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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2월 14일 금요일
[(백)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치릴로 성인과 메토디오 성인은 형제로, 그리스 테살로니카에서 태어나 튀르키예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육을 받았다. 두 형제는 후대에 '키릴'문자로 불리는 글자를 만들어 전례문들을 슬라브 말로 옮겼고, 체코 모라비아의 슬라브족에게 파견되어 복음을 전하며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로마로 돌아간 다음, 치릴로 성인은 수도 서원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869년 무렵에 선종하였다. 메토디오 성인은 교황 특사로 모라비아에서 활동하다가 벨레라드에서 885년 무렵 선종하였다.
말씀의 초대
뱀의 유혹으로 여자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를 따 먹고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시며 고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1-8
1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3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8 그들은 주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과 그 아내는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사도 13,46-49)와 복음(루카 10,1-9)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귀먹고 말 더듬는 이”(마르 7,32)를 낫게 하시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마치 성사를 집행하는 사제 같으십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실 것을, 곧 안수를 청하였을 뿐인데 예수님께서는 손가락, 혀, 숨 등을 통한 정교하고 신중한 동작으로 그의 귀와 혀를 열어 주십니다. 말씀 한마디로, 때로는 병자를 직접 만나시지 않고 원격으로 고쳐 주시기까지 하시던 분께서 여기서는 당신 지체로 병자의 몸을 접촉하시면서 일종의 전례 예식 같은 치유 행위를 보여 주십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육신을 취하신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구체적인 모습을 목격합니다.
하느님이신 분께서 만질 수 있는 지체로 육화하시어 당신을 만지는 사람들이 당신 신성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귀먹고 말 더듬던 사람은 예수님의 손길이 닿는 순간 그분의 신성을 체험하게 됩니다. 육화하신 하느님께서는 말씀만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구체적인 모든 수단으로 우리를 낫게 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성령 기도나 초자연적 방식으로만이 아니라 당신께서 마련하신 자연적인 수단들이나 의사들을 통해서도 고쳐 주십니다. 그러니 그들 안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인간 조건에 맞추어 눈에 보이는 표시와 말씀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 주는 도구가 바로 ‘성사’입니다. 우리는 성사를 받을 때마다 눈에 보이는 표지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보고 합당하게 모셔야겠습니다. 그때 우리의 영혼은 은총으로 활짝 열릴 것입니다.(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어찌 보면 우리는 또 다른 귀먹은 사람이요, 말 더듬는 사람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에파타!’ 복음을 접할 때마다, 제 지난 삶을 되돌아보지 않을수 없습니다. 솔직히 수도회 입회 전까지만 해도, 저는 도통 말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루 온종일 말을 거의 하지 않다 보니, 당연히 말주변이나 말재주가 전혀 없었습니다. 당시 제 모습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 있습니다. ‘꿔다놓은 보리 자루!’
어떤 정소를 가든, 어떤 모임에 가든 저는 조용히 한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거의 투명 인간처럼 그렇게 지냈습니다. 학창시절 제 생활기록부에 단골로 적혀있던 표현들이 있었습니다. 조용한 성격, 남 앞에 나서기를 지극히 꺼려함,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탐...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가 생각을 해도 깜짝 놀랄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얼마 전, 몇십년 만에 해후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제가 주도한 한 강좌에 참석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바뀌어버린, 제 모습에 강의 내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크게 변화된 제 모습을 보며, 주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제 신앙 여정 안에 ‘에파타!’라고 외치시며 저를 치유하셨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또 다른 깨달음, 또 다른 시야를 지니도록 계속해서 ‘에파타!’ 작업을 지속하고 계심을 굳게 믿습니다.
올바른 목적을 설정하고,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 놀랍게도 주님께서 힘을 보태주십니다. 선한 의지를 갖고, 한 방향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서, 혼신의 노력을 하면 기적이 가능합니다. 제대로 한번 변화되어 보려고, 제대로 한번 눈을 떠보려고, 제대로 한번 깨달음에 도달하려고 총력을 기울이다 보면, 반드시 주님께서는 선한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옛날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의 귀를 열어주시고, 혀를 풀리게 하는 사랑의 기적을 행하셨는데, 그 기적은 오늘 우리 안에서도 되풀이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 듣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솔직히 놓치며 살아가는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서늘한 가을바람에 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동료 이웃들의 음성을 통해 전해지는 성령의 목소리를 놓치며 살아갑니다. 주변에서 매일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을 통해 전해지는 시대의 징표를 놓치며 살아갑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중요한 말, 꼭 필요한 말, 반드시 해야할 말은 하지도 못하고 살아갑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또 다른 귀먹은 사람이요, 말 더듬는 사람입니다. 부드럽고 감미롭지만, 강한 생명력을 지닌 주님의 한 말씀, ‘에파타!’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일주일에 한 번씩 부주임 신부님과 ‘운동치료’를 받으러 다닙니다. 부주임 신부님은 몇 개월 다니면서 몸이 많이 유연해졌습니다. 아직은 젊고, 운동신경이 좋아서입니다. 저는 같이 다니고 있지만 부주임 신부님은 할 수 있는 동작을 따라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나이도 들고, 운동신경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신부님은 신용카드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국에서 신용카드를 만들려는데 그리 쉽지 않다고 합니다. 저는 제가 아는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6년 전에 신용카드를 만들었습니다. 신문사에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살아온 시간과 연륜이 있기에 제게는 가능한 것이 신부님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신부님과 이야기하면서 문득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우리는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젊은 날에는 열정과 패기로 앞으로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나이가 들어 늙어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뭇잎이 떨어져야 봄이 온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의 선악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여전히 반복되는 인간의 본성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선택의 가능성을 주셨을까요? 이것은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단순히 로봇처럼 명령에만 따르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자유 의지는 하느님 사랑의 큰 표현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 따릅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선택의 결과로 에덴동산을 떠나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들을 마주합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신앙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택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와 하느님께 영향을 미칩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은 하와를 유혹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했습니다.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너희 눈이 밝아져 하느님처럼 될 것이다"라는 말은 인간의 마음 깊숙한 욕망을 건드렸습니다. 금지된 것을 탐하려는 본성은 오늘날에도 우리 안에 존재합니다. 우리 각자는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유혹을 마주합니다.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 물질적 성공에 대한 갈망, 그리고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선택들입니다. 이를 ‘판도라의 상자’에서 알 수 있습니다. 판도라는 상자를 열지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너무 궁금했습니다. 결국 판도라는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러자 상자 안에서는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것들이 나왔습니다. 질병, 슬픔, 죽음, 가난 등 인간의 삶에 불행과 고통을 가져오는 모든 형태의 어려움이 상자에서 퍼져 나왔습니다. 이는 인간이 처음으로 완벽했던 삶(에덴동산과 유사한 평화)을 잃고, 고통과 투쟁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상자에 남아 있던 마지막 요소는 바로 희망(엘피스, Ἐλπίς)이었습니다. 이는 인간이 모든 재앙과 고난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극복할 가능성과 위안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유혹을 직면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선악과 이야기는 단지 인간의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벌하시지만, 동시에 가죽옷을 만들어 주시며 보호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은 우리의 약함과 실패 속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며, 구원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시작된 죄는 예수님의 순종으로 극복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선악과 이야기는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선택의 순간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를지, 아니면 우리의 욕망을 따를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도 돌아올 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의 선택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 깊게 하고, 공동체를 사랑으로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에게 ‘에파타!’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 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이제 괜찮아>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셨다.”(마르 7,33ㄱ)
많은 사람들 틈에
한 사람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들을 수 없었기에
말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서
들을 수 없었던
그 사람
따로 데리고 나가시어
그분께서 말씀하셨다네
나 그대에게
말하고 있으니
이제 맘껏 들으시게나
많은 사람들 틈에
한 사람
아무도 듣지 않으니
말할 수 없었기에
듣지 않았던
사람들에게서
말할 수 없었던
그 사람
따로 데리고 나가시어
그분께서 들으셨다네
나 그대에게
듣고 있으니
이제 기꺼이 말하시게나
사람들 틈에
한 사람
아무도 품지 않으니
있을 수 없었기에
품지 않았던
사람들에게서
있을 수 없었던
그 사람
따로 데리고 나가시어
그분께서 품으셨다네
나 그대를
품고 있으니
이제 오롯이 있으시게나
오늘의 성인
성 치릴로 (Cyril)
신분 :^신부 선교사
활동연도 : 826/827-869년
같은이름 : 치릴루스, 키릴로, 키릴루스, 키릴로스, 시릴로, 시릴루스, 시릴
성 메토디오 (Methodius)
신분 : 대주교 선교사
활동연도 : 820/825?-885년
같은이름 : 메토디우스
슬라브 민족은 본래 동부에 있는 대 평야, 즉 중앙 아시아 지방에 정착했으나, 그 후 차차 발칸 반도를 거쳐 중앙 유럽 즉 모라비아와 보헤미아 지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민족이 그리스도교의 빛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이 발칸에 진출할 때부터였으나 당시는 소란스러운 시대였으므로 전 민족이 그리스도교를 봉행할 수는 없었다.
특히 중부 유럽지방에 진출한 이들은 귀화의 은총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도 복음의 씨를 뿌릴 수 있는 성인들을 파견하셨다.
그 중에 유명한 분은 치릴로와 메토디오 두 성인이다.
이 두 분은 테살로니카 시의 레오라는 고관의 자손으로서 형제였다.
테살로니카는 옛적에 성 바오로께서 전교하시던 곳이요, 현재는 살로니카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 당시는 각국과 거래하는 일대 무역 항구로서 그 시외에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곳에서 성장한 치릴로와 메토디오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지방의 풍습과 언어를 습득했고, 후에는 그들의 사도로서의 소양을 얻은 것이니,이 역시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테살로니카에는 훌륭한 학교가 적지 않아서 이 두 분은 마음대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메토디오는 재질이 풍부하며 아버지와 같이 관리가 되었으나 곧 출세하여 테살리아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세속 생활을 싫어하여 관직을 은퇴하고, 엄격하고 경건한 생활을 택했다.
그의 동생 치릴로는 콘스탄티노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역시 재능이 뛰어 나고 학식이 출중한 청년으로, 궁중에 근무하여 영예그러운 지위에까지 올랐으나 그도 오히려 이를 싫어하고 은퇴해 어떤 조그마한 섬에 숨어 살았다.
그가 다시 발각되어 궁중에 되돌아갔을 때 황제는 명령으로 철학 교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당시는 회교와 유다교와 논쟁이 벌어진 때였다.
그는 황제 미카엘의 칙서를 받고 그 해박한 지식으로 이교도들과 논쟁하기 위해 바그다드에 갔다.
그곳에서 성공리에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곧 그 형 메토디오와 더불어 흑해(黑海) 지방의 민족을 회개시키기 위해 파견되었고, 그곳에서도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862년, 모라비아의 슬라브족이 미카엘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의 원도를 간청했다.
그 내용은 그들이 천주교를 봉행하기는 하지만 대세를 억눌려 신자가 되었기 때문에 교리에 무지하니 이를 인도하고 가르칠만한 지도자를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는 다시 치릴로와 메토디오를 모라비오에 파견했다. 그들은 이를 대환영했다.
치릴로는 이미 사제의 품을 받았었고, 형제는 협력하여 많은 신자들을 교도하고 강론과 교회 예식으로써 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들은 슬라브족이 아직 글자를 가지지 못함을 유감으로 여기고 자기들이 창안한 치릴로식 알파벳을 사용하여 이것으로 성서와 전례서들을 슬라브어로 번역했다.
그러므로 슬라브 문학의 시조는 성 치릴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모라비아 인들은 훌륭한 천주교 신자로 양성한 두 형제는 그 곳에 3년 동안 체류하고, 그 후 교황의 축복도 받고 자기들을 비난하는 이들에 대한 변명도 할 겸 로마로 향했다. 이에 교황 아드리아노께서는 이 두 분을 매우 반갑게 영접하시고 모라비아에 있어서의 그들의 수고를 치하하시어 메토디오를 사제로,치릴로를 주교로 승급시키려 했으나, 치릴로는 장구한 세월동안 활동과 노고에 힘이 쇠진해 로마에 있는 어떤 수도원에 은퇴하여 수도 서원을 발한 후 50일만에 하늘로 향했다. 때는 869년 2월 14일이었다.
한편 메토디오는 주교로서 모라비아로 돌아갔다.
아드리아노 교황은 모라비아와 판노니아를 독일 교계에서 독립시켜 대교구로 승격시켰고, 메토디오를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레라트에서 대주교로 착좌시켰다.
870년, 독일의 왕 루도비꼬와 독일 주교들은 라티스본 시노드에서 메토디오를 쫓아내기로 결정하고, 그를 가두었다. 그는 2년 후에 교황 요한 8세에 의해 석방되어 자기 교구로 돌아갈수 있었다.
요한 교황은 정책적으로 전례에서 슬라브어 사용만 제한하였던 것이다.
메토디오는 878년에 재차 로마로 소환되었는데, 또 다시 그의 정통성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전례에서 슬라브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교황은 그의 정통성을 인정해 주고 또 슬라브어 사용을 다시 인가하였다. 그 후 그는 치릴로와 함게 시작했던 성서 번역을 계속하기 위하여 콘스탄티노블로 갔다. 독일 교회와 메토디오간의 투쟁은 그의 일생을 두고 계속되었다. 이윽고 이 모든 투쟁은 그가 스타레 메스토에서 서거할 때까지 계속되었으니, 참으로 힘든 생애를 살았던 것이다.(885년 4월 6일)
그러나 그와 치릴로는 "슬라브의 사도들"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그의 전례는 오늘의 러시아 전례가 되었으니, 러시아, 세르브스,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그대로 전해오는 것이다.
그들의 축일이 전세계로 확대된 것은 1880년, 레오 13세에 의하여 비로소 이루어졌다.
성 노스트리아노 (Nostrianus)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나폴리(Napoli)
활동연도 : +450년
이탈리아 나폴리의 주교인 성 노스트리아누스(또는 노스트리아노)는 용맹하게 아리우스주의(Arianism)와 펠라지우스주의(Pelagianism)에 맞서 싸웠다.
성 안토니노 (Antoninus)
신분 : 수도원장
활동지역 : 소렌토(Sorrento)
활동연도 : +830년
같은이름 : 안토니누스, 안또니노, 안또니누스
성 안토니누스(또는 안토니노)는 이탈리아 남부 안코나(Ancona)의 피체눔 태생으로 젊어서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의 수도원에 들어간 듯하다.
그러나 베네벤토(Benevento)의 시코 공작의 파괴 공작에 따라 이 수도원을 떠나 소렌토로 가서 그곳의 주교인 성 카텔루스(Catellus, 1월 19일)와 함께 지냈다.
그들은 곧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함께 성 미카엘(Michael)의 환시를 보았다.
그 후 소렌토 주민들이 그에게 함께 지내기를 요청해서 그는 독수생활을 포기하고 성 아그리피누스(Agrippinus) 수도원에 정착하여 원장이 되었다.
그가 운명할 때 자신의 육신을 소렌토 시내나 시외에 묻지 말라고 유언했기 때문에 그의 수도자들이 성벽 속에 안장했는데, 1354년과 1358년에 사라센인들이 침략했을 때 안토니누스 성인에게 기도하여 침략군을 물리치고 승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소렌토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요한 밥티스타(John Baptist)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지역 : 알모도바르(Almodovar)
활동연도 : 1561-1613년
같은이름 : 요한네스 요안네스 조한네스 조안네스 조반니 존 죤 밥티스타 밥띠스따 밥티스트
성 요한 밥티스타(Joannes Baptista a Conceptione)는 에스파냐 톨레도(Toledo)의 알모도바르 델 캄포에서 태어나 톨레도와 바에자에서 공부한 뒤에 삼위일체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그는 1597년에 개혁 삼위일체 수도원을 발데페냐스(Valdepenas)에 세워 2년 후인 1599년에 로마 교황청의 승인을 얻었다. 이들이 소위 '맨발의 개혁자들' 이다.
숱한 난관 끝에 이 개혁자들은 그의 생전에 34개의 수도원을 세웠다.
성 발렌티노 (Valentine)
신분 : 신부 의사 순교자
활동지역 : 로마(Roma)
활동연도 : +269년
같은이름 : 발렌티누스, 발렌띠노, 발렌띠누스, 발렌타인
로마 순교록에는 발렌티누스라는 두 명의 성인을 2월 14일에 기념하고 있다.
한 사람은 로마(Roma)의 사제이며 의사인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 또는 발렌티노)로서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의 박해 때인 269년에 순교하여 플라미니아 거리(Via Flaminia)에 묻혔다.
다른 한 사람은 로마에서 약 10km 정도 떨어진 테르니(Terni)의 주교인 성 발렌티누스로 로마에서 순교하였고 그의 유해는 후에 테르니로 옮겨졌다고 하는데, 그의 순교에 대해서는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순교록”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두 명의 순교자가 실제로 현존하였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주장이 다르다.
두 명의 발렌티누스가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또 다른 이들은 테르니의 발렌티누스가 로마로 이송되어 처형되었는데, 그로 인해 로마와 테르니에 두 개의 전통이 생겨난 것이지 실제로는 동일 인물이라고 한다.
본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달리 전해진 것일 뿐 동일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더 많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 발렌티누스는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어떤 관리의 감시를 받게 되었는데, 그 관리에게는 앞 못 보는 양녀가 하나 있었다.
성 발렌티누스가 이 양녀의 눈을 뜨게 해주자 이에 감동된 그녀의 아버지를 비롯한 전 가족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이 널리 퍼져 마침내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어 성 발렌티누스는 참수를 당했다고 한다.
성 발렌티누스의 축일을 연인들의 축일로 기념하게 된 것은 14세기부터이다.
연인들이 이날 서로 주고받는 특별한 형태의 축하 카드도 성행하였다.
이날을 선택하게 된 것은 이 시기가 새들이 짝짓기하는 기간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지기도 하고, 남성의 여성에 대한 기사도적 사랑의 표현에서 나타난 것으로도 생각된다.
즉 이 전통에 따르면 매년 2월 14일이 되면 젊은 여인들이 ‘발렌틴’(Valentin), 이른바 자신들을 흠모하여 시중을 드는 기사를 선택하고 이 기사들은 젊은 여인들에게 선물을 바쳤다고 한다.
이러한 관습은 아직도 영국의 몇몇 지역에서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념하는 발렌타인 축일의 여러 가지 의미와 형태는 상인들이 상업적으로 변형시킨 것으로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성 발렌타인 데이라는 연인들의 명절은, 로마의 풍요의식을 없애기 위해,곤봉에 맞고 목잘려 죽은 한 신부를 천주교가 수호성인으로 내세우면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4세기초부터 로마인들은 매년 루페르쿠스 신 앞에서 젊은 남자들의 통과의식을 거행했다.
그들은 상자에 담겨있는 십대 소녀들의 이름을 임의로 뽑았다.
제비뽑기에 뽑힌 소녀는 동반자가 되어 일년동안 서로 즐기고 (때로 성적인 즐거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하였으며, 그 기간이 끝나면 다시 제비를 뽑았다.
그로부터 8백년이 지난 후 이 관습을 종식시키고자 마음먹은 초대 교부들은 루페르쿠스 신을 대신할 ’연인의 성자’를 찾았다.
그들은 약 200년 전에 순교당한 주교 발렌타인이 그럴듯한 후보자라고 생각했다.
서기 269년, 로마의 클로디우스 황제는 금혼령을 내렸다.
그는 남자가 결혼을 하면 집을 떠나 전쟁에 나가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형편없는 군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제국에는 군인들이 필요했고, 사람들의 평판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던 클로디우스 황제는 결혼제도를 폐지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인테람나의 주교였던 발렌타인은 젊은 연인들을 몰래 찾아오게 해서 결혼식을 올려주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황제는 진노해 연인들의 친구인 주교 발렌타인을 궁궐로 불러들였다.
그런데 황제는 젊은 주교의 위엄과 확신에 감명을 받아 로마신을 믿도록 개종시켜 처형당하는 불행으로부터 구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발렌타인은 천주교를 포기하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섣불리 왕을 개종시키려 했다. 269년 2월 14일 발렌타인은 곤봉으로 두들겨 맞고 돌팔매를 당한 후 효수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발렌타인은 옥에서 처형을 기다리고 있을 때 간수 아르테리우스의 눈먼 딸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그녀의 시력을 기적적으로 회복시켰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는, 그녀에게 ’당신의 발렌타인으로부터’라는 작별인사를 서명했고, 그 작별 인사는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 남게 되었다.
교회의 입장에서 볼때 발렌타인은 루페르쿠스의 인기를 빼앗을 수 있는 이상적인 후보로 보였다.
그래서 496년 교황 겔라시우스는 2월 중순에 거행하는 루페르쿠스 축제를 불법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교황은 로마인들이 운수에 자신을 맡기는 제비뽑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은 존속시켰다.
제비뽑기 상자에는 자원한 독신 여자들의 이름대신에 성인들의 이름이 담겨졌다.
남녀 모두 종이 쪽지를 뽑았고, 자기들이 뽑은 성인의 삶을 모방해서 다음 해를 살도록 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은 이전과는 다른 목적을 가진 다른 게임이었다.
여자를 기대했다가 성자의 이름을 뽑는 것은 많은 로마 젊은이들을 실망시켰을 것이다.
전체 행사의 영적인 주관자는 수호 성인 발렌타인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많은 로마인들이 마지못해 기존의 축제를 버리고 교회의 명절로 그것을 대치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사랑
’발렌타인데이’로 유명한 성 발렌티노는 로마인이었고 사제였으며 신앙 때문에 순교했다는 것 외에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따라서 독신 생활을 한 사제의 이름이 어떻게 사랑하는 이들의 내밀한 사랑 고백과 동의어가 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성 발렌티노가 연인들의 수호 성인이 된 까닭은 알 수 없어도, 왜 특별히 ‘사랑’이라는 덕을 담당할 성인이 있어야 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사랑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갓난아기에게 필요한 영양과 환경을 제공해도 사랑을 주지 않으면 죽게 되었음을 관찰한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심지어 나무나 동물들도 사랑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사랑은 모든 생명체를 생명체로 존재케 하는 생명의 본질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인간을 ‘우주의 본질’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인간은 그 이상의 존재, ‘사랑’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사용하지 않고 쌓아 두기만 한다면 결국 우리는 허무가 되고 만다.
사랑은 독점욕이나 의존성, 이기심과 같은 편협한 공간에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본질은 주는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한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