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 주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1,1-45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이 "주님, 와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36 그러자 유다인들이 "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하고 말하였다. 37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 하였다. 38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이 북받치시어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다. 39 예수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니,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였다. 40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41 그러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42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43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44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관찰
등장인물 : 예수님, 마르타, 마리아, 유다인들.
내용 :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일으키시어 당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알림.
+해설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 예수님은 일부러 늦게 유다로 가신다. 나흘이 지났다고 말한다. 즉 완전히 죽었다는 뜻이다. 그의 소생이 속임수가 아님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부러 시간을 지체하신다.
*맞으러 나가고 : 유다적 예법이다. 또한 믿음을 가진 자의 개방된 자세를 상징하기도 한다.
*여기에 계셨더라면 : 현존을 강조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현존은 육적이고 공간적인 현존을 뛰어넘는 위격적 현존, 말씀을 통한 현존이다. 내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분은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신다.
*죽지 않았을 것 : 죽는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아마도 움직임이 없는 상태를 말할 것이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복음적 삶은 없다. 영이 없는 상태, 영의 움직임이 없으니 죽은 것이다. 즉, 사명수행이 없는 것이다.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 예수님은 하느님에게 무엇인가를 청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예수님은 청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온전히 아버지의 뜻만을 실행하였기에 하느님이시다.
*다시 살아날 것 :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것은,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뿐이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를 때 내 속에 영이 살아난다. 그리고 그 영이 나를 영원한 삶으로 인도한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 사실 부활은 유다인들 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별로 유행한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당황스러운 개념이다. 복음서는 미리 부활이 있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예견하는 단어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 예수님의 말씀이 그렇다는 뜻이다.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님의 말씀이 그 역할을 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의 중심이 될 때 우리들은 영원히 살게 된다.
*메시아이시며 : 마르타의 믿음은 아직도 말뿐인 믿음이다. 마르타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어디에 묻었느냐? : 육체적인 현존을 묻는다. 그러나 육체적 현존은 중요하지 않다. 예수님과의 현존이 더욱 중요하다. 말씀의 현존이 없기에 죽은 것이다.
*와서 보십시오 : 아주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초대한다. 왜 초대의 단어를 사용했을까? 예수님의 현존을 통한 부활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초대일 것이다. 즉, 예수님이 오시면 죽음도 사라진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눈물을 흘리셨다 : 인간적 연민의 눈물일까? 아니면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슬픔의 눈물일까? 아마도 예수님의 눈물은 복음을 전하러 떠나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위로를 받을 것이다.
*무덤은 동굴 : 장차있을 일을 기억나게 한다. 예수님의 무덤이다. 예수님의 무덤도 동굴이었는데 비어있었다.
*돌을 치워라 : 마찬가지로 부활절 아침 장면이 떠오른다. 무덤에 가던 두 여인은 누가 돌을 치워줄 수 있을까하고 말하고 있었다.
*나흘이나 되어 : 확실한 죽음을 상징한다. 생물학적 죽음이 아닌 믿음이 없는 상태이며, 믿음이 없는 자들은 예수님의 부활로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영광을 : 진정한 하느님의 영광은 예수님의 사명수행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말하고 있다.
*제 말씀을 :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이며 부활이다.
*큰 소리로 외치셨다 : 예수님의 말씀이다. 명령의 말씀이다. 우리들을 일으켜 세우는 말씀이다. 우리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말씀이다.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이리 나와라 :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힘이 있는 말씀이다. 그 말씀은 결과를 가져온다.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 역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품들이다.
+적용
*신앙인에게 죽음은 무엇을 상징할까?
*혹시 내가 전에 죽었었다면 나를 다시 깨운 계기는 무엇일까?
*예수님의 말씀이 나를 깨운 경험을 말해보자.
첫댓글 로즈레인님
이것이 답장이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보시게 되겠죠 여기는 성경공부 하는데니까 더이상 물의를 일으키면 않되니까 짧게 서술
하겠습니다
나는 창조론 맞는가 진화론이 맞는가 모른다 그러나 쿤타킨테 처럼 뿌리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인지 이성인지 모르지만 자신의 근본을 찾는 그무엇이 있는건
확실한것 같다 이 우주가 무에서 시작했다면 우리의 존제 자체가 거짓이 된다 분명히 최초의 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유가 창조주 즉 신이
되는것이다 분명히 세상창조는 우연성도 배제할수 없으나 창조주의 개입이 필연적으로 필요 하다고 하는 교황 고 요한 바오로2세의 말에 동의한다
결론은 창조는 우연성도 있지만 필연이라는것을 지지한다 그래서 보이지않는 창조주가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성경적 관점에서
보이는 신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구원과 복음전파의 사명을 부여 하였다는것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