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가 한국땅인 이유
아래글은 인터넷 여기저기 있는 내용중
내가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이 들어 짜집기한 글이다
마지막 몇단락은 페북의 손영일님의 우리는 한국인에서 인용하였다
내가 역사학자가 아니라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
믿고 안믿고는 독자님들의 선택사항임을 말씀드린다
영토, 역사, 문화, 의식, 인터넷에서,
일본의 한국 침략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독도는 한국땅, 대마도도 당연히 한국땅이다.
쓰시마는 잘못된 명칭이고,
일본은 우리땅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하여야 한다.
일본은 포츠담선언에서
불법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했다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도발 이유는
대마도 문제를 덮기 위한 것이라 할수 있다
대마도는 당연히 한국 고유의 영토이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는 49.5km,
일본 후쿠오카에서 대마도까지는 139km,
면적은 부속섬을 포함하여 708.5km²로
거제도의 약1.8배정도 되는 섬이다
이 대마도에 고대로부터 한국인들이 살던 곳이었다.
고대 마한과 마주보는 땅이라 하여
대마도(對馬島)라고 불러 왔다.
그동안 학자들과 연구가들에 의해서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통일신라 때부터 고려와 조선말까지 대마도는
한국의 경상도 계림(신라)의 부속 도서로서 경상도 관찰사의 관할이었다.
2) 대마도 원주민들의 혈액 DNA가 한국인과는 100%동일하여도
일본인들과는 30%밖에 동일하지 않다
3) 대마도를 지배 했던 소씨(蘇)는 진주가 본관인 한국 성씨이다.
4) 삼국시대에는 진도(津島)라는 우리의 영토로 불리었다.
5) 신라 때 볼모로 잡혀갔던 신라의 왕자를 구출하고
자신은 일본에서 처형된 신라 국사 박제상 공의 순국비가 있다.
6) 고려 창왕(1389년) 때 박위 장군의 지휘로
왜X의 소굴로 변한 대마도를 완전히 소탕하고
대마도의 관사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고려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7) 그 후 조선 태조(1396년) 2차 정벌,
세종(1419년) 이종무 장군의 3차 정벌 후
대마도 도주가 신하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서약서도 있다.
8) 풍신수길이 조선 침략에 대비해 만든 지도(팔도전도, 1592년이전)에도
대마도가 조선 땅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9) 태종이 세종 때 대마도 정벌에 나선 군사들에게 내린 하교문,
10) 성종 때의 청백리 황희 정승과 퇴계 이황 선생은 조선과 대마도를 부자관계로 비유
11) 순암 안정복 선생의 동사외전, 동사강목,
정약용의 비어고에도 한국 땅으로 기록되어 있다.
12) 13세기말 일본이 만든 사서(史書)인 『진대(塵袋)』 제2권에 “무릇 대마도는 옛날에는 신라국과 같은 곳이었다. 사람의 모습도, 그곳에서 나는 토산물도, 있는 것은 모두 신라와 다름이 없다.”라고 했다
13)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는 선종 2년(1085년)이래 대마도 도주(島主)를 대마도 구당관(對馬島 勾當官: 고려의 지방수령 관직명)으로 불렀다”고 했다.
14) 조선 왕조 500년간 대마도주는 대대로 조선의 관직을 받았다.
15) 1750년 영조 때 해동지도의 대동총도의 설명문,
“백두산이 머리가 되고 백두대간이 척추가 되며
영남의 대마도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는 문구나
16) 1830년 일본에서 만든 조선국도에도
울릉도, 독도, 대마도가 조선 영토로 표기되어 있고
17) 1855년 영국지도, 1865년 미국 지도 등
국내의 많은 역사 기록문에 명백히 표기되어 있다.
18) 대마도를 한국령으로 표기한 1734년 프랑스제작 지도
19) 1861년 오가사와라 영유권 분쟁당시
일본이 만들고 국제사회에 인정받은 "삼국통람도설"의
"삼국접양지도"(프랑스어판, 1832년)에
독도와 대마도가 모두 한국땅으로 되어있다.
20) 삼국통람도설의 조선팔도지도(도호쿠대 소장)
제작자 하야시 시헤이의 서명과 함께
울릉도, 독도, 대마도가 모두 조선땅으로 표시되어있다.
이후 대마도가 일본영토로 빠진 위조본이 등장하였다.
21) 그후로도 계속 독도와 대마도는 조선에 포함되어 있었다.
대마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기한 대조선국총도 (1874년, 미국회도서관)
울릉도(무릉)와 독도(우산)을 포함하는 대조선지도 강원도편(1874년, 미국회도서관)대마도를포함하는 대조선지도 경상도편(1874년, 미국회도서관)대조선지도 직제와 면적편에 기록된 대마도
22) 대마도 반환 촉구한 이승만 대통령
1948년 8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대마도 반환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은 대마도를 한국에 즉각 반환하라! 대마도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를 섬긴 우리 땅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무력 강점했지만 의병들이 격퇴한 전적비가 남아 있다. 구한말에 대마도를 강점한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했다. 지체 없이 한국에 돌려줄 것을 촉구한다.” 이는 대통령으로서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한 것이다.
우리 국회에서는 대마도 반환 결의안을 만들고 이승만은 대마도 속령에 관한 법적 조치를 취하면서 계속해서 대마도 반환 촉구를 위하여 6.25전까지 60여 차례나 언급했다.
“평생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조국은 해방되었으나 대마도는 일본식민지 그대로구나! …” 라며 탄식을 했으며, 전쟁의 소용돌이에 있었던 1952년 1월 18일에도 대일선전포고와도 같은 평화선을 선포하여 대마도를 내놓으라고 호령하였다. 북한의 6.25 남침만 아니었다면 이 대통령의 의지대로 대마도는 우리의 땅이 되었을 것이 확실하지 않겠는가.
해방당시 북한을 점령한 김일성의 첫번째 역적행위는 간도를 중국에 바친 것이었다.
이것도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중국주재 미국외교관 윌리엄스 웰스가 1884년 발간한 지도에서표시한 중국과 조선의 국경에서, 간도 일부는 조선의 영토였다. 중국이 조선을 그 정도는 인지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는 물론 무능한 조선의 위정자들때문에 영토 통치권력을 일본, 중국, 러시아등에 잃었다.
둘째는 조선이 그렇게 크다는 것을 일본이 알지못했기때문에 그들이 점유하지 못한 것이고, 일본 패망과 함께 주인없는 땅이 되어 잃은 것이고, 종전 후 힘이 없던 중국 왕서방은 뜻하지않게 횡재한 것이다.
적어도 위의 2가지 사항은 일본이 중국, 러시아 등과 어떤 계약을 했던 모두 원인 무효에 해당한다.
일본이 중국과 체결해서 서간도, 북간도를 넘긴 "간도협약"은, 일본이 한국 영토에 대한 처분권리가 없는만큼, 분명 원인무효이니 반환받는 것이 당연하니...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야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 김일성이 중국에 뺏겨버린 간도부분은 매국행위에 해당한다.
우리는 조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영토의 상당 부분을
200년도 안되는 사이에 빼았겼다.
아래 표시된 부분은 하루빨리 우리가 복원해야하는,
조상이 물려준 우리의 영토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조선은 어떤 형태로든 일본에 대마도를 넘겨준 사실이 없다.
그런데도 일제식민통치가 시작되면서 일본은 온갖 자료를 조작하여
대마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강탈해 갔다.
그리하여 메이지유신이 시작된 1868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50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일본 땅으로 자리매김 되어 오는 바람에
과거의 피맺힌 역사를 잘 모르는 오늘의 한국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들도 대마도가 일본 땅인 줄 잘못 알고 있다.
위에서 보듯 우리가 대마도를 일본에 빼앗긴 결정적 요인은
“일제의 침략”이었다.
그러므로 동일한 논리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대마도를 되찾는 최선의 길일까
세종 때 대마도를 정벌했던
현대판 이종무장군은 언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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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에서 일본의 대마도 영유권을 무효라고 선언한 영상입니다
https://youtu.be/u31aMfYoV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