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에서 기모노를 보고는 장자산에 올라 신라 신사를 구경하다!
7월 9일 아침에 혼슈 최북단의 도시 아오모리 靑森(청삼) 역에서 “八戶 の国宝” 라는
사진을 보고는, 모리오카 에 가기 전에 하치노헤(八戶 팔호) 를 보려고 기차를 탑니다.
하치노헤(八戶) 역에 내려 “금메달급 감동” 을 준다 사진을 보고는..... 의자왕의 아들 선광 의 증손자
인 경복(慶福) 이 이곳 아오모리에서 "금" 을 채취해 왜국 조정에 진상한 사실이 떠오르니, 나라의
도다이지의 청동 석가모니상에 황금을 입히는 공을 세우고는 "백재왕" 이라는 성씨를 하사받습니다.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에 백제인 기사가 나오는데, “이 해 겨울에 도읍(飛鳥 비조, 아스카)
의 쥐들이 근강으로 옮겨갔다. 백제남녀 2000여명을 동국에 살게 했다. 승속을 불문하고
계해(癸亥) 의 해 부터 3세에 이르기 까지 관에서 식품을 공급했다.” (『일본서기』 666년 겨울)
여기서 동국은 오사카 북쪽 히라카타시 (枚万市) 를 말하니 현재 백제왕신사 와 왕인의 묘 가
있는 곳인데, 부여용 선광(善光) 의 증손자 경복(慶福) 은 무쓰노쿠니(아모모리) 에서 "금"
을 캐서 743년 11월 5일 쇼무왕(천황) 이 지은 동대사 절에 무려 황금 900냥 을 바친 것 입니다!
역에서 버스를 타고 25분을 달려 十三日町 정류소 에 내려서 신라신사 를 찾아 가는데...
가게에 기모노 가 걸려있고 젊은 여성들이 기모노를 입고 있는 예쁜 모습을 보는데,
기모노 (着物 착물) 는 원래 소맷부리가 넓은 예복인 오소데 안에 입던 옷이라고 합니다.
기모노는 통소매 속옷고소데 였다고 하는데..... 나중에 겉옷으로 입게되어 화려해 졌으며
다시 비단에 솜을 두어 만든 길이가 긴 옷을 나가기 라 하고, 소맷부리가 좁은
옷은 아직도 고소데 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일본 옷의 특성은 의복을 겹쳐서 입는 것입니다.
정식으로는 짧은 주반(속옷) 에 고시마키와 긴 주반을 속옷으로 입고 그 위에 나가기 를
입어야 하는데, 새하얀 화장에 화려한 머리장식 그리고 불편해 보이는 높은 게다
(下馱) 를 신고는 종종걸음 으로 걸어가는 기모노 차림 의 일본 여성들은 아름답습니다.
기모노는 3천만원이 들 정도로 비싸니 왕실의 결혼식, 게이샤나 가부키 등에서만 전통적
명맥이 유지되고, 일반인들은 격식을 차려야 할때 "간소화된 기모노" 를 입는 정도라!
기모노는 혼자 입기가 매우 어려울 정도로 입는 절차가 복잡 하고도
까다로울 뿐 아니라.... 그 명칭 또한 생소한 것이 아주 많습니다.
일본 고분 문화의 기누하카마라 는 상· 하의는 기마민족의 복식 형태에서
유래하니 한반도 삼국 시대의 복식 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헤이안 시대 궁중여성들의 주니히토에 라는 의례복식은 가사네이로매(重色目)
라고 해서..... 칼라와 소매 끝 및 치마단의 색채 조합 을 중시 했습니다.
가사네이로매 는 사계절에 피어나는 꽃과 나무 등의 자연과 풍물 이름을 따서 의복
안팎의 색을 표현한 것으로... 이질감과 색채 가 융합하여 만들어진 문화라고 합니다.
무사시대가 되면서 남자는 근검을 강조하는 가마쿠라식 기모노 를 입었으며 여성들도
헤이안 시대에 내의인 고소데 를 겉옷으로 착용하면서 기모노의 원형 이 됩니다.
에도시대 후기 부(富) 에 의해 가치 기준이 바뀌면서 여성들은 교토 귀족사회 의 다채롭고
화려한 유행 대신에...... 단형화와 개개 색상 이 심화된 에도풍 을 입게 됩니다.
사람들은 일본 고유의 기모노를 잘 간수했다가 어머니가 딸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는데, 기모노를 입을때는 양말과 신발을 신지 않고....
나무로 만든 굽이 높은 나막신 게타 나 목면 또는 가죽으로 만든 굽이 낮은 샌들 조리 를
신으며..... 엄지 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가 갈라진 면 버선 다비 를 안에
신으며 허리에 감아 등에 보따리 처럼 묶고 다니는 "오비" 는 일본이 유일한것 같습니다.
얼핏 쓸모 없을 것 같지만 작달만한 일본인의 체구를 상하로 나누는 악센트 구실을 해줍니다.
오비 는 허리띠를 몇겹씩 감아 뒤쪽으로 매듭지은 복식으로 뒤쪽에 감아 배면미
(背面美) 를 연출한 것은 사람을 볼 때 뒤를 바라보는 경향 이 강하다는 데서 나왔다고 합니다.
또 오비 의 위치를 허리 위로 올림으로써 상반신에 비해 아랫도리가 길게 보이며
오비의 넓은 띠로 몸을 감쌈으로써 위하수가 줄고 혈압상승을 막는답니다.
그럼 조선의 한복에서 저고리를 짧게 하고 치마를 올려 입는 것 과 같은 이치일러나?
기모노 와 비슷한 옷으로 "유카타(浴衣)" 는 여름 축제 때나 목욕후에 입는 간편하고
가벼운 목면 옷 입니다. 일본 복식을 착용할 때 기모노 는 내적 아름다움 을 표현
하는 것이니.....기모노에 어울리는 태도와 움직임에 삶과 자연에 대한 감성이 요구됩니다.
자연과 그 분위기를 반영하는 일본 복식의 색채 선택은 계절의 변화 에 어떻게 조화하려 했는지
를 짐작하게 하는데 기모노 는 몸에 착용된 후에야 그 진정한 형태를 논하는 것이 가능
하니 착용자가 형태를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는 것으로 특히 직선적인 아름다움 을 강조합니다.
장자산 신라신사 표지판을 보고 좀 더 걸어 왼쪽에 고분 같은 것을 지나 언덕길을
100여 미터를 올라가니 오른쪽 산에 아주 가파르고 높은 계단 이 나타 납니다.
계단을 오르노라니 좌우 양 옆으로 곧은 삼나무 등 나무들이 울창하는 다 오르니
도리이 가 보이고 다시 산길이 나타나는데..... 여기 왠 新羅(신라) 신사 일까요?
나무가 우거진 길 가운데 등 이 있는 것을 보니..... 여긴 밤에는 물론이고
낮에도 울창한 나무 그늘 로 어두운지라 길을 밝혀야 하리라 여겨집니다.
두 번째 도리이를 지나니 바로 신사로 마당에 엄청 큰 비석 이 보이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 글자 마모가 심해서 내용을 읽을 수는 없습니다.
옆에 인쇄된 글씨가 붙어있는데 장자산 新羅 신사 지정문화재 수리사업 “御奉贊(어봉찬)”
のお願い (노오네가이) 라..... 그럼 오래 되어 낡은 신사를 곧 중수 하려나 보네요?
물을 받아 입을 헹구고 손을 씯은 후에 찬찬히 경내를 둘러보는데 주 제신 (主 祭神)
은 素殘鳴尊 (소잔명존) 과 新羅三郞 源義光命 신라삼랑 원의광명 이라?
素殘鳴尊(소잔명존) 은 곧 素盞雄(소잔웅) 이라고 불리는 "스사노오" 를 말하는데
1381년에 지어진 우리 나라의 삼국유사와 성격이 비슷한 책인, 712년에 지어진
고사기 에 보면 옛날 하늘 나라에 이자나미와 이자나기의 오누이 신 이 있었는데.....
이자나미 가 화신을 낳다가 죽어 지하세계로 내려가니 이자나기 가 쫓아
오므로 불에 데인 모습을 보이기 부끄러워 옷을 벗어 내저었더니......
태양신 아마테라스, 달의신 및 파괴력을 상징하는 스사노오 가 탄생하였는데
스사노오가 아마테라스 여신의 벼 논 을 짓밟고 주거에 똥칠을 합니다.
이에 아마테라스 가 수치심을 못이겨 동굴에 숨었더니 해가 없어진지라 나라사람들이 근심에
잠겨 동굴 앞에 제상을 차리고 춤추고 노래하며 여신을 불렀다는데, 이 고사기
기사는 고대 일본에서 "벼농사" 를 시작하였다는 것과 "일식" 에 대한 기억이 합쳐진 것입니다.
악행을 저지른 스사노오를 일본의 서쪽 이즈모로 추방 하니..... 그는 바다를 건너가서
신라 에서 용(이무기?) 의 꼬리 속에 감추어진 쿠사나기검 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이른바 곡옥, 동경 과 더불어 일왕(천황) 을 뜻하는 "삼종의 신기(!)" 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로 미루어 보자면... 가야계인 아마테라스 여신과 신라계인 스사노오 가
싸워서 가야계가 일본(야마토 조정) 을 건국 한 것이 아닌가 여겨 집니다?
그러나 태양여신계의 “이세 신사” 는 물론이거니와 스사노오를 모신 “이즈모대사”
도 일본에서 두 번째 큰 (오래된) 신사 로 받들어 모시는 것으로 봐서는....
두 계열이 합쳐졌다고 보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까울른지 모르는데, 저 스사노오 를 모신
교토 야사카 신사 에서 거행되는 축제가 일본의 3대 마쓰리로 유명한 기온마쓰리 라!
아마테라스의 손자 니니기 가 하늘로 부터 다카지호다케 구시후루봉 에 내려왔다고 하는데
오늘날 남큐슈 지방에 해당하며...... 근처에는 韓國岳(가라쿠니다케, 한국악) 이 있습니다.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의 손자 니니기 가 하늘로 부터 다카지호다케 (고천원 高天穗岳)
구시후루봉 에 내려왔다고 하는데.... 이곳 韓國岳 (한국악, 가라쿠니다케) 근처 입니다.
곧 “구시후루” 는 김수로왕 이 김해 “구지봉”에 내려왔다는 건국신화를 차용한 것
으로 “여기는 가라가 보이는 곳이니 좋은 땅이다” 라고 말한 것에서 가야인 이라!
또 아마테라스 여신 이 저 동굴에 숨은 것은 일본서기 "천석굴" 조에도 보이는데
신화를 바탕으로 수천년의 전통을 지닌 북춤 이 만들어 지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新羅三郞 源義光命 (신라삼랑 원의광명) 은 일본의 전국 시대 다이묘 가운데 최고의 무장
으로 존경받는 가이국(야마나시현) 의 다케다 신겐 이 언급한 이름 이니..... 다케다 신겐은
일본 센고쿠 시대에 오다 노부나가나 히데요시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능가하는 최고의 무인 입니다!
미나모토 (源, 겐지) 씨는 세이와 천황(일왕)의 손자인 쓰네모토왕 요리요시가
성씨로 하사받은 이래 셋째아들 源義光(원의광) 으로 이어지고
손자 요리노부 가 다이라(平) 씨의 난을 평정했으나 그후 반격을 받아 망합니다.
겐지(미나모토 源 원)씨 는 타이라(平 평) 씨 에 의해 멸문이 되는가 싶었으나
관동으로 유배된 어린 아들..... 미나모토 요리토모 가
성장해서는 군사를 일으켜 가마쿠라 막부 를 창시해서 일본을 다스립니다.
그 가마쿠라 막부가 망하고 아시카가 막부 가 들어선후 100여년이 지나 오닌의난
으로 일본이 대혼란에 빠지자 가이국(야마나시현) 에서 자립한 다케다 신겐 은....
천황(일왕) 으로 부터 新羅三郞(신라사부로) 源義光命 미나모토 요시미쯔 에게 전해진
미하타기 御旗(어기) 를 앞세우고 교토로 올라가 전국을 제패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신사는 "스사노오가 신라신" 이고 또 다케다 신겐이 선조 라고 주장한
요시미쯔 의 별칭이 신라사부로 인데서 "신라 신사" 라고 하나 보네요?
신사를 내려와 걸어서 하치노헤성(八戶城) 으로 가기 위해 번화가를 지나는데
도로변에 종을 메단 조형물이 보이니 무슨로타리 클럽에서 기증한 것일러나?
산을 내려와서는 번화한 하치노헤 (八戶 팔호) 시가지를 걷는데 거리에는 여기
저기 청동조각상 도 많이 서 있고..... 또 아기자기한게 구경할만 합니다.
거리에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內丸一丁目, 內丸二丁目, 內丸三丁目 이니.... 여긴
옛날 하치노헤성(八戶城) 에 성문을 2개나 지나야 나타나는 안뜰 인 것이네요?
오른쪽에 마치 신사 처럼 보이는 것은 옛 하치노헤성 의 건물인듯 한데 이 성의
주인이었던 난부(南部) 씨의 이름을 따서 난부회관 이라 부르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