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自轉車)날/ 4월 22일, 자전거 이야기
4월 22일은 자전거의 날 이다. 전 국민의 자전거 타기를 활성화하고, 자전거 이용자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2010년 6월 29일에 제정된 기념일이다.
4월 22일울 자전거 날로 정한 것은 봄철 4월은 자전거 타기 좋은 계이절인데다가 22는 자전거 두 바퀴를 상징하는 숫자여서 4월 22일을 자전거 날로 정했다 한다.
나는 직장에서 은퇴하면서 퇴직기념으로 접이식 자전거 한 대를 샀다. 동네에서 간단한 일을 보러 다닐 때나 아니면 차에 싣고 다니면서 레저용으로 쓰고자 해서였다.
우체국에 갈 때나 장에 갈 때,새벽에 집 근처에 있는 일산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 때에 자전거처럼 요긴한 것이 다시 또 있을까?
접이식의 기능은 10여년 동안 서너번밖에 사용하지 못하였지만 차체가 작아서 아파트 현관에 보관이 용이하여 도난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이 놈도 나처럼 나이를 먹다 보니 여기 저기 고장이 나서 타이어를 두 번나 바꿔야 했고 변속장치도 갈아야 했다.
그러다 최근에 큰맘 먹고 며칠 전 무리를 하여 산악용자전거 MTB 한 대를 샀다.
접이식 자전거는 바퀴가 초등학교 소년용의 자전거 정도여서 내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남들의 지적도 있었지만 언제나 남에게 추월 당하는 것에 불만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자전거는 크게 생활자전거와 레저 자전거로 나뉜다.
출퇴근 용으로 쓰는 것이 로드 바이크로 흔히 사이클이라고 한다.
로드 바이크(Road Bike)는 도로에서 빠른 속도를 내기 쉽게 제작된 저가의 사이클을 말한다.약간의 짐을 실을 수 있는 것인데, 산악자전거는 짐을 싫기는 커녕 세워 놓을 지지대도 없어서 스스로 서지 못하고 벽이나 나무 등에 기대어 놓거나 그것도 없는 곳에서는 누워 놓아야 했다.
MTB는 Mountain Bike의 약자로 견고하고 가급적 가볍게 제작된 것으로 산에서 넘어져서 다치기 쉬운 모든 요소는 생략한 것이다.
그래서 그 속성상 지지대가 없는 것은 감수할 수밖에 없지만 장기간 집에 두어야 할 경우를 위해서 지지대를 따로 사야 했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이 헬멧이었다.
생활 자전거는 멀리 가야 5km~10km이지만 고가의 레저용 사이클이나 산악자전거를 타다 보면 그 범위가 더 넓어져 50km를 윗돌기도 한다.
내가 사는 일산신도시만 해도 시내는 어느 선진국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지만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도가 자전거 도로요, 그것도 높낮이를 고려하지 않은 길은 형식상 자전거도로로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그 길이 도중 도중 끊어지기도 하고,길 가운데에 정류장 표시판이나 교통 시설물 등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차도 한편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생명을 위해서 그 멋진 헬멧이 필요한데 그 값이 만만치가 않았다.
무엇보다 내게는 고가를 지불한 자전거라서 분실을 걱정했더니 자전거포 주인이 말한다.
“자전거 주인보다 더 영리한 사람이 자전거 도둑입니다. 밖에 매어두는 것은 가져가라는 말과 같아요."
자전거는 통째로도 없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MTB는 바퀴 하나에 몇 십 만원이나 하는 것이어서 바퀴만 빼가는 도둑도 있다 한다.
그래서 어떠한 기구로도 자를 수 없는 고가의 제법 굵직한 자물쇠를 구입하여 채우기로 하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전조등, 후사등, 경고 종 등을 구입하다 보니 그 비용이 생활형 사이클 몇 대를 사는 비용이 들지만 취미를 위한 투자이고 일회성이 아닌 건강을 위한 투자에 무에 아까우랴 하였다.
이렇게 하여 나는 낚시, 등산에 이어 또 하나의취미인 MTB 세계에 뛰어든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어둠을 가르고 낚시터로, 동내에서 비교적 가까운 파주의 심학산(尋鶴山) 등으로 열심히 자전거 패달을 젓고 있다.
산악자전거는 바퀴가 크고 미끄럼 방지가 어느 정도 되는 것이어서 비포장 길이나 좁은 오솔길, 산길 등에서의 충격에 대비하여 제작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걸 타고 고향 인천(仁川)까지 가보고 싶어진다.가서 가난한 학창시절에 걸어 다니던 어렸을 때의 고향 곳곳을 누비고 싶다.
이런 사람을 위해서 앞바퀴 뒷바퀴에 자전거 전용 가방을 걸고 다닐 수 있는 여행용 자전거(Touring Bike라는)가 개발되어 있다.
무거운 하중에 견딜 수 있도록 몸체를 튼튼하게 만들었고 의자를 높여 라이딩(Riding)으로 장거리 여행 시 발의 부담을 적거하여 주도록 한 짐받이를 장착할 수 있도록 제작된 자전거였다.
호수공원 미관광장에 갔다가 누워서 타고 가는 리컴번트(Recumbent) 자전거를 보았다.
장거리 여행 시 허리에 부담을 적게 주게 하기 위해서 고안된 자전거였다.
누워서 타는 것이라서 페달을 밟기 위해서 아래쪽 페달이 앞바퀴 위에 있어서 페달을 앞으로 미는 스타일로 고안된 것이다.
자전거는 승차용이지만 근거리 화물 운반용으로 옛날도 그러하였지만 지금도 그 효용도는 승용차를 앞선다.
요즈음 같은 고유가 시대에는 더욱 사랑 받는 교통수단이 되었다. 오늘날 자가용이 각 가정의 필수품이 되면서 자전거는 생활형보다는 앞에서 말한 레저용으로 더 각광을 받게 되었다.
다음은 MTB 매니아들의 장비다.
수십만원 대의 헬멧에다가, 속도계를 부착하여 달리면서 현재 속도와, 평균속도, 당일 주행거리나 총 주행거리를 측정한다.달리는 중 바람과 먼지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전거 전용인 고글 안경도 준비한다. 옷은 땀이 금방 마르는 특수 소재의 고가의 옷임은 물론 등에 진 가방은 등의 땀을 막기 위해서 등과 가방 사이가 떨어진 자전거 전용 가방이다.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사타구니가 아프다. 그래서 이 사타구니와 엉덩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패드가 들어간 쫄바지를 준비해 입고 다닌다.
다음은 '자전거에 얽힌 일화 몇 가지.
자전거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어린 아이들이 타는 장난감 자동차처럼 발로 땅을 뒤로 차면서 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앞바퀴가 좌우로 움직이며 방향을 잡게 된 때가 1816년, 오늘날과 같이 발을 땅에서 떼고 앞바퀴를 좌우로 움직이며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으며 달리는 자전거가 나온 것은 그보다 23년 후인 1839년이었다.
공기 타이어를 붙이게 된 것이 그 뒤 47년 후인 1866년이었다.
그해가 우리나라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승하하고, 이토 히로부미가 한반도를 드나들며 침략의 야욕을 불태울 때요 경부철도 부설권을 일본이 얻어낼 때였다.
자전거를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 탄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를 초창기에 탄 사람 중에 유명한 사람으로는 서내필)徐載弼)과 윤치호(尹致昊)가 있다.
서재필이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 신축 현장을 자전거를 타고 오갔다는 기록이 있다.
윤치호는 하와이에서 자전거를 들여와서 이를 타고 동대문까지 종로를 오고 갔다 했는데, 이때이 아 신기한 두 바퀴의 차가 넘어지지도 않고 빨리 달리는 모습을 구경하려고 북새통을 이루며 떼를 지어 군중이 몰려서 자전거를 따라 다녔다고 한다.
옛날부터 축지법(縮地法)은 인간의 꿈이었다.
도술의 경지에서나 먼 거리를 가깝게 하는 일일 것이라고 믿던 당시의 개화기 사람들은 이를 보고 인동차(人動車), 자행거(自行車),괴물차, 나르는 차, 축지차(縮地車)라고도 하였다.
오늘날에 자동차 경주처럼 당시에는 자전거 경주대회가 유명하였는데 그 때는 일제강점기 시절이었다. 당시 한일 모든 경기에서 대한의 건아 엄복동(嚴福童)아 일본인을 누르고 연전연승하여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압박속에서 살던 조선민족의 한을 풀어주면서 이 민족의 우월성과 자긍심을 북돋아 주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하늘에는 안창남, 땅에는 엄복동!’을 환호하면서 민족의 울분을 달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