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잠은 벌써 두어 시간 전에 깨어 있을 경우가 많다. 늙으면 대개 그런 법이다. 무거운 육신을 일으켜 거실로 나가 공기청정기 스위치부터 누른다. 베란다로 나가 광에서 고구마를 두 개 꺼내고, 냉장고에서 계란도 두 개 꺼낸다. 고구마를 잘 씻어 계란과 함께 찜통에 넣고 가스레인지 불에 올린다.
토마토, 무, 딸기, 키위 등을 깨끗이 씻은 뒤 한 입 크기로 썰어 접시에 담고 올리브 기름을 살짝 두른다.
두 개의 컵에 우유를 적당히 따르고 전자랜지에 1분간 돌린 뒤 미숫가루를 탄다. 아내가 찬 우유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고구마와 계란이 익을 때쯤이면 아침 화장을 마친 아내가 거실로 나온다. 전날 밤 불면증에 시달린 경우엔 아예 소식이 감감할 때도 있다. 그럴 땐 흔들어 깨워야 한다.
“망구야, 뭐 쫌 묵고 자라. 굶고 자마 몸 축난데이.”
“알았다, 탱이야.”
우리가 언제부터 망구야 탱이야 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젊었을 때나 신랑이 다락 같고 하늘 같지, 이젠 같이 늙어가는 처진데 뭐." 하며 대놓고 너나들이한지 이미 오래됐다. 듣고보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닌지라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사실 옆에 붙어앉아 열심히 숨쉬며 살아주는 것만으로 고마울 지경인데 그까짓 너나들이쯤이야.
영감탱이 할망구가 식탁에 마주 앉아 아침식사를 한다. 시원찮은 치아로 오물오물 먹는 할망구의 쪼글쪼글한 얼굴을 바라보며 ‘참 많이도 늙었구나,’ 하고 영감탱이는 생각한다. 흔들리는 치아로 조심조심 씹어 삼키는 영감탱이의 꺼죽한 낯짝을 쳐다보며 ‘이 화상 어지간히도 늙었네,’ 하고 할망구는 생각한다.
설겆이를 끝내고 커피 두 잔을 탄다. 아내는 아메리카노, 나는 커피 믹서다. 티탁자에 내려놓고 아내와 마주 앉는다. 늙은 아내 얼굴을 살펴보며 농담을 건넨다.
"암만 생각해도 나는 당신을 알뜰히 매매 사랑하는 거 같은데, 당신은 날 대강대강 사랑하는 거 같애."
아내가 즉시 대꾸한다.
"대강대강도 사랑 안 해. 측은지심만 남았지, 뭐."
늙은 부부는 쳐다보며 같이 웃는다.
나의 아침식사 당번은 이렇게 8년째 이어지고 있다. 점심식사 당번은 아내가 맡고, 저녁식사는 대개 외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흘러갈 것이다.
첫댓글 왠지, 프랑스 화가
J. F. 밀레의 명화..
[만종]이 연상되는~
진한 감동을 주시누만 그랴~^^
과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