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부는 고균 김옥균이다. 나의 부친은 백야 김좌진이다. 나는 당대 세도가 당당했던 명문 안동김씨의 서족이다. 내가 일곱살때 세계전사상 희귀한 청산리대첩이 있자 일경은 즉각 외조부님과 모친을 투옥하였다.
그래서 나는 고아가 되었다, 그리고 열살되던해 불망의 독립군 대장인 부친의 별세를 듣고 통곡하였다. 그래서 혁명아가 되기위해 단신 서울로 백육십리를 걸어 내려왔다."
김좌진이 김옥균의 아들이라는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김옥균이 친손이 없었다는 이유로 갖다붙인말인데 김옥윤은 1884년 일본에 망명해있다가 1894년 암살되었고 김좌진은 김옥윤의 사망 5년 후 1889년 충남에서 태어났는데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그리고 청산리대첩이 1920년에 일어났고 김좌진은 1930년에 죽었다. 김두한은 1918년 생이니 청산리대첩이 일어날 당시 김두한은 일곱살이 아니라 세살이다. 더 말이 안되는것은 그로부터 3년뒤인 10살때 아버지의 죽음을 듣고 울었다는 김두한의 주장이다. 왜냐면 김두한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 김좌진은 청산리대첩이 일어난 1920년에서 10년후인 1930년에 죽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좌익과 우익이 혼잡할 시기 신불출의 꼬임을 받아 일당과 함께 김일성의 편에선 김두한에게 우익의 책사가 김두한을 찾아가 너가 김좌진의 아들이 맞냐고 물으니 과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던 김두한의 대답에 바로 공산주의자가 죽였다.
그러니 너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한다고 가르친것이다. 좌익이 뭔지 우익이 뭔지도 모르고 우물쭈물하던 그가 확실한 방향을 잡았으니 아버지의 원수 좌익을 때려잡자는 슬로건을 내건 것이다. 그 길만이 자신이 독립영웅 김좌진 아들이란 사실을 만인에게 주지시키는 길이었으니.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이 아니라는 절대적인 증거는 김두한은 김좌진이 1917년 대한광복회의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감옥에 있는 혼잡한 시기를 거쳐 고작 1년 뒤인 한반도에서 태어났다. 김좌진이 김두한의 모친과 만주 감옥에서 관계를 맺지않는 한 김두한은 태어날수없는 존재인것이다.
그리고 가장 아이러니한것은 김좌진의 외손녀가 친손녀인 김을동에게 유전자 검사를 요구하였지만 김을동은 지속해서 회피하고있으며 김두한을 내란음모와 반공법으로 구속시키고 중정부에서 고문했던 박정희의 딸을 지지하고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