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장 새로운 호랑이의 특징들..
1.악명높은 TIGER-II 의 기동성
TIGER-II 에는 판터에 사용된 것과 같은 마이바흐 HL-230P 엔진을 장착하였는데 이는 부품의 공용화를 위한 선택으로, 약700마력의 힘을 내는 이 엔진은 69톤의 거대한 TIGER-II 를 움직이기에는 다소 부족한 출력의 엔진이였습니다.
사실 이 정도 거구의 전차를 움직일려면 레오파트II 전차에 장착된 MTU-873 12기통 디젤엔진과 같은 1500마력급의 엔진을 장착했어야 했지만 당시 독일은 이정도 고출력을 낼 수 있는 엔진을 만들수 있는 기술력이 없었으며 그나마 당대의 최고의 가솔린 엔진이라 불리는 마이바흐 HL-230P 엔진을 장착함으로서 70톤에 가까운 전차를 움직이는게 가능했는데…
[마이바흐 HL-230P 엔진은 티거-I 전차를 비롯 5호전차 판터와 TIGER-II 에 이르기까지 독일군 전차의 심장과 같은 전차용 엔진이였지만 가솔린 엔진 특유의 높은 연료소비율과 낮은 항속거라로 내내 문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가솔린 엔진 특유의 순간 가속력과 힘이 좋아 속도나 순간가속력은 꽤 높은편이였다]
이런 엔진을 장착하고도 TIGER-II 는 비도로상에서 약 시속 38km.. 도로상에서는 최대 41.5km 라는 결코 늦지 않은 속도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뛰어난 성능의 독일제 현가장치와 정교한 트랜스미션을 장비했기때문이였습니다.
[사실 70톤에 가까운 거구의 TIGER-II 전차를 움직일려면 레오파트II 전차에 장착된 MTU-873 12기통 디젤엔진과 같은 1500마력급의 엔진을 장착했어야 했지만 당시 독일은 이정도 고출력을 낼수 있는 엔진을 만들수있는 기술력이 없었으며 그나마 당대의 최고의 가솔린엔진이라 불리는 마이바흐 HL-230P 엔진을 장착함으로서 70톤에 가까운 전차를 움직이는게 가능했다 대신 악명높은 연료소비률과 짧은 항속거리에 내내 시달려야 했는데 800리터의 가솔린을 가득 채우고도 고작 행동거리는 130킬로 남짓...야지에서는 80킬로마다 주유를 했어야햇으니 대전말 물자부족으로 어려운 독일 사정에서 이는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망치로 내려쳐야 겨우 변속을 할 수 있다는 소련제전차들의 악명높은 변속기와는 달리 TIGER-II에 장착된 변속기는 전진8단 후진 4단의 마이바흐사제 (Maybach) OLVAR EG 40 12 16 B 변속기를 장착하였으며 고급자동차를 몰듯 주행중 부드럽게 변속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토션바 방식의 현가장치를 이용 톤당 마력수는 약 10 PS/tonne (8.97 hp/ton) 정도로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소련제전차들의 악명높은 변속기와는 달리 TIGER-II에 장착된 변속기는 전진8단 후진 4단의 마이바흐사제 (Maybach) OLVAR EG 40 12 16 B 변속기를 장착하였으며 고급자동차를 몰듯 주행중 부드럽게 변속할수 있었다. 여기에 토션바 방식의 현가장치를 이용 톤당 마력수는 약 10 PS/tonne (8.97 hp/ton) 정도로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이런 우수한 현가장치로 인해 차체의 흔들림이 적어 승무원들의 피로도도 낮은편이였으며 특히 포의 흔들림이 적어 이동중 사격도 가능했습니다.
오히려 이 전차의 최대단점은 다름아닌 최악의 연비를 가진 전차였다는 점인데..
70톤에 달하는 무거운 무게를 겨우 700마력의 엔진으로 가동하려니 800리터의 연료를 가득 적재하고도 도로주행시 약 110Km 비포장 도로에서는 80Km 마다 연료를 다시 채웠어야했으니 가히 최악의 연료먹는 전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항속거리 문제는 진짜 심각한 수준이였습니다.
[티거II 전차가 현재까지고 최강의 전차로 불리는 이유중 하나가 개발당시 이미 현대주력전차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
실제로 TIGER-II의 경우 차체의 피탄이나 고장보다는 연료부족으로 버려지거나 자폭된 경우가 더 많았으며 특히 대전말엽의 독일의 부족한 연료사정에서는 더 큰 문제꺼리중 하나였습니다.
[TIGER-II 전차의 최대문제점은 다름아닌 최악의연비를 가진 전차였다는 점인데..70톤에 달하는 무거운 무게를 겨우 700마력의 엔진으로 가동하려니 800리터의 연료를 가득 적재하고도 도로주행시 약 110Km!! 비포장 도로에서는 80Km 마다 연료를 다시 채웠어야했으니 가히 최악의 연료먹는 전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항속거리 문제는 진짜 심각한 수준이였다. 이는 대전말의 어려운 독일의 사정에 최악의 경우라 할수 있었다]
2. 복잡한 설계와 구조
TIGER-II는 동시대에 제작이 이루어졌던 5호전차 판터와의 부품호환성을 고려했지만 덩치가 다른탓에 완벽하게 부품이 호환되기는 힘들었습니다. (40톤급의 미들급과 69톤의 헤비급 전차의 부품을 공유하라고 하다니..)
[TIGER-II 전차는 1944년 당시 이미 현대주력전차의 모든 요소를 확립하고 이룩한 뛰어난 성능의 전차로 현대전차 역시 이 전차를 바탕으로 개발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갔기 때문에 기술적 완성도나 생산가격 그리고 종합적인 생산성면에서는 다른 전차들에 떨어지는게 문제였다]
전작인 TIGER-I과 마찬가지로 TIGER-II 의 설계 역시 복잡하기 이를 때 없었는데 우선 궤도의 경우 TIGER-I 이 전투용으로 폭 75.5cm 를 사용한데 반해 더 무거운 TIGER-II 는 80cm 짜리 궤도를 사용했으며 화차수송용으로는 별도로 66cm (TIGER-I은 52cm) 궤도로 갈아 끼워주었어야했습니다.(이는 화차의 폭 때문에 그런데 전투용을 그대로 사용했다가는 화차폭보다 넓어 터널의 통과가 불가능했다)
[1944년2월부터 1945년3월까지 1년 남짓한 짧은 기간동안 생산된 TIGER-II 전차지만 그 개량형은 꽤 된다]
여기에 TIGER-II 는 두가지 타입의 궤도를 사용했는데, 가장 먼저 사용된 궤도는 더블핀방식의
Gg26/800/300 으로 1944년 5월 생산분 15대에 장착되는 것을 시작으로 선행생산차량에 모두
장착되었습니다.
[TIGER-II 는 두가지 타입의 궤도를 사용했는데, 가장 먼저 사용된 궤도는 더블핀방식의
Gg26/800/300 으로 1944년 5월 생산분 15대에 장착되는 것을 시작으로 선행생산차량에 모두
장착되었다.]
하지만 대전말기로 가면서 갈수록 부족해지는 자원으로 인해 생산공정의 단순화가 이루어졌으며 이로인해 궤도 역시 싱
글핀 방식의 Kgs73/800/152 타입으로 변경되어 1944년 후기생산차량형에 시험적으로 장착되어 제 501 SS 독립중전차
대대와 제 506 SS 독립중전차대대에 배치된 차량들에 의해 벌지전투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대전말기로 가면서 갈수록 부족해지는 자원으로 인해 생산공정의 단순화가 이루어졌으며 이로인해 궤도 역시
싱글핀 방식의 Kgs73/800/152 타입으로 변경되어 1944년 후기생산차량형에 시험적으로 장착되어 제 501
SS 독립중전차대대와 제 506 SS 독립중전차대대에 배치된 차량들에 의해 벌지전투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
니다.]
티거II의 장갑재는 크루프 (Fried Krupp) 사가 담당하였는데 초기에는 독일제 철강으로 제작되다
체코의 스코다 철강사에서 제작된 제품도 납품되어 제작에 사용되었습니다.
TIGER-II 는 실전에서 전면장갑이 관통되지 않는 뛰어난 방호력을 자랑했는데 티거 사냥꾼으로
잘 알려진 영국군의 파이어플라이의 17파운드 포에도 관통되지 않았으며 그나마 장갑이 얆은 부
분인 두께100mm 의 전면하부 역시 종전후 테스트 결과 관통되지 않는 무서운 방호력을 보여주
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측면장갑 역시 셔면의 75mm포나 소련군 전차들의 주포인 76.2mm 의 Zis-3 포의
공격에도 끄딱없는 방호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대전말기로 가면 점점 장갑의 질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와 상관없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는데, 한예로 제503 독립중
전차 대대의 구르크 크니스엘 상사가 탑승한 TIGER-II 는 전투에서 무려24발의 각종 포탄을 맞고도 건재했는데 이뿐 아
니라 아르덴느 공세 당시 제1 SS 기갑사단 ‘아돌프히틀러’ 제1기갑 연대장 요하임 파이퍼 SS 중령이 지휘한 파이퍼전투
단 (Kampfgruppe “Peiper”) 소속의 쿠르크소바 SS하사 (제 501 SS 독립중전차대대 2중대) 의222호차량을 전투에서 무
수한 미군의 포화를 얻어맞고도 무사히 탈출에 성공 야음을 틈타 전차병 5명이 무사히 탈출하는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습
니다.
[쿠르트 크니스펠 의 전차장 시절의 모습 이 독일 기갑의 본좌는 비트만 중위나 오토 카리우스 중위에 비하면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독일 전차 격파의 탑 에이스들이 주로 장교들이지만 그는 다른 에이스인 바르크만과 같은 부사관 출신이었다. ]
[후반에는 드디어 퀴니어스 타이거라 불리는 타이거II에도 탑승했다.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했던 바르바로사 작전부터 그는 전차의 포수로 참전했다 쿠르트는 독소 전쟁의 여러 전선을 전전했다. 야르제프에서 전투의 첫 맛을 본 그는 스타린그라드 전역(戰域)과 레닌그라드 , 그리고 코카서스 전선에서 실전을 겪으며 경험을 쌓았다. 1943년 1월말, 그는 푸트로스의 기갑 학교에서 타이거 전차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동부 전선에서 몇몇 주요 전투에 참여했던 그의 부대는 다시 본국으로 소환되어 타이거 2 전차로 재장비했다.]
이와같이 TIGER-II 는 두터운 장갑과 더불어 판터에서 도입되었던 경사장갑을 대폭 채용하여 장
갑두께와 더불어 경사각의 잇점을 십분 발휘하는 전차로 TIGER-II 의 큰 장점이기도 했습니다.
두터운 장갑과 더불어 앞서 설명했듯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88밀리 주포를 가진 TIGER-II 는 소련군이 장비한 T-34/85를
2,000미터 이상 거리에서 격파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고 (반대로 T-34/85의 85밀리 주포를 그
렇치 못했다) 중장갑을 자랑하던 IS-II 전차마져 2100미터 거리에서 격파하는 엽기를 보여주었고 셔먼전차의 경우 무려
3500미터 거리에서도 격파한 기록이 있을정도였습니다.
[6호전차 티거의 등장이 있다 소련군은 주포를 기존의 76.2 밀리에서 85밀리로 강화한 T-34/85 를 투입하기에 이른다]
[88밀리 대공포를 개조한 주포에 100밀리 중장갑을 한 6호전차 티거가 등장하자 소련군은 이를 격파할 대응책으로 122밀리 주포를 장착한 IS-II 스탈린 전차를 배치하기에 이른다. 비록 구경은 컸지만 곡사포인 122 mm corps gun M1931/37 (A-19) (Russian: 122-мм корпусная пушка обр. 1931/1937 гг. (А-19))를 개조한 포로 포구속도가 느리고 탄도가 곡선이라 맞추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구경이 큰 만큼 일단 피격되면 중장갑인 티거 조차 한방에 훅 갈수 있는 위력을 가진 포를 가진 전차였다]
[독일군이 티거를 개발 배치하는 동안 소련은 이들 중전차를 격파할 헌터전차로 152밀리급의 주포를 장착한 SU-152 같은 구축전차를 배치하였는데. 이는 중장갑의 대구경 화포를 장착한 전차로 역시 곡사포를 주포로 한것이라 명중성은 다소 떨어졌지만 일단 맞았다 하면 중장갑을 한 티거 전차 조차 한방에 훅 갈정도로 위력이 대단했다]
[이 역시 2천미터 이상의 원거리에서 정확하게 포격하는 TIGER-II의 포격앞에 불타오르는 전차로 변하기 일쑤였다]
[IS-II 와 T-34/85형의 투입에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햇던 소련군은 급기야는 최신의 JS-III 스탈린 전차를 투입하려했지만 그즈음 이미 독일군의 기갑세력은 모두 와해된 상태로 훗날 이 전차는 서방 전차연구가들을 경악하게 한 전차로 소련제 전차의 신화를 시작하게 한 전차중 하나이다.]
이렇듯 TIGER-II 는 연합군에게 아군의 포탄은 튕겨내고 아무리 먼거리에서 발사한 포탄도 아군전차를 격파한다는 미신
비슷한 소문이 퍼지면서 TIGER-II 형상을 한 전차만 봐도 (대표적인게 판터전차) 내빼는 일이 파다했을 정도였습니다.
[TIGER-II 전차는 연합군에게는 공포의 대명사 였다]
이에 미군은 티거II를 격파할 새로운 중전차인 M26퍼싱전차를 급히 개발하여 전투에 투입하였으나, 이때는 이미 대부분
의 독일군 전차세력이 와해된 터라 맞서는 전투를 할수 없었는데 그나마 1945년 4월21일 데사우 (Dessau) 전투에서 제
3기갑사단 소속의 조셉마두리 하사(Staff Sgt, Joseph Maduri)의 수퍼퍼싱이 약 548미터 거리에서 교전을 벌여 TIGER-
II 를 격파하는 전과를 올린 것이 유일한 티거II와 퍼싱전차의 전투였습니다.
[TIGER-II에 대해 미군은 티거II를 격파할 새로운 중전차인 M26퍼싱전차를 급히 개발하여 전투에 투입하였으
나, 이때는 이미 대부분의 독일군 전차세력이 와해된 터라 맞서는 전투를 할수 없었는데 그나마 1945년 4월21
일 데사우 (Dessau) 전투에서 제3기갑사단 소속의 조셉마두리 하사(Staff Sgt, Joseph Maduri)의 수퍼퍼싱
이 약 548미터 거리에서 교전을 벌여 TIGER-II 를 격파하는 전과를 올린 것이 유일한 티거II와 퍼싱전차의 전
투였다.]
[조셉마두리 하사(Staff Sgt, Joseph Maduri)의 수퍼퍼싱은 52구경의 장포신을 장작한 수퍼퍼싱으로 길어진 포신의 무게를 위해 임시로 무게추가 달린 형태였다고 한다]
3. TIGER-II 의 개량
TIGER-II 는 1944년 2월부터 본격적인 대량생산에 들어가면서 생산과 동시에 개량이 가하지게 됩니다.
[1944년2월부터 1945년3월까지 1년 남짓한 짧은 기간동안 생산된 TIGER-II 전차지만 그 개량형은 꽤 된다. 대표적인것이 궤도의 변경과 휠의 변화이다]
우선 시제차량의 직선형 휀더를 곡선형으로 변경하였으며 배기가스가 엔진실 상류에 잔류하는것을 막기위해 배기파이프를 긱성형 대신 곡선형으로 교체하게 됩니다.여기에 동계작전에서 시동을 걸기 쉽도록 냉가수 가열 장치를 신설하게 되었습니다.
[배기관 역시 초기 양산형은 직선이엿는데 반해 후기형은 곡선으로 꺽인형태로 바뀌었다]
이어 1944년 5월부터는 궤도는 더블핀방식의 Gg26/800/300 으로 교체하고 주포조준기를 쌍안식의 TZF9b 대신 단안식의 TZF 9d 로 교체하게 됩니다.
같은해 9월에는 비로서 모든 독일전차에 찌메리트 코팅을 폐지하는 결정이 내려졌으며 1945년3월에는 궤도를 싱글핀 타입의 Kgs73/800/152 로 변경되어 1944년 후기생산차량형에 시험적으로 장착되어 제 501 SS 독립중전차대대와 제 506 SS 독립중전차대대 소속 차량에 장착되어 출시됩니다.
4. 또 하나의 문제점 지지부진한 TIGER-II 의 생산성
TIGER-II 는 당대의 설계로는 가장 뛰어난 공격성과 방호력을 가진 뛰어난 성능의 전차였지만 또하나의 문제점이 있었는데 바로 생산하기가 까다로운 전차였다는 점이였습니다.
[TIGER-II 는 최강의 성능을 가진 전차답게 구조가 복잡하고 정교한 제작기술을 필요로 했다]
1943년 7월 TIGER-II 는 Panzerkampfwagen VI Ausf. B SdKfz 182 란 명칭으로 정식으로 데뷔하게 되었지만 펀터전차와 마찬가지로 생산은 1944년 2월부터 이루어지게 됩니다.
1943년 12월까지 생산된 차량은 겨우 3대(Fgst#28001~28003) 로 1943년 10월에 28001 이 완성되고 12월에 28002호 차량이 그리고 이어 28003호 차량이 완성되는 수준이였습니다.
여기서 Fgst 란 TIGER-II 를 의미하는 차체 일련번호로 아쉽게도 이 번호는 28001로 시작되어 280489로 끝나게 되는데 총 489대만(최근에는 492대라는 설이 유력하게 뜨고 있다) 의 TIGER-II 만이 생산된 채 종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더 생산하고 싶어도 1945년 3월 카셀의 헨셜사 공장이 미군에 점수되어 더 이상 생산할 수 없었다)
실제로 1944년 2월부터 포르쉐형 포탑을 장착한 50여대의 초도생산이 시작되었지만 겨우 8대만 첫 출고 시킬수 있었으며 반면 티거-I의 경우 2월에만 96대가 생산되는등 TIGER-II 의 경우 생산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잘 말해주는 예라 하겠습니다.
이에 독일국방부는 티거II의 생산을 어떻해든 높여 볼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갈수록 미공군과 영국공군의 폭격이 잦아지는 가운데 헨셜사의 공장가동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그나마 1944년 8월 티거-I 이 거의 생산종료되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94대 까지 생산성이 높아지긴 했지만 그해 9월에는 다시 63대로 감소하는등 티거II의 생산은 그리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독일이 당시 tiger-II 에만 전념하여 생산할 수 있는 사정도 아닌데다가 무엇보다 갈수록 자원의 부족해지고 그 양도 한정되어지면서 전차생산에 필요한 여러가지 자원이 부족해진 원인과 독일장비 특유의 고성능화로인해 전차 한 대를 생산하는 비용과 기간이 같은 소련제 전차에 비교해 더 오래 걸리고 비용도 배이상 비싸다는 문제에 주원인이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5만 대가 넘는 미국의 M4 셔먼과 5만 8천 대의 소련의 T-34가 제작되었으나, 티거 1은 1,355대, 티거 2는 500대가 제작되었다. 독일의 설계는 시간, 원료, 가격의 면에서 높은 댓가를 요구했고, 티거 1은 당시의 4호 전차보다 2배의 비용이 들었으며, 3호 돌격포의 4배였다. 티거의 적수에 가장 가까운 미국의 전차는 M26 퍼싱(전쟁 중 약 200대 생산)과 소련에는 IS-2(전쟁 중 약 3,800대 생산)가 해당된다.)
특히 대전말엽에 가면 독일군은 1호부터 6호까지 크게 6종의 전차에 점령국에서 빼앗은 다양한 전차들까지 합해져 20종 이상의 각종 전차와 장갑차량이 마구 뒤섞여있는 상태라 혼란하기가 이를때 없었는데 이와중에 우선적으로 전선에서 요구가 빗발치는 돌격포나 대전차자주포등 생산이 쉽고 효과가 좋은 전차들을 우선 생산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산이 오래걸리고 비싼 TIGER-II 의 생산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45년 3월 헨셜의 공장이 미군에 접수되고 나서 공식적으로 모든 TIGER-II 전차의 생산은 끝나게 된다. 1944년2월부터 1945년 3월까지 총생산된 TIGER-II 전차의 수는 고작 498대에 불과했다]
어찌되었던 TIGER-II 는 1944년 2월부터 1945년 3월초까지 489대라는 나름대로 많은수가 어렵게 생산되었지만 실제로 전선에서의 요구수량에는 턱없이 부족한 입장이였습니다.
|
첫댓글 재미있는 리뷰 잘봤습니다... 역사공부도 되네요..ㅎㅎ
국민성의 차이인가요? 아무리 급박한 상황에서도 최고를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단순한 대량생산보다 생산공정이 아무리 복잡하고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만든다..이런식 같은데요.....이런건 우직하다고 해야하나 비합리적이라고 해야하나요~~^^
좋게 말해 정직하다 혹은 책임감이 강하다고들 그렇치만 게르만족이 좀 답답한 구석이 있죠.. 융통성 하고 좀 먼 ^^
정말 재미있네요..감사합니다.
티62나 엠48하고 맞짱떠도 장담 못 한다는 평도 있더만요; 역시 철의왕국 독일~! 잘 보고 갑니다.(그렇게 국토가 초토화 되면서도 저런 전차를 만들었다는게 정말 믿기 힘들정도네요)
미군이 만든 M60 이 나와서야 겨우 이 전차를 기술적으로 압도할수 있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전차였습니다. M48 이나 T-55 로는 사실 맞설 수준은 되었지만 압도할수 있는 수준은 아니였죠... 여담입니다만 노획해간 킹타이거로 인해 미국의 전차기술은 상당히 앞서가게 됩니다. 그전까지는 미국 전차는 대량생산에만 유리한 깡통 전차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