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자의 삶을 보면서
요즘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비자금과 자녀에게 기업을 증여하는 과정에서 탈법적 방법을 이용하였는가를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국민들은 창업자 2세라도 적법 절차에 따라 세금을 낸 뒤 경영능력을 검증받아 경영권이 승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 기업들은 상속세로 지분이 감소되어 경영권이 ‘위협’받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업의 ‘경영권 세습’을 당연 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국내 K사의 경우는 전문 경영체제를 구축하며 깨끗한 기업 이미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K사를 창업한 A고문(80세)은 15여년 전에 회사를 후배 경영인에게 승계하고 사회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후배 경영인도 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다음 후배 경영인이 사장으로 취임해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A고문은 자녀가 3명이 있지만 모두 분가해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K사는 지난해 10월말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현재 주가는 8만원을 상회하고 있다. A고문은 20여년 전에 주식의 12% 정도를 직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각 개인에게 나눠 주면 흩어질 것이라 생각돼 우리사주조합에 기부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 금액이 150억원에 달하고 있다. K사의 독특한 사업승계모델은 여러가지 면에서 모범적인 사례로 이번주 머니클리닉에서 다루고자 한다.
▶기업문화 만들기 지난 1969년 창업한 K사는 당시 기업환경과 현재의 기업환경에 차이가 있지만 K고문은 회사가 투명해지고 믿을 수 있는 기업이 되기를 꿈꿔왔다. 경영철학도 ‘깨끗한 기업을 만들어 다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창업주의 이러한 정도 경영철학으로 K사는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지키며 뒷거래 없는 투명한 기업활동으로 업계에서 유명하다. 이를 위해 전문경영인 체계확립과 종업원 지주제를 실천하고 있다. 이는 대학시절 A고문의 역할 모델이었던 유한양행의 유일한 사장의 영향을 받은 덕분이라고 한다. 기업이 문화를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업은 그들이 처한 현실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 기업의 문화를 이해하는 열쇠는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지배적인 신념체계나 가치관에서 찾는다. 기업 구성원들이 갖는 지배적인 신념이나 가치관은 미래에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 기업의 가치관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의 승계를 준비하는 기업은 자신이 어떤 문화와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지향하는지에 기업의 향방이 달라진다. 사업을 승계하고자 하는 기업은 자신의 문화와 경영철학을 후계자에게 숙지시키고 기업 구성원 모두가 동일한 행동 양식이나 비전을 갖도록 독려해야 한다.
▶후계자 육성하기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산다. 하지만 기업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외국의 가업기업은 500년이 넘은 경우도 있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인 CEO는 회사의 문화와 철학을 전승하면서 발전시키려면 차세대 리더가 절실하다. 리더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업자의 생각을 잘 읽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 차세대 리더를 뽑아 교육하는 방법은 미리 한 명만 골라 교육하는 방법과 여러 명 중에서 경합을 통해 교육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차세대 리더들간에 분쟁이 없으나 능력이 부족한 경우라면 매우 곤란해진다. 반면 후자는 경쟁을 통해 능력있는 리더를 쉽게 키울 수 있다. 그러나 후계자들간에 분쟁이 발생하게 되면 이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칙이 필요하다. K사는 공과 사가 분명한 윤리적 인생관과 처신이 깨끗하고 소신이 있으며 회사의 정책 중에서 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정책을 과감히 비판하고 반대할 수 있는 애사심이 강한 사람을 후계자로 찾고 있다. 창업자의 기업정신인 리베이트와 분식회계 없고 가업승계를 하지 않으며 종업원 주주제를 실현하기 위해 A고문과 마찰이 빚더라도 K사를 발전으로 이끌 인재를 찾는 것이다.
▶주식의 양도 A고문은 가업승계를 하지 않는 것을 경영원칙으로 삼았다.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과정에서 발행주식의 20%를 종업원조합에 배정하고 10년 전에 10만주를 종업원 조합 기금에 기증했다. 현재 가치로 150억원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이렇듯 종업원에게 주식을 양도할 경우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종업원 개인에게 양도하는 것보다 종업원조합을 만들어 양도하는 것이 좋다. 창업자는 종업원도 회사경영에 책임 있는 일원으로 함께 회사를 경영하고자 회사 주식을 양도했으나 종업원이 자의적을 처분해 우호지분 축소로 적대적 M&A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업자는 자신의 가치관을 회사 임직원과 공유하며 주인의식을 가지고 회사를 발전시키고자 하는데 종업원들이 주식을 처분할 경우 이러한 취지가 무색해 질 수 있다. 아울러 종업원조합을 설립해 주식을 증여할 생각이라면, 상장 전에 증여하는 것이 좋다. A고문의 종업원조합 주식증여는 상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정한 것이지만 계속 상장이 늦어져 왔다. 그러다 보니 10년 전 비상장주식의 가치로 증여한 형태가 됐고 결과적으론 합리적인 사업승계를 했다.
▶인생의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해 A고문은 사실상 K사에서 은퇴했다. 10년전 사장에서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회사에서 나왔다. 회장실에 있으면 사장이나 직원들이 자주 찾아와 본의 아니게 회사 일에 관여하게 됐기 때문이다. 얼마전 K사를 경영하던 후배 경영인도 은퇴할 때가 돼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려다 보니 2명의 회장이 있을 수 없어 창업주인 A씨가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에게 은퇴는 끝이 아니고 여유로운 삶의 시작이다. 그동안 일에 치여 살펴보지 못한 주위에 관심을 갖는 시간이다. 마치 교향곡의 4악장처럼 가장 화려하면서도 맺음을 향해 나아가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이만하면 행복하게 살았다. 사업은 힘들었지만, 이제 기반을 닦아 보람을 느끼고 부도 얻었다. 병원 신세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으며 아이들도 잘 자라서 속 썩지 않았다. 이제 내가 죽거든 장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시체는 병원에 기증해 실험도구로 쓸 수 있게 하라. 나의 기제사는 각자의 집에서 아침 묵념으로 하고 저녁은 외식으로 하되 돌아가면서 돈을 기부하길 바란다.” 윗 내용은 A고문이 가족에게 남기는 유언의 일부다. 자신의 자산의 3분의1은 종업원들에게, 3분의 1은 사회에 환원하고 나머지는 자녀들에게 상속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우리는 부자를 꿈꾼다. 그럼 부자란 누구인가? 돈이 많은 사람, 아니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물론 그들도 부자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음미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A고문이야 말로 진정한 부자가 아닐까.중부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