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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바로의 첫 대면(1-4)
오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시하며, 한결같이 "하나님이 누구냐?"고 말합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의 태도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교만을 잘 보여줍니다. 그의 오만함은 결국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만한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는지를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1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2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3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4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5바로가 또 이르되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 하고(1-5)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에게 자신의 완전한 노예일 뿐입니다. 감히 노예가 어떻게 자기 의지가 살아서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노예는 노예이기 때문에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의 요구를 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세가 말한 그 자체가 바로를 향한 선전포고입니다.
(1) 제사를 드리게 해달라고 요구(1-3)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주지 않으려고 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장정만 60만 명인 엄청난 노동력입니다. 이들 때문에 국고성도 짓고 농사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세금도 거두어 들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왕이 아무런 갈등 없이 종들이 원하는 데로 내어줄 순 없습니다. 바로의 반응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바로도 계속해서 강퍅하지는 것이고 이 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국고를 부요하게 했던 대단한 업적은 400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달라고 하는 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일 것입니다.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2)고 대답합니다. 그는 자랑이라도 하듯 여호와를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모세와 아론을 책망하는 바로(4-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책망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노동을 방해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고, 그들이 노동에 집중해야 한다고 명령하여, 모세와 아론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내 백성을 보내라”는 메시지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모든 인류가 우상과 죄로부터 벗어나서 참된 하나님 앞에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요청하고 계십니다. 옛날이나 지금이 사단은 영혼을 쉽게 보내지 않습니다. 놓아주지 않으려는 끈질긴 세력은 지금도 역사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과정도 여러 어려운 과정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은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이끄시는 놀라운 섭리요, 시련의 강도가 강할수록 더 아름답고 더 귀한 정금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여행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모세와 바로의 첫 대면(6-14)
새벽이 가까울수록 어둠은 더 짙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할수록 이를 가로막는 방해도 격렬합니다. 악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키려 갈등합니다. 이 갈등은 단순히 의견 대립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영적 전쟁으로 발발합니다.
6바로가 그 날에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7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에 쓸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짚을 줍게 하라 8또 그들이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에게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니 9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10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이 나가서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바로가 이렇게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리니 11너희는 짚을 찾을 곳으로 가서 주우라 그러나 너희 일은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2백성이 애굽 온 땅에 흩어져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다가 짚을 대신하니 13감독들이 그들을 독촉하여 이르되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같이 그 날의 일을 그 날에 마치라 하며 14바로의 감독들이 자기들이 세운 바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을 때리며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6-14)
바로는 모세와 아론의 요구를 일종의 속임수나 노림수로 평가절하 했습니다. 히브리인들로 하여금 노역에서 쉼을 얻도록 하려는 속셈이라고 여겼습니다. 바로는 화가 나서 이스라엘 백성을 더욱 혹독한 강제 노동이 실시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헛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계획을 수포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1) 노동을 더욱 가중되는 이스라엘(6-9)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힘없고 고단해졌습니다. 그들은 이제 더 큰 장애물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바로는 짚을 주지 않으면서도 이전과 같은 수효의 벽돌을 만들라고 강요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자신의 노예로 삼기 위한 완벽한 방법이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또한,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말’이라 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그 말씀을 듣지 않도록 명령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그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방의 희망이 멀어지는 듯한 절망감에 휘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는 여전히 구원의 염원이 존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 속에서도 그들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2) 이스라엘 자손은 더욱 큰 고난(10-14)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왕을 굴복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동 조건을 더욱 가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재료조차 주지 않고, 이전과 동일한 양의 벽돌을 만들어내도록 강요했습니다. 시간이 남아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자,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또한 애굽인 감독에게는 매질을 더욱 혹독하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의 꿈을 포기하게 만들 만큼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염원은 죽음조차 막을 수 없는 강렬한 비전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다 보면 견디기 힘든 장애물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당신은 장애물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고 그분의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는 확신과 담력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를 지탱해 주며,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게 만듭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한다는 바로를 보면서, 하나님의 권위와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무지한 인간의 오만한 모습을 봅니다. 오늘날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분을 따르는 자들을 어리석게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최후 승리는 하나님과 그분을 믿는 자들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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