된 틀에 의존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지역시민들이 계속해서 느끼고 보고 싶어하는 부분이나 매장이 위치한 곳에 있는 역사적 건물이나 특유의 건축물 등을 반영해 새로운 매장을 짓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스타벅스는 “우리 회사의 목표는 커피를 파는 곳이라기 보다는 지역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고 각 지역사회에 활기가 넘치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타벅스의 지역사회 투자활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당신의 이름 알리기(Make Your Mark, MYM)’ 제도입니다.
MYM은 스타벅스 미국과 캐나다 사업부에서 지역사회 투자에 대한 직원들 자발적인 노력을 장려하고 지원하기 위해 5년 전에 도입한 것으로 지역사회와 연계해 연중 지원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입니다.
이 제도를 통해 스타벅스는 직원들이 지정된 비영리기구에 대한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경우 시간 당 10달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직원 한 사람 당 최고 지원액은 1,000달러로, MYM 도입 이후 지금까지 미국과 캐나다 사업부 구성원의 비영리기구에 대한 자발적 활동 참여시간은 79만2,000달러이며, 풀타임 근로자 380명의 1년치 근무시간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직원들의 봉사활동에 대해서 뿐만 아니란 나눔 활동을 전개하는 현물금액에 대해서도 회사에서 동일한 금액을 지원하는 기프트매칭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05 회계연도 중 2,196명의 직원이 내놓은 기부금에 대해 스타벅스 측이 내놓은 기부액은 53만2,000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스타벅스는 저임금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점 등 각종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존경받는 기업에도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여기에는 스타벅스의 이 같은 사회공헌 노력이 큰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결국 스타벅스는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으로 수익이라는 금전적 이익보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7. 미국 비영리기구 더포인트
수십년 동안 미국 뉴욕의 사우스브롱스는 빈민가의 상징으로 여겨져왔습니다. 지금도 이 지역은 미국에서 하원의원 선거구 가운데 가장 빈곤한 지역 중 하나입니다.
브롱스 헌츠포인트는 특히 1만1,000명의 인구 대부분이 히스패닉이며 전체 가구의 약 37%가 빈곤층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5세 이하 어린이 가운데 80%가 빈곤층 가정에서 자라고 있으며 어린이 천식 발병률이 미국 평균의 두 배가 넘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헌츠포인트 지역이 최근 지속적인 개발에 힘입어 가장 활기 넘치는 예술도시의 잠재력을 갖춘 곳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헌츠포인트가 변화할 수 있었던 데에는 더포인트(The Point)라는 비영리기구의 역할이 컸습니다.
더포인트는 1994년 마리아 토레스, 폴 립스, 스티븐 사프, 밀드레드 루이즈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지원을 통해 헌츠포인트 지역의 문화가 기업발전을 이끄는 것이 목표입니다. 더포인트 설립 당시 사우스브롱스에는 극장이나 커뮤니티 센터가 전혀 없었고 이에 따라 문화와 젊은층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헌츠포인트 지역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가족 기업 맥스 블라우너와의 제휴와 개별적 지원을 통해 더포인트는 아메리칸뱅크노트가 소유하고 있던 지금 더포인트 건물이 위치한 곳의 토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더포인트는 헌츠포인트 지역민에게 무상 혹은 아주 싼 가격에 춤, 음악, 영화, 사진을 가르쳐줬고 지역 주민의 재능을 보여주고 지역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퍼포먼스나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상당수의 프로그램이 젊은이 및 다른 지역주민의 예술적 능력을 활용하는데 초점을 맞췄으며 또한 교육적, 예술적, 기업적 활동을 통한 개인과 지역사회 발전을 추구했습니다.
현재 더포인트의 프로그램과 활동은
ü 젊은 층의 개발
ü 예술과 문화
ü 헌츠포인트에 대한 재구상
ü 지역개발
의 4가지 카테고리 밑에 놓여 있습니다.
더포인트의 젊은 층을 위한 프로그램 중 하나인 저학년 방과후 프로그램(Early Grades After School Program)은 1~6학년 학생이 영화, 음악, 예술 연구회에 참여하고 학습교육 및 숙제 도움도 받습니다. 또한 1년에 한 번씩 전시회를 열어 헌츠포인트 지역주민의 작품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이와 함께 티셔츠나 실크스카프, 포스터 등을 만드는 예술가 및 디자이너 그룹인 브롱스 기어를 지원하고 이들이 만든 상품을 더포인트를 통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특히 더포인트 안에 있는 ‘라이브 프럼 에지 시어터’라는 극장은 이들의 가장 잘 알려진 문화적 노력 가운데 하나로 이 극장의 유명세는 헌츠포인트 지역회생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더포인트는 사우스 브롱스 영화제를 지원하고 있으며 이들이 제공하는 사진 수업은 사우스브롱스에서 가장 훌륭한 무료사진강좌로 꼽힙니다.
지역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발전시키기 위해 더포인트는 지역유망기업의 사업을 위해 회사부지 및 전문가를 지원해 줍니다. 기업들에게 일하고 회사를 경영할 공간을 제공해 줌으로써 더포인트는 지역사회 전체의 경제발전을 이끌고 있습니다.
더포인트는 헌츠포인트 지역주민과 그들의 재능, 야망이 더포인트가 가진 가장 위대한 자산이라고 믿으며 헌츠포인트의 문화적, 경제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