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갓난아기, 아이(소년), 청소년, 청년, 성인, 중년(장년), 노년(노인)으로 사람의 연령대를 구별하여 부른다. 조선시대에 남자는 상투를 틀면 성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이였다. 조선시대의 여자는 시집을 가면 머리를 얹어서 비녀를 꽂았고, 처녀이면 댕기머리를 하였다. 그러면 구약성경의 이스라엘은 어떻게 연령대를 구별하였을까? 아이, 소년·소녀, 20세 이상의 성인, 노인으로 구분하였다. 청년이나 청소년이란 말은 없었다. 크게는 아이와 어른으로 구별하고, 어른도 젊은이와 노인으로 구분하였다. 일례로 성경 「열왕기상」 12장을 보면 솔로몬 왕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기 위하여 세겜에서 이스라엘백성들과 마주한다. 그때 백성들은 솔로몬 왕이 백성들에게 지운 멍에를 가볍게 해주기를 요청한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솔로몬을 모셨던 노인들의 의견을 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의 의견을 따라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 것이다.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영어성경에는 노인들을 장로들(the elders), 소년들을 젊은 사람들(the young men)로 표현하였다. 참고로 르호보암은 이때 나이가 41세였다(왕상14:21). 르호보암과 함께 자란 그의 신하들을 한글성경에는 소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성경 「사사기」 8장20절에는 기드온의 맏아들 여델이 등장한다. 기드온이 미디안 군사들과 전쟁을 할 때였다. 기드온이 적장 세바와 살문나를 포로로 잡았을때, 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그들을 죽이라고 말하였으나, "그 소년이 그의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이때의 소년 여델은 영어성경에는 청년(the youth) 혹은 소년(a boy)으로 표현하였으나, 청년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성경 「사무엘상」 3장1절~4절에는 사무엘이 등장한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리에게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왔나이다." 이때의 아이 사무엘은 지금으로 말하면 소년 사무엘이다. 17장에는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사울 왕은 다윗에게 말하기를 "너가 골리앗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윗은 사울 왕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이 드리는 예배시간에서조차 목사님들은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물매 돌 한방으로 쓰러트렸다고 설교한다. 그러나 다윗은 소년이 아니라 지금으로 말하면 청년이었다. 아무리 전세가 다급하기로서니 사울 왕이 소년을 내보내서 골리앗과 맞장을 뜨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울 왕은 다윗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보고 자신의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힌다. 사울 왕의 키는,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다고 성경에 나온다(삼상10:23). 따라서 사울 왕이 자신의 군복을 다윗에게 입혔다는 것은 다윗의 체격이 어른과 같았다는 것을 말한다. 골리앗도 다윗을 보고 업신여겼는데, 이는 다윗이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삼상17:42).
성경 「사무엘상」 16장에는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베들레헴사람 이새에게로 보내 그의 막내아들인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한다. 사무엘이 여호와께 말하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습니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이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되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라." 사무엘이 베들레헴에 오니, 성읍의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였다. 사무엘은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였다. 그들이 오매 사무엘은 이새의 맏아들인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하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기를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결국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 일곱 명 모두에게 퇴짜를 놓고, 다른 아들이 없느냐고 이새에게 묻는다.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상」 16장12절~13절 말씀에, "이에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여기서 표현된 다윗의 용모는 소년의 모습이 아니라 청년의 모습이다.
다윗은 잘생긴 청년이었다. 다윗은 마치 개선장군이 되어 전쟁터에서 돌아왔다.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사울 왕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기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하니,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말하기를,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의 왕국 말고 무엇이랴!" 그날 이후로 사울 왕은 다윗을 주목하였다.
이때부터 다윗을 질투한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하였다. 다윗은 군대의 천부장이 되고, 사울 왕의 사위가 되었고, 왕의 아들 요나단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다윗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결국 다윗은 광야로 도망가서 약10년 정도 한 떼의 무리의 우두머리로 살았다. 사무엘선지자가 죽으매 다윗은 바란 광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다윗은 거부 나발에게 다윗의 소년들을 보내, 다윗의 이름으로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나발은 이렇게 거절하였다.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그러자 다윗의 소년들이 돌아와서 이 모든 말을 다윗에게 전했다. 여기서 소년들은 다윗의 부하들을 말한다. 이에 다윗은 칼을 차고 2백 명은 소유물을 지키게 하고, 약4백 명을 데리고 나발을 치러 가다가, 도중에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의 중재로 공격을 중지한다. 그 후 사울 왕이 그의 아들 삼형제와 함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길보아 산에서 전사하자,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에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 유다를 다스렸다. 그후 7년6개월 동안 베냐민왕국과 내전이 있었고, 다윗은 베냐민 왕국을 흡수하여, 33년동안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통치하였다.
베냐민 지파의 사울은 40세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부분에 대하여, "사울은 18년간은 사무엘선지자와 이스라엘을 공동통치 하였다"고 말한다. 성경 「사무엘상」 11장7절에는 사울 왕이 이스라엘전국에 포고하기를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같이 각이 뜨여지리라"는 내용이 나온다. 사무엘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사울 왕을 길갈에서 재차 왕으로 세웠으나, 아말렉 족속을 철저히 징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사울에게 하나님의 불신임을 전한 후에는, 정계를 은퇴하여 '나욧'이란 곳에서 '선지자공동체'를 지도하였다. 사무엘은 죽을때까지 이스라엘의 정신적 지도자였고, 사울 왕과 백성들은 사무엘의 종교적 권위에 순종하였다. 사울 왕은 비록 '놉의 학살'과 같은 만행을 저질렀지만, 사무엘을 존경하였다. 성경 「사무엘상」 28장3절에는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처럼 무속인들을 쫓아내는 성의를 보였다. 그리고 사무엘이 죽은지 2년 만에 길보아전투에서 블레셋에게 패하여 그의 20년간의 통치가 끝이 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