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째 날
대책 없는 여행 최초로 지리산 종주하러 산행을 갔다. 코스는 중산리에서 시작해서 장터목에서 하루 벽소령에서 이틀 노고단에서 삼일을 자는 37.5킬로 짜리 코스였다. 전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녔다. 상상이 안 갔다. 평지 30킬로가 아닌 산 30킬로는 어떨지 상상도 안 갔고 거기에 더해 23킬로 가량 나가는 가방을 메고 산행을 한다니 더욱 앞이 깜깜해 졌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잊어버려 버릴 정도로 무색하게도 가장 걱정되는 건 "배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가서 삼계를 못 받아오면 어떡하지? 못 배워서 선언식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루고 다음날이 되었다.
다음날 현곡은 과제를 하나 주셨다. "나는 너희에게 천사만을 보내주었다." 라는 주제였다. 산에서 만나는 인연으로 천사를 만나고 오라고 하셨다. 지리산 중산리에 도착해서 여공과 인사를 나누고 산을 오르기 전 선생님을 만나는 예를 갖추어 삼배하고 드디어 시작했다. 나 스스로 계속 생각한 것은 "조급해 하지 말고 즐기자" 였다. 땅바닥만 보면서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 아닌 옆에 풍경을 즐기면서 올라가고 싶었다. 첫 발걸음을 떼고 오르기 시작했다. 가방이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다. 가만히 서 있는 것 조차 어렵고 쉬려고 앉으면 뒤로 넘어가 버리고 다시 매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녔다. 오늘 제때 도착 못 해서 길에서 자 버리자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주변 풍경을 음미하면서 올라갔다. 숨이 가빠져서 바닥만 보거나, 남은 킬로 수를 보여주는 표지판이 보여서 앞길이 막막해 갈 때면 운치 좋은 곳에 앉아서 물음을 하나 던지고 명상하고 물 마시고 간식 먹고 다시 출발했다. 현곡이 주신 과제도 잊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같이 앉아서 쉴 때면 먼저 간식도 나눠 드리면서 이런저런 말을 하며 연을 쌓아 갈려고 했다.
장터목 대피소까지 절반쯤 걸었을 때 슬슬 조급해지고 주변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약간에 결과라도 눈에 보여야 오래 하는 법인데, 30분 걸어서 표지판이 보이면 300미터 밖에 안 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힘이 쫙 빠져 버린다. 끊임없이 올라가도 내리막이나 평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끝까지 오르막 뿐이었다. 경사도 있어서 한걸음 올라갈 때 5초 정도 걸리는 거 같았다. 가방 무게에 짓눌리고 경사 때문에 숙이게 되니깐 스틱에 정말 많은 의존을 해가며 천천히 올라갔다. 땀에 몸이 절여지면 손수건으로 한 번씩 닦아주고 길가 다 가까운 곳에 계곡이 있으면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며 간식 먹고 쉬면서 올라갔다. 지나가는 사람들께 인사드리고 응원에 한 말씀을 받으면 다시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눈앞에 표지판을 보니 300미터 남았다고 적혀있었다. 주변에 계신 분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힘내라고 하셨다.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오르막 경사 때문에 더딜 발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발에 보폭을 넓힐 수 없는데 그 과정이 죽음 이였다. 3칸 오르고 쉬고 3칸 오르고 쉬고에 반복이었다. 사람들에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이 희번덕 떠졌다. 대피소까지 다 왔다는 소리였다. 없던 힘까지 쥐어짜 내서 올라갔다. 가방을 던지고 앉아서 정상을 만끽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칭찬 한마디씩 남겨주시고 가셨다.
도착하자마자 쌀을 씻어서 밥을 하고 있었다. 냄비 손잡이를 잡았더니 손잡이가 달궈져서 그만 손을 놓치고 말았다. 밥이 다 쏟아졌다. 사람들이 괜찮으냐고 걱정해주시고 웅성웅성 걸렸다. 쫄팔림이 몰려왔지만 배고픔이 창피함을 이겨내고 곧바로 밥을 다시 지었다. 바닥에 흘린 쌀을 치우는 동안 드디어 밥이 다 됐다. 정말 잘 지어진 밥이었다. 적당한 찰기와 보슬보슬한 밥, 더 기다리지 않고 고추 참치 캔을 하나 따서 한입 먹었다. 정말 천국을 맛보는 것 같았다. 평소 식사를 이렇게 했으면 다른 음식들이 생각이 나곤 하는데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정말 맛있는 식사였다. 뒷정리까지 다 하고 노을이 질 때 사람들과 같이 벤치에 앉아서 해가 지는 광경을 구경했다. 올라오면서 힘들었던 순간은 사라지고 눈앞에 해가 지는 광경만 생생했다. 혼잣말로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겠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하루 절반을 땀을 흘리고 먹는 밥과 해가 지는 풍경을 보고 잠자리에 누우니 정말 미련 없이 잘 살았다는 게 느껴졌다. 코골이 소리가 들려오는 시끄러운 방과 후덥지근한 보일러가 켜진 방이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잠들 수 있었다.
둘째날
눈을 뜨고 시간을 보니 늦잠을 자 버렸다. 3시에 일어나 천왕봉 일출을 보러 나가야 하는데 5시가 돼버렸다. 허겁지겁 몸만 나갔지만 해가 올라오는 중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장터목에서 해가 올라오는 광경을 구경했다. 해가 올라오고 지는 광경은 참 경이롭다. 하루를 제대로 시작하는 기분이다. 시간이 늦어서 전날 해먹고 남은 눌어붙은 밥을 물에 끓여서 누룽지를 넣고 간단히 먹고, 물과 육포만 챙겨 천왕봉을 올랐다. 가방도 없고 몸도 재시동이 된 상태라 날아갈 것만 같았다. 게다가 날씨고 시원했다. 높은 정산 산속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풍경은 정말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가다가 멈춰서 선생님께 삼계 묻고 감상하고를 반복하면서 올라갔다. 정말 여유롭고 즐기면서 올라갔다. 한번 올랐던 천왕봉이었지만 지리산에서 하룻밤 자고 다시 보는 풍경은 정말 새로웠다. 도착하니 구름이 천왕봉을 감싸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산들과 하늘이 붙어 있는 것 같았고 360도를 돌아도 모든 곳이 절경이었다. 구름이 점점 걷어지니 저 멀리 있는 노고단이 훤히 보였다. 점점 떠나가는 구름이 어찌나 멋있던지 그것만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충분히 천왕봉을 즐기고 내려갔다.
이제 다시 벽소령에 갈 만반에 준비하고 발걸음을 나섰다. 어제 이미 오르막은 다 경험해서 그런지 가는 길이 완만하고 주변 풍경을 충분히 즐기면서 갈 수 있었다. 이미 감동에 전신이 마비 돼서 그런지 오랫동안 표지판을 봐도 급급해지지 않았다. 천천히 계속 걷다가 풍경이 좋은 곳이 있으면 그곳에 앉아 쉬곤 했다. 세석 대피소까지 가는 길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세석 대피소 곧 도착 전에 촛대봉에서 사진도 찍고 적당히 즐기다 내려갔다. 오늘도 가는 동안 과제를 잊지 않고 천사에게 잘 보이려고 사람들에게 인사도 먼저 건네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세 석 까지 가는 길 동안 길동무 아저씨 한 분을 만났다. 내 가방을 보시더니 깜짝 놀라시고 종주하러 왔느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말씀드리고 3박 4일로 왔다고 하니 너무 넉넉하다고 말씀하셨다. 자기는 성삼재에서 세 석까지 하루 만에 왔고 방금 천왕봉 보고 다시 성삼재로 가는 길이라고 1박 2일이면 충분하다고 하셨다. 가는 길 내내 젊은 사람이면 당일 천왕봉도 가능하다고 하시고 자기 자랑도 반복하시다 칭찬도 뜨거운 시인지를 계속 반복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자존심이 좀 상했다. 스스로 가방 때문이라고 위안으로 삼았지만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괜히 무리하면서 또다시 바닥만 보게 되었다. 계속 입에서 "언제 도착해" 와 눈으로 표지판을 보면서 네이버 지도로 얼마나 남았는지 시간을 계속 살피게 되었고 결국은 세석 대피소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세석대피소에 도착하면 점심을 먹어야 하지만 시간은 오후 1시였다. 벽소령까지 6.3킬로가 남았다. 대피소까지 6시 전에는 들어가야 했다. "원래 계획 대로면 3시에 일어나서 천왕봉 일출을 보고 내려와서 밥을 먹고 11시쯤에 세 석에 도착하는 거지만 2시간을 늦잠을 자 버려서 지금 시각은 1시였다. 대피소까지 6시 전에 들어가야 한다. 밥을 먹으면 넉넉잡아 2시 그럼 4시간 안에 6.8킬로를 갈 수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까 내 자존심을 긁고 간 아저씨를 만나기 전에는 좀 늦어도 괜찮지 뭐 길바닥에서 자기밖에 더 하겠어? 라는 여유로운 생각에 걱정도 안 되고 즐겁게 산행을 할 수 있었지만, 그 아저씨를 만나고부터 계속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밥도 먹지 않고 출발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다시 날 붙잡으면서 밥을 먹고 가라고 하지 않던가. 내가 시간이 부족할 거 같다고 6시 전까지 벽소령에 가야 한다고 하니 충분히 간다고 하셨다. 난 가방 때문에 더 늦어짐을 고려해야 하므로 말씀은 감사하지만, 출발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다른 어른분들도 다 먹고 가라고 하셨다. 학생 정도면 충분히 3시간 안에도 간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런 말씀 하나하나에 위안이 들어서 밥을 먹고 가기도 했다. 간단하게 즉석 비빔밥을 물에 끓여서 후다닥 먹고 다시 준비하고 선생님들께 인사드리고 출발했다.
300미터 뜸 걷다가 표지판 보였다. 남은 길 6.5미터 적혀 있었다. 한참을 또다시 걸을 생각을 하지 진이 쭉 빠졌다. 그 자리에 누워서 한 20분을 넋 놓고 있었다. 그러다 뒤에 오는 사람들 소리에 쫓기듯 얼른 일어나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점점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늘 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걷다가 얼마나 남았나를 끊임없이 찾아봤다. 1킬로 죽을 듯이 걷다가 쉬고 또 1킬로 죽을 듯이 걷다가 쉬고를 반복하면서 걸었다. 쉬는 순간에도 풍경을 보는 게 아닌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을 보면서 지도를 확인했다. 산을 못 즐기고 조급하게 가다 보니 삼계도 잊고 과제도 잊고 산도 잊은 상태로 딴짓하면서 산속에서도 꼼수를 부리며 휴대폰을 보고 정반대에서 같이 시작한 민혁이와 통화했다.
얼마 안 가서 민혁이와 만났다. 오랜만에 재회 한 듯 반가웠다. 그간 있었던 일 막 떠들면서 얘기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은 갈만한지 미리 맛을 보고 있었다. 한 30분을 떠들다가 다시 각자 갈 길을 걷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표지판을 확인하고 끊임없이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면서 갔다. 그러다 통신이 안 터지는 구간에 도착했다. 그 순간 딱 정신 차리고 다시 집중 해야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뒤로 쓰러지니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잠에서 깨고 화들짝 놀라 얼른 출발했다. 가는 길에 선비 샘이라고 물이 졸졸졸 호스에서 흐르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물을 받아서 머리에 적시고 수건에 물을 묻히고 몸에 흐른 땀을 이곳저곳 닦았다. 해는 점점 져가고 있고 시간은 점점 6시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내 마음은 급해져 갔다. 남은 킬로 수는 2킬로, 쉬지 않고 땅만 보면서 걸어갔다. 어깨는 쪼일 듯이 아프고 발바닥은 불이 나고 종아리는 터질 거 같고 온몸과 정신이 힘들었다. 한 1킬로 남았을 때쯤 정말 해탈을 한듯했다. 멍한 얼굴로 어떤 의지도 없이 걷기만 한 좀비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터벅터벅 걷다가 사람들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눈이 휘 번뜩 따지고 빠른 발걸음으로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다. 어르신 분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시길래 먼저 인사드렸다. 그러더니 "박수 한번 쳐줍시다!" 하시면서 환호하시며 수고했다고 하셨다. 나름 기분이 좋았다. 그간 힘든 순간이 인정 받는 것 같았다.
얼른 밥 준비를 했다. 즉석 비빔밥에 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그때 마침 일몰이 시작됐다. 해를 보고 대화하는 사람들과 환하게 비치는 해를 보니 고단했던 오늘 하루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후다닥 잘 준비를 하고 누웠다. 눕자마자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내일모레면 집에 간다는 생각이 번쩍 들어 휴대폰을 켜고 집 가는 법을 검색했다. 한 시간을 버스 노선이랑 지하철 노선 공부를 하고 잠이 들었다.
셋째날
아침 새벽 4시, 전날처럼 늦잠 자지 않기 위해 일찍 일어나서 짐을 정리하고 발걸음을 나섰다. 해도 뜨지 않아 깜깜해서 랜턴을 키고 걸어갔다. 공복이라 금방 배가 고파서 얼마 안 가서 가방에서 육포를 꺼내 먹었다. 먹으면서 다시 마음을 잡았다. 오늘이 거의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이 떨치지 않았다. 아직 삼계도 들려오지 않았고 천사도 만나지 못했다. 완전히 마음 편히 출발하지 못하고 약간에 급급한 마음을 가지고 출발했다. 해가 점점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 위치가 해가 뜨는 곳에 반대인 산 뒤편이라 걸어가니 뒤에서 점점 환하게 밝혀지는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며 걸었다. 생각 날 때마다 삼계를 물었고 운치 좋은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명상했다. 오늘은 산행 중 가장 많이 걸어야 하는 날이었다. 총 킬로 수는 15.3킬로 엮다. 가는 길에 사람들이 보이면 여전히 먼저 인사하고 같이 앉아서 쉴 때면 먼저 간식을 나눠 드렸다. 그렇게 큰 인연을 맺지 못하고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밥을 먹었다. 복엇국 블록을 물에 넣고 끓여, 그곳에 누룽지를 넣고 먹었다. 사람들이 어디 가느냐고 물을 때면 노고단 대피소로 향한다고 말씀해 드렸다. 그럴 때마다 놀라시면서 종주하러 왔느냐고 다시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면 기특하다고 하시고 멋있다고 말씀을 주시며 내게 작게나마 힘을 나눠주고 가셨다. 가는 길에 내리막이 있었지만, 첫날에 비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한번에 2킬로 식은 쉬지 않고 쭉쭉 갔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표지판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남은 길 7.8킬로" "남은 길 6.8킬로" 정말 끝임 없이 눈에 들어왔고 동시에 휴대폰으로 본 지도에는 6시간이 걸린다고 적혀있었다. 가뜩이나 결과에 집착하는 내가 이런 게 지속해서 눈에 들어오니 연약하게나마 먹고 있었던 내 마음은 순식간에 흐트러져 갔다. 다시 빨리 가려고 괜히 무리하고 땅바닥만 보면서 걸었다. 왜 이 산행을 하고 있는지 목적도 잊은 채 체력이 회복되면 계속 걸었다. 그렇게 노고단까지 5.4킬로 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삼야봉에 도착했다. 가방을 내던져 버리고 물을 가방 옆에서 꺼냈다. 그 순간 바닥에 떨어진 내 휴대휴대전화기이 눈에 들어왔다. 집어서 화면을 봤더니 깨져있었다. 설마 하는 생각에 폰 전원을 켰더니 디스플레이 패널이 나가버렸다. 분명 내 기억에 지퍼도 닫았는데 휴대폰이 튀어져 나갔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다. 그 자리에 앉아서 계속 휴대폰을 주물럭댔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해탈하고 가만히 앉아서 산이 주는 풍경을 바라봤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휴대전화기가 없을 생각을 하니 정말 막막했다. 답도 없고 힘들고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그 자리에 누워서 잠을 잤다. 한 30분 정도 잤을까 눈을 뜨고 일어나서 다시 휴대폰을 보니 내게 왜 이런 일이 찾아왔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여태까지에 행실을 되짚어 보니 지리산을 종주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오로지 정복감에 사로잡혀있는 나 자신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표지판을 보고 휴대폰을 보며 남은 거리와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런 장애물 때문에 정작 중요한 지리산을 즐기지도 못하고 삼계도 못 받고 천사도 못 만나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거두어 가신 거구나 하고 해석했다. 그렇게 휴대폰이 박살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못 보는 상황이 되었지만, 오히려 내 마음은 한결 편안해 졌다. 그렇게 다시 마음 잡고 출발했다. 남은 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정말 천천히 천천히 주변을 살피고 음미하며 걸었다.
그렇게 풀숲도 해쳐가 보고 날개가 없는 새도 만나다 보니 한동안 못 만나던 사람이 눈에 보였다. 부부가 2팀으로 놀러 온 것 같았다. 환한 미소와 밝은 목소리로 먼저 인사드렸다. 그러자 그분들께서 목적지를 물으셨고 어디서부터 왔는지 물으셨다. 중산리부터 시작해서 노고단으로 말씀드리니 점심은 먹었느냐고 여쭤보셨다. 안 먹었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어서 앉아서 빵이라도 먹으라고 하셨다. 나는 정말 감사하다며 이런 행운이 없을 거라고 냉큼 빵을 받아 허겁지겁 먹었다.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보시더니 시원한 냉커피도 한잔 주셨다. 한잔 들이키니 정말 여기가 천국인듯했다. 온몸에 축적된 열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빵을 한 개 더 주셔서 더 받아먹고 잠시 앉아서 선생님들이 물어보시는 대답에 대답도 해드리고 반대로 내가 묻기도 했다. 20살에 혼자서 지리산 종주를 하러 왔다고 하니 놀라워하셨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슬슬 선생님들께서 일어나시는 것 같아 내가 여쭤봤다. "선생님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동행해도 괜찮을까요?" 흔쾌히 허락해주시고 좋아하셨다. 내가 대답도 잘 해드리고 질물도 하니 신 나셔서 많은 말을 하셨다.
그냥 60대 아저씨들이 하는 뻔한 군대 얘기와 정치 얘기, 돈 얘기였다. 그래도 나는 게을리 듣지 않고 정말 열심히 대답하고 질물도 많이 하고 선생님들 말에 맞장구도 쳐 드렸다. 혹시 천사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괜히 더 열심히 했다. 사실은 이분은 내가 싫어하는 딱 선생에 정석이었다. 군대 얘기에 흠뻑 빠지다 보면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다~ 라고 하는 전개와 전두환이냐 사실 좋은 놈이다 라던가 자신이 살아온 길 외에는 생각이란 걸 전혀 하지 않는 보수적이고 보수적이다 못해 선생인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분들이 내게 호의를 베푼 것은 명확하고 받은 것이 있으면 주는 것이 있는 법이거늘 나는 싫은 티 전혀 내지 않고 정말 진심으로 귀담아들었다. 그런데 내가 잘못 만나도 대단히 잘못 만난 부분은 인격적은 부분이 아니라 체력적인 부분이었다. 이분들은 맨날 지리산만 다니시는지 굉장히 빠른 걸음으로 쉬지도 않고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으셨다. 나는 죽을 거 같았다. 무거운 가방에 여태 걸었던 피로도가 누적이 돼서 발바닥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고 어깨는 이미 감각을 잃은 지 오래 돼버렸다. 정말 죽을 것 처람 힘들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4.5킬로에 거리를 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한 번에 달려왔다. 죽을 맛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 노고단에 도착했다. 노고단에 와서도 끊임없이 말을 하시며 내게 말을 걸으셨고 걷는 내내 큰 노랫소리로 새 소리와 바람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셨다. 노고단은 찻길이 깔렸는데 안전요원들은 그 차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신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그 모습이 보기 싫으셨는지 차를 막기도 하고 욕도 하기도 하셨다. 이유불물 하고 무작정 단편적으로 자주 보시는 분들이었다. 그렇게 선생님들이 노고단 대피소까지 데려다 주시고 먼 길 데려다 주셔서 감사드리고 빵과 커피 주셔서 감사드리고 이런 인연 맺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진심으로 말씀드렸다. 그러고 그 선생님들을 떠나 보냈다.
발과 어깨가 더는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가방을 내던지고 벤치에 앉으며 노고단 산을 보고 있었다. 그러곤 갑자기 아까 있었던 일이 갑자기 상세하게 기억이 집어지면서 삼계가 들렸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붙잡아라"
"목적 외에 목적이 있다."
라는 말이었다. 왜 내게 이런 말씀을 주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삼계를 받았다는 감동에 기분이 좋았고 걱정한 부분이 한시름 덜어졌다.
마지막 하산하는 날이 다가왔다. 깜깜한 밤 시끌시끌한 소리에 눈이 떠졌다. 일출 보러 사람들이 왔구나 하고 준비를 맞히고 노고단에 올라갔다. 올라가서 안내문을 읽어보니 "예약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예약도 하지 않았고 예약한 휴대전화기도 없었다. 처음엔 어떡하지 하며 나 스스로 방법을 찾으려고 애를 썼는데 금방 괜찮아 졌다. 노고단에서 일출을 못 보면 아쉽지만 여기서 일출을 보면 되는 거고 옆에 어른들에게 부탁해서 내 예약도 부탁할 수 있으니 딱히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때 딱 눈에 들어온 게 키오스크가 있었다. 가서 보니 그 키오스크로 당일 입장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돈이 없어서 잠시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은 금방 무산되었다. 돈을 받지 않고 예약신청만 하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일출을 보러 노고단에 들어갔다. 남들이 한시라도 일출을 빨리 보러 갈 때 나는 정말 천천히 가면서 주변에 펼쳐진 풍경들을 맛보며 올라갔다.
해가 점점 올라오고 있었다. 앞산에 해가 가려져서 사람들은 시간을 잘못 잡았다며 모두 내려갔지만 나는 끝까지 있으면서 해가 중천에 뜰 때 까지 있어보려고 했다. 그러고 드디어 해가 올라왔다. 사진을 찍지 못해 정말 아쉽지만 해가 산에 가려진 게 아닌 산 두 개에 봉오리 사이 골짝 이에서 서서히 올라오는 풍경이었다. 말로 표현이 나오지 않는 절경이었다. 해가 올라오면서 밝아지는 순간도 보고 평소라면 절대 보지 못하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혼자만 봤다는 뿌듯함에 천천히 내려가서 맛있게 밥을 먹었다. 어제 남은 밥에 누룽지를 넣어서 든든하게 해먹었다. 준비를 마치고 성삼재까지 또 아주 천천히 내려갔다. 기억상 버스가 10시 차였는데 놓치고 다음 거 타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천천히 내려갔다. 또 어떤 삼계를 내게 들려주실지 몰라 급하게 하지 않기로 했다. 성삼재에 내려와 내게 삼계를 들려주신 지리산에 삼배를 하고 버스정류장에 갔다.
생각 보다 시간이 남아서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앞편에 아주머니분들이 5분이 있으셨는데 어디서 왔느냐고 여쭤보셔서 중산리부터 시작해서 왔다고 하니 귤 3개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나눠주셨다. 아주머니들이 나가시고 단체 사진을 찍으려고 하시길래 슬쩍 가서 찍어주고 왔다. 이쪽저쪽 돌아다니면서 주변을 살피면서 어르신 분들이랑 대화도 하고 사진도 찍어 드렸더니 어느새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타면서 잊지 않고 삼계도 여쭸다. 구례에 도착해서 광관 안내소로 갔다. 근처 시장이 어디 있느냐고 여쭤보고 전에 한번 와봤던 기억을 되살려서 구례 5일 시작에 가서 먹은 소머리국밥 집을 찾아갔다.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혼자 먹기엔 오래 기다려야 할 거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합석도 괜찮다고 하니 자리를 내주셨다.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국밥을 먹었다. 맛있게 먹고 나와서 오늘 하룻밤 잠을 잘 모텔을 찾아다녔다. 눈에 당장 보이는 모텔에 갔는데 건물이 낡고 룸살롱과 같이 붙어 있길래 더 둘러보기로 했다. 하지만 근처 모텔이 없어서 결국 처음 왔던 곳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웬걸 시설이 굉장히 좋았다.
어쩌면 삼계 뜻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복이 온다는 거 아닐까 봐 혼자 해석했다.
사장님 마중 나오셔서 체크인은 4시라고 하시고 지금 들어가려면 만 원 추가금이 붙는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 가방이랑 모골을 보시곤 종주하고 오졌냐고 여쭤보셨다. 그러시곤 추가금도 안 받고 원래 금액보다 만원을 더 깎아 주셨다. 그래서 4만 원에 모텔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기분 좋은 날이었다.
짐을 놓고 근처 섬진강으로 가서 무작정 걸으면서 주변을 탐색해 나갔다. 삼계도 여쭤 드렸지만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들릴 테니까, 모텔 방에만 있기엔 아까워서 구례 경기장도 구경하고 아무 골목이나 들어가서 사람들 사는 구경도 하고 해가 어두워 져서 슬슬 들어왔다. 오는 길에 치킨집이 보였던 게 생각이 나서 모텔 사장님께 실내에서 치킨을 먹어도 되느냐고 여쭤봤는데 사장님께서 맛있는 치킨집을 소개해주시고 미리 주문하고 가라고 대신 주문도 해주셨다. 치킨집에 가서 반갑게 인사드렸더니 자연산 자두라며 주시곤 쥐포도 같이 주셨다. 정말 많은 호의를 받고 다녔다. 치킨을 받고 모텔 가서 맛있게 치킨을 먹고 오늘도 가득 찬 하루를 보냈다.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너무 재밌었다.
아침에 남은 쥐포와 육포를 뜯고 버스터미널에 가서 시간표를 확인했다. 곧 가는 10시 차를 타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민형이냐 부산으로 가면 호선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나서 그렇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르신들 말씀 나누는 소리와 바깥 풍경을 보다 보니 금세 도착했다. 도착해서 배가 고파서 눈에 보이는 덮밥집에서 맛있게 한 끼 식사를 하고 다시 지하철을 타러 갔다. 가는 길을 몰라서 지나가는 분들에게 여쭤보고 잘 도착했다. 노선을 확인하고 노포역에 부산종합버스터미널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2호선을 타다가 중간에 1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지하철 1번 칸에 탑승에서 바닥에 앉아서 가방을 끌어안고 갈아탈 역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꾸만 눈이 감겨서 도착 전에 깨겠지 하는 생각에 눈을 감았는데 눈을 떠보니 내려야 할 서면역은 지나있었고 센텀시티라는 곳에서 눈이 떠졌다. 상황파악까지 노선을 보고 알았다. 내려서 다시 반대편으로 타려고 생각했지만, 이곳에 도착한 게 우연 같지 않았다. 이미 지나버린 역이기에 오늘 집에 들어가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삼계를 들려주시려나 더욱 하고 부산에서 유명한 해운대역이 보여서 그곳에서 하차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던 곳과 달리 너무 번화가였고 사람도 많고 고층 건물에 차는 무진장 많았다. 그래서 잘못 온 거 같아서 해운대 터미널이 눈에 보여서 강원도 가는 버스가 있으면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막상 터미널에 가보니 강원도 가는 버스는 단 한 개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해운대 바다 앞까지 가보기로 했다. 여긴 정말 서울에 홍대 같은 곳이었다. 사람 많고 고층 건물에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 이곳은 내가 너무 싫어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자꾸 "결코 우연이 아니다" 라는 삼계 생각이 나서 그냥 앞바다로 가서 걷기 시작했다. 해는 너무 쫴오고 사람들이 우글우글 많아서 오래 못 있고 구석 골목으로 도망쳐 나왔다. 그러고 눈앞에 보이는 모텔에 들어가서 쉬기로 했다. 누워서 낮잠을 자고 저녁이 돼서 해운대 해수욕장을 걸어 다녔다. 저 멀리 바다가 수평선에서 해가 지고 있길래 잠시 앉아서 감상하고 계속 걸었다. 클럽 노랫소리, 왁자지껄한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서 쉽게 집중하기 어려웠다. 해수욕장에 끝에 도착해서 인적이 없는 곳으로 잠시 도망왔다. 달동네에 들려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허름한 곳에 혼자 횟집을 하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내가 2만 원에 회 하나 달라고 부탁했더니 2만 원 짜리 물고기는 없는데 청년이라 숭어 한 마리 해준다고 하셨다. 포장해서 해운대 방파제에서 오징어잡이 배를 보면서 회를 먹었다.
몸이 편해지니깐 슬슬 걱정됐다. 삼계도 못 받았는데 이렇게 놀고먹고 너무 편하게 있는 거 아닐까,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을까, 의심도 들었다. 내가 생각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에 맛있게 회를 먹고 다시 모텔로 돌아갔다. 몸이 편해지니 게을러지고 다시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휴대폰을 거두어 가셨지만 믿지 못했다. 모텔방에 있는 컴퓨터를 켜서 돌아가는 길과 버스 시간표를 확인했다. 7시 30분 차가 있는 걸 확인하고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5시30분에 눈을 뜨고 밖으로 나갔다. 지하철에 도착해서 노선표를 확인하고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루트를 확인하고 지하철을 탔다.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시간은 넉넉했다. 노포역에 도착해서 버스를 예약하려고 예매소로 향했다. 키오스크로 버스표를 확인해보니 7시 30분 버스가 없는 것이었다. 혹시 먼저 출발했나 하고 시간을 확인해봐도 7시 30분까지 8분이나 남아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예매소에 있는 분한테 가서 여쭤보니 버스가 먼저 출발했다는 것이었다.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버스가 먼저 출발했다는 경우는 처음 들어봤다. 다음 버스 시간대는 오후 3시 50분이었다. 현재 시각은 7시 30분 남은 시간은 8시간 20분이나 남았다. 짜증이 나진 않았다. 내 실수로 벌어진 일이 아니었기에 선생님께서 붙잡으셨구나 하고 금방 해석이 됐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 노포역에서 시간 보낼만한 곳이 전혀 없었다. 볼만한 관광지역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하니 너무 지루했다. 가만히 앉아서 8시간을 기다릴 순 없으니 의자를 가방에 두고 시내 쪽이 있을 거 같은 곳으로 걸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지역 구경하러 온 선생님 치고 주변을 눈에 담았다. 계천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서 쭉 걷다가 다시 올라오고 다시 계속 걸었다. 근데 아무리 둘러봐도 시내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더는 인도도 안 나오고 고속도로로 가는 길이라고 적혀있길래 반대 차선으로 넘어가서 지나가다 보였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가 도착했다. 노란 버스에 동글동글한 마을버스였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이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보기로 했다. 버스가 마을 이곳저곳 들리길래 여행 드라이브 왔다고 생각하고 마을을 구경했다. 지나가다가 20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거대 황금 불상도 보고 어느새 시내 쪽으로 도착했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다음이 종점이라고 하셔서 어느 병원 앞에 내렸다. 고등학교도 보이고 당구장도 보이고 PC 방도 눈에 들어왔다. 근처 지하철이 보여서 확인해보니 남산 역이라고 적혀있었다. 고등학교 뒤쪽에 산 둘레길도 있길래 산도 걸었다. 다시 시내 쪽으로 내려와서 이쪽저쪽 기웃거리면서 걸었다. 배도 고프고 날씨도 너무 더워서 밥 먹을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고 눈에 들어온 곳이 PC 방이었다. 고민했다. PC 방 가는 건 진짜 아닌 거 같았다. 갈파 지파 하다 결국 못 이겨내고 PC 방에 들어갔다. 스스로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정말 잘하는 짓인지, 이걸 누구한테 들키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못된 짓을 벌이는 것 같았다. 안 들키면 그만이지 라고 생각하고 배고파서 밥을 시키고 영화도 틀었다. 에어컨 바람을 추울 때 까지 쐬고 컴퓨터를 이리저리 만지다가 결국 지루함을 못 이겨내고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면서도 눈치가 보였다.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았다. 이건 누가 봐도 꼼수 부리는 짓이기에 자신도 죄책감이 들었다.
버스 시간이 다 돼서 슬슬 돌아갔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탑승장에 갔다. 현재 시각은 3시 40분 원래 라면 10분 전에 버스가 도착해서 짐도 실었을 텐데 버스가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50분이 넘어가도 버스가 도착하질 않자 슬슬 불안했다. 그러고 옆에 26번 홀 버스가 출발했다. 갑자기 등골이 싸해져서 예매한 버스표를 보니 승차 홀이 26번이었다. 정신적 혼란이 왔다. 분명 호산 가는 방향이면 삼척 들르겠거니 하고 28번 홀에 삼척,강릉이 적혀있어서 승차표 확인도 안 하고 28번 홀에 서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고개를 들어보니 26번 눈앞을 지나갔다. 생각도 하지 않고 곧바로 전력질주로 버스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당연히 따라잡을 리가 없었고 심리가 나가버렸다. 터덜터덜 이번 버스가 마지막 버스인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근처엔 모텔도 없어서 정말 땅바닥에서 자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엔 쉽게 받아들이질 못했다. 지금까지 대책 없는 여행을 하면서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지만, 이번 일은 선생님께서 벌리신 일이라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는 내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외부에서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라서 괜찮았는데 이번 일은 온전히 내가 실수해서 벌어진 일이라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오늘 PC 방도 다녀온 기억이 나서 괜히 더 마음이 불편했다. 칭찬받고 싶어하고 잘하고 싶어하는 나에겐 이런 일 하나하나가 꼬리표가 달리는 기분이다. 그게 너무 싫었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라고 자신을 다스려 봤지만 쉽지 않았다. 일단 혹시 몰라 예표소에 갔다. 정말 다행히도 막차가 50분 뒤에 있다고 하셨다. 전에 예매한 표는 환불받고 다시 예매했다. 남은 시간 동안 벤치에 누워서 PC 방 갔던 일이라도 숨겨야지 생각했다. 현곡에게 이 사실을 알면 실망 하실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버스 시간이 다가왔고 이번엔 제대로 26번 홀에 서서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끊임없이 거짓 삼계를 생각했다. 삼계라도 제대로 받아와야 이런 일들이 용서될 거로 생각했다. 멋진 말도 생각해보고 별짓을 다 해봤지만, 생각으로 나온 것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었다. 결국, 삼계를 듣지 못한 상태로 호산에 도착했고 시간도 많이 늦은 상태였다. 나는 오히려 늦은 시간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버스도 끊기고 택시도 없는 상황에 삼무곡 까지 걸어간다면 현곡이 인정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그 과정에서 삼계도 들리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이미 지리산 종주까지 하고 온 나에겐 14킬로는 껌도 아니기에 일단 걸었다. 하지만 중간에 비가 쏟아져서 얼마 못 가 꼼수를 부렸다. 지나가는 차마다 태워달라고 히치 하이킹 시도를 했고 집에 사람들이 보이면 불쌍한척하면서 태워 달라는 듯한 뉘앙스로 말씀드렸다. 하지만 빈번히 실패했다. 몇 번 사람들이 차를 멈춰 말도 걸어주셨지만, 절대 태워주시진 않았다. 그렇게 생각 가득 찬 상태로 산양 대교까지 도착했다. 그 과정에서 30대가 넘는 차량이 지나갔지만 한 번도 얻어타지 못했다. 어차피 거의 다 도착했기에 별 상관없었다. 그런데 뒤에서 산양 대교 안으로 들어오는 차를 발견했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현곡 여공이라는 걸, 차가 멈춰 서고 여공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나 반가웠지만, 임무를 완료하고 오지 못한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적어도 얻어타지 말았어야 하는데 학교로 들어가는 차를 타고 같이 들어갔다. 여공 현곡에 잘 다녀왔느냐는 말과 삼계 얻었느냐는 말에 잘하고 왔다고 거짓말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여공과 현곡에 반응이 좋지 않았다. 최대한 힘든척하고 개운한척하며 반응했다. 결국, 학교에 도착했고 살림교실에서 라면을 먹는 순간에도 빨리 멋진 삼계가 필요했다. 짐을 방에 두고 씻고 결국 하루가 지나갔다.
아침 6시부터 눈이 떠졌다. 다시 멋진 삼계가 없나 생각하고 선배들이 올린 삼계 글을 보며 적당히 멋진 말 베껴 써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민혁이에게 글을 언제 다 쓰느냐고 여쭤보시는 걸 시작으로 나와 민혁이에 대한 현곡과 여공에 반응 썩 좋지 못했다. 나는 해운대에 가서 모텔 가서 놀았다는 이유로 잘 갔다 온 거 맞느냐고 정곡을 찌르셨다. 글을 보고 이것들 내보내도 되는지 확인한다고 하셨다.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곡을 찔렸고 계속 현곡 말이 맴돌았다. 글을 쓰면서도 현곡에 말이 맴돌아서 현곡께 찾아갔다. 여쭤봤다. 아까 점심시간 때 왜 꾸중을 하셨는지 여쭤봤다. 그러고 현곡에게 엄청나게 깨졌다. 여행 중에 해운대 갔다 오고 여행 중에 휴대폰 계속 확인하고 그래서 현곡이 너희가 여행을 잘 다녀온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러니 현곡이 나에게 글을 쓰라고 했으니 더 생각하지 말고 글만 쓰라고 하셨다. 다음 일은 다음가서 말해준다고 하셨다. 나도 내가 잘못한 걸 알고 있어서 더욱 변명하려고 했다. 그러자 현곡께서 큰소리로 야단을 치셨다. 현곡도 불안하다고 하셨다. 이것들 내보내도 괜찮은 것인지 자신도 불안하다고 하셨다.
나에겐 너무 속상한 일이었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시고 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 입에서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현곡에게 나는 말썽 안 부리고 정신 차린 아이로 기억되고 싶고 잘 배우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렇기에 현곡한테는 더 거짓말하고 말로만 때우려고 했다. 제대로 못 배웠다는 사실을 알면 실망하실까 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났다. 현곡에게 정곡을 찌르고 현곡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니 슬펐다. 들어가서 글 먼저 쓰라고 하셨다. 쉽게 글이 써지지 않았다. 현곡은 내 글을 보면 배웠는지 못 배웠는지 알 수 있다고 하셨기에 어떻게 하면 더 멋진 말을 쓰고 어떻게 하면 그럴싸하게 쓸 수 있을까 하며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여공이 하신 말씀이 뇌리에 꽂혔다. "너희가 어정쩡 하고 나가면 너희 입에서 현곡 욕만 나오겠지" 이 말을 듣고 먼저 졸업하고 학교와 연을 끊은 선배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저 선배들은 지금 나처럼 꼼수 부리고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런 말이 입에서 나온 거겠지?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너무 불행해 보였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내 입으로 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일지 쓰듯이 글을 쓰기로 했다. 멋진 말도 넣지 않고 사실 그대만으로 이루어진 글을 쓰기로 했다. 그렇게 밤을 새우면서 키보드를 잡았다. 해가 올라오고 있었다. 오전 7시쯤 해가 다 올라오고 현곡이 정원에 물을 주고 계셨다. 현곡께 인사드리고 밖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었다.
"상처받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삼계가 들렸다. 졸려서 눈이 감기기 일보 직전 갑자기 눈이 번쩍 떠졌다. 내게 왜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는지 명료하게 알지 못했지만 어쩌면 거짓 없이 살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삼계를 들어도 큰 변화가 일어난 건 아녔다. 내가 해석한 삼계는 길을 잃었을 때, 조난 당했을 때 실행하는 대처법이라고 생각했다.
무엇 보다 가장 중요한 왜 내게 이런 삼계를 들려주셨는지 알지 못했다. 확신이 안 섰다. 삼계를 들어도 큰 변화가 없었기에 지리산을 다녀와도 속이 후련하지 못했다. 가슴에 돌멩이가 박혀있는 듯 내 여행은 끝이 났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