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가정, 문하 적응의 이중고 겪는 '아이들', 지원 절실
| ▲ 시흥시외국인복지센터가 운영하는 중도입국 청소년 대안학교 '희망나래학교' 학생들이 수업 중 희망을 꿈꾸며 웃음을 보이고 있다. 이정훈 기자 |
| ▲ 한국 전통 문화인 다도를 체험하고 있는 희망나래학교 중도입국 자녀들. |
오늘날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150만 명에 이른다. 우리는 어느덧 인구 100명 가운데 3명이 외국인인 '다문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13년 현재 157만 6034명으로, 지난해보다 9% 가량 증가했다. 결혼 이민자 수 또한 15만 명을 넘어서 지난해보다 1.6% 증가, 2010년 이후 약 10만 명이 늘어났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국제결혼의 꾸준한 증가에 힘입어 매년 빠르게 다양한 형태로 '다문화 사회'를 형성해 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뜻하지 않게 무관심과 차별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결혼 이민자들의 다음 세대에 해당하는 '중도입국 자녀'들이다. 올해 '제100차 세계 이민의 날'을 맞아 여전히 우리에게 생소하게 다가오는 중도입국 자녀들을 만나고자 수원가톨릭사회복지회 소속 시흥시외국인복지센터를 탐방하고, 그들이 처한 현실을 짚어봤다.
중도입국 청소년들 위한 대안학교 16일 오전 경기도 시흥시 공단1대로(정왕동) 시흥시외국인복지센터(센터장 최변재 신부). 수원가톨릭사회복지회가 시흥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이곳 센터 2층에 다다르자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교실에 들어서니 한국어 수업이 한창이다. 중도입국 자녀를 위해 센터가 세운 대안학교 '희망나래학교'다. 선생님의 한국어 문장을 따라 학생들이 어색하게나마 한국어를 말했다. 조사와 동사부터 하나씩 배워나가는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또래들과 함께 한국을 알아가고 있었다. 김장교(17, 중국)군은 "아직 한국어가 어렵지만, 친구들도 사귀고 운동도 같이할 수 있어 즐겁다"며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도 들어가 엔지니어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단어와 문장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힘줘 말했다. "얘들아, 얼른 한국어 배워서 너희가 가진 꿈과 희망을 얼른 펼쳐야지!" 중도입국 자녀는 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다가 부모의 재혼과 취업 등으로 부모를 따라 입국한 자녀를 일컫는다. 자신이 태어난 모국을 뒤로하고 부모의 뜻에 따라 타의로 국내에 들어오게 된 이들이다. 재혼을 국제결혼으로 하는 사례가 늘면서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는 외국인 재혼 여성 자녀들이 중도 입국하는 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센터는 2012년부터 이들을 위해 희망나래학교를 열었다. 이곳에서는 중국ㆍ필리핀ㆍ베트남ㆍ몽골ㆍ방글라데시 등 다양한 국가에서 중도입국한 자녀들이 또래들과 함께 한국 문화를 익히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는 중국인과 중국인 동포(조선족) 청소년 32명이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국어ㆍ수학ㆍ과학ㆍ문화체험 등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다. 많을 땐 60명이 넘는 다양한 국적의 청소년들이 모인다. 모든 수업은 무료다. 희망나래학교는 일반 학교에 곧장 입학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수준별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더불어 직업ㆍ예절ㆍ컴퓨터교육과 문화체험활동과 함께 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미술ㆍ원예치료도 하고 있다. 장차 한국인 가정에서 우리 사회 일원으로서 살아갈 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디딤돌 역할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일반 학교에 가기 전 한국어와 문화를 배우는 학생들과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이곳을 찾는 이들도 있다. 학생들을 인터뷰하는 중 가족 이야기를 꺼내자 이내 눈물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현실을 어린 마음이 모두 감내해온 탓이다. 이들을 보듬을 사회 안전망이 시급하다. 2차 피해자, 중도입국 자녀들 법무부는 국내 거주 결혼 이민자 수가 2013년 현재 15만 865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들 가운데 85.3%는 내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이 결혼한 가정이며,이 중 40% 가량은 재혼 가정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 이민자 여성, 이주 근로자에 대한 사회 관심이 여전히 부족한 현실 속에서 최근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중도입국 자녀'들에 대한 관심은 더욱 절실하다. 여성가족부는 현재 본국을 떠나 한국에 중도입국한 결혼 이민자 2세대 자녀들이 국내에 2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입국 방식이 관광비자ㆍ취업비자ㆍ방문비자 등으로 다양해 어떤 이들이 중도입국 자녀에 해당하는지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도입국 자녀들 문제는 언어ㆍ문화ㆍ정서ㆍ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다. 특히 학령기에 접어든 청소년들이 중도입국할 경우, 이주국은 모든 부분에서 이질감을 주는 낯선 땅일 뿐이다. 한국사회에 잔존해 있는 이주민에 대한 차별의식은 자아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이들에게 정서 불안과 극심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준다. '코리안 드림'을 이루고자 부모와 함께 입국한 경우는 그나마 안정된 가정의 울타리가 있다고 하지만, 재혼 엄마를 따라 새 얼굴의 한국인 아빠와 함께 살게 된 청소년들은 한국생활과 가정생활 모두 적응하기가 버겁기만 하다. 교육 현실은 더하다. 언어가 되지 않으니 한국 학교에 바로 입학하는 것도 무리다. 교육 수준도 다르지만, 입시 경쟁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의 교육 현장에 이들이 들어서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청소년들이 검정고시에 도전해 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또 가정형편이 대부분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부모들은 자녀들이 한국어를 배운 후 무조건 취업하길 원한다. 현재 국내에는 서울ㆍ인천ㆍ포천ㆍ충북ㆍ광주 등 전국 시ㆍ도와 민간단체가 중도입국 자녀를 위한 대안학교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국민적 관심은 여전히 이끌어내지 못하는 수준이다. 센터 김혜진(엘리사벳) 사회복지사는 "재혼 가정으로 중도입국하는 자녀들은 새로운 가정, 문화에 적응하려고 해도 부모가 대부분 맞벌이로 일하느라 교육과 정서 안정에 도움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등 어려움이 많다"며 "이런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이들은 꿈과 희망을 잃거나 쉽게 포기하는 성향이 생기는 등 극심한 우울과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중도입국 자녀란? 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다가 부모의 재혼ㆍ취업 등으로 부모를 따라 입국한 자녀들로, 현재 2만여 명이 국내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제결혼 재혼 가정이 늘어나면서 이들은 낯선 땅 한국에서 대부분 소외된 채 새로운 가정과 새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변재 신부(수원가톨릭사회복지회 시흥시외국인복지센터장)
"중도입국 자녀들을 우리가 더욱 환대하고, 더불어 살아야 함을 하루빨리 인식해야 합니다." 시흥시외국인복지센터장 최변재 신부는 "수많은 이민자 가운데에서도 현재 가장 소외받고 있는 중도입국 자녀들은 특히 센터를 통해 두 가지를 얻고 간다"며 "하나는 한국어, 한국문화 등 다양한 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고민과 고통, 슬픔을 나누고 받는 위로"라고 말했다. 2007년 설립된 센터는 다문화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자 다양한 교육ㆍ문화ㆍ상담ㆍ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주말에도 인근 이주민 근로자들이 찾아와 한국어를 배우고, 체육활동을 즐기는 등 지역 이주민 1000여 명이 각자 즐거움과 한국문화를 배우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가운데 '희망나래학교'는 센터가 중도입국 자녀들을 위해 경기도 지원을 받아 발 빠르게 마련한 교육ㆍ문화의 장이다. "원래 희망나래학교는 중도입국 자녀들이 갖가지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직업교육학교로 운영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따뜻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어와 문화 교육에 초점을 맞춰 운영하게 된 거죠." 최 신부는 "처음 저도 그들을 위해 무얼 해줄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무엇보다 환대하는 마음과 그들 속에서 그저 함께 지내는 이웃이 돼주는 것이었다"며 "우리와 함께 살아갈 이들을 이해하고, 따뜻한 한국을 알려줄 교회 안팎의 재능기부자가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신부는 "이들을 위한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교구가 운영하는 중ㆍ고등학교와 연계해 교육하는 방안도 고민 중에 있다"며 "인식 개선과 우리 사회와 교회 관심으로 전국의 수많은 중도입국 자녀들이 홀로 방황하거나 나쁜 방향으로 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