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장 구속사 강해
성결한 하나님의 나라
출애굽기는 크게 이스라엘의 출애굽에 대한 기사와 성막 건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25장부터 31장까지는 성막 건설에 대한 계시를 그리고 35장 이하는 성막 건설에 대한 기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20장-24장의 율법에 대한 계시와 32장-34장의 금송아지 사건 역시 성막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출애굽기는 사실상 성막 건설에 대한 기사를 그만큼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출애굽과 성막이 그만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외형적 증거이다.
실제로 출애굽의 목적은 야곱의 후손들로 하여금 하나의 나라를 세우는 것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들은 아브라함의 언약에 참여한다는 민족 공동체로서,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백성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이 세울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되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점에서, 나아가 성막이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세울 나라와 성막은 하나의 연결선상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성막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건설할 나라의 전형(全形)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의 통치를 받는 이스라엘 나라의 특수성을 성막에서 그대로 찾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때문에 성막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구조물일 뿐만 아니라 성막 중심의 삶은 이스라엘이 세울 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성막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성을 넘어 그 실체(實體)이기도 하다.
1. 문화 중심으로서의 성막
성막의 다른 집기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향단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데 있어서 가장 현저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구별해 제조한 값비싼 향(34-38절)을 아침저녁으로 향단에서 태울 때 그 향기는 이스라엘에게 몇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향의 향기를 흠향하신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외형적인 표지이다. 나아가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신다는 것은 제사장으로 대신하는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이 여호와 앞에 열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의미는 여전히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통치 아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향을 사르는 행위는 여호와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향단에서 제사장이 아침, 저녁으로 향을 사르는 행위는 단순히 종교적인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적 형태로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막에서 행해지는 다른 모든 의식(儀式)과 절차가 그렇겠지만 아침, 저녁으로 향을 사르는 행위는 하나님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이방 나라들에서 찾을 수 없는 고유한 이스라엘만의 독특하였다. 물론 다른 이방 종교에서도 그들의 신을 향해 향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향을 피우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여호와의 임재와 통치라는 성막의 기본적인 의미를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이방 종교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의미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이방 백성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위치에 서 있음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었다는 점에서만 독특한 것이 아니라 이방 나라의 제사장적 사역을 위해 불리움 받았다는 점에서 구별되는 것이다. 때문에 성막에서 향을 사르는 일은 이스라엘의 평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평화는 곧 이방의 평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스라엘은 모든 이방 나라의 평화를 대변해 주는 위치에 서 있다.
이스라엘의 독특한 위치는 이스라엘의 자손은 누구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려야 한다는 규례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12절). 20세 이상 성년이 되면 부자나 가난한 자나 반 세겔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속전을 회막의 봉사를 위해 사용하게 하였다. 이미 여호와의 구속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그 이상의 속전이라도 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나 반 세겔을 속전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다는 점에서 이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15절). 특히 속전을 거론함에 있어 성막 건설에 대한 계시와 더불어 말씀하셨다는 점에서 속전은 성막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의미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이방 나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독특한 신분을 이해함으로써 더 분명해진다. 성막은 이스라엘만이 가지는 고유한 문화이다. 성막과 유사한 종교적 행위나 제의가 있다 할지라도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현격한 차이를 가진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성막의 제의를 통해 이방 나라와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그만큼 성막은 이스라엘의 사상적, 문화적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라는 신분은 성막 중심의 삶을 사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구별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그 성막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속전을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막이야말로 바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해 주는 유일한 문화 중심체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스라엘이 속전을 드리는 것은 단순히 성막을 유지, 보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여전히 성막 중심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이 이방 나라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이스라엘을 통해 구현됨으로서 온 세상이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드리는 속전은 성막이 건실하게 서게되는 원동력인 동시에 성막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문화의 정체성(identity)과 더불어 이방 나라의 평화를 보장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존재는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2.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된 성결의 의미
반면에 이스라엘이 항상 기억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특별히 구별되었다는 성결 의식이다. 성결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었다는 외형적인 신앙 고백과 동시에 신앙의 내용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제사장들에게 있어서 특별히 성결을 요구하시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회막에 들어갈 때마다 물로 씻어 죽음을 면하도록 물두멍을 성막에 두는 것(20절)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다. 특히 하나님은 제사장의 성결과 성막의 성결을 위해 특수하게 제조되는 몰약을 만들도록 요구하셨는데(23-25절) 이것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성결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사장과 성막의 기물들을 성결하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지는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이유에서든 죄의 오염과 결핍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이러한 반신국적인 죄의 요소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서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통치 역시 성결된 삶으로 그 백성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외형적인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바탕으로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바로 그 나라의 백성이 드러내는 성결된 삶의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성결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로서 그 자태를 드러내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구별할 수 있는 외형적인 척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성결이 무너지고 무시되는 사회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낼 수 없다. 즉 성막을 섬기는 일이나 성막의 제의에서 성결을 찾을 수 없다면, 혹은 이미 오염되어 더 이상 성결을 찾을 수 없다면 거기에서 더 이상 성막으로서의 기능을 찾을 수 없다. 또한 이스라엘에게서 성결을 찾을 수 없다면 역시 거기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특별하게 제조된 관유나 향을 어떤 목적으로든 사적인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드는 자를 살려두지 말라고 하신 것 역시 이런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다(33절, 38절). 그만큼 하나님의 나라는 성결한 나라인 것이다.
출처: 기독신학공동체 글쓴이: 송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