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암4:12 롬5:12 고후6:2
예로부터 심상치 않을 현상이 벌어지면 지구종말이 온다고 말하여 왔는데 새해들어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세계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2초 마다 축구장 1개가 불탈 정도로 강한 바람을 타고 산 정상 부근에 번지면서 여의도 면적 10배 가량을 잿더미로 만들었던 미국 LA산불은 사망자 5명, 15만명 이상 대피 중이며 1,100채 이상의 건물 전소되었고 40만 가구 이상 전력 공급 중단된 대형 산불입니다. 주민 5만여 명에 대피령이 내려졌고 교도소 수감자 4백여 명이 다른 시설로 이감됐습니다. 지형 특성 상 계곡이 많고 건조한 날씨+토네이도급 돌풍이 겹쳐서 진화 작업이 매우 어려운 상태라고 합니다. 소방관들 이야기로는 불꽃이 살아서 불꽃이 장애물도 건너뛰고 꺼졌던 곳에서 다시 살아나면서 마치 살아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예인들도 사는 고급 저택이 많은 부촌이라 재산 피해가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 '미국 역사상 가장 비용이 많이 든 산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같은 기사가 나오는 중, 지금 미국 보험사들이 손실액 추정치를 계산하다 패닉상태에 빠졌다고 합니다.
내년 캘리포니아 재보험료가 엄청나게 오를 것으로 예상 되는 가운데 LA산불처럼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이 지구종말의 징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보다는 더 근거가 있는 지구종말의 징조가 과학자들의 입을 통해 발표되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도 거의 3년이 다 되어 가는데 처음에는 러시아가 금방이라도 우크라이나를 삼킬 것처럼 위협했는데 지금은 러시아가 수세에 몰리면서 푸틴은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는데 정말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지구멸망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에는 지구는 불에 타서 멸망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벧후3:10) 그러나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 며 땅과 그 안에 일들도 불태워지리라.
지구의 종말은 지구가 불에 타서 녹아 없어진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정말 그럴까요? 2차 세계 대전 종말은 핵무기투하로 전쟁이 종식되면서 핵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당시보다 핵위력이 몇백배나 더 강해졌으며 전세계적으로 핵탄두가 1만개가 넘는다고 하니 핵무기 사용은 정말 지구종말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핵폭탄을 만든 아인슈타인 등이 1945년 창설한 미국핵과학자회는 지구멸망시간을 자정으로 설정하고 핵위협등을 종합 고려하여 1947년부터 해마다 종말시각을 발표해 왔는데 7분전으로 시작한 시계는 미.소 냉전이 최고조였던 1953년 2분전까지 갔다가 미.소간 전략무기 감축협상이 체결된 1991년에는 17분전으로 늦추어 졌다가 그 후 지구온도가 상승하면서 지구종말시간은 2020년 이후 100초전으로 유지되어왔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이번에는 미국 핵 과학자가 지구 종말까진 운명의 날 시계를 10초 더 당겨졌다고 하니 90초 박에 남지 않았다고 발표했으니 지구 종말까지 남은 시간은 90초 남았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발생한지도 4년이 지났습니다. 2019년 12월 16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폐렴으로 이 지역에서 거주하던 영화제작자 일가족 4명이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숨졌다고 중국 주요 매체들이 전하면서 2019.12.31부터 이런 우한폐렴을 처음으로 sns를 통해 알렸던 사람은 의사 리원양이었는데 그는 동창 의사들 SNS 대화방을 통해 우한에서 폐렴 증세를 보이는 환자 7명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최초 경고했던 리원양 역시 환자를 돌보던 중 폐렴 확진자로 입원했다가 엿새만에 세상을 떠났다. 우한은 중국의 중심도시로 인구 1100만이 사는 거대한 도시전체가 한때는 봉쇄되면서 사람들 이동이 거의 없는 텅빈 도시로 전락되면서 우한에 있는 화장터 49개가 24시간 풀가동되고 있다는 것이 당시의 상황을 증명하였다고 한다.
코로나가 우한에서 발생하기 전 코로나 첫 희생자가 교회 철거 반장이라고 주장했던 어느 선교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우한폐렴과 중국교회'란 제목의 글을 통해 중국정부가 교회를 박해한 것과 우한폐렴이 무관하지 않다며 그 선교사에 의하면 우한의 종교정책 시범지역이 지정되면서 48개의 지하교회가 강제로 폐쇄되었고, 선교사 추방, 십자가 불태움, 교회집회 금지, 시진핑 사진게시, 중국국기 게시, cctv설치, 종교사무조례시행을 보면 불법적 장소제공을 한다면 벌금 300-3000만원이며 안면인식 카메라를 통해 사람들을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 우한의 현실이었다. 중국이나 북한의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박해하는 것은 필수이다. 우리가 잘 알 듯이 용이 지배하는 중국이 지하교회를 핍박하면서 이런 우한폐렴이 발생하였다는 것이 그곳 선교사의 보고라고 볼 수 있다. 이제까지 코로나같은 이런 역병들은 앞으로 더 무섭게 일어날 것이고 인류가 멸망받는 그 날까지 무엇이든지 내 힘으로 다 할 수 있다는 인간의 교만죄가 결국은 지구멸망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23년 1월 30일 확진자 6억7000만여명, 사망자 670만명이다. 전세계를 할퀸 코로나는 인류 역사에 깊고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아마 당분간 흑사병 이후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전염병으로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이 왜 코로나를 무서워하는가는 바로 이 전염병으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1.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에게 부활을 보여준 예수님
인간에게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내가 죽는다면 세상을 다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냐는 말이다. 사람들이 이처럼 두려워하는 죽음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이 죄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인류가 죄를 용서받고자 예수님 오시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면 속죄일에 양이나 염소의 피를 통해 죄 용서받는 법을 배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고 실제 2000여년 전에 속죄의 어린양 되신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들 죄 값을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던 것을 아는 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면서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고 마귀들을 굴복시키시면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하셨습니다. 질병과 사고가 상존하는 이 땅에서 인간이 참된 안식을 얻는 것은 예수님 믿는 것 이외는 아무데도 없다는 것이다.
(마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30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시니라.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원죄와 살아가면서 짓는 자범죄로 인하여 누구도 죄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누구나 죄의 짐을 지고 살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 와야만 죄문제를 해결될 수 있습니다. 예수라는 말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셨다는 말이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 이외는 죄문제를 해결할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죄로부터 오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만약 인간이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소망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예수님은 공생애 중에 죽은 자들을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살리셨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데가볼리에서 배를 타시고 가버나움으로 가시니 그곳에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중에 회당장인 야이로라고 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자기의 어린 딸이 지금 죽어 가고 있으니 오셔서 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모이는 집회 장소로 오늘날 교회와 마을 회관을 합친 것과 같은 곳인데 유대인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회당을 짓고 그것을 관리하도록 회당장을 두고 있습니다.
(막5:35-43) 35 그분께서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어떤 이가 와서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시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가사 소란한 것과 슬피 울며 크게 통곡하는 자들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렇게 떠들며 슬피 우느냐 이 소녀는 죽지 않고 잔다 하시니 40 저희가 그분을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 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그것을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앞에 와서 병들어 죽어가는 딸을 고쳐 주시기를 바랐을 때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36)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 딸의 손을 잡고서 ‘달리다굼’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이에 죽은 소녀가 일어나 걸었다는 것은 예수님은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하는 것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던 첫 번 째 기적이었다.
두 번째는 누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나인성으로 가시는 중에 한 과부 외아들의 죽은 관을 메고 나오는 것을 보시고 그 아들을 살려냅니다.
(눅7:13-15) 13 주께서 그녀를 보시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사 그녀에게, 울지 말라, 하시고 14 거기서 관에 손을 대시니 그를 나르던 사람들이 멈추어 서니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그가 앉아서 말하기 시작하거늘 그분께서 그를 그의 어머니에게 넘겨주시니.
나인성 과부의 청년 아들의 상여가 나가는 중에 예수님께서는 관속에 있는 그 죽은 청년을 향하여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 명하시니 그 죽었던 청년이 일어나 앉아서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지막은 베다니에서 죽은 지 4일이 지나서 무덤에 묻혔던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요11:41-44) 41 그때에 그들이 죽은 자를 둔 곳에서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님께서 눈을 드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3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큰 소리로 외쳐,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44 죽은 자가 수의로 손발이 묶인 채 나오는데 그의 얼굴은 수건으로 묶였더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풀어 주어 그가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이번에는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속에 있던 나사로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하시니 나사로가 걸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자들을 세 명이나 살리신 것을 제자들은 목격했음에도 제자들의 믿음은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눅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마16:2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에 다시 일으켜질 것을 자기제자들에게 보이기 시작하시니.
갈릴리 보다 더 북쪽에 있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 여기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밝히셨고 두 번째로 갈릴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마17:22-23) 22 그들이 갈릴리에 거할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23 죽임을 당하고 셋째 날에 다시 일으켜지리라. 하시니 그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그리고 예루살렘 가까이 가셨을 때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마20:18-19)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그를 정죄하여 죽게 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요, 셋째 날에 그가 다시 일어나리라, 하시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세 번씩이나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이 세상에서 마지막 한 주 간은 성전을 정화하신 것을 시작으로 제자들을 교육시키면서 마지막 주님이 다시 오실 것에 대해 여러 가지 비유로 교훈하셨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후에는 올리브동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주 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하시면서도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달라고 하신 후에는 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보낸 군병들에 의해 체포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시기 전에 이미 사형에 처한다는 그들의 회의가 있었으므로(마26:4) 체포된 후에는 무슨 죄로 사형에 처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거짓증인들이 예수님을 고소하였지만 예수님은 저들의 말에 답변도 하지 않았으나 마지막은 대제사장이 예수님에게 물었을 때는 답변을 하셨습니다.
(마26:63-66) 63 예수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응답하여 그분께이르되, 내가 너로 하여금 살아 계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하매 64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할지라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아들이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이후에 너희가 보리라, 하시더라. 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모독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우리에게 증인이 더 필요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그의 신성모독하는 말을 들었도다. 66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아니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하고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한 신성모독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전 날 갈보리산에서 십자가에 달려서 피흘려 죽으신 것은 우리 인간들이 범한 죄악을 인함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어 무덤에 장사되었지만 예수님 자신은 다시 살아나리라는 부활은 제자들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었다가 사흘 후에 부활하셨던 주님을 뵈옵고 부터는 제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자 않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이 죽음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9들도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우리는 어떻게 해야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
주님은 대제사장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하나님 앞에서 말하라고 하였을 때 예수님은 니가 말한대로 내가 그리스도라고 하였으며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마지막 날에는 구름을 타고 다시 오는 것을 너희들이 볼 것이라 하셨습니다(마26:64). 하늘로 구름타고 올라가신 예수님의 승천 장면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눅24:51-53) 51 그분께서 그들을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위로 올려져서 52 그들이 그분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53 계속해서 성전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찬송하니라, 아멘.
(행1:11)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
(고전15:4-6) 4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5 게바에게 보이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다는 것이라. 6 그 뒤에 그분께서 오백여 형제에게 한 번에 보이셨는데 그 중에 대다수는 지금 이때까지 남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잠들었느리라.
예수님 부활승천을 목격한 사람이 500명이나 되었다고 기록하였는데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120명뿐이었다. 바울당시에도 그들중 대다수는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복음서 마지막은 주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겠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과연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맞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마25:1-2.10-13) 1 그 때에 하늘의 왕국은 마치 자기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아간 열 처녀와 같으리라. 2 그들 중의 다섯은 지혜롭고 다섯은 어리석더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된 자들은 그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히니라. 11 그 뒤에 다른 처녀들도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하나 12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마지막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계시록 22장은 7절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더라.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보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 20절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여 과연 그와같이 오시옵소서. 하는데 성경 마지막은 주님은 반드시 속히 오신다고 하셨는데 만일 만날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누구든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계16:15)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나니 깨어 있어 자기 옷을 지키고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여 그들에게 자기 수치를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열처녀 비유는 마태복음 24장 말미에 등장하는 도적의 비유 및 신실한 종과 악한 두 종의 비유와 함께 종말을 교훈하는 세 가지 비유중 하나입니다. 당시 유대의 결혼식은 보통 해가 진 후에 시작되었는데 이때 신부의 들러리들은 집 문밖에 나가서 등을 들고 기다리다가 신랑이 친구들과 함께 신부 집에 오면 영접하게 되는데 신랑이 신부집에 가는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신부 들러러들은 신랑이 늦어질 것을 대비하여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충분한 기름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부분을 비유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신부는 주님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인데 지혜로운 신부들만 잔치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갈3:26-27) 26 너희가 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이들이 되었나니 27 너희 중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는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신부가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듯이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않고서야 예수님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옷이란 무엇일까? 침례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서 죽었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정말로 새로운 피조물로 변한 모습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다. 또 의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주님을 만나는 신부가 되려면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하는데 세마포옷은 성도들의 행위라고 하였다.
(계19:7-8) 7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릴지니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이르렀고 그분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도다. 8 또 그녀가 깨끗하고 고운 아마포 옷을 차려입도록 허락하셨는데 그 고운 아마포는 성도들의 의니라, 하더라.
성도들의 옳은 행실 즉 의로운 행위가 바로 주님 맞이할 수 있는 세마포 옷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만일 의의 옷을 입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마22:11-12) 11 왕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때에 거기서 결혼식 예 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그에게 이르되, 친구여 어찌 네가 거기서 결혼식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이에 왕이 그 종들에게 이르되 그의 손발을 묶고 그를 데려다가 바깥 어둠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예수님은 우리들이 생각지 않은 때에 오시므로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시각에 너희 주가 올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주님을 뵈올 수 있는가 하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사람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안나와 시몬처럼 주님을 뵙게 된다는 말입니다.
(마24:44-46) 44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는 시각에 사람의 아들이 오느니라. 45 그런즉 자기 주인으로부터 그의 집안사람들을 넘겨받아 다스리며 제 때에 그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줄 진실하고 지혜로운 종이 누구냐? 46 그의 주인이 올 때에 그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도다.
지금은 마지막 때이므로 깨어 있어야 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제 때에 맞는 양식을 주어야 한다. 주님 오심을 예비한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지 않으시고 사랑하는 자들이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라고 하십니다. 자기가 먹을 것을 남에게 주면 하나님은 그런 자를 복 주시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정말로 불쌍한 자들을 돌봐야 합니다.
(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들 중 하나에게 찬 물 한 잔이라도 주어 마시게 하면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자기 보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육신의 양식을 주면 영의 양식으로 변한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다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전하신 마지막 복음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마25:32-46) 32 모든 민족들을 자기 앞에 모으고 목자가 염소들로부터 자기 양등을 갈라내듯 그들을 일일이 분리하여 33 양들은 자기 오른 편에 두되 염소들을 왼편에 두니라. 34 그때에 왕이 자기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오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너희는 세상의 창건이후로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너희가 내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받아들였고 36 내가 헐벗을 때에 너희가 내게 옷을 입혔으며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찾아왔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내게 왔느니라, 하리니 37 그때에 그 의로운 자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시게 하였나이까?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나이까? 38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나그네가 되신 것을 보고 받아들였나이까? 헐벗으신 것을 보고 주께 옷을 입혔나이까? 39 혹은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주께 갔나이까? 하리라. 40 왕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들 내 형제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그것을 하였은즉 내게 하였노라, 하고 41 그때에 왼편에 있는 자에게도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45 그때에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그것을 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게 하지 아니였느니라, 하리라. 46 그리하여 이들은 영존하는 형벌에 들어가되, 의로운 자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라, 하시니라.
천국과 지옥은 의를 행하였느냐 행하지 아니하였느냐가 기준이며 천국을 향해 침노하는 자가 얻는 것이다.
(마11:12)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다는 말은 초등학문에 불과합니다. 장성한 자의 믿음의 분량에 이르러야만 주님을 만나는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오시는 그 날까지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 곧 천국을 침노한 자들만이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3.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암4:12)
3년전 전 세계가 코로나 비상사태를 겪었던 것을 보면서 이런 질병이 왜 생겼는지 성경에서 한번 찾아보자. 누가복음 21장 11절 말세에는 처처에 기근 지진 역병이 있다고 하였는데 한마디로 주님오실 때에는 이런 역병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여러 질병이 있어왔지만 주님 오실 때에는 이 모든 것이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주님오시기전 지진이나 기근이나 전염병같은 재앙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일어나는 것이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자연재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1) 재앙에 대하는 관점이 사람을 갈라놓는 시금석이다.
연일 자연재앙에 대한 뉴스가 신문을 도배하고 있다는 것으로 새해들어서만 하더라도 LA산불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호주 Australia는 무려 6달 이상 지속되는 산불로 수많은 포유류, 조류, 파충류, 곤충류 등 10억 마리 이상의 야생 동물들이 죽었다고 추산한다. 산불 피해는 우리 남한의 면적과 거의 동일하다고 한다. 정말 호주의 산불로 인한 피해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호주의 재앙은 산불만이 아니다. 산불이 꺼진 후에는 골프공 크기의 우박과 홍수로 사람들 고통이 가중되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도 대규모 산불과 건조한 날씨로 고통받던 호주 동남부 지역이 이번엔 자동차를 파손시킬 만큼 큰 우박들과 많은 비를 쏟아 부은 폭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호주 언론들이 전했다. 그렇다면 왜 호주에 산불이 일어났고 왜 중국에서 우한폐렴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각자의 세계관에 따라 이런 재앙에 대해 해석이 다르다. 이런 재앙문제는 과연 어떻게 진단하는 것이 정당할까? 어떤 사람들은 자연에 의해 우연히 일어난 현상이라고 하면서 인간이 조금만 조심했으면 일어나지 않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이런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견해인 한편 기독교에서는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진노라고 주장한다. 동성결혼 합법화나 기독교 박해 같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해석이다. 이 세상에는 이 두 종류의 해석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자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자연재해를 해석하려면 그 사람의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지는데 유물론자들은 물질적인 것에서 원인을 찾고 유신론자들은 하나님의 뜻에서 원인을 찾는 다는 것이다. 과거18c이전은 이런 자연재해를 하나님의 진노라고 해석하였지만 18c이후 과학이 발달하면서는 오직 과학적 해석만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심지어 예수믿는 사람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을 다른말로 설명한다면 신학은 우리에게 왜를 가르쳐주지만 과학은 우리에게 어떻게를 가르쳐준다. 지금 예수믿는 사람들조차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재앙이 왜 생겼는지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피해야만 되는가에만 관심이 있다. 왜가 아니고 어떻게든지 손 잘 씻고 마스크를 착용해야만 하면 유물론자가 되고 만다. 자 기독교와 유물론자의 차이는 과학을 인정하느냐 안하느냐가 아니라 과학을 제일 원인으로 보느냐 아니냐가 신학과의 차이다. 그리스도인은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믿지도 않지만 과학도 하나님의 주권안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왜에 더 관심을 갖고 왜 이런 일이 생겼느냐가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다. 성경을 통해보면 경건한 왕들은 국가적인 재앙을 만나면 금식기도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이 정상이다. 결론은 세계적 재앙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왜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고민하는 것이 하나님 믿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지 그런 일들이 절대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10장29절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참새 두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적 관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은 우연이나 운명에 의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그 원인과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고 가을 겨울이 오는 것도 태양이 동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도 자연 법칙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으로 되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호흡이 나의 노력에 의해서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살고 그분 때문에 존재하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만들어 놓으시고 그냥 지켜보시는 분이 아니라 지금도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까? 그분만이 세상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다면 우리들은 매일 매일의 삶을 그분께 의탁하며 그분께서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고 모든 원인과 결과까지도 그분의 손안에서 돌보심을 받기 위하여 간구하며 기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결코 기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역병은 국가 지도자에 대한 심판이라고 보여준다. 열왕기상 21장은 다윗왕 말년에 마귀가 다윗을 시험한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내 마음에 합한 자인 다윗은 우리아를 죽이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은 것 이외에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하시면서 주께서 다윗에게 은혜 주시기를 사울의 뒤를 이어 다윗왕조를 세울 것이며 더욱이 그 후손 중에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까지 말씀하셨는데 다윗은 말년에 자기가 세운 왕국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백성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군대대장 요압에게 말하기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싸울 수 있는 군인의 숫자를 조사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사단이 다윗을 선동했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도 이일은 기뻐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배은망덕한 짓이라고 생각하시면서 재앙을 주신 것을 해결하고자 하나님께서는 갓 선지자를 보내 잘못한 것에 대해 셋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시는데 3년 기근을 택하느냐? 3개월 동안 원수들에게 쫒겨 다니는 것이냐? 아니면 3일간 역병을 내리는 것이냐를 선택하라는 물음에 다윗은 사람의 손에 빠지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하면서 3일동안 역병을 택한 결과로 147000명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국가 지도자가 교만하면 이처럼 역병이 창궐한다는 것이 성경적이다.
(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지난번 코로나로 인한 죽음을 생각하면서 우리들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눅12장에서 어리석은 부자는 창고가 부족한 것을 알고 더 확장할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가 자기를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인색한자.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자들이 정말 어리석은 자라는 말씀이시므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해본다.
(암4:12)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아모스는 유다왕 웃시야의 통치기간에 살았으며 그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6km 떨어진 남왕국의 한 성읍인 드고아 출신인 그는 무화과를 가꾸는 일을 하면서 양떼들을 돌보는 목자이며 농부였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처음으로 북왕국의 작은 도성들이 번영하게 되었고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바알 숭배의 영향을 받아 전례가 없는 퇴폐풍조로 사회 전반이 부패와 타락된 모습을 보고 아모스는 크게 충격을 받게 되면서 그의 예언이 발생하게 된 이유였다.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시되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심판하실런지 알 수 없으므로 두려운 마음으로 준비하라는 말이다. 아모스 선지자가 이렇게 갑작스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경고하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회개의 시간이 거의 없으므로 지금 당장이라도 회개하여 임박한 심판을 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실로 깨어 근신하지 않는 자에게는 주의 심판날이 도적같이 임하리라는 사실(살전5:2)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자신들 또한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 하라는 말씀은 최후의 통첩과도 같은 경고이다. 이런 경고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언젠가 미국 현충일날 한 나이트 클럽에서 400명이 타 죽고 130명이 부상당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것은 배일리라는 한 소년의 경고를 무시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화재를 발견한 한 소년은 무대위에 올라가서 "여러분! 불이 났습니다. 조용히 비상구로 탈출하십시요" 사람들은 이경고를 농담으로 여겼고 박수치고 소리지르고 노래하면서 재미있다고 하였습니다. 결과는 엄청난 희생과 비극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중의 하나는 시대적인 경고를 무시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비상사태는 준비할 줄 알면서 자신의 죽음을 위하여는 준비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상일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3) 지금 이시간이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할 때이다
서울서 부산을 가자면 수많은 교통표시판을 볼 수 있는데 이 표시판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곧 죽음과 파멸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마치 교통표시판 같이 수많은 하나님의 경고로 가득차 있는데, 이를 무시하면 파멸을 가져져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 하셨습니까 성경은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암4:12) 경고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면서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오게 되었습니다(롬5:12). 아담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치고 죄없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 하였나이다"(시51:5)하였습니다.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요(엡2:3) 사탄의 자식입니다. 이 죄의 병을 고치지 않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사람이 만일 암이라는 선고를 받고 고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한다면 치료 받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인간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죄를 대속하러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서는 아무도 죄의 굴레를 벗어 버릴 수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없는 인생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은혜받고 구원받을 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잃어버린 상태 때문에 인생의 안내자이신 예수님 만나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4) 어떻게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해야 합니까?
1)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구원의 조건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나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롬4:25). 아프리카 한 선교사가 노예시장을 지나는데 불쌍한 소녀가 팔려나온 것을 보고 불쌍히 생각하여 그 몸값을 지불해 주고 자유의 몸으로 해방시겨 주었는데 그녀가 그렇게 되기 전까지 그에게 기다리는 것은 혹심한 노동과 고통 그리고 최후 죽음밖에 기다리는 것이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죄에 팔려 마귀의 종이 되어 죽어가고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대신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인류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성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니라"(롬5:8)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죄에서 떠날 준비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믿음을 가진다면 구원을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2) 세상을 사랑하는 것에서 떠나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낚시광 한 사람이 자기의 어린 딸을 데리고 바위섬으로 노를 저어 갔습니다. 그 바위섬은 물이 나가면 섬이 들어나지만 물이 차면 잠기는 섬이었습니다. 그는 딸 아이를 바위섬에 두고 낚시하기 위하여 노를 저어 깊은데로 갔습니다. 물고기 잡는 재미로 시간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어느덧 석양이 저물어 갈 무렵 그는 딸아이를 생각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황급히 노를 저어 딸이 있는 곳으로 갔으나 딸아이는 보이지 않고 물에 잠긴 섬 역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아버지의 황당함이 오죽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세상일에 몰두한 나머지 벌써 돌이킬 수 없는 지점으로 나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하십니다. 지금 예수님에게로 나아갈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죽는 것은 확실합니다. 지금 인생의 끝 날을 준비하지 않으면 시간이 없습니다. 한 청년이 어느 사무실에 들어가서 기독교인 보험회사 직원으로부터 생명보험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보험증서를 받는 날 그 직원은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죽은 이후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생명보험에 가입하셨지만 영원히 당신을 보호할 영생보험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는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집으로 오는 길에 트럭에 치여 죽었습니다. 그가 만약 이 마지막의 기회를 놓쳤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성경은,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잠27:1) 하셨습니다. 여러분! 영원한 죽음과 저주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하십니다. 인생의 마지막 날이 오기 전 주님 만나기를 준비하여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