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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교회는 하나님이 아버지이신 거룩한 가정이다
장코뱅 추천 3 조회 333 26.05.02 07:58 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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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5.02 08:48

    첫댓글 즐거운 주말, 기쁜 주일 되세요!

    초신자나 시간이 없는 분들은 이 포스팅의 묵상 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아래의 댓글과 주석은 시간이 많은 분들께 다양한 이해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 26.05.02 09:28

    네, 알겠습니다.

  • 작성자 26.05.02 08:51

    호크마 주석: 로마서>

    =====8:14
    하나님의 영으로...하나님의 아들이라 -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이기에 당연히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사랑'(9절)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께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가르치셨다. 성도는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처럼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 '무서워하는 종의 영'과 비슷한 의미로 딤후 1:7에서는 '두려워하는 마음'(* , 프뉴마 데일리아스)이 언급되고 있다. 성도를 두렵게 하며 속박하는 것은 율법이다. 성도는 율법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율법이 주는 두려움과 속박(bondage)에서 벗어났다. 결국 성도는 율법을 통해서 성도를 정죄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신분이므로 결코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는 것이다.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로 보다 왕과 백성의

  • 작성자 26.05.02 08:51

    왕과 백성의 관계로 더 많이 이해되었다. 비록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가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로 언급되었을지라도 신약 시대처럼 친밀한 관계를 보여주지는 않는다(J. Jeremias). 양자(養子)의 원리는 바울 신학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그 근원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발견된다(마 6:9;막 14:36). 그리고 바울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라고 가르친다. 성령께서 성도 가운데 거하심으로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증으로 인쳐 주시는 것이다.
    아바 아버지 - 예레미아스(J. Jeremias)는 '아멘 아멘...'의 형식과 함께 '아바 아버지'란 용어가 '예수의 고유한 언어 구사 방법'(ipsissima vox Jesu)이라고 주장한다(요 20:11-29 주제 강해 '예수의 언어 사용에 나타난 자기 계시' 참조).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바 아버지'란 용어를 즐겨 사용했는데, 이는 (1)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철저한 복종과 긴밀한 관계, (2) 아들로서의 권위를 나타낸다. 예수는 이와 같은 용어를 제자들에게도 가르치셨는데(마 6:9), 이 용어는 신약 시대의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잘 대변해 준다.

  • 작성자 26.05.02 08:52

    '아바'는 어린아이의 언어에서 유래되었다. 탈무드(Talmud)에 언급된 "어린이가 젖을 떼면서 밀맛을 볼 때에 '아바'(* )와 '임마'(* ) 곧 '아빠'와 '엄마'란 말을 배우게 된다"란 구절이 그 사실을 잘 암시한다. 그리고 탈굼역(The Targum)도 사 8:4을 "어린이가 '아바'와 '임마'라고 부르기를 배우기 전에"로 번역하고 있다. 이와 같이 '아바'는 매우 친밀한 언어로 하나님을 경외할 분으로만 알았던 유대인들은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을 '아바'로 부를 수 없었으며 기도 형식의 문헌에조차 결코 사용된 적이 없다(J. Jeremias). 그러나 신약의 성도는 양자의 영에 의해서 하나님과 부자(父子)관계 속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아바'란 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8:16
    성령이 친히...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 본절은 성도가 '양자의 영'을 받은 사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즉 성도는 양자의 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양자의 영이신 성령으로부터 친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증거받는다. 이에 대해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

  • 작성자 26.05.02 08:52

    "우리의 마음이 믿음으로 차 있을 때에만 우리의 입이 열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시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 주시기 때문에 가능하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바로 기도할 수 없으며 그와 같은 믿음은 헛것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8:17
    자녀이면...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 혹자는 '자녀'와 '후사'(後嗣)는 의미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진술한다(Black). 그러나 '자녀'는 가족 관계를 강조하는 용어이며 '후사'는 상속(相續)과 관계되는 용어이다. 바울은 '자녀'로서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성도의 권세를 본절에서 강조하고 있다. 성도는 하나님과 가족 관계에 들어가 그 가족의 구성원이 될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하나님의 후사로서의 권세도 동시에 가진 신분이다.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 이 고난은 마음의 법과 죄의 법이 서로 투쟁함으로써 비롯되는 내적인 고난(7:23, 24)일 수도 있으며 의를 인하여 필연적으로 받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마 5:10;벧전 3:14). 그리고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 작성자 26.05.02 08:53

    받는 고난일 수 있다(딤후 2:3). 어떤 의미의 고난이든 그것은 잠시 동안 받게 되는 것이며(고후 4:17), 궁극적으로 성도에게는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37절).

  • 26.05.02 09:34

    잘 읽고 참고하겠습니다.

  • 26.05.02 10:00

    * '아바'라는 말이 어린아이가 젖을 떼며 처음 배우는 '아빠'라는 친밀한 언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감동적입니다.
    * 과거 유대인들은 감히 사용하지 못했던 이 친밀한 부름을, 이제는 우리가 기도 가운데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특권임을 깨닫습니다.
    * 양자의 영을 통해 하나님과 실제적인 부자(父子) 관계가 되어 그분을 '아빠'라 부를 수 있게 된 은혜를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친히 증언해 주신다는 말씀처럼, 아빠 아버지의 품 안에서 참된 안식과 확신을 누리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 작성자 26.05.02 08:54

    롬8:29

    <호크마 주석>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 본 구절은 '예정'(豫定)의 목적으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사건이 (1)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변화되는 것인지 아니면 (2) 그리스도를 믿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때부터 계속 변화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견해가 달라 두 견해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두 입장에 대한 학자들의 분류는 헨드릭슨(Hendriksen)에 의해 잘 설명되었다. 즉 (1)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으로는 그레이다너스(Greijdanus), 렌스키(Lenski), 머레이(Murray), 그리고 리델보스(Ridderbos)와 같은 학자가 포함되어 있으며, (2)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으로는 칼빈(Calvin), 크랜필드(Cranfield), 로버트슨(Robertson), 그리고 잔(Zahn)과 같은 학자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헨드릭슨(Hendriksen)은 두번째 견해를 지지한다. 두번째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성화(聖化)의 교리를 근거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미 그의 형상을 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상태이다.

  • 작성자 26.05.02 08:54

    그러나 이 상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성도는 믿음의 눈으로 소망 가운데서 기다리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미 3:21에서 지금까지 진술한 바울의 논리를 가장 잘 대변해 준다.

  • 26.05.02 10:01

    칼빈의 견해도 살펴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 작성자 26.05.02 09:03

    히2:11

    <호크마 주석>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 '거룩하게 하시는 자'(* , 호 하기아존)는 모세 오경에서 '하나님'을 지칭한다(출31:13; 레20:8; 21:15; 22:9,16,32). 그러나 본절에서는 예수를 가리킨다(Bruce, Morris,Procksch).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피로 그리스도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거룩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온전케 하신다(10:14;13:12). 또한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이런 표현은 '하나님의 아들들'인 그리스도인들의 비교와도 같다.
    다 하나에서 난지라 - 비록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을지라도 양자는 모두 공통된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연합되어 있다. '다'의 헬라어 '판테스'(* )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내포한다. 한편 '하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노스'(* )에 대해서는 세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헤노스'를 중성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이 같은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Phillips). (2) 혹자는 '헤노스'를

  • 작성자 26.05.02 08:56

    남성으로 해석하여 그것이 아담이나 아브라함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Hering). (3)혹자는 '헤노스'를 남성으로 보면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Lane, Hewitt, Morris).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아들인 그리스도와 아들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아들의 구속사역을 통해서 인간을 자녀로 바꾸신 하나님의 은혜에 뿌리를 둔 영적 가족 관계를 형성한다(Kogel, Sqicq, Michel).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 '형제'는 영적인 의미의 형제로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가족 관계를 의미한다(마12:49,50; 막3:33-35;눅8:21; 롬8:29).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형제 관계를 이루며, 가족 중에서 맏아들이 되신다(1:6). 본절의 이러한 확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를 준다(11:16).

  • 26.05.02 09:38

    * 거룩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피로 거룩함을 입은 우리가 모두 **하나의 공통된 기원** 안에서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됩니다.
    * 비록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질적인 차이가 존재할지라도, 우리를 자기 백성 삼으시고 **온전하게 하시는** 그분의 대제사장적 사랑에 깊이 감사하게 됩니다.
    * '다 하나에서 난지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와 우리가 **가족과 같은 영적 유대감**으로 묶여 있음을 주석을 통해 더욱 명확히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 26.05.02 10:02

    *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아들들인 우리가 그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영적 가족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말씀이 큰 은혜가 됩니다.
    *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이 믿음으로 이루어진 이 가족 관계를 더욱 소중하게 만듭니다.
    *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모든 그리스도인과 형제 관계를 이루시며 **가족 중에서 맏아들**이 되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 우리가 주님과 형제 되었다는 이 본질적인 확언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용기와 위로**를 줍니다.

  • 작성자 26.05.02 08:58

    <호크마 주석: 골로새서>

    =====1:15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 -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고후4:4에도 나오는 표현이다. 복음서에 의하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고 했고 예수 자신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고 선언하기도 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불가시적인 하나님의 분명한 현현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적이거나 신체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실체, 본성, 그리고 영원성에 있어서 성부와 그리스도가 완전한 동등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 -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피조물로서 최초로 창조된 피조물임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아리우스(Arius A.D. 256-336)는 본절을 근거로 그리스도도 피조물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본문은 결코 그렇게 이해될 수 없다. 이것은 성경의 다른 본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요 1:1, 2 ; 8:58 ; 히 1-3 ; 10:5-9).

  • 작성자 26.05.02 08:59

    본문이 뜻하는 바는 그리스도가 시간적으로 만물의 창조 이전에 존재하였고 그런 만큼 만물에 대한 우월성을 갖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 바울은 교회를 몸에 비유하여 설명함으로써 성도들 상호간의 긴밀한 유기체적 관계와 통일성을 강조하곤 했다(롬 12:4, 5 ; 고전12:12-27).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 몸으로서의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머리로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 즉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사면받고 성도가 된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본질적으로 설명해준다. 성도들은 교회를 이루고 그 교회는 몸으로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갖는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첫째, 그리스도와 교회는 매우 긴밀한 유기적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와 더불어 그의 생명을 공유한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생명력을 공급받음으로써만 삶을 얻을 수 있다. 둘째,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권자로서 절대적 지배권(支配權)을 갖는다는 것이다. 교회는 주권자인 그리스도의 뜻과 명령에 복종함으로써만 생명의 길을 갈 수 있다.
    그가 근본이요 - 그리스도가 '근본'이 된다 함은 그리스도의 선재성보다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 작성자 26.05.02 08:59

    깊은 연관이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또한 성도들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살아나신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교회와 성도는 그리스도에 의존해서만, 그리스도에 근거해서만 존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본'이시다.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 '으뜸'(* , 케팔레)이라는 말은 만물과의 차별적 우월성을 말하는 것인 바, 이 차별성은 상대적 차이가 아니라 절대적 차이이다.

  • 26.05.02 09:40

    *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의 본질을 깨닫고 그분을 마주할 수 있게 됨에 감사드립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과 실체, 본성, 영원성 면에서 완전한 동등성을 가지신 분임을 주석을 통해 다시금 확신하게 됩니다.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는 선언처럼, 불가시적인 하나님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나타내 주신 그리스도의 현현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 작성자 26.05.02 09:04

    요20:17

    <호크마 주석>
    나를 만지지 말라 - 본문은 금지를 나타내는 '메'(* )와 함께 쓰인 현재 명령법 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행동을 중지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거의 행동화되기 직전의 상태에서 중지시키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대개는 본문의 금지령이 이미 행동화된 상태에서 이제 그만하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Lenski, Rebertson, Tenney).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주님께서 자신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는 것을 허락한 마태의 기록(마 28:9)을 고려해서 이다. 그러나 불트만(Bultmann)과 버나드(Bernard)는 이와 다른 건해를 제시한다. 불트만은 마리아의 행동이 있기 이전에 그녀의 행동을 멈추게 한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만약 마리아가 이미 주님의 발을 붙잡았다면 '만지지 말라'는 표현 보다는 '나를 놓으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버나드는 본문에서 여러 가지 해석상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본문상의 훼손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즉 본문의 '메 아프트'(* , '만지지 말라')는 '메 프토우'(* , '두려워 말라')의 훼손된 형태라는 것이다.

  • 작성자 26.05.02 09:05

    그러나 이 해석은 구체적인 본문상의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추측에 불과하므로 앞의 두 견해가 진혀 타당하지 않다고 증명되는 경우에만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마태의 기륵(마 28:9)을 고려해 볼 때 첫번째 견해가 가장 무난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의 금지령이 구체화된 후이든 아니면 시행되기 전이든,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주님께서 왜 마리아의 행동을 제지하셨는가 하는 점이다.
    아버지께로...못하였노라 - 앞 절에 이어 여기서 생기는 물음은 어찌하여,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지 않은 것이 마리아가 예수를 만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가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1) 예수께서 아직 승천하지 아니하였고 또 즉시 승천할 것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만나보고 올라가려 하므로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그러니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본다(Tenney).(2) 먼저 아버지에게 간 후에야 제자들과의 접촉을 허락한다는 의미로 본다. 여기에는 마 24:9와 조화될 수 없는 난점이 있다.(3) 예수께서 마리아의 행동을 제지한 것은 그녀가 주님을 보았을 때 생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 작성자 26.05.02 09:05

    여기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예수께서는 자신이 생전의 삶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오해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는 것이다. 아무튼 이제 마리아는 생전의 랍비로서가 아니라 죽고 부활하신 주님으로서 예수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위의 세 견해 중 세번째 것이 가장 무난하리라 본다.
    내 형제들에게 - 이 문구의 의미가 예수의 직계 혈육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이것은 여기서 갑자기 나타나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이미 예수께서는 생전에'누구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라고 말한 비 있고(막 3:35),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 대하여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히 2:11) 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본서에서 본문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예수와 제자들 간의 관계가 친구(15:14, 15)사이에서 나아가 영원한 혈육의 관계로 발전된다는 의미까지 내포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뒤에 이어지는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라는 표현으로 볼 때 더욱 분명해 진다. 다시 말해서 당시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 작성자 26.05.02 09:06

    모든 성도들은 예수의 보혈로 말미암아 예수와 한 가족, 한 몸이되었다(고전 12:27).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 여기서 주님과 제자들을 따로 분리하여 진술한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있다. 하나는 예수와 하나님의 관계가 제자들과 하나님의 관계와 다르다는 것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이다. 예수와 하나님의 관계는 영원 전부터 일체(一體) 상태에 있는 특별한 관계이지만 제자들과 하나님의 관계는 양자로 선택된 관계라는 것이다(Barrett, Tenney, Lenski). 어거스틴(Augustine)은 이것을 '본성으로는 나의 하나님이며m은혜로는 너희의 하나님이다'라는 문구로 표현한다.m 다른 하나는 본문이,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성(同等性)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는 입장으로 룻 1:16을 인용하여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Moule, Brown). 그런데 전통적인 기독교의 교리상 전자의 견해가 우세하다고 본다.
    올라간다 하라 - 혹자는 본절과 관련하여 예수께서 마리아의 행동을 제지하신 것은 '나를 만지지 말고 가서 내 형제들에게,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가기 전에 이 사실을 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Toray)

  • 작성자 26.05.02 09:06

    예수께서 부활하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첫째, 수난으로 시작되는 구원사의결정을 완성하는 의미가 있다(6:52-62). 둘째 올라감은 또한 다시 옴을 뜻한다(14:18, 23). 이것은 곧 성령의 도래를 뜻한다(7:39;16:7).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한 후 성령께서 내려오면 예전보다 더 친밀한 영적 연합의 관계가 맺어지게 될 것이다.

  • 26.05.02 09:42


    * 예수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가족, 한 몸이 되었다는 사실이 오늘을 살아가는 큰 힘이 됩니다.
    * "본성으로는 나의 하나님이며 은혜로는 너희의 하나님이다"라는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우리를 양자 삼아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영원한 일체와 양자 된 선택이라는 차이를 넘어, 결국 '한 하나님'을 모시는 동등한 가족의 관계임을 주석을 통해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 작성자 26.05.02 09:08

    골1:18

    <호크마 주석>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 바울은 교회를 몸에 비유하여 설명함으로써 성도들 상호간의 긴밀한 유기체적 관계와 통일성을 강조하곤 했다(롬 12:4, 5 ; 고전12:12-27).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 몸으로서의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머리로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 즉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사면받고 성도가 된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본질적으로 설명해준다. 성도들은 교회를 이루고 그 교회는 몸으로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갖는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첫째, 그리스도와 교회는 매우 긴밀한 유기적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와 더불어 그의 생명을 공유한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생명력을 공급받음으로써만 삶을 얻을 수 있다. 둘째,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권자로서 절대적 지배권(支配權)을 갖는다는 것이다. 교회는 주권자인 그리스도의 뜻과 명령에 복종함으로써만 생명의 길을 갈 수 있다.
    그가 근본이요 - 그리스도가 '근본'이 된다 함은 그리스도의 선재성보다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깊은 연관이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또한 성도들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살아나신 그리스도와

  • 작성자 26.05.02 09:09

    연합함으로써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교회와 성도는 그리스도에 의존해서만, 그리스도에 근거해서만 존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본'이시다.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 '으뜸'(* , 케팔레)이라는 말은 만물과의 차별적 우월성을 말하는 것인 바, 이 차별성은 상대적 차이가 아니라 절대적 차이이다.

  • 26.05.02 11:32

    * 교회가 그리스도와 생명을 공유하며 긴밀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씀이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 머리 되신 그리스도로부터 생명력을 공급받아야만 비로소 교회가 온전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원리를 다시금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 우리의 주권자이신 주님의 뜻에 겸손히 복종할 때 참된 생명의 길을 갈 수 있음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 26.05.02 09:36

    모든 사람이 한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난 영적 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멀게만 느껴졌던 이웃들이 훨씬 가깝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나를 사랑하듯 이웃의 마음을 보듬고 용서하는 것이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임을 알게 되어 큰 울림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길 잃은 형제에게 부모를 찾아주는 따뜻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점이 정말 감동적이며, 제 삶에서도 그 사랑을 꼭 실천하고 싶습니다.

  • 26.05.02 09:58

    아멘 🙏

  • 26.05.02 10:59

    * 교회가 단순히 모이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거룩한 가정**이라는 말씀이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맏형**으로 믿고, 그분 안에서 지체들과 연합하며 친교하는 신앙의 신비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 우리를 예수님의 형상을 닮게 하시려고 미리 정하시고,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에 감사드립니다.
    * 거룩하게 하시는 구원자 주님께서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는 고백이 우리에게 큰 자부심과 위로를 줍니다.

  • 26.05.02 11:31

    아멘 🙏

  • 26.05.02 12:22

    가정은 사회의 최소 단위로서 모든 사회의 기초, 기본, 근본이라는 점에서 가장 소중합니다. 이 가정을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사명을 주셨죠. 이스라엘에게 장자권을 주셔서 이 사명을 완수하는데 선봉에 서라고 한 것이고 종말 때까지 유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지금 정신을 못차리고 있죠. 예수님 초림 때처럼 죄악이 관영하고 혼돈 속에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일로써 이방인들을 대거 유입시키기 위해서죠.
    이방인들의 구원 시대에 교회의 사명이 그래서 중요한데요.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확대판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바 되어 양자로 삼으신 자들이 양자로 입적됨으로써 그리스도를 맏형이라 부르는, 엄청난 신분 상승이 와버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처음,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셨다는 요 20:17의 말씀이 놀랍고 충격입니다. 모르는 말씀이 아님에도 더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 26.05.02 12:22

    풍성한 내용과 깊은 통찰력의 댓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 26.05.02 17:42

    공감합니다22

  • 26.05.02 17:43

    *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세상은 축제 분위기이지만,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영원하고 거룩한 가정**임을 다시금 기억하게 됩니다.
    * 어버이날, 어린이날 등 여러 기념일 속에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리스도를 맏형으로 둔 우리**가 얼마나 복된 공동체인지 깨닫습니다.
    * 떠들썩한 연휴보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신령한 가정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깊은 연합과 친교**를 나누는 기쁨이 더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 26.05.03 15:5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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