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교도소 소장' 특정했지만…한발 늦게 뒤쫓은 경찰
운영자 추격받는 신세…"경찰 초기대응 아쉽다" 비판
경찰 "인터폴에 공조 요청" 속도…여권무효화 등 조치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20-09-11 06:00 송고 | 2020-09-11 09:43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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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디지털 교도소'라는 이름의 사이트가 문을 열었다. 성범죄자의 사진과 개인정보 등을 공개해 교도소에 수감된 것처럼 처벌한다는 취지의 온라인 공간이다.
운영자는 '성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관행'에 반발해 사이트를 개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개설 3개월이 지난 현재 운영진은 경찰의 추격을 받는 신세가 됐고 사이트는 접속이 되지 않고 사실상 폐쇄된 상태다.
디지털 사이트의 위법 논란은 확산하는 상황이다. 11일 경찰 등에 따르면 '디지털교도소'에 개인 정보가 올라온 인물 가운데 성범죄와 무관한 이들이 수사를 통해 확인됐다.
'성 착취물을 구매하려 했다'는 이유로 한 대학교수의 전화번호가 올랐으나 해당 교수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곳에서 신상이 공개된 대학생의 경우 결백을 호소한 가운데 최근 숨진 채 발견된 사건도 발생했다.
법조계에서는 사이트 운영 자체만으로 법에 접촉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디지털 교도소 운영진에게 실제로 적용된 혐의는 명예훼손과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등이다.
경찰은 디지털교도소에 즉각 대응해 내사를 지시했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찰의 대응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는 지난 5월23일 사이트를 열기 전인 올해 3월쯤 인스타그램 계정 3곳을 운영했다. 해당 인스타그램에는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제작한 '박사방' 사건 주범의 개인 정보 등이 올라왔다.
그런데 경찰청이 대구경찰청과 부산경찰청에 내사를 지시한 것은 지난 5~6월이다. 5월에는 대구경찰청에 인스타그램 1곳, 6월에는 부산경찰청에 디지털교도소와 인스타그램 2곳에 대한 내사를 요청했다.
내사란 정식 수사 전 범죄 혐의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다. 이른바 '본격적인 수사'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단계다. 디지털 교도소에 개인정보가 올라 온 인물만 약 110명에 달한다.
특히 운영자는 자신을 '박 소장'이라고 소개하며 자신만만해 왔다. 그는 "동유럽국가 벙커에 설치된 방탄 서버는 강력하게 암호화 했다"며 국내 수사망에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이 사이트에 따른 피해자가 최근 잇달아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경찰이 더욱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식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디지털교도소뿐 아니라 'n번방''박사방' 사건 때도 그랬다"며 "사이버 범죄에 대한 경찰의 대응에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사이버 범죄자의 범행 속도, 이에 따른 피해 양산 속도와 비교해 경찰의 초기 대응은 더딘 감이 있었다"고 했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디지털교도소의 경우 경찰이 초기부터 수사를 본격화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며 "디지털교도소가 (성범죄자 처벌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기 때문에 경찰로서는 바로 적발하며 드러내놓고 수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찰은 환경적인 요인으로 쉽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수사가 지지부진했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디지털교도소 서버가 해외에 있는 점을 파악한 뒤 사안이 중대한 것으로 보고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공조를 요청하며 범인 검거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제도적·현실적·물리적 제약에도 용의자를 특정해서 여권 무효화 등의 조치를 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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