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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마을[1] 스크랩 영남 남인의 명문가 재령 이씨 영해파와 영양 두들마을
바람산 추천 0 조회 24 15.05.13 23: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七山林' 7개 가문 후예 스승·제자로 연결
영남 남인의 명문가 재령 이씨 영해파와 영양 두들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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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남인의 명문가 재령 이씨 영해파와 영양 두들마을

이달 9일 영남 남인을 대표하는 명문가 7개 가문(진성 이씨·여강 이씨·의성 김씨·풍산 류씨·인동 장씨·재령 이씨·전주 류씨)의 후손들이 청록파 시인 조지훈, 조국 상실의 비애감을 표현한 민족시인 오일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이문열, ‘숭선에서’의 전설적 작가 강준용 등 수많은 문인(文人)을 배출한 영양군에 모였다. 이들 7개 가문은 조선 후기 퇴계의 학문적 계승과 영남 남인의 여론형성을 주도한 대표적인 가문이다. 영양 석보면의 두들마을은 ‘주실마을’과 함께 영양군을 대표하는 문화마을로 재령 이씨 영해파(載寧 李氏 寧海派)의 세거지이다. 현재는 석계고택, 석천서당, 전통한옥 체험관, 정부인 장씨 예절관, 광산문학연구소 등이 있다. 유서 깊은 이곳에 7개 가문의 후예 400여명이 스승과 제자로 연결된 선조들의 학덕을 기리고 우의를 다지기 위해 재령 이씨가 주관해 모였다.

재령 이씨 영해파의 내력을 잠시 살펴보았다. 재령 이씨는 고려 성종 때 이우칭(李禹稱)이 경주 이씨에서 분적하여 황해도 재령에 세거하다가 여말선초(麗末鮮初)에 모은 이오(茅隱 李午)가 경남 함안 모곡리에 정착하여 낙남조(落南祖)가 된다. 영남일대에 거주하는 재령 이씨는 대부분 이오의 후예이다. 이후 이오의 증손 이애가 영덕군 영해 나랏골에 정착하고, 이애의 손자 운악 이함(雲嶽 李涵,1554~1632)이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충효당을 짓고 가문의 번영을 기원하였다. 운악 이함은 진성 이씨를 배위로 맞아 다섯 아들(시청, 시형, 시명, 시성, 시진)을 두어 집안이 번성하였다. 재령 이씨 영해파는 모두 운악 이함의 후예들이다.

이함의 3남 석계 이시명(石溪 李時明,1590∼1674)과 정부인 장씨 장계향 부부는 아들 7형제(상일, 휘일, 현일, 숭일, 정일, 융일, 운일)를 두었는데 모두 다 학자로 이름이 높아 ‘7현자’(七賢者)라고 불렀다. 특히 석계 이시명과 그의 아들인 1남 정묵재 이상일(1611~1678) , 2남 존재 이휘일(1619~1672) , 3남 갈암 이현일(1627~1704), 4남 항재 이숭일(1631~1698) 그리고 갈암의 아들 밀암 이재(1657~1730)와 6남 융일의 아들인 고재 이만(1669~1734)은 재령 이씨 ‘칠산림’(七山林)으로 불릴 만큼 학행이 뛰어났다. 석계의 장남 이상일(1611~1678)은 서애 류성룡의 셋째 아들 수암 류진(1582~1635)의 사위가 되었다.

석계의 3남 이현일(1627~1704)은 퇴계의 적전을 계승한 영남유학의 거두로서 무려 273회나 상소를 올린 영남의 대표적인 산림(山林)으로, 남인의 정치적·학문적 입지를 확대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여, 임란 이후 영남인으로는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귀암 이원정(歸巖 李元禎)에 이어 세 번째로 판서직에 오른 인물이다. 갈암의 3남 밀암 이재(1657~1730)는 중부 휘일과 숙부 숭일에게 수학하여 퇴계학문의 적전(嫡傳)을 이었다. 밀암의 학문은 외손인 한산 이씨 대산 이상정(大山 李象靖, 1711~1781)·소산 이광정(小山 李光靖) 형제를 거쳐 다시 대산의 외증손인 전주 류씨의 정재 류치명(定齋 柳致明, 1777~1861)에게 전수되어, 퇴계의 학맥이 외손으로 계속 이어졌다.

재령 이씨 영해파는 영남 남인의 대표적인 가문들과 끊임없는 통혼과 학문적 교류를 통하여 퇴계를 추앙하는 남인의 주요 세력으로 성장하였으며, 인간관계에 있어 ‘지고 밑지라’는 가풍을 실천하며 신의로서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고 덕을 베풀면서 3대에 걸쳐 퇴계학맥을 잇는 대학자를 키워낸 영남 남인의 명문가로 오늘날까지 사회적인 존경과 신망을 받고 있는 가문이라 할 수 있다.

혜명동양학연구원장(다음카페-혜명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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