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렸다(2) – 문경자 수필가
0 POSTED BY HCNEWS - 2024-06-27 - 뉴스홈
버스가 상주에 도착하니 승객들이 거의 다 내렸다. 참외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고령은 아무도 내리는 승객이 없었다. 이제 합천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동생과 이벤트를 뭘로 할까 의논을 하다 보니 합천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에는 어르신들이 부채를 부치며 앉아있었다. 먼저 할머니께 드릴 선물. 케이크와 꽃다발을 사기로 하였다. 파리 바게트에 들어가 케이크를 주문한 다음, 꽃집을 아무리 찾아 헤매도 없어 검색을 하고 전화를 걸었더니 하필이면 꽃집이 수리 중이라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꽃은 포기하고 빵집 가게 옆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나는 김치찌개, 동생은 된장 찌개를 먹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케이크가 녹기전에 빨리 가라는 가게 주인의 말을 듣고 얼른 택시를 탔다. 옛날에 정류장 앞에 꽃집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할머니 집 가까이에 왔는데 어디서 내려야 할지 몰랐다. 기사는 찾아가는 집도 몰라요 화를 내며 여기서 “내리소”하며 카드 결제를 했다. 가끔 오다 보니 계절이 바뀌고 주위에 숲이 우거져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햇빛이 머리에 앉아 놀려 주는 듯 가마솥같이 뜨거웠다. 겨우 집을 찾아 들어가니 자갈이 깔려 있는 마당. 텃밭에는 깻잎, 가지, 상추, 고추 등 모두 지쳐 목이 늘어져 있었다.
“할머니 갱자 추자 왔어요”해도 인기척이 없어 문이 열려 들어가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었다. 작은 아제한테 전화를 하니 마을 회관에 게시는 할머니를 모시고 왔다. 손을 마주 잡고 보니 웃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동네 어른들께 회관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작은 성의로 10만원을 드렸다. 동네 분들은 모두 반가워하며 손을 내밀어 환영을 해주었다. 옛날 이야기에 여름 더위도 물러갔다. 수필 등단을 하고 고향에 내려와 어르신들께 합천 읍 횟집에서 식사를 대접해 드렸다. 지금도 기억하며 맛있게 잘 먹었다며 문씨 작가가 우리동네에서 탄생했다며 큰 자랑거리라 하였다. 100세가 다 된 어르신들의 기억에 놀랐다. 팔광 풍띠 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사시는 모습을 보며, 건강하게 지내는 모습에 나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인사를 하고 이웃 분 들 집에 가서 주스를 마시고 할머니 집에 갔다. 작은 아지매가 저녁을 해준다고 해서 같이 가서 우엉 쌈, 가지 냉국, 고기를 넣은 묵은 김치 찌개를 먹었다.
작은 아제가 차를 태워 할머니집에 모였다. 네 번째 아제는 할머니를 모시고 살며, 6번째 딸이 옆집에 살아서 함께 모였다. 할머니 앞에 케이크를 놓고 불을 부치고, 나라에서 100세 선물로 받은 지팡이를 짚고 서서 찍고, 앉아서 찍고 두 번 기념 사진을 찍었다. 할머니는 포즈도 멋지게 잡고 미소까지 지으니 18세 소녀 같았다. 건강비결은 역시 ‘잘 웃는다’는 것이었다. 축하 촛불이 에어컨 바람에 꺼져 다시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동생이 영어로 불러야 더 멋지다고 해서 합창을 했다. 케이크를 자르는 할머니의 손은 힘이 있어 보이고 얼굴엔 함박꽃이 피었다. 달콤한 맛을 느끼며 그 다음은 내 시집<어디 감히 여성의 개미허리를 밟아?> 에 실린 ‘산길’ 시를 내가 낭독하다 목이 메여 동생이 대신했다. 산길/모 배미 밭떼기 심어 놓은 고구마/밤사이 고라니 와서 먹고/달빛에 주둥이 비춰보고 흔적을 닦는다//산길 따라 밭고랑 따라/자식들 간식거리 광주리에 이고/발자국 콕콕 찍는 웃음소리 들린다//밭 가득 차 있는 잎과 줄기가 서로/손을 잡고 강강술래 노래하고/잠자리 맴을 돌아 제 그림자 잎 무늬 놓았다//무명치마 허리 동여매고 내려오는 산길/할머니 손등에 피어난 검버섯/고추잠자리들 들러리 선다 모두 눈시울 적시며 손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나는 “할머니 마음 편하게 건강하게 사셔요”하는 말을 듣고 모두 박수를 쳤다. 밤을 세워도 끝이 없는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졸리는지 누워서 우리들 이야기를 들으며 대답도 하고 가끔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먼 길을 와도 이렇게 피곤함도 잊고 할머니와 함께 가족들과 긴 여름 밤을 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었다.
할머니의 삶은 풍성하고 놀라운 이야기와 수많은 세월을, 가족과 사랑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왔다. 그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강한 기운을 얻었다. 자신의 손으로 음식을 만들고, 이웃들과 정을 나누고, 또한 주변 자연과의 조화속에서 평온함과 행복을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100세 할머니의 삶은 무궁무진한 이야기와 소중한 추억으로 가득한 특별한 삶이다.
전화벨이 울렸다. 번동에 살고 있는 큰 아제가 전화를 해서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네가 보내준 동영상과 사진을 보니 아주 잘 하고 왔다며, 뜨거운 여름날 가서 고생을 했다”고 하여 웃었다. 할머니가 아직은 건강하고, 말을 알아듣고, 대화를 할 수가 있으니 천만다행이라 했다. 할머니가 정성 드려 챙겨준 가지, 고추, 매실, 호박, 들깨, 옥수수 등 사진을 찍어 핸드폰에 저장했다. 내가 할머니께 전화를 했다. “할머니 서울에 잘 왔으니 걱정 마세요” “오냐 고맙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