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산동성 북해 北海
1. 자치기 놀이
산동성(山東省). 황하(黃河)의 남쪽 래주만, 북해(北海)의 제수(濟水) 하구(河口).
하구가 황해(黃海)와 맞닿는 지점의 북쪽 해안(海岸)에서 멀지 않은 언덕배기의 작은 동네.
두 아름이 넘는 고목 느티나무가 서낭당 역할을 하는 듯, 울긋불긋 오색 줄무늬로 치장되어있다. 오른쪽엔 키 큰 4~5그루의 상수리나무가 동네 어귀를 감싸고 있어 고즈넉해 보이는 시골 마을.
해가 서산(西山)에 걸린 늦은 오후.
추수가 끝난 동네 어귀의 밭두렁에서 10여 명의 또래 꼬마들이 자치기 놀이를 하며 신나게 놀고 있다.
10세 전후의 어린 꼬마들이다.
한쪽 편의 공격이 막 끝난 상황인 거 같다.
방금 공격했던 무리의 주장(主將)으로 보이는 꼬마가 아들자(子尺)가 날아간 거리를 제시한다.
“40자(尺)”
상대편 수비 측의 무리 중 키가 조금 더 커 보이는 소년이 그 패거리의 주장(主將)인듯 대충 눈 거리를 재더니 “좋아, 인정(認定)”하면서 시원스레 합의해 준다.
그러면서 수비 측인 자기편을 뒤돌아보면서 “지형아~ 아직 우리가 80자(尺)는 여유가 있다”라며 싱긋 웃는다.
지형이라 불린 볼이 통통한 귀여운 꼬마도 마주 보고 ‘씨익’ 미소를 짓는다.
공격 측의 꼬마가 다시 공격 자세로 자리 잡고, 손가락보다 조금 더 굵은 2자 길이의 어미자(母尺)로 윷가락처럼 양날을 납작하게 깎은 소자(小尺)의 한쪽 끝을 도끼로 장작을 패듯이 땅바닥으로 내리쳐 아들자를 2자(尺) 정도 공중에 띄운 후, 큰 자로 ‘I’자 모양으로 떨어지는 아들자의 중앙을 정확히 타격하였다.
순간,
공격진 측의 아이들이 “와아~~”하고 모두가 함성을 지르며 응원을 보낸다.
수비 측 어린이들은 불안한 눈길로 아들자의 날아가는 궤적을 바라보고 있다.
이번엔 더 멀리 날아간 것처럼 보인다.
작은 자는 밭 가운데로 날아가더니 한 지점에 낙착한다.
공격진의 무리 중, 키가 조금 더 큰 꼬마 둘이서 뭔가 의논하더니, 의미 모를 미소를 띤 주장이 “50자”라고 득점 거리를 제시하였다.
그러자 수비 측에선 “실측(實測), 재어보자”라며 이의를 제기한다. 이대로 50자를 점수로 인정해주면 계속되는 공격에서 상대방이 한 번만 더 지금처럼 아들자를 멀리 날려 득점한다면 역전패할 것이 뻔하다.
해는 벌서 서산 西山을 붉은 노을로 물들이며 잠자리를 펼치고 있다.
이제 시간이 없다.
무엇이라도 꼬투리를 잡아 불리해진 현 전세를 뒤집어야만 할 다급한 상황이다.
“중부 형이 직접 실측해” 지형이 중부에게 얘기하자,
“그래 내가 재어야지” 하면서 이 중부는 공격진 주장 한준의 오른손에 들린 큰 자(母尺)를 빼앗듯이 낚아채어 실측(實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상대편의 주장(主將) 한준이 “잠깐” 하더니 이색 제안을 한다.
“지금까지처럼 공격진이 득점 제안한 거리가 여유가 있을 때는 공격진의 득점으로 그대로 인정하고 재공격권을 갖고, 만일 거리가 모자랄 땐 득점 불인정은 물론이며, 공격 자격을 상대 진영에 넘기는 것이 자치기의 규칙인데…” 하더니
“곧 어두워질 텐데 이번엔 우리가 제시한 득점 거리가 틀리지 않으면 2배를, 그러니까 100자(尺)를 인정하여 우리가 이기는 것으로 하고, 조금이라도 모자랄 때는 우리 측이 오늘 이 판을 지는 것으로 하자? 어때?”
그러니까 이번 실측으로 오늘 자치기의 모든 승부를 결정하자는 제안이다.
동네 형들이 노는 방식을 그대로 흉내를 낸 것이다.
동네 형들이 놀던 윷놀이나 화찰 花札등 모든 승부의 막바지에 필히 등장하게 되는 ‘똘똘 말이’다.
어른들은 ‘두벌 논맨다’라고도 표현한다.
마지막 승부 즉, 건곤일척(乾坤一擲), 최후의 결전이라는 뜻이다.
수비 측 주장인 중부는 잠시 생각하더니 서산 너머로 지는 해를 얼핏 째려보고는 박지형을 보더니, 눈을 찡긋하고는
“좋아, 두말하기 없기다”
다시 허리를 굽혀 큰 자로 8자 형으로(어미 자의 말구(末口)에서 원구(元口)로 1자를 쟨 다음, 다시 원구에서 말구로 번갈아 잰다) 밭 가운데로 떨어진 아들자를 향해, 눈 대중으로 직선거리를 먼저 그어보고는, 가장 지름길로 여겨지는 곳으로 이리저리 거리를 재기 시작하였다.
* 도량형 度量衡 통일
진시황이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원을 통일시킨 후 먼저, 실시한 것이 나라마다 제 각각이던 문자 文字와 도량형 통일이었다.
나라마다 길이와 무게의 기준이 다 달랐다.
이를 통일시킬 목적으로 홍보용으로 시행한 것 중의 하나가 아이들의 놀이인 자치기였다.
“한 자, 두 자, 석 자..”
나머지 꼬마들은 공격진 수비진 할 것 없이 모두, 큰 자(母尺)로 실측하고 있는 이 중부의 뒤를 따르며, 저마다 거리를 추산(推算)하기에 여념이 없다.
“스물일곱, 여덟, 아홉….”
아슬아슬하다. 50자(尺) 부근은 될 것 같은데, 모자랄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남을 것 같기도 하다.
실측하던 중부 “마흔 하나, 둘, 아이고 허리야!” 하더니 허리를 죽 펴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치켜올리며 기지개를 켜면서 남은 거리를, 엎드린 관계로 붉어진 눈으로 재어본다.
반자(半尺) 다툼이다. 남아도 반자, 모자라도 반자.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아들자까지 직선거리의 밭 중심부에 조그마한 물 고임터가 장애물로 등장한 것이다.
물 고임의 넓이는 사방 4자(尺) 정도, 물 깊이는 손가락 두어 마디밖에 안 되지만 칡 넝굴과 갈대로 엮어 짠, 갈대 신이 물 고임 터에 들어서는 순간, 발전체가 발목까지 물에 젖을 것이다. 발이 젖지 않으면 측량할 방법이 없다.
직선으로 지름길로 가도 승패가 불분명해 보이는데, 조금이라도 둘러 가면 분명 50자 이상의 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오늘 자치기 승부는 지는 것이다.
내기도 걸려있다.
잣이 한 되박이다.
이 측량이 잘못되면 우리 마을의 명예와 잣, 모두 잃게 된다.
순간, 고민이다. 난감한 상황이다.
공격진 측의 애들은 상대 주장의 어쩔 줄 모르는 모양새를 즐기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
부 주장(副主將)쯤 되어 보이는 소년도 한마디 거든다.
“빨리 재고 집에 가자” 오히려 큰 소리로 독촉한다.
하는 수 없이 이 중부는 주장의 책임을 다하고자, 왼쪽 발의 갈대 신을 벗는다.
그때,
“중부 형, 이걸로 측량(測量)해” 하면서 칡 덩굴을 2개로 연결한 부실한 줄을 지형이가 가져왔다.
순간, 중부의 얼굴엔 화색 和色이 돈다.
“맞아, 그렇지” “역시. 박지형 (朴之亨)이가 최고여~~”
즉시, 큰 자(母尺)로 칡 넝굴 줄에 5번을 잰 다음 물 고임 터를 우회하여 돌아가서는, 한쪽 끝은 박지형이 잡은 후, 칡 줄을 직선으로 당겨 측정하였다.
순간,
희희낙락하던 공격진 주장, 한준(韓準)과 패거리들의 표정은 벌레 씹은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상대편 주장인 한준은 물 고임 터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자치기를 시도할 때부터 의도적으로 물 고임 터로 유도하였던 것이며, 아기 자가 뜻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자, 좀 전의 제시 提示 조건으로 승부수를 띄웠던것이다.
그러니까 물 고임 터를 피해 조금이라도 우회 측정하면 자기편이 이길 가능성이 아주 크고, 아니면 직선거리로 측정한다면 상대편 주장, 이중부의 발이 물에 젖는 수모 受侮를 당한다는 계산하에 나온 승부수였다.
운이 좋으면 상대의 발도 자발적으로 물에 담그게 할 수가 있고, 승부도 이길 수 있는 꿩 먹고 알도 먹는 일석이조(一石二鳥), 최상의 결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박지형의 순간적인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 인하여 모든 계략이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실측 거리는 49자 반(半)으로 나와 반척(半尺) 차이로 이중부 패들이 어렵게 이겼다.
“내일 나올 때 잣 1되 박 잊지 말고, 알았지?”
이중부(李仲扶)는 상대 주장 한준(韓準)에게 다시 한번, 내기에 건 상품인 잣을 상기시켜준다. 그것도 아주 다부지게, 다짐 받아 놓는다.
- 16. 원보
첫댓글 미국도 미터법을 쓰고 있지 않는데 진시황때 도량형을 통일한것은 대단한 업적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