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삼국지’ 13번 읽었다” 논술 바람에 백만권씩 팔렸다
이문열, 시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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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삼국지(하)-나는 삼국지를 어떻게 번역했나
1988년 봄 열 권으로 된 평역(評譯) 『삼국지』를 출간하자 내가 한문에 조예가 깊다는 세간의 평판은 더욱 확고해졌다. 우리 집안인 재령(載寧) 이씨 문중(門中)에도 내가 한문 좀 한다고 알려졌을 정도다. 하지만 다른 작가들처럼 나 역시 한문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 세대에 불과했다. 지난 회에서 밝혔듯이 20대 초반 막연히 한문을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고향 석보(경북 영양군 석보면)의 서당을 서너 달 다녔을 뿐 나머지는 사실상 독학이었다.
한 번은 집안 어른이 가보처럼 전해지던 문집(文集)을 번역해 보라고 가져오셨다. 그런데 문어체 문장인 문언문(文言文)이 섞여 덜 어려운 데다 내용을 익히 아는 『삼국지』를 번역하는 것과, 오래된 문집을 번역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비문(碑文)의 경우 한자를 읽을 수조차 없는 것도 꽤 됐다.
할머니에게 배워 한자는 인이 박인 문자
물론 한자는 내 영혼에 인처럼 박인 문자다. 어려서부터 한자 없는 문장은 상상할 수 없는 환경이다 보니 내게 한문은 참 익숙하고 쉬운 것이었다. 그렇게 된 데는 의성 김씨 집안의 종녀(宗女)였던 내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진외할아버지(할머니의 아버지)는 근동의 빼어난 학자셨지만 당시 관행대로 할머니에게 글을 가르치진 않으셨다고 한다. 대신 할머니를 사랑방에서 키우다시피 하셨는데 똑똑했던 할머니는 어른들 귀동냥만으로 한자는 한 글자도 모르는 까막눈이면서도 말로는 천하의 문장가셨다. 내게 천자문이나 두보(杜甫)의 시를 가르치실 정도였고, 『삼국지연의』도 얘기꾼처럼 재미있게 들려주셨다.
어려서 숫자도 할머니한테 배운 셈인데, 돌이켜 보면 『삼국지』를 그때 접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들려주신 노래는 이런 것이었다.
일검참사 한태조(一劒斬蛇 漢太祖), 이검불사 제왕충(二劒不死 齊王忠) 삼대명장 제갈량(三大名將 諸葛亮), 사면충돌 초패왕(四面衝突 楚覇王), 오관참장 관운장(五關斬將 關雲長)….
끝도 없이 이어지는 그 노래를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외웠다. 물론 할머니는 한글 가사만 가르쳐주셨다. 노래의 한자 가사는 나중에 내가 꿰맞춘 것이다. 알고 보니 중국의 주요 군주와 삼국지의 등장인물을 숫자와 연관시켜 풀어낸 ‘숫자요(數字謠)’였다.
한태조가 한 칼에 뱀을 베고, 전국시대 제나라 왕충이 두 번 칼을 맞고도 죽지 않는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한태조야 항우와 천하를 다퉜던 한나라의 창업 군주 유방이지만, 제갈량과 관운장은 『삼국지』의 인물들 아닌가. 자연스럽게 『삼국지』와 숫자를 함께 익히게 됐다. 그만큼 『삼국지』 이야기는 당시 민간에 깊숙하게 퍼져 있었고, 내게도 어려서부터 친숙했다.
“평범하면 죽는다” 무섭게 번역
번역 역본으로 사용한 『삼국지연의』 모종강본. 사진 이재유
그럼에도 그런 내력을 『삼국지』를 평역할 만하다는 근거로 내세우기는 어려울 터였다. 지금 같으면 훨씬 신중하게 번역했겠지만 그때는 간도 컸다. 명말 청초의 문장가 김성탄이 서문을 붙인 『삼국지연의』 모종강본을 매일 한 페이지씩 번역해 원고지 12매씩 신문 연재 분량을 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