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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 대한 책임감
요한복음 10:14~18
찬송가 320장(나의 죄를 정케 하사)
오늘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살펴보면서 책임감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책임감은 끝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려는 의지를 말합니다.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거룩한 부담을 감당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임감은 인간의 인격의 영역 중에서 의지에 속한 것입니다. 아무리 분명한 지식이 있고 분별력이 있어서 옳고 그름을 알고 해야 할 일을 안다고 하더라도, 풍부한 감정이 있어서 열정과 패기가 대단하게 일어난다 하더라도 끝까지 주어진 일, 맡은 사명,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박약한 사람은 도중에 시련과 장애를 만나면 결국 자기의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도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영적인 일꾼들이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영혼들을 끝까지 살려내고 지켜내고자 모든 것을 내던지는 일들을 행합니다.
예를 들면 야곱의 열한째 아들 요셉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배신으로 자기를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 야곱과 생이별을 하고 낯선 이국 땅 애굽에서 시위대장 보디발의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 때 17세 어린 소년이 겪었을 그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요?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그 때부터 진심으로 의지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영이 그 마음 가운데 함께하니까 그는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모습을 본 주인인 시위대장 보디발이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완전히 신뢰하게 된 주인 보디발에 의하여 그 가정의 모든 일을 감당하는 가정 총무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일종의 한 집안의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감당하는 청지기가 된 것입니다. 나이 어린 청년기에 애굽 왕의 시위 대장과 같은 크나큰 권세를 가진 사람의 집안 일 전체를 총괄하여 관리하는 가정 총무가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만큼 요셉이 책임감을 가지고 일한 수고의 결과입니다. 주인이 자기를 믿어준 데 대하여 감사하면서 맡은 일마다 최선을 다하여 책임을 감당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가정 총무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가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가서도 이러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고 감옥의 간수장이 요셉이 죄수인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다른 옥중 죄수를 다 맡아 관리하게 하고 감옥의 모든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도록 맡기고 한번 요셉에게 맡긴 것은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요셉이 책임감이 막중하여 신뢰할 만한 사람인 것을 간수장이 철저히 믿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후일에 애굽 왕 바로가 요셉의 꿈 해몽을 통하여 그가 지혜로운 사람인 것을 안 다음에 요셉을 국무총리에 앉히고 애굽 전국을 총리로서 다스리고 아무 것도 간섭하지 않고 요셉이 국정 전반을 다스리도록 맡긴 것은 요셉의 인격에 깊이 배인 책임감을 믿었기 때문이 분명합니다. 요셉은 국무총리로 재직 중에 거대한 기근을 만나 양식을 얻으려고 애굽으로 내려온 자기 형들을 만나 그들을 용서하고 가나한 땅에 살던 아버지 야곱과 남은 형제들과 그 자녀들까지 다 애굽으로 모셔와 끝까지 봉양하여 섬겼으니, 이러한 요셉의 가족 사랑과 섬김은 그의 인격에 깊이 배여 있는 거룩한 책임의식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열매였습니다.
또한 모세의 삶을 살펴볼 때에 그는 참으로 책임감이 강한 분임을 뚜렷이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 바로의 압제 아래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구출해내고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 돌판을 건네주고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40년 동안을 한결같이 헌신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가 보인 책임감은 대단하였습니다. 그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려고 애굽에 갔을 때를 보면, 그는 동족 이스라엘의 장정들, 여인들과 노인들과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그들의 가축 등 모든 소유까지 고스란히 다 구출해내려 하였습니다. 그 때에 애굽 왕 바로는 계속하여 방해하였으나 모세는 온갖 위협과 교묘한 회유를 끝까지 거절하면서 버티어서 마침내 그들 모두를 애굽에서 구출해내는 데 성공하였으니, 이는 자기 동족 이스라엘의 한 사람까지도 다 책임져 살리겠다는 대단한 책임감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또한 모세는 시내산에서 그러한 막중한 책임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는 언약을 맺은 후에 모세가 하나님의 언약의 십계명 두 돌판을 받으려고 시내산에 올라 40일을 금식하는 중이었는데, 백성들은 돌변하여 산 아래에서 백성들이 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춤추고 경배하는 우상 숭배의 큰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그 일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전에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크신 위엄과 영광을 드러내시고 구름과 흑암과 불 가운데 친히 말씀하시는 지극히 경이로운 기간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심히 커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순식간에 진멸해버리고 모세를 통하여 큰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시내산 위에서 금식하던 모세에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불 같아서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모세는 현장을 보지 못하는 산 위에 있을 때인데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가 급하게 그 백성에게 임할까 염려하며 하나님께 뜻을 돌이켜 달라고 간절히 간구합니다. 그리고 내려와서 현장을 보자 모세 자신도 분노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손가락으로 써주신 두 돌판을 골짜기에 내던져 깨뜨리고 상황 보고를 아론으로부터 듣고 난 후에 여호와 편에 선 자들을 불러 우상 숭배에 앞장 선 자들이 비록 형제나 친구나 이웃일지라도 죽이라고 명하였습니다. 그 일에 앞장선 레위인들을 통하여 삼천 명 정도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후에 다시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애굽기 32:31,32)
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이끌고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큰 죄를 범했지만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청하면서 만약 그렇지 아니하시려거든 자기 이름을 생명 책에서 지워버려달라면서 매달리는 이 모세의 간절한 기도는 결국 하나님께 받아들여져서 이스라엘이 멸망을 면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풀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약속의 땅까지 인도해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동족 이스라엘의 사죄를 위하여 자기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까지 할 정도로 간청한 모세의 간구 속에서 우리는 모세의 막중한 책임 의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는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자기에게 맡겨졌던 이스라엘 양무리를 끝까지 책임지고 멸망에서 건져내고 지켜내어 하나님의 축복 속으로 인도하려는 거룩한 책임감을 모세의 인격 속에서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책임감의 사람으로 사무엘 선지자 역시 손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자기에게 맡겨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기는 사사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은 그의 은퇴사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무엘이 그 동안 경건하고 청렴하고 헌신적으로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방 민족으로부터 보호하며 재판을 공정히 수행하며 영적으로 그들을 잘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늙어가자 백성들은 그를 배반하고 찾아와서 사무엘 대신에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세워달라고 사무엘에게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본래 사사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세워지는 자요 또한 종신직이어서 이렇게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요 사무엘에 대한 배신이자 은혜를 저버리는 악행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배신감에 속이 많이 상한 사무엘에게 이르시기를,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사무엘상 8:7)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사무엘은 배신감을 달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고 은퇴의 고별사를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왕을 구한 것이 죄인 것도 알리고 회개하는 그들에게 이것 저것 당부를 한 후에 사무엘은 고별사를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사무엘상 12:23~25)
사무엘 선지자는 자기를 배신하고 외면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자기가 은퇴 후에도 여전히 그들을 품고서 그들의 행복과 안전을 계속하여 기도하겠으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행복을 위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생명과 축복의 도를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겠노라고 약속하였습니다. 비록 그들은 자기를 버렸으나 그는 변함없이 그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하여 행하여 그들이 영육간의 복을 받도록 섬기겠다는 사무엘은 참으로 책임감이 큰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성경은 이르기를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사무엘상 7:13)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어 백성들을 지키는 왕의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여 블레셋의 침공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킨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무엘 선지자가 사사의 자리에서 은퇴한 뒤에도 자기 고향 라마 나욧에서 밤낮으로 나라와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이방 민족의 군사적 공격으로부터 보호함을 받고 안전을 누렸던 것입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진정한 지도자가 바로 사무엘 선지자였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보면 사무엘 선지자가 얼마나 책임감이 강한 사람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부름받은 백성의 수호자의 사명의 자리에서 은퇴 후에도 변함없이 헌신한 사무엘은 참으로 충성스러운 책임감이 강한 분이셨습니다.
신약 시대에 사도 바울의 영적인 책임감 역시 감동적입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지만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 문제에 대하여 엄청난 부담감을 갖고 평생 기도하였습니다. 로마서 9장 1~3절 말씀에 보면 사도의 내면의 크나큰 고통과 번민이 있음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사도 바울은 자기 동족, 곧 혈통으로 자기 골육 친척인 유대인들이 복음을 지속적으로 거부함으로 멸망 길로 가는 것을 보면서 차라리 그들 대신에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그들이 구원을 받으면 좋겠다는 내적인 고통이 그치지 아니하고 있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쓸 때 사도 바울을 없애려고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고 불량배를 동원하기도 하고 감옥에 집어넣기도 하고 자객을 동원하여 길에서 죽이려고도 하고 변호사를 동원하여 재판에서 그를 극형에 처하려고 시도하는 등 오랫동안 사도 바울을 괴롭힌 장본인이 바로 유대인 동족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그렇게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동족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설령 자신이 저주를 받고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져 지옥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동족 유대인들이 구원받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 때문에 그 마음에 그치지 않는 내적인 근심과 고통을 항상 갖고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모습은 주님의 마음을 품고 영혼을 사랑하여 건지려는 거룩한 책임의식에서 나온 마음과 행동이 분명합니다. 이는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로부터 동족을 건져내고자 몸부림쳤던 모세와 같은 거룩한 책임감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영적인 지도자들의 모습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 사랑의 거룩한 책임감의 모습과 같은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사역하실 때에 친히 말씀하시고 몸소 보여주신 언행 가운데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충만하신 책임의식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요한복음 10:14 이하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한복음 10:14~18)
자기에게 속한 양을 살리고 인도하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까지 내어놓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계명을 선한 목자 우리 주님께서 받았을 때에 그의 목숨을 아무도 빼앗는 자가 없었으나 그는 기꺼이 자발적으로 자기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것을 택하셨다고 여기서 밝히고 있습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고 강탈하여 빼앗으려고 덤비는 자 없었으나 그는 자기 양들을 살리기 위하여 자원하여 자기 목숨을 버렸고 자기 양들을 위하여 버린 목숨을 다시 얻으셨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다 알다시피 그가 목숨을 죄인들을 위하여 기꺼이 버리는 것이 얼마나 크고 두렵고 무거운 고통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굳게 결심하시고 그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책임감은 심지어 죽음의 대가까지 기꺼이 내어놓는 것이지만, 우리 구주의 대가는 실로 어머어마하게 크고 무겁고 중하고 깊은 고통과 두려움과 아픔과 더러움을 다 감당하는 결단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온전히 내어준 대가를 끝까지 지불하여 우리를 살리는 길을 끝까지 걸으신 것은 영혼에 대한 주님의 거룩한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책임감, 사명감, 거룩한 의무감으로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아름답고 숭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위대하게 쓰임받은 주의 종들은 한결같이 이 숭고한 책임감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구주 예수님의 숭고한 영혼 사랑의 책임 의식을 본받고,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의 복된 책임의식을 본받읍시다. 그리하여 남은 생애 우리에게 주어진 가족들과 부름받은 교회와 교우들과 부름받은 세상의 섬김의 모든 자리에서 가족과 이웃과 동료와 친구들의 영혼 구원과 그들의 삶의 복지와 안녕과 행복을 위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아름답게 섬기다가 주님 앞에 서는 날 귀한 칭찬과 영광스러운 상을 다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