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원도심 걷기 문화행사 참석
- 일시 : 2020. 4. 22일(수) 09:00~14:00
- 주최 : 서귀포시
- 주관 : 서귀포착한여행
- 진행 : 강홍림(문화기획자)
- 집결 : 정방폭포 주차장
- 참가 : 26명
- 참가비 : 식대포함 2만원
- 장소 : 소남머리
- 위치 : 서귀포시 서귀동 정방폭포 위 벼랑
이곳 지형은 옛 모습이 잘 남아 잇다. 정방폭포 등 절벽을 이루는 서귀포 해안의 특성 때문에 특별히 개발 흔적도 없이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경관도 수려하여 찾이들 가슴을 설래게 하는 장소이다. 지리학상으로 소머리 모양으로 생겼다는 설과 소나무가 많은 동산이라는 설로 인해 소낭머리, 소남머리로 불리고 있으며 바다, 숲, 개울 3가지를 한곳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소남머리 4·3 이야기
제주4·3사건 당시 서귀리는 서귀면뿐만 아니라 제주도 한라산 남쪽지역의 중심지였다. 면사무소와 남제주군청이 있었고 서귀포경찰서도 서귀리에 있었다. 때문에 토벌이 강화되면서 토벌대의 주요 근거지가 되어 대대본부가 위치해 있었고, 취조를 담당하는 정보과[대대2과]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서귀포경찰서도 서귀리에 있어서 대부분 혐의자 및 중산간 초토화 이후 야산을 헤매던 피난민들이 붙잡히면 이 곳 군부대에서 취조당하고 처형되었다. 군부대의 수용소에는 수감자로 넘쳐났다. 특히 군부대 정보과에서 산간에 피신한 주민들을 붙들거나 조그만 혐의를 내걸어 붙잡아 온 주민들을 고문 취조했던 농회창고는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즉, 당시 면사무소에는 군부대가 주둔했고 그 옆 창고에는 주민들을 수감시켜 취조를 하고 대부분 총살장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이때 취조 받은 주민들 중 즉결처형 대상자들 대부분을 처형했던 일상적인 주민학살터가 된 곳이 정방폭포 상단과 이어지는 ‘소남머리’다. 소남머리는 동산에 소나무가 많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4·3사건 당시 정방폭포에서 희생당했다고 하는 희생자 대부분이 이곳에서 학살당했다.
이곳에선 서귀리 및 서귀면 일대의 주민뿐만 아니라 남원면 의귀·수망·한남리 주민과 중문면, 멀리 안덕면 동광리 주민 등 산남지역 전체에 이를 정도로 많은 주민희생이 있었다. 특히 당시 대동청년단들로 하여금 창으로 찔러 죽이라고 하는 등 학살은 광기를 띠고 있었다.
당시 서귀중학교 학생이었던 송세종[남, 2003년 71세] 씨는 “그 때 당시 어디 여자인지는 모르지만, 도망가다가 절벽으로 떨어졌는데 나무에 걸렸어. 그 여자가 임신을 하고 있었지. 떨어지니까 군인들이, 이건 하늘이 도운 사람이라 해가지고. 그러니까 사람 두 번 죽인다는 것이 없으니까. 나도 직접 눈으로 본 건 아니지만”이라 회고했다.
동광리 큰넙궤에 은신했던 무동이왓, 삼밧구석 사람들 120여 명도 볼래오름에서 잡혀 마을지도자층 26명도 소남머리에서 총살당해 시신을 바다로 버렸다. 총살집행자 백화진 경찰관이었는데 동광리 4살 난 어린이는 죽이지 않고 데려다 자기 딸로 키웠는데 후일 백경숙이란 이름으로 자랐다.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 하려고 호적을 땐는데 오은주라는 이름이 발견되고 백경숙은 없어 이상하게 여겨 확인한 결과 부모를 죽인 당사자가 백화진이가 아버지로 알고 살았다는 것이다. 오은주 그 분은 지금도 서귀포에 살아 계시고 70대 후반이라고 강홍림 작가가 설명한다. 아이러니 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