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는 오재미 던지기처럼
어떤 이발사가 전도 설교에 은혜를 받고 열심히 전도하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월요일 첫 손님을 맞이하자 갑자기 전도 공포증이 생겨버렸다. 무슨 말로 전도를 시작할지 고민하며 어색한 침묵만 흘렀다. 그렇게 이발이 끝나고 이제 면도만 마치면 손님이 떠날 것이다. 더는 지체할 수 없는 그때 손에 면도칼을 든 이발사가 이렇게 말했다. “손님은 죽음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신자가 듣는 설교 가운데 가장 부담스러운 메시지는 전도하라는 말씀이다. 전도는 당연히 해야 하고 누구나 잘하고 싶지만, 전도는 쉬운 것이 아니다. 전도하라는 설교를 듣는 것은 십일조 헌금을 하라는 설교보다 더 부담스럽다. 십일조 헌금도 처음에는 부담스럽지만, 본인만 결심하면 할 수 있다. 그런데 전도는 이와 다르다. 내가 굳게 결심해도 상대방을 믿게 만드는 것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예 전도를 포기한 신자도 많다.
전도는 말을 꺼내기부터 쉽지 않다. 다른 이야기는 그렇게 잘하다가도 전도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말문이 막히고 뭐라고 말을 붙여야 할지 몰라 앞이 캄캄해진다. 오죽하면 평소에 손님과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발사조차 말문이 막혀 버렸을까? 이처럼 달변가를 언어 장애자로 만들어버리는 전도 공포증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전도 공포증에서 벗어나는 길은 의외로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전도를 오재미 던지기처럼 하면 된다는 사실이다. 옛날 초등학교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오재미를 던져 박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백군과 청군으로 나누어진 학생과 학부모는 저마다 장대 위에 달린 박을 향해 오재미를 던진다. 어떤 오재미는 박에 빗맞고 어떤 오재미는 그냥 허공을 솟구친다. 오재미가 땅에 떨어지면 다시 주워 박을 향해 던진다.
오재미를 던지면서 박을 맞추지 못했다고, 혹은 정통으로 맞추었는데 박이 터지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박을 맞추든지 못 맞추든지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던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박이 견디지 못하고 터지면서 꽃가루가 쏟아진다. 이 경우 과연 누가 박을 터뜨렸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자기가 터뜨렸다고 생각한다. 바로 여기에 전도의 비결이 있다.
전도에 관한 심각한 오해는 한 사람의 대상자에게 한 사람만 전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만일 내가 전도하려고 공을 들이는 대상자에게 다른 신자가 접촉한다면 예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도는 한 명의 전도자가 한 명의 대상자에게 한 번만 전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큰 오해이다. 전도란 내가 하기보다 우리가 하는 것이다. 마치 오재미를 던져서 박을 터뜨릴 때 누구 오재미를 맞고 박이 터졌느냐 하는 것은 알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듯이 전도도 그러하다. 전도 대상자는 마치 터뜨려야 하는 박처럼 관계되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방법으로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분이 믿게 된다.
전도는 말을 잘해서 대상자를 굴복시키는 것도 아니다. 19세기 유명한 전도자이며 대 부흥사였던 무디는 매일 한 명에게 반드시 전도하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어느 날 한 사람에게도 전도하지 못했다. 잠자리에 누웠다가 생각이 난 무디는 다시 옷을 입고 밤거리로 나갔으나 전도할 대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줄 주정꾼 하나를 발견한 무디는 “당신은 예수를 아십니까?”라고 말을 걸었다. 예수라는 말에 그 주정꾼은 화를 내면서 무디에게 덤벼들었다. 그러자 무디는 무서워서 도망치고 말았다.
석 달 후 누군가가 무디의 대문을 두드려서 나가보니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가 석 달 전에 거리에서 만난 주정꾼이라고 했다. 그날 이후에 무엇을 해도 “당신은 예수를 아십니까?”라는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아서 예수를 믿기 위해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그 주정꾼은 무디가 말을 잘해서 믿게 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무디의 한 마디를 사용하신 것이다.
이처럼 전도는 말을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뭐라고 말하든지 하면 다 성공이다. 그래서 CCC 총재 김준곤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적인 전도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전도는 어렵지도 않으며 어떻게 전도했어도 모두 성공이다.
농부가 밭에 가면 씨를 뿌리는 날도 있고 물을 주는 날도 있고 수확하는 날도 있다. 농부가 수확을 한 것만 농사지은 것은 아니다. 땅 갈고 씨 뿌리고 물을 주고 빈손으로 돌아온 날도 농사를 지은 것이다. 농부가 밭에 갈 때마다 수확하기를 원하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도하러 나가서 한 명의 결신자가 없어도 전도한 것이 맞고 그 전도는 성공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는 부담스럽게 여기기보다 오재미를 던지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돌아오면 된다. 그것이 바로 성공하는 전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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