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단오 ‘당금애기’ 이야기
제석삼불(帝釋三佛) / 당금애기(삼신) / 무당춤 / 강릉 관노가면희(官奴假面戱) / 삼신불(원주 구룡사)
무속신화라 알려진 당금애기 이야기는 60종이 넘는다고 하는데 부르는 이름도 가지각색이다.
‘당금아기, 당곰애기, 당금각시, 제석님 딸애기, 제석님네 맏딸아기, 서장애기, 상남아기, 시준애기, 자지명애기’ 등인데 전체적인 이야기는 대충 비슷하며 당금애기라 부르는 것이 거의 보편적이다.
당금애기는 삼신(三神), 또는 제석신(帝釋神)으로도 알려져 있다.
옛날부터 아기를 낳을 때 태(胎)를 보호하는 신을 삼신(三神/삼신할머니)이라고 했고, 제석(帝釋)은 본래 불교(佛敎)에서 수미산(須彌山)의 정상인 도리천(忉利天)을 주재하는 호법선신(護法善神)으로 불법(佛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佛者)들을 보호하며 아수라(阿修羅)의 군대를 징벌하는 불교의 신(神)이다.
우리나라 무속(巫俗)에서 전해오는 설화(說話)를 잠시 드려다 보면, 해동조선(海東朝鮮)에 살던 최고의 부자 장재비가 아들 아홉을 낳은 후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다니며 정성껏 빌어서 얻은 귀한 따님이 바로 당금애기라는 이야기다.
당금애기가 태어난 집은 열두 대문의 대궐같은 집으로 쥐도 새도 넘보기 힘들 정도로 경계가 철저한 부잣집이었는데 이곳에서 당금애기는 천상의 선녀처럼 금이야 옥이야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당시, 해동조선을 유랑하던 한 스님(개비랑국의 태자로 태어났으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왕좌를 포기하고 스님이 되었으며 6년 만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은 당금애기의 명성을 듣고는 당금애기의 집 앞으로가 염불을 외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당금애기의 부모님은 유람을 떠났고, 아홉 오라비는 나랏일을 돌보러 떠나서 집에는 당금애기와 몸종인 금단춘, 그리고 문지기뿐으로 경계가 허술했는데 스님이 주문을 외자 철통같은 대문이 활짝 열린다. 깜짝 놀란 문지기가 다시 문을 꼭꼭 걸어 잠갔지만 스님의 도술 앞에 열두 대문은 힘없이 돌파당했고, 스님이 당금애기의 별당 앞까지 들어가 염불을 외우자 당금애기는 몸종 금단춘에게 나가 보라고 한다. 하지만 스님은 금단춘은 본 척도 하지 않고 당금애기에게 시주(施主)를 청한다.
당황한 당금애기는 치장을 한 후 방에서 나오며 지금은 부모님이 출타 중이라 시주를 할 수가 없다고 말하자 스님은 걱정 말라면서 지팡이를 들어 올리고 왼발로 땅바닥을 세 번 쿵쿵 울리니 모든 곳간 문이 열린다. 그리고는 당금애기가 먹던 쌀을 손수 퍼달라고 한다. 순진한 당금애기는 쌀을 퍼다 동냥자루에 부었는데 자루는 밑이 빠진 자루라 부은 쌀이 바닥으로 주루루 흘러내리고 말았다. 깜짝 놀란 당금애기는 동냥자루를 달라고 하여 손수 기워서 들고나와 빗자루로 땅에 떨어진 쌀을 쓸어 모으려 하자 스님은 부처님께 올릴 쌀을 험하게 다루면 안 된다며 싸리나무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주워 담으라고 한다.
그렇게 쌀을 하나하나 주워 담다 보니 날이 저물고 말았고 스님은 날이 늦어 갈 곳이 없으니 하루만 묵어가게 해달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당금애기가 방을 하나 내주려고 하는데 스님은 아버지 방은 누린내가 나서 싫고, 어머니 방은 비린내가 나서 싫고, 오라비의 방은 땀내가 나서 싫다고 하며 당금애기의 방 한구석을 비워달라고 한다. 순진한 당금애기는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지만 끝내 거절을 못하고 자기 방 윗목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순진한 당금애기도 남정네와 한방에서는 잘 수 없었던지라 구석에 앉아 수(繡)를 놓으며 앉아서 밤을 새우려 하자 시주는 주문을 외어 당금애기를 재워버린다.
잠에 빠진 당금애기는 꿈결 속에 오른쪽 어깨에 달이 얹혀 보이고, 왼쪽 어깨에 해가 얹혀 보이며, 맑은 구슬 세 개를 얻어 옷고름에 넣어보고 허리춤에도 넣어보다가 입으로 꿀꺽 삼키는 꿈을 꾸다 새벽닭의 울음소리에 잠을 깨고 말았다.
당금애기는 그날 밤 육체적인 결합이 아닌 신탁(神託)에 의한 결합, 즉 신성혼(神聖婚)으로 임신을 하게 되는데 스님은 떠나면서 당금애기에게 박씨 세 알을 건네주며, 귀한 아이를 낳을테니 잘 키우라는 말을 남기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집을 나섰다. 점점 배가 불러오는 것을 당금애기는 필사적으로 숨겼지만 결국에는 들키고 말아 온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아버지는 당금애기가 더 이상 자신의 딸이 아니라 하고, 아홉 오라비는 칼을 들고 당금애기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칼을 들어 올릴 수는 있어도 당금애기를 향해서는 내려칠 수 없었다. 젖 먹던 힘을 다하여 겨우 칼을 내려쳐도 자루만 남기고 칼날이 뚝 부러지고 말았다.
울음을 삼키며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당금애기에게 죄가 없다면 하늘이 살리고 죄가 있으면 벌을 내릴 것이라며 당금애기를 뒷산 바위 밑 돌구멍에 보내자고 한다. 아홉 오라비는 당금애기를 바위 돌구멍에 집어넣고 돌아가려는데 마른하늘에 갑자기 번개가 치고 사방이 어두워지더니 흙비와 돌비가 쏟아졌다. 아홉 오라비는 두 다리가 땅에 붙어 꼼짝달싹 못하고 흙비와 돌비를 맞고는 쓰러졌다.
흙비와 돌비가 쏟아지는 기묘한 날씨가 몇 날 며칠 동안 계속되자 초조해진 어머니는 날이 개자마자 뒷산으로 올라가 보니 당금애기는 아기 셋을 안고 무사히 살아 있었다. 당금애기의 어머니는 하늘도 당금애기를 죽이지 못하는데 누가 죽일 수 있겠냐며 당금애기와 세 아이를 데리고 와서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세 아이는 항상 아버지가 없다고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고, 7살이 되자 삼 형제는 어머니에게 왜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없냐고 하소연을 하자 당금애기는 그날 밤 이야기를 들려주며 품 안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박씨 세 알을 꺼내주었다. 삼 형제가 박씨를 꺼내 뒤뜰에 심자 씨는 하룻밤 사이에 싹이 돋아 덩굴이 자라더니 담 너머로 뻗어가기 시작했고, 끝을 알 수 없도록 계속 퍼져나간다.
삼 형제는 어머니를 가마에 태우고 박덩굴을 따라 길을 나섰다. 그 덩굴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머나먼 이국의 땅(개비랑국)까지 뻗어 나갔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산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다 박덩굴은 조그마한 사찰 앞에서 멈추었는데 눈치를 챈 당금애기가 자신이 찾아왔다고 말하자 사찰의 문이 열리며 스님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당금애기 집에 시주를 하러 왔을 때의 검고 얽고 땟물이 흐르는 모습이 아니라 그림으로 그린 듯한 외모에 백옥처럼 하얀 피부는 티도 한 점이 없었다.
하지만 당금애기는 그때 자기 집을 다녀간 스님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삼 형제가 눈치를 채고 스님에게 ‘우리 아버지가 맞지요?’ 하며 물어보자 스님은 엄한 표정으로 정말로 자신의 자식이라면 뒷동산에 올라가 죽은 지 삼 년 된 소뼈를 살려내어 거꾸로 타고 오라고 한다.
삼 형제가 소뼈를 모아 쓰다듬자 뼈에서 살이 돋아나며 소가 살아나 삼 형제가 타고왔다. 그러자 짚으로 만든 닭을 살아 움직이게 하라고 하자 삼형제는 이것도 간단히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그릇에 아이들과 자신의 피를 섞어 보자 네 사람의 피는 안개처럼, 구름처럼 뭉실뭉실 싸여서 똘똘 뭉쳐졌다.
삼 형제가 자신의 아들임을 인정한 스님은 첫째를 형불(兄佛) 둘째를 재불(再佛) 막내를 삼불(三佛)이라 이름을 지었다. 그렇게 삼형제는 삼불제석신이 되었고 그 어머니는 집집마다 아이를 점지하여 순산하도록 도와주고 병 없이 자라게 돌보아주는 삼신이 되었다.
아이들은 각각 금강산 부처님, 태백산 문수보살, 골매기신이 되었고 당금애기는 삼신할머니가 되어 마을마다 집집마다 아이를 점지해주고 돌봐주게 되었다는.... 신기한 설화(說話)이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성황신(城隍神), 당산신(堂山神), 골매기신의 3신(三神)을 꼽는데 골매기는 골(谷:고을)의 액운을 막는다(매기:막이)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