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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
말씀 : 누가복음17:34~37.
요절 : 누가복음17:37, [그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에서 그런 일이 있으리이까? 하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어디든지 시체(屍體)가 있는 곳 거기에 독수리들이 함께 모이리라, 하시니라.]
우리 교회는 주님 오심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매 3개월마다 일요일 오전 11시 설교하기 전에 [주의 만찬]을 합니다. 이때 부드럽고 달콤한 카스테라 빵이 아닌, 누룩 없는 빵, 즉 설탕 같은 단맛을 내기 위한 당분이나 잘 부풀게 하는 누룩(이스트)도 넣지 않고 만든 빵을 나눕니다.
고전5:7~8, [그러므로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 그러면 너희는 누룩 없는 자들이었듯이 너희가 새 덩어리가 되리라.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물이 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의와 사악함의 누룩으로도 말며 순결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빵으로 하자.]
그리고 우리들의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귀하신 보혈을 기억하기 위해,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 잔을 서로 나누며 주님 오실 때까지 그분을 기억하여 주의 만찬(성찬식)을 행합니다.(마26:26~30, 막14:22~26, 눅22:17~20).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므로(고전11:23~26)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신 다는 약속을 믿는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이 일을 행하여 주님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이 예식을 [주의 만찬 ; Lord's supper]이라 부릅니다. 만찬이라는 말은 맛있는 음식이 풍성한 흥겨운 잔치를 상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 만찬]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될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함께 나눈 저녁식사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먹는 식사가 무슨 맛이 있겠으며 즐거움이나 기쁨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슬픔과 경직된 분위기일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이 만찬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진수성찬의 산해진미가 아니라, 밀가루 반죽을 얇게 만들어 구운 전혀 맛을 내지 않은 전병이며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 잔이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쉬운 진수성찬의 저녁식사가 아닙니다. 그것이 [주의 만찬]입니다.
기록된 성경의 만찬 중에 가장 화려하고 기쁜 것은 하늘에서 있을 [어린양의 혼인 만찬 ; the marriage supper of the Lamb.]일 것입니다. 구원받아 들림 받은 교회가 어린양의 신부가 되어 어린양과 혼인 잔치를 치르게 되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할 일입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 ; supper of the great God;]이란 독특한 만찬이 또 있습니다. 이 만찬은 [주의 만찬]이나 [어린양의 혼인 만찬]과는 모든 것이 다릅니다.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주님의 구원 사역을 기억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행하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어린양의 혼인 만찬](계19:9)은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와 하늘에서 있을 최고의 만찬이므로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 반면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은 주께서 이 땅을 심판하실 때 있을 것으로 매우 특별한 만찬입니다. 이 만찬에 초대받는 손님들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모든 날짐승들입니다. 특히 독수리들과 까마귀들과 날짐승들이 이 만찬의 고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먹는 음식은 다름 아닌 사람들의 살과 그들이 타고 다니던 말들의 살입니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일입니까? 사람들이 들으면 대단히 엽기적인 이야기요, 흉측하고 듣기 거북한 말입니다. 공중에 나는 모든 새들이 배부르게 먹게 될 음식은 신분이 다양한 사람들의 살입니다.
계시록19:17~18,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 안에 서서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 모든 날짐승을 향해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너희는 와서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에 함께 모여 왕들의 살과 대장들의 살과 용사들의 살과 말들의 살과 말 탄 자들의 살과 자유로운 자와 매인 자, 작은 자와 큰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21, [그 남은 자들은 말 타신 분의 검 곧 그분의 입에서 나온 검으로 죽임을 당하니 모든 날짐승들이 그들의 살로 배를 채우더라.](계 19:21),
이렇게 아주 특별한 만찬이 주님께서 이 땅에 심판주로 재림하실 때 있게 됩니다. 이 만찬에 날짐승들의 음식으로 자기 살을 제공하고 싶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들은 세상의 신분과는 전혀 상관없으며 그 신분은 새들이 배를 채우는 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에 나올 음식은 본문에서 살펴본 대로 큰 환란 중에 공중으로 채여가지(휴거) 못하고 땅에 거하는 자들로써 왕들의 살과 총대장들의 살과 용사들의 살과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나 작은 자나 큰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의 살과 그들이 타던 말들의 살입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는 단 한 사람도 자기 육신의 살이 날짐승들의 만찬 음식으로 제공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물론 자신이 구원 받았음이 확실하고 절대 지옥에 가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확신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살을 날짐승들에게 고기로 주지 않아도 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은 구원받은 사람들 모두가 들림 받은 후, 대 환란 마지막 시점에 땅에 거하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일어날 일이므로 오늘날 구원받은 교회는 해당되는 문맥이 아닙니다. 그런데 구원의 확신이 없고 큰 환란 전에 들림 받지 못하고 이 땅에 남아있는 자들은 해당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우리들의 구원은 이토록 값진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은 이토록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성경의 큰 환란장이라는 마태복음 24장 28절을 봅니다. [어디든지 사체(死體)가 있는 곳, 거기에 독수리들이 함께 모이리라.] 했습니다. 환란 기간 동안 먹지 못해 굶어 죽은 자들, 전쟁으로 죽은 자들, 지진이나 각종 질병이나 자연재앙으로 죽은 자들, 환란의 마지막에 재림하시는 주님의 심판으로 죽은 자들의 사체로 가득한 땅을 깨끗하게 청소할 독수리들과 모든 날짐승들이 포식하는 전무후무한 잔치인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이 곧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공중 재림과 교회가 채여 올려 가는 사건(살전5:16-17)과 큰 환란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휴거 사건 때 일어날 일에 대해 가르치고 설교한 내용 중 잘못 알고 잘못 가르치고 잘못 설교한 부분이 있어 바로잡기 위하여 오늘 이 본문을 택하여 설교합니다.
저는 먼저 과거에 여러분들에게 성경을 잘못 가르친 것에 대해서 사과드리며 용서를 빕니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아침에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성경공부한 뒤에 이메일로 질문한 김ㅇㅇ 형제에게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감사드립니다.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을 감사하는지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오늘 본문으로 택한 누가복음 17:34~36의 내용은 휴거 때에 일어날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이는 주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입니다.
다 같이 본문을 다시 읽고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며, 두 남자가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 하시니라.](눅17:34~36),
이 내용은 휴거 때 들림 받을 자들과 이 땅에 남겨질 자들로 가르쳐져 왔으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이 구절에서 붙잡혀 가는 자들은 개역성경처럼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가 아니며, 휴거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자들이 아니라, 큰 환란 때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의 음식으로 독수리들과 모든 날짐승들 앞에 던져지기 위하여 붙잡혀 가는 자들입니다.
일요일 아침 10시 성경공부 시간에 주님의 재림에 대한 공부를 한 김ㅇㅇ 형제가 예배 후 집에 가서 이메일로 제게 질문을 했는데, 제가 예배 후 급하게 천안에 심방을 다녀오는 바람에 월요일 아침에 이메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메일 내용이 이러합니다. ........ 서두는 생략하고 【 .........그리고 일요일 오전에 성경공부를 하며 이상하게 여겼던 눅17:34절 말씀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을 터인데........ }에서 "두 남자"로 번역한 "be two men"을 "두 사람"으로 번역해야 더 바른 것 같은데요. 두 남자로 번역해놓으니 마치 구원받은 동성애자 두 남자가 한 잠자리에 누어 있다가 휴거되는 모습이 되어 버리니 말입니다.】........ 내일 저녁에 뵙겠습니다. 김ㅇㅇ.
저는 이 메일을 읽고 곰곰이 생각하고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으면서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클라렌스 라킨 형제의 세대적 진리를 살펴보고 럭크만 형제의 마태복음 주석을 살펴보아도 이 구절은 동일하게 성도들의 휴거와 주님의 공중 재림 문맥으로 설명되었으며, 서울의 김OO 목사님의 마태복음 강해 테이프를 들어 보아도 별다른 해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 누구도 두 남자가 한 잠자리에서 같이 잔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사람이 없습니다. "be two men in one bed" 물론 두 남자가 한 방에 함께 잘 수는 있겠으나 김 형제가 생각하기엔 장성한 두 남자가 한 침대에서 같이 잔다는 것은 꼭 동성애자들을 연상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안목으로 성경을 정독할 때 엄청난 수확을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를 바르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 주석과 성경 공부 교재들을 찾아보았으나 그것들도 본문은 동일하게 휴거 문맥으로 설명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깊이 기도할 때, 그 확실한 대답은 역시 주 성령께서 조명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늘로 들려 간(휴거) 것이 아니라 땅의 다른 곳으로 붙잡혀 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론 두 남자 중 한 명만 휴거된 것도 아닙니다.
우선 본문에 거론된 사람들은 구원이나 휴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로, 환란이 끝나가는 시점인 주님의 지상 재림의 시기에 땅에 거하는 믿음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들 중 하나가 들림 받는다고 배웠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고정관념이 생겨서 선뜻 이해하기가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일 수도 있고 범죄자들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부자지간일 수도 있고 형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구원 받은 자들이 아닙니다.
제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어떤 유명한 사람이나 박사나 목사의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시는가?”가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은 들은풍월로 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기준은 언제든지 성경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성경을 공부하라, 상고하라. 묵상하라, 연구하라, 탐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행17:11, [이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자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며 그것들이 그러한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므로] 여러분들도 목사의 말만 듣고 그대로 믿지 말고 성경이 과연 그러한지 자세히 살펴보시는 수고가 있기 바랍니다. 목사나 성경 교사는 성경을 이해하고 믿는데 도움을 주는(guide) 역할을 할 뿐입니다.
제가 그러하듯이 유명한 사람이나 럭크만 박사나 클라렌스 라킨 형제라 할지라도 실수하거나 행간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죄인에게서 태어난 그 누구에게도 온전하고도 완벽한 것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사람들의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잘생기거나 예쁘거나 키가 크거나 작거나, 젊거나 늙거나, 학식이 있거나 없거나 말을 잘하거나 못하는 것을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그들이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성경을 온전히 믿고 탐구하는 지로 사람을 평가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사람을 고귀한 사람으로 보십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다가 내용이 이상하거나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을 발견했을 때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매우 값진 보물을 캐는 행운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발명가들이 사소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듯이 성경 또한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눅17:34~36)과 같은 내용이 마태복음 24장에도 나옵니다.
마24:40~41, [그 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요, 두 여자가 방앗간에서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 이 사건을 저를 포함한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거의 휴거 때에 일어날 것으로 배우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휴거라는 소설책을 쓴 사람도 이 말씀을 근거로 책을 쓰고 있습니다. 설사 휴거가 그렇게 전개되더라도 이 구절의 일차적인 내용은 그런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많은 찬송가나 복음성가가 이 내용을 교회의 휴거 사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설교했고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저 역시 배운 대로만 가르치고 성경이 과연 그러 한가 자세히 탐구하지 못했음을 시인하고 회개하며 잘못을 빌고 바로잡고자 합니다.
구태여 변명을 하자면 이 땅에 100여 년 동안 사용해 온 한글 개역성경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역 : 마 24:40-41)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데려가고 버려둠을 당한다니까 휴거 사건으로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면 이 말씀은 도대체 어떤 말씀이며 어디에 적용되어야 할 말씀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문맥의 전후 내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들이 기록된 장들을 우리는 환란장이라고 부릅니다. 환란 때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24:21, [그 때에 큰 환란이 있을 터인데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이때까지 그런 환란이 없었고 이후에도 결코 없으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마24:40~41,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요, 두 여자가 방앗간에서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했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이 일은 7년의 큰 환란의 시작 전이 아니라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이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일어날 일들입니다. 이 문맥들을 잘못 적용함으로 교회의 환란 통과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7:26~30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아들인 주님께서 지상에 나타나실 날을 [사람의 아들의 날들]이라고 하시면서 노아의 날들과 롯의 날들을 예를 들고 있습니다. 노아의 날들은 홍수가 온 세상에 임하는 환란이요, 롯의 날은 소돔과 고모라에 임하는 유황불이 쏟아지는 환란입니다. 노아나 롯의 가족들은 환란 전에 피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나머지 사람들은 환란 가운데에서 모두 멸망당합니다.
누가복음 17:34~36절의 내용이나 마태복음 24:40~41절의 내용은 시기적으로 환란 전의 공중 재림과 휴거 사건이 아니라 환란이 끝나가는 주님 지상 재림의 시점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들은 큰 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있을 교회의 들림(휴거) 사건이 아니라 환란의 끝이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채여 올라가고 구원 없는 사람은 남겨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의 들림은 환란 전에 일어납니까? 혹은 환란 중간에 일어납니까? 아니면 환란 후에 일어납니까? 물론 이런 다양한 설들을 믿는 사람들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설을 믿지 않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계시록을 공부할 때에 이 땅에 환란이 일어나기 전에 교회는 채여 간다고 배웠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신부요, 휴거는 주께서 자신의 신부를 이 땅에 환란이 임하기 전에 채어 가시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문맥상의 시기적으로 볼 때, 두 남자가 한 침대에서 자다가 하나가 붙잡혀 가는 것이 휴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두 여자가 맷돌을 갈다가 하나가 붙잡혀 가는 것이 휴거되는 것이 아니며, 두 남자가 들에서 일하다가 하나가 붙잡혀 가는 것이 하늘로 데려가는 휴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선배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가르쳐 주었기에 성경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성경 지식의 대부분이 미확인된 들은풍월일지도 모릅니다. 잘못 번역된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도 한 원인입니다. 저희들은 개역성경을 읽으면서 일점일획도 가감하면 안 된다는 말씀 때문에 감히 성경이 잘못 번역되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개역성경에는 눅17:34,35,(36은 없음),[.......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여기 [데려감을 당하고] 했기 때문에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휴거의 내용으로 수용했던 것입니다.
역시 마태복음24:40~41절에도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아예 휴거의 상황으로 받아들이도록 번역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데려가는 것과 붙잡혀 가는 것은 너무나 다른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주님께서 데려 간다고 생각하도록 성경이 그렇게 번역되었습니다.
이제는 바른 성경이 있으므로 제대로 읽고 비교해보고 주님의 말씀을 올바로 받아들여야 주님의 뜻대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구절로 단정 지으면 안 됩니다. 전후 구절을 살펴보아 이것이 어느 시기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가를 올바로 나누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책망 받지 않습니다.
분명히 오늘 구절들은 환란의 마지막 때 주님께서 지상에 재림하실 시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읽을 때 34절로 36절까지만 읽지 말고 단락이 끝나는 37절까지 읽고 전체 문장을 함께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중대한 실수는 마지막 37절을 읽지 않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둘 중 하나는 하늘로 올라갔고 하나는 버림받은 것이라고 간주하는 잘못된 해석이 있었으며, 그 데려간 곳이 어디인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잘못까지 범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의 상식이나 자신의 지식을 온전한 것으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2, 주님께서 사용하신 단어(말씀)를 대조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휴거를 언급하는 중요한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4:16~17절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누가복음 17장이나 마태복음 24장에서는 둘 중에 하나가 붙잡혀 가고 하나는 남겨진다고 했습니다. the one sha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그러나 지금 읽은 데살로니가전서 4:17은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용된 단어가 다릅니다. ..........sha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입니다.
붙잡혀 가는 것은 벌 받거나 심판 받으러 끌려가는 강제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구름들 속으로 올라간 게 아니라 땅의 다른 장소로 붙잡혀 갔습니다. 그러나 휴거는 공중(위)으로 채여 올라감으로 caught up 했습니다. 채여감은 땅에서 하늘로 공간 (수직)이동하지만, 붙잡혀 가는 것은 땅에서 다른 지역으로 구간(수평) 이동하는 것입니다. 휴거는 나팔 소리를 듣는 순간 홀연히 변화되어 올라가지만, 붙잡혀 가는 것은 변화되는 것이 아니고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휴거는 살아 있는 성도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잠든(죽은) 성도들에게 먼저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전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 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으켜지며/ 우리가 변화되리니], 라고 말씀했습니다.
휴거는 살아 있는 사람이든 죽어 이미 장사된 사람이든 구원 받은 자들이 모두 채여 올라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누가복음 17장에는 구원이라는 단어나 죽은 자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휴거를 시간적으로 따지자면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고 휴거는 나팔 소리와 관계있습니다. 그 나팔 소리는 들림 받는 대상들에게만 들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한밤중에 자고 있는 사람을 붙잡아 가거나, 집에서 맷돌을 갈고 있는 사람을 다른 한 사람이 보고 있는 가운데 붙잡아 가거나, 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또 한 사람이 보는 가운데 붙잡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는 달리 주님의 공중 재림과 휴거는 구원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기에 땅에 남을 자들에게는 ‘도둑같이’라는 표현이 쓰였습니다.
살전 5:1~2, [그러나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주의 날이 밤의 도둑 같이 그렇게 오는 줄을 너희 자신이 완전히 아느니라](살전5:1~2), 그런데 오늘 본문은 독수리들의 밥으로 던져지기 위하여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보는데 붙잡혀 가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쓰고 성경을 살펴보았다면 이를 분명히 분별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휴거의 시간이 혹 밤일지 혹 낮일지 혹 새벽일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밤에 잠자리에서 붙잡혀 가는 사람, 들밭에서 일하다 붙잡혀 가는 사람, 집 안에서 맷돌을 갈다가 붙잡혀 가는 사람들을 확대 해석하여, 지구는 둥그니까 어느 곳은 밤에 이 일을 당할 것이고 어느 곳은 낮에 일하다가 이 일을 당할 것이고 어느 곳은 식사 준비를 하다가 이 일을 당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사건과 휴거의 사건은 완전히 별개입니다. 물론 공중 재림이나 지상 재림의 때와 그 날과 시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주의 하라. 깨어 기도하라. 이는 그때가 언제인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막13:33), 그 중에서도 주님의 공중 재림은 하늘로 채여 올라가는 자들 외에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은 알 수 없으며 주님을 볼 수도 없습니다.
또 막13:35, [그러므로 너희는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어느 때에 올지 저물 때일지, 한밤중일지, 수탉이 울 때일지, 아침 녘일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공중 재림이나 주님의 지상 재림이나 동일하게 2중 적용할 수 있으나 대상은 다릅니다.
3, 그들이 붙잡혀 간 장소와 채여 올라간 장소가 다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교회 시대 성도들의 채여 올라간 곳은 공중입니다.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그들이 붙잡혀 간 곳은 어디입니까? 이것이 결정적인 해답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눅17:34~36절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이 주님께 그들이 어디로 붙잡혀 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과 주님의 대답은 눅17:37절입니다. [그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에서 그런 일이 있으리이까? 하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어디든지 시체가 있는 곳, 거기에 독수리들이 함께 모이리라, 하시니라.] 그들이 붙잡혀 간 곳에서 죽어 시체가 되어 공중에 나는 새들의 밥으로 던져 진 것입니다.
눅17:34,35,36절에서 둘 중의 하나가 붙잡혀 갔는데 어디로 붙잡혀 갔는지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그 답변인 37절을 제대로 읽고 살펴보았더라면, 이 문맥이 결코 휴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탐구하지 않아서 독수리와 모든 날짐승들의 밥이 되기 위하여 붙잡혀 간 사람들을 휴거되었다고 잘못 가르치는 꼴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웃기고 참담한 일입니까? 성경을 깊이 보지 않아 지식이 없으면 잘못을 저지릅니다.
개역 성경에는 (눅 17:36)이 (없음)으로 35절에서 문맥이 끊겨 37절은 눈여겨보지 않게 됩니다. 성경을 가감하거나 잘못 해석하면 그리스도의 교리가 엉망이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잘못된 성경을 따라 교리적으로 잘못된 찬송가나 잘못된 복음성가를 불러 왔습니다. 그 내용이 대단히 복음적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복음 송 같지만, 이것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상황을 가르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찬양집 “예수” 21장의 ‘예수님 맞을 준비 됐나?’ 후렴 부분을 살펴봅니다.
[두 사람이 함께 맷돌 갈다가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자다가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남겠네, 예수님 맞을 준비됐나?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가다가 두 사람이 함께 말을 하다가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만 남겠네, 예수님 맞을 준비됐나?]
둘 중에 한 사람이 독수리의 밥으로 던져지기 위해서 붙잡혀 갔는데 이를 휴거된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습니까? 그들이 끌려 간 곳은 사형장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에 초대된 공중의 모든 날짐승들을 위한 만찬의 음식용으로 끌려간 것입니다.
계19:17~18을 다시 봅니다.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 안에 서서 하늘 한 가운데로 날아가는 모든 날짐승을 향해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너희는 와서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에 함께 모여 왕들의 살과 대장들의 살과 용사들의 살과 말들의 살과 말 탄 자들의 살과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 작은 자와 큰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이들이 누구입니까? 구원 받지 못하고 큰 환란 가운데 땅에 거하다가 죽는 자들입니다.
이 말씀과 본문 눅17:37을 잘 비교해 보시고 마24:28절을 비교해 보시면 더욱 확실해질 것입니다. 마24:28, [어디든지 사체(死體)가 있는 곳, 거기에 독수리들이 함께 모이리라.], 눅17:37하, [.......어디든지 시체가 있는 곳, 거기에 독수리들이 함께 모이리라, 하시니라.] 이보다 더 확실한 해답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합니다. 시편12:6절입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이 순수한 말씀을 가감 없이 그대로 받고 그대로 믿는 것이 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맛있게 한다고 요리하지 말고 더하지 말고 빼지 말고 기록된 대로 받아들이고 믿으십시오. 잠언30:5~6,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며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시느니라. 너는 그분의 말씀들에 더하지 말라. 그분께서 너를 책망하실 것이므로 네가 거짓말쟁이로 드러날까 염려하노라.]
순수한 말씀을 의도적으로 다르게 해석한 것은 아니겠지만, 전혀 다른 뜻으로 잘못 전했기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본의 아니게 거짓말쟁이로 살았습니다. 이는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한 무지의 소치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모르면 잘못하게 됩니다. (마 22: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 기록들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을 범하고 있느니라.”
성경을 올바로 나누지 않으면 사건이 어느 때에 누구에게 일어날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잘못하게 되고 잘못하면 하나님께 인정받기보다는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너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하신 말씀을 항상 잊지 마십시오.
본문에 날짐승들의 음식으로 던져지려고 붙잡혀 간 자들을 하늘로 올라갔다고 거짓 증언을 했습니다. 휴거 사건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도둑 같이 임한다고 했는데, 벌건 대낮에 들에서 같이 일하는 다른 한 사람이 보는데 붙잡혀 간 것을 하늘로 올라갔다고 거짓말 했습니다. 맷돌을 같이 갈고 있던 두 여인 중 하나가 다른 여인이 보고 있는데 붙잡혀 간 것을 도둑같이 와서 데려감을 당한 것이라고 거짓말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그렇게 설교한 사람들은 성도들 앞에 양심 고백하고 하나님께 회개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갓 태어난 아기들은 순수한 말씀으로 자라가야 건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벧전2:2), 이 구절도 개역성경은 구원 받은 자가 말씀으로 자라가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라고 오역을 해 놓아서 교인으로서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 구원 받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벧전 2:2 개역)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잘못 번역된 성경은 이상한 교리를 낳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게 됩니다. 눈에 발견되지 않는 적은 양일지라도 유해 음식물을 계속 섭취하다 보면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영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지극히 순수한 말씀으로 자라야 합니다. 변질된 말씀, 첨가된 말씀, 삭제하여 모자라는 말씀을 장기간 섭취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영적으로 병들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전하면서 감사와 두려움이 교차함을 느낍니다.
먼저 김ㅇㅇ 형제의 작은 의구심을 통하여, 휴거 구절로 거의 교리 화 되었던 문맥이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감사가 넘치고, 한편 우리가 제대로 성경을 상고하지 않고 들은풍월로 믿고 전하다 보면 말씀이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되어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전능하신 주님께 두려움을 느낍니다. 주께서는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를 긍휼히 보신 하나님께서는 저의 지각을 열어 주시어 말씀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저와 여러분은 아직도 잘못 알고 있는 말씀들이 있다면 바로 알 수 있도록 깨달음을 달라고 계속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지식보다는 차라리 모르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무지(無智)는 무죄(無罪)가 아닙니다.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 기록들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을 범하고 있느니라.](마22:29), 하셨습니다.
성경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하면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망을 듣게 됩니다. 항상 겸손함으로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오늘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그분을 기억하여 행하는 [주의 만찬]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또한 환란 중에 하늘에서 있을 [어린양의 혼인 만찬]과도 다릅니다. 그리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은 휴거 때가 아니고 7년 큰 환란의 심판이 끝나는 시점인 주님의 지상 재림 시기에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짐승정부 시기의 일들입니다. 휴거되어 하늘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큰 복을 받은 자들임을 감사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는 기록된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이 가감되고 훼손되고 변질된 이 마지막 때에 순수한 말씀인 킹 제임스 성경을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샬롬!
***** 이 설교는 2005년 6월 26일 일요일 오전11시 설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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