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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신부
성경본문 : 계시록 19: 6-8
○ 어린양의 혼인 잔치
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여러분은 참 복받으신 분입니다. 좋은 찬양대의 찬양도 듣고, 귀한 목사님 오셔서 말씀과 함께 좋은 찬양을 듣게 되어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가 세계적인 부흥사가 된 듯 합니다.
좋은 찬양대에 좋은 음악목사님이 찬양하시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교회 생활을 잘하면 신앙 생활도 잘 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교회를 잘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오늘이 두 번째 시간인데,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 입니다. 당연히 신랑은 예수님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결혼할 사이입니다. 함께 살고자 합니다. 우리가 죽어서 천국가면 천국도 하나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입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신부로 여기셨습니다. 주님은 나와 함께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기를 원하는 분이 신랑되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좋은 신부가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신부는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성경의 7-8 말씀을 보겠습니다.
계19:7-8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신부의 모습입니다.
주님 재림하시는 날 그날에 혼인잔치에 참여해야 할 우리들, 혼인잔치는 즐거운 날 아닙니까? 신랑 되시는 예수님 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 날에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주인공은 예수님 뿐 아니라 주님을 맞이하는 신부,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신부가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 날에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천국은 누가 갑니까?
천국은 죄인이 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예수 믿는 사람이 갑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려면 깨끗해야 합니다.
깨끗하다는 말은
첫 번째, 죄가 없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순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깨끗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분명한 것은 죄가 있으면 깨끗한 신부가 아닙니다.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 천국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깨끗하십니까? 죄가 있으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결혼할 신부가 신랑이 ‘죄가 있다, 허물이 있다’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허물있는 사람과 결혼 안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눈에 뭐가 씌우니까, 이 사람처럼 완벽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알고 보면 다 허물이 있고 죄가 있는 것입니다. 일년만 한번 같이 살아 보십시오. 다 나옵니다.
제가 심방을 가면 준비 안했던 가정은 급히 방바닥에 있던 것을 어디에 집어넣는지 다 압니다.
벽장에 집어 넣습니다. 냄새나는 양말도, 먹다 남은 음식까지 말입니다. 어떻게 알겠습니까? 제가 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압니다. 그러나 손님이 왔다 가면 다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결혼할 때는 우리가 성숙하지 못해서 고린도서에 있는 말씀대로 우리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고 거울을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 때에 가면 다 볼 수가 있습니다.
신랑 신부들 착각하지 마십시오. 일년만 살아보면 압니다. 나중에 속았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희 집사람도 속았다고 합니다. ‘왜 그러느냐?’, 이렇게 머리가 빠질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속은 게 한 둘입니까? 속았는데 어떻게 삽니까? 봐 주고 사는 것입니다. 결혼 할 때 준비할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선글라스 준비하라고 합니다. 현미경을 준비하면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허물이 있습니다. 지금은 완벽하게 보여도 살다 보면 다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저 봐도 못 본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다 죄인입니다. 다 죽게 되어 있고, 지옥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천국 갑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이 봐 주셔서 그렇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보시며 주님 하시는 말씀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 이 말씀은 죄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의 죄를 정죄할 만한 자격이 없거나, 능력이 없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주님은 다 아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도와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도우리라’ 고 합니다.
잘 사는 부부는 그 사람이 완벽히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와 주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 없음을 보시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있음을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을 구원하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친히 우리의 죄를 몸에 짊어 지시고 십자가에서 죄의 대가를 대신 치루고 우리를 의인되게 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구원코자 함이라’, 대신 죄를 감당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깨끗한 신부가 된다고 하는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깨끗케 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깨끗케 한 신부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
이 세마포 옷은 내가 만든 옷이 아닙니다.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세마포 옷을 내가 입는 것 뿐입니다. 입고 싶어서 입은 것이 아니라, 입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세마포 옷을 입어야 주님의 좋은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깨끗한 신부,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하는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주셨음을 믿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을 때 우리는 깨끗한 세마포 옷, 의인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찬송에도 있지 않습니까?
나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 함 얻음은
확실히 믿기는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속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깨끗한 신부는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때문에 얻은 의인이요, 주님이 허락하신 세마포 옷을 입은 것입니다. 그것을 감사함으로 입는 성도, 그분이 그리스도의 신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도 우리가 거룩한 교회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거룩해서 거룩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거룩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 하다 보면, 교회도 이런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교회는 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본질은 다 죄인입니다. 주님이 주신 세마포 옷을 입었기 때문에 우리는 깨끗하다, 의롭다 하는 것 뿐이지, 사람은 질적으로 똑같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이러냐?’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교회는 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왜 거룩한 교회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거룩한 교회를 만듭니까? 죄가 없어서 거룩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고, 죄가 있어도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어느 부대의 말썽꾸러기 병사가 있었습니다. 대장님이 너무나 좋은 분이라서 말로 타이릅니다.
그래도 말 안 들으니까, 감옥에 갑니다. 말 안 들으니까 할 수 없다 해서 좇아 버려야 되겠다 해서 병사들을 모아 놓고 이 말썽꾸러기를 좇아내야 겠다 하니까, 이구동성으로 좇아 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뒤에 있던 한 병사가 손을 들고 이야기 합니다. “장군님, 부탁이 있습니다. 장군님께서 그 말썽꾸러기에게 말씀도 하셨고, 매도 때리고, 감옥에도 가두셨지만, 한가지 안 하신 것이 있습니다. 용서를 안 하셨습니다. 말썽꾸러기 병사는 꾸중을 들으면서 죄값을 치렀고, 매를 맞으면서 죄값도 치렀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용서해 줄때 그 죄의 짐은 늘 자기가 지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해 줄 때 그것에 대한 감사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병사는 용서를 받고, 충성하는 좋은 병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부부생활 잘 하려면 있는 것마다 다 들추어 내어 잘했다 못했다 하지 말고, 주님처럼 너그럽게 용서해 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즘 언론 문제 때문에 노대통령이 골치 아파 합니다. 무엇을 골치 아파 하느냐 했더니, 언론에 ‘사실보도’ , ‘진실보도’ 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과 진실은 어떻게 다릅니까?
‘초,중,고등학교 교장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7%다’ 라는 이야기를 거기까지만 들으면 성 차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어디까지입니까? 그러나 ‘교장의 자격을 가진 사람은 남자가 대부분이다’, 여성이 교장이 될 수 있습니까?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내가 손을 들었습니다. 왜 들었습니까? 때리려 하는 것입니까? 분명히 손은 들었으나,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때리려 하는 것인지, 파리라도 잡으려 하는 것인지, 우리는 무엇을 보면서 없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정죄하고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보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시면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같이 사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가르켜서도 죄인의 친구라고 정죄하고 비판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괴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감당하시고, 그들을 의인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희생하셨습니다. 깨끗한 신부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의인되고 깨끗함을 감사하고 기뻐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시골 마을의 집사님이 술에 취해서 밤길을 가다가 같은 교회 다니는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같은 교회 집사님이 그 분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십니다.”
지금 이야기는 웃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술이 확 깨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어떤 사람들처럼 하나님은 소문내고 다니지 않습니다.”
허물이 있으면 덮어주십시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거룩한 신부의 자세입니다. 거룩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신랑 예수만을 믿어야 합니다. 신부는 신랑되시는 예수님만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천국가게 함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성령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신랑을 넘보면 안 됩니다. 동가숙 서가식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어느 처녀가 선을 보았습니다. 이 총각은 굉장히 돈이 많고, 다른 총각은 돈은 없는데 성품이 좋습니다. 누구하고 시집가야 할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신부가 한다는 말이 “밥은 부자에게 가서 먹고, 잠은 성품좋은 사람에게 가서 자면 어떻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인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분명히 좋지만, 내 삶의 육신의 문제는 회사가 나를 살려 주고, 세상이 나를 살려 준다 생각해서 우리가 믿을 바엔 우리를 천국가게 하시는 분은 예수님뿐 아니라, 내 삶의 축복도 신랑되시는 예수님의 손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고쳐졌냐 물었더니, 그 때 베드로가 하는 말이 행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영적으로만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육적으로도 구원케 하시는 분이 주님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킴스라고 하는 유명한 가수가 빌리 그레함 목사님과 함께 선교팀으로 한국에 왔던 적이 있습니다. 소경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인도를 해 주는데, 이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믿음 생활을 잘 합니까? 나는 맹인이 된 것을 늘 감사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앞에 계단이 있다고 하면 그대로 믿고 내려 갑니다. 언덕이 있으면 그 분의 말대로 따라 갑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주님이 내 길을 인도하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하라는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 대부호 록펠러도 어떻게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느냐는 말에 어머니의 10가지 유언을 이야기 해 줍니다.
① 하나님을 친 아버지로 섬겨라
②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③ 오른쪽 주머니에는 항상 십일조를 준비해 두라
④ 원수를 만들지 말라
⑤ 예배를 드릴 때 항상 앞자리에 앉아서 드려라
⑥ 항상 아침에는 그 날의 목표를 세우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⑦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를 드려라
⑧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⑨ 주일 날 예배는 꼭 본 교회에서 드려라
⑩ 아침에는 제일 먼저 말씀을 읽어라
록 펠러는 세게 제일의 거부로서 손꼽혔던 사람이며, 미국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부와 명성을 타고 났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그는 지독히도 가난하여서 하루 4센트의 보수를 받으며 뜨거운 감자밭에서 일을 했으며, 장래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떻게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었으며, 역사상 가장 많이 남에게 자선을 베푼 사람이 되었고, 98세까지 무병장수한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그가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며 의지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주일이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교회에 나가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댄스파티 같은 곳은 아예 출입을 삼갔고, 식사 때마다 기도를 빠뜨린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하루도 쉬지 않고 성경을 읽으며 말씀을 묵상했고, 정결하고 바르게 살아 주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유일한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않겠습니까?
성도로서의 구별되고 정결한 삶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 인 것입니다.
예수님만 바라 보는 것입니다. 일편단심 주님만 바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끗한 신부요, 참된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소위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구원하셨고, 육적인 구원은 내가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그게 문선명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이 영육으로 되어 있는데, ‘영은 주님이 구원하시지만, 육은 내가 구원한다. 나를 따르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단들이 우리 나라에 얼마나 많습니까? 통일교가 그렇지 않습니까? 북한에 관광단이 있는데, 그 관광단에 가면 안 됩니다. 평양을 가면 꼭 정주를 갑니다. 정주는 문선명의 고향입니다. 통일교의 성지입니다. 이북가고 싶다고 해서 따라가면 안 됩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은 천주교 평화 통일 가정당이라는 정당을 만들어서 33지구 정당을 이미 만들고 선거체제에 들어가서 이번 4.15 총선에서 많은 국회의원을 내겠다고 작정을 하고 있습니다.
늘 하는 이야기는 육체적인 것은 우리가 구원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구원파 박옥수는 성경집회를 한다고 잠실체육관에서 한다고 플랫카드를 붙이고 전단지를 뿌려 놓지 않습니까? 그것은 악질적인 구원파입니다. 무료 성경 신학원이 있어서 무료로 가르쳐 준다는 곳도 이만의 신천지 라는 이단입니다.
안성 증인 하나님의 교회는 안성의 부인 장길자가 하늘어머니라고 하면서 시내 빌딩가마다 기도원을 차려 놓았습니다. 기도원이라 하면 산에 있는 줄 알았더니, 빌딩마다 얼마나 많은지 축복기도원, 생명기도원, 치유 기도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이단입니다. 절대로 따라가면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믿음 생활 잘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잘 해결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깨끗한 신부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교리적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깨끗해 지는 것은 내가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죄를 갚아주셨음을 믿는 것이고, 교리적으로 깨끗해지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신 줄로 믿습니다’ 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마포 옷을 입어도,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잘 벌어다 주고, 나쁜 짓 안하면 남편과 아내 노릇의 전부인 줄 아십니까? 부부지간에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 주님이 우리를 무엇 가지고 판단하시겠습니까? 사랑 가지고 판단합니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가진 사람이 있는데 많이 남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충성을 했느냐가 문제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입니다. 부자의 헌금이 많은 것이 아니고,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의 크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크기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사랑이 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제가 시 한편을 읽겠습니다.
< 이러한 아내가 되겠습니다 >
눈이 오는 한 겨울,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 당신의 퇴근 무렵에
따뜻한 붕어빵 한 봉지 사들고, 당신이 내리는 지하철 역에 서 있겠습니다.
아무 말 하지 않고도 당신의 피로한 어깨를 느끼겠습니다.
당신이 들어오는 당신의 집에 향내나는 그런 집으로 만들겠습니다.
때로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로, 때로는 보리차 끓이는 냄새로
때로는 만개한 소국들의 향내로, 때로는 진한 샤넬의 향기로
말을 하지 않아도, 당신이 늦게까지 불켜놓은 당신의 방에서
담배연기 자욱해 하며 책을 볼 때 나는 슬며시 레몬 넣은 홍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미모와 외모로서 당신 곁에 잠시 머무르는 여자로서가 아니라
나는 당신의 가장 가까운 벗으로서, 있어도 없는 듯 없으면 서운한
그런 맘편한 얘기 털어 놓을 수 있는 그런 아내가 되겠습니다.
잠을 청하기 위해 불꺼놓은 보금자리, 대화하다가 동이 트는 것을 보아도
서로의 대화로 인하여 풍성해진 우리 맘을 발견하겠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나를 빌어 태어나는 아이가 장성해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당신으로 꼽는다면
나는 영광스럽게도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여도 행복하겠습니다.
늘 사랑해서 미칠 것 같은 꼭 내것으로만 여겨지는 그런 아내가 아니라,
아주 필요한 사람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공기같은 아내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행여 내가 세상에 당신을 남겨두고, 먼저 떠나는 일이 있어도
가슴 한 구석에 많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그런 현명한 아내가 되겠습니다.
지혜로와 슬기로와 당신의 앞길에 아주 밝은 헤드라이트 같은 불빛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호롱불처럼 아니 반딧불처럼 당신 가는 길에
빛을 비출 수 있는 그런 아내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내가 흰서리 내린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당신은 내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였소. 당신을 만나 행복했었소.”
라는 말을 듣는 그런 아내 되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신부라면 우리는 이런 사랑을 마땅히 주님께 드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래 된 이야기입
니다만, 이 이야기를 하고 마치겠습니다. 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는 칭찬을 받았지만,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받지 않았습니까?
1977년 중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 한분과 그리스도인 소녀 두명이 예수 믿는 다는 것 때문에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목사님을 불러다가 “당신은 가족도 있고, 자식과 교회도 있지 않소? 당신이 총을 쏴서 이 소녀 둘을 죽이면 당신을 살려 주겠소.”라고 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이야기를 철썩같이 믿었습니다. 동료 죄수들에 의하면, 그 때 소녀들은 죽음을 앞두고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답니다. 신앙을 저버릴 수 없다고 하면서 편안한 모습으로 사형장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사형장에 나아갔는데, 사형집행자가 누구인가 봤더니,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목사님이었습니다.
이 소녀 둘이 무슨 이야기를 속삭이더니, 둘이서 목사님께 다가와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저희를 쏘시기 전에 목사님이 저희를 위해서 해 주신 일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목사님은 저희에게 세례를 주셨고, 영생의 길을 가르쳐 주셨고, 지금 총을 들고 있는 그 손으로 거룩한 성찬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이 우리에게 행한 선한 일을 갚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연약해서 무시무시한 죄를 범하지만, 그것이 사해질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목사님이 지금 우리에게 하시려는 말을 뉘우치신다면, 도마처럼 낙망하지 말고, 베드로처럼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생각이 목사님의 실패에 대한 분노가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은 흑암의 시절을 겪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죽겠습니다.”
소녀들은 다시 무릎을 꿇고 절을 했습니다.
소녀들은 자신의 목사님의 배반 속에서도 주님이 고난을 주셨음을 믿었던 것입니다.
목사님의 심장은 한순간 굳었습니다. 목사님은 소녀들을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은 목사님을 총살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믿지 마십시오.
이 일은 키앙세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소녀들처럼 순수한 사랑이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할 것은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 분이 목사님일 수도 있고, 장로님 일수도 있고, 그 누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만 사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주님의 깨끗한 신부로 하나님의 교회를 충성하며 섬겨나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