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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 창건설화>에 의하면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신라 미추왕 때 경북 선산으로 들어와 모례(毛禮)의 집에 살면서 불법을 전파하고, 대원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어느 날 꿈속에 봉황이 나타나서 “아도! 사람들이 오늘밤 너를 칼로 죽이려는데 어찌 잠을 자느냐”하는 소리에 놀라 일어난다.
아도화상은 봉황의 인도를 받아 봉황의 터를 찾아 광주 무등산 봉황대까지 왔지만 봉황이 사라져서 찾지 못했다. 이후 석 달 동안 봉황이 머문 곳을 찾아 호남의 산을 헤매다 마침내 하늘의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봉소형국(鳳巢形局)을 찾아내 산의 이름을 천봉산(千鳳山)이라 짓고 기슭에 대원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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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능선에서 본 북동쪽 풍경. 호남정맥 조계산 줄기가 주암호 너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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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봉산 대원사는 입구부터 구불구불하게 돌아가는 시오리의 벚나무 터널 길로 한눈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시오리 길은 십오리(6km) 거리의 길이라 해서 연유한다. 입구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왕벚나무 터널’이란 표지석이 있다.
사람들은 천봉산을 가리켜 지리산, 계룡산, 한라산, 모악산과 더불어 어머니 산신을 모신 여산신의 도량, 또는 광주 무등산의 기운을 받쳐주는 모산(母山)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풍수지리가들은 천봉산 대원사를 두고 진입로인 벚꽃 길을 탯줄, 절터를 어머니의 자궁, 절터를 감싸고 있는 천봉산을 모태라고 표현한다.
아름다운 연못 구품연지 아래에는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철나무가 있다. 극락전 뒤에 계류가 흐르는 전망 좋은 곳엔 수관정이란 조그만 전각에 텅 빈 관 하나가 있는데, 일종의 저승 체험실로 벽에는 ‘죽음을 체험해 보는 순서’라는 으스스한 안내문도 있다. 경내에는 또 신라 왕자 출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다불(茶佛)이 된 김지장 스님을 모신 김지장전과 황희 정승 영당도 있다.
천봉산은 다른 산과 달리 그 흔한 바위 하나 없는 육산이다. 숲이 무성하지만, 정상에 서면 주암호와 무등산 그리고 조계산을 비롯한 호남정맥이 한눈에 잡히는 조망대다. 주암호를 가운데 두고 동쪽은 조계산을 비롯한 호남정맥, 북쪽은 모후산과 운월산 그 너머로 무등산이 고개를 살포시 내민다. 서쪽은 천태산과 화학산, 남쪽은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장재봉과 계당산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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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봉산은 숲이 짙은 육산이라 조망이 귀하다. 그러나 정상에선 제법 괜찮은 경치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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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봉산에는 일명 ‘가재무릇’으로도 불리는 얼레지 군락이 여왕의 궁전처럼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엘레지’와 자칫 혼동할 수도 있으나, 슬픈 노래를 뜻하는 ‘엘레지’와 봄꽃의 여왕 ‘얼레지’는 다르다. 천봉산은 봄에는 엘레지꽃과 벚꽃, 여름이면 대원사 연꽃축제의 빛깔 고운 백련, 홍련, 황련 등 연꽃과 108종의 수련이 장관을 이룬다. 가을이면 단풍이 곱게 물들어 산꾼을 유혹한다. 천봉산 주변은 보성군에서 문화관광단지로 육성하고 있으며, 백민미술관, 서재필박사기념공원, 고인돌공원, 주암호 등 볼거리가 많다.
천봉산의 능선은 말굽형상으로 대원사를 중앙에 두고 빙 돌아간다. 따라서 원점 회귀산행이 가능하고, 도중에 탈출로가 많다. 완만한 오르내림이 있는 능선 길에다 보성군에서 등산로를 잘 정비해서 산행이 무척 수월한 편이다. 따라서 산꾼들은 대원사를 기점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는 짧다고 여긴다.
광주 산악인 백계남씨의 안내를 받아 호남지리탐사회가 가장 산행시간이 긴 1코스를 답사했다. 대원사로 가는 15번 도로의 죽산교를 건너 곧바로 우측 경주이씨 효열비가 있는 곳이 산행 들머리다. 묘소 5기가 동쪽의 주암호를 바라보고 있는 능선에 올라서면 억새가 바람에 하늘거리고 주암호의 물결이 잿빛으로 빛난다. 부드러운 흙길이 송림 사이로 이어지는 능선을 걷노라면 천봉산 자락과 대원사가 살포시 얼굴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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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국적인 자료가 많은 대원사 티베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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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교에서 27분쯤이면 북쪽의 백민미술관(청광도예원) 방향에서 오는 사거리다. 남쪽은 주암호, 천봉산은 서쪽으로 이어진다. 주암호를 바라보며, 송림과 어우러진 부드러운 흙길을 오르내리면 남쪽 봉갑사 가는 삼거리에 보성군에서 설치한 이정표와 광주의 산신령이라 불리는 백계남씨의 표지기가 어김없이 마중 나온다. 봉갑면에 있는 봉갑사는 원래 천봉사였으나 최근 이름을 바꾸고 크게 중창했다.
목포 토요산악회원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고 오르니 삼각점(복내 23)과 이정표가 있는 천봉산 정상이다(죽산교에서 2시간35분 소요). 북쪽으로 무등산과 모후산이 얼굴을 내밀고, 동쪽은 주암호 건너편으로 호남정맥 능선과 조계산이 손짓하는 환상의 조망대다.
하지만 천봉산의 높이가 보성군에서 설치한 안내도에는 612m,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는 608.8m로 표기돼 있다. 보성군에서 예전 지형도의 높이를 표기한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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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숲 속에 있는 까치봉 정상. 왼쪽은 박영남씨, 오른쪽이 백계남씨이다. / 우)대원사 일주문. 대원사는 백제시대에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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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을 즐기고 출발하니 삼거리가 나온다. 북쪽은 대원사 방향으로 가는 희미한 길이며, 말봉산은 서쪽으로 가야 한다. 곧이어 봄이면 얼레지가 군락을 이루는 삼거리에서 대원사(1.9km)로 가는 지름길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잘 정비된 산죽 길을 가노라면 삼각추처럼 우뚝 선 말봉산이 눈앞에 나타난다. 하지만 말봉산에 올라서면 정상에 이정표만 있고 특징이 없다. 무성한 숲에 가려서 조망도 별로다(천봉산에서 30분 소요).
완만한 흙길을 가면 마당재다. 남쪽으로 대원사로 이어진 지름길을 만나고, 까치봉이 보이는 능선에 대원사로 가는 지름길 삼거리를 또 만난다. 두 개의 작은 봉우리를 지나면 세 번째 봉우리가 까치봉이다(천봉산에서 1시간40분, 말봉산에서 1시간10분 소요). 대구에 사는 김문암씨가 3개의 봉우리마다 표지판을 세웠다. 하지만 김문암씨는 까치봉 표지판을 두 번째 봉우리에, 보성군에서는 3번째 봉우리에 세워서 혼선이 온다.
까치봉에서는 급경사 내림길이 시작되고, 대원사가 가까워 오자 울창한 송림과 산죽이 어우러졌다. 지나온 천봉산과 말봉산 능선, 산행 들머리 죽산교와 주암호가 나뭇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송신탑을 지나면 대원사 일주문에 닿는다(천봉산에서 2시간25분, 까치봉에서 45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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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잡이
1코스 15번도로 죽산교~(5.6km)~천봉산~(2.1km)~말봉산~(2.5km)~까치봉~(1.8km)~대원사 일주문 <총 12.0km, 휴식시간 포함 5시간 소요>
2코스 대원사주차장 일주문~(1.8km)~까치봉~(2.5km)~말봉산~(2.1km)~천봉산~(2.5km)~대원사주차장 <총 8.9km, 휴식시간 포함 3시간40분>
3코스 백민미술관 청광도예원~(4.4km)~천봉산~(2.1km)~말봉산~(2.5km)~까치봉~(1.8km)~대원사주차장 <총 10.8km, 휴식시간 포함 4시간30분>
볼거리
티베트박물관 티베트 불교 미술을 볼 수 있는 티베트박물관에는 만다라, 경전, 밀교법구 등 1,000여 점의 희귀 자료가 있다. 박물관 앞에는 15m 높이의 하얀색 티베트 전통양식인 수미광명탑과 사찰 곳곳에 108개의 좋은 글귀가 적혀 있다.
산앙정(山仰亭) 죽천 박광전(1526~1597)을 기리는 정자로 대원사 앞에 있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서 광해군의 스승이다. 정자 안 편액에는 파주 출신 우계 성혼과 우정이 각별했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이 있다. 죽천 선생은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켰고 군영에서 72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대원사 천봉산 대원사는 서기 503년(백제 무녕왕 3년) 아도화상이 봉황의 인도로 터를 잡은 백제 고찰이다. 고려 중기 자진원오국사가 참선과 염불을 함께 수행하는 선정쌍수(禪淨雙修)의 큰 가람으로 발전시켰고, 조선 중기 탁오선사의 중건을 거치면서 가람의 면모를 지켜왔으나 여·순 사태와 6·25를 지나면서 극락전을 제외하고 모두 소실됐다. 1990년부터 대원사 복원 불사가 시작되어 옛 주춧돌을 찾아내고 기둥을 세우며 오늘과 같은 복원불사를 했다.
교통(지역번호 061)
○ 자가용
호남고속도로 주암(송광사)나들목을 빠져 나와 18번국도를 타고 가다 벌교와 문덕을 잇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15번국도로 간다. 이후 죽산교가 있는 대원사 입구 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백민미술관을 거쳐 대원사 주차장에 닿는다.
○ 대중교통
광주광천터미널에서 보성행 직행버스가 06:30~21:40, 30분 간격 운행. 보성버스터미널에서는 복내를 경유해서 대원사까지 군내버스가 1일 2회(07:00, 11:45) 운행. 보성에서 대원사까지 약 50분이 소요되며, 복내에서 하차해서 대원사행 군내버스를 이용하면 25분쯤 절약할 수 있다.
광주광천터미널~화순군 사평 구간은 군내버스(217번)와 시내버스(151번)가 05:40~10:00, 10~20분 간격으로 운행. 사평에서 대원사까지는 화순군내 버스가 1일 2회(08:30, 12:40) 운행. 약 20분 소요.
사평에서 개인택시를 이용할 경우 개인택시(372-6404)가 대원사까지는 1만5,000원, 대원사입구 죽산교까지는 1만원이다. 광주광천터미널(062-360-8114), 화순터미널 (374-2254), 사평정류소(372-6045).
숙박·맛집
청광도예원(061-853-4125)은 대원사 진입로인 시오리 벚꽃길 중간에 있다. 도예가 김기찬씨의 도예공방이며 식당이자 민박집이다. 생활도예품과 주암호의 풍광을 감상하며 직접 키운 육질이 담백한 토종닭을 맛볼 수 있다. 음식이 담긴 그릇도 김씨의 작품이다. 도예품 판매도 하며 민박도 한다. 닭도리탕 4인 기준 4만원. 녹차수제비 7,000원이다.
/ 글·사진 김정길 전북산악연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