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나눔터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싱그러운 오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동인문화원에서는 5월부터 퇴계선생 17대 종손인 이치억박사를 초청하여 <퇴계선생의 마음공부 비결> 강좌를 다음과 같이 개강합니다. 퇴계선생께서는 어떻게 수양하셨는지 퇴계가문의 종손으로 부터 직접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좋은 공부가 되리라 생각하면서 회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 강의일시 : 개강 5월 7일, 매주 화요일 저녁 7시~9시 507강의실
* 교재 : 심경부주(心經附註)
* 강사 : 이치억 박사
* 강의 소개 :
누구에게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 같은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유명한 고전이거나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일 수도 있겠지요. 고전이든 베스트셀러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칭송한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책도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주목하거나 좋아하지 않더라도, 나만의 확신이 담겨 있는 책. 즉 “누가 뭐라 해도 이 책이야말로 정말 좋은 책!”이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책 말입니다.
조선조 유학자들에게는 심경부주(心經附註)가 바로 그런 책입니다. 일찍이 남송 시기의 주자학자인 서산 진덕수(西山 陳德秀, 1178~1235)가 유가경전에서 마음공부에 좋은 글을 뽑아 심경(心經)이라는 책을 편찬했습니다. 이 주석이 너무 간략하다 하여, 명대(明代)의 황돈 정민정(篁墩 程敏政, ?~1499)이 여기에 풍부한 주석을 붙였는데 이것이 바로 심경부주입니다.
사실 이 심경부주는 출간 당시에나 후대에나 본토인 중국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서점의 한쪽 귀퉁이에 조용히 먼지 쌓인 채 누워 있다가 사라질 운명이었던 책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조선으로 넘어오고 나서는 일전하여 초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이 책의 진가는 조선의 유학자들이 알아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심경부주가 조선에서 그토록 큰 위상을 차지하게 된 데에는 퇴계선생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퇴계선생께서 처음으로 심경부주를 읽은 학자는 아닙니다. 퇴계 이전에 정암 조광조(整菴 趙光祖)․모재 김정국(慕齋 金正國)․청송 성수침(聽松 成守琛) 선생 등이 심경부주를 읽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김종석, 심경강해 해제) 그러나 그 책을 지극히 존숭해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강학한 학자는 아마도 퇴계가 필두가 될 것입니다.
“나는 심경부주를 얻은 뒤에 비로소 심학의 연원과 심법의 정미함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평생 이 책을 신명(神明)처럼 믿었고, 엄한 아버지처럼 공경했다.” (퇴계선생언행록 권1)
“일찍이 황씨성을 가진 상사(上舍 : 進士)의 집에 방문하였다가 처음으로 심경부주를 보았다. 그런데 그 주(註)가 모두 정자와 주자의 어록이어서 사람들이 보고 구두조차 떼지 못했다. 이에 선생이 문을 닫고 들어앉아 몇 달 동안 침잠해서 반복 독서한 결과 저절로 이해하게 되었다.” (퇴계선생언행록 권1, 이상 李德弘 錄)
“내가 젊어서 한양에서 공부할 적에 묵었던 곳에서 처음으로 이 책을 구해 읽었다. 비록 도중에 병으로 중단했기에 ‘늦게 깨달아 이루기가 어렵다’는 탄식을 하고 있지만, 애초에 이 학문에 감발하여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의 힘이었다. 그래서 평생토록 이 책을 높이고 신봉하여, 사서(四書)나 근사록(近思錄)의 아래에 두지 않았다.” (퇴계선생문집 권41, 「심경후론」)
이와 같이 퇴계선생께서는 자신의 마음공부의 기초가 이 심경부주에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심경부주와 퇴계의 운명적인 만남. 그 만남은 단순히 개인의 일생에 영향을 준 사건에 머물지 않습니다. 조선유학이 마음을 궁구하고 내면에 침잠하는 흐름으로 나아가게 된 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현대인의 마음은 외물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 나가고 있고, 그 폐해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퇴계선생께서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의 설렘과 평생을 바쳐 궁구했던 그 진지한 자세를 오늘날에 돌이켜볼 수 있다면, 심경부주는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대인의 피폐한 마음을 적셔줄 수 있는 좋은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