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로 가기 전에 제프라 바와가 설계한 칸달라마 호텔로 방향을 잡았다. 칸달라마 호수의 제방을 지나 호텔로 진입하는 비포장 숲길의 초입은 야간에는 교행에 어려움이 따르는 일차선 도로다. ‘과연 이 길이 맞나?’ 의아해하며 15분 정도 직진하니, 멋진 현대식 호텔이 나오고 친절한 미소로 종업원이 안내를 자청한다. 프론 데스크로 가는 복도의 좌측 흰 벽은 산의 바위가 그대로 복도 안으로 들어와 마치 바위아래를 걷는 기분이다.
에어컨 없이 산바람이 이 복도를 통과하여 호수로 빠져나가는 구조라 복도가 덥지 않다. 프론터 옆의 수영장은 바로 앞 숲 너머의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나, 수영장 전면으로 물이 넘치도록 설계를 하여 수영하는 사람은 마치 ‘호수에서 수영을 하는 착시감이 들도록 한 발상’은, 과연 그가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중 한 사람이라는 칭송에 걸맞다.
복도를 중앙에 두고 양쪽으로 룸을 배치하여 객실 수를 극대화 한 여느 호텔과 달리, 그는 모든 객실을 호수 쪽으로 배치하여 자구찌 욕조에서도 호수 건너의 시기리아 바위성을 아련히 보게 만들었다. 상업성을 배재하고 예술적 가치를 높인 칸달라마 호텔의 숙박비는 고가이나, 가끔 누리는 호사는 경험과 대 건축가의 예술에 공감하는 일체감일 뿐, 사치로 치부하지 말자.
칸달라마 호텔의 호수와 일치된 수영장
식당으로 가는 4층의 계단 양쪽에는 그가 만든 대형 올빼미 청동조각이 마주보고 있다. 올빼미는 현자(賢者)를 뜻한다고 했던가? 식당에서의 식사도 좋았지만 말을 걸어오는 종업원들의 친절이 더 고맙다. 일박은 다음으로 미루고 캔디로 출발.
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수도인 캔디까지는 직선거리로만 치면 2시간도 걸리지 않을 거리나 워낙 열악한 도로 사정이라 3시간 30분 만에 도착했다. 도중에 차를 마시러 휴게소에 들렸더니 한국인을 처음 보는지 몇몇 현지인이 머뭇거리며 오기에 담배를 권했더니 고맙다는 표정으로 자기나라 담배를 꺼내준다. 이런 순박한 시골 사람들과의 대화에는 말이 필요가 없다.
그저 서로 웃으면 그뿐, 미소는 만방에 통하는 소통의 매개체다.
캔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은 좋으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호텔의 5층 방에 짐을 풀고, 루프 탑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데 동양인은 우리뿐이다. 식사라야 전통음식 10가지를 적당히 골라 먹는 뷔페인데 모두들 쌀밥에 카레를 섞어 잘들 먹는다. 쌀은 이미 세계인들이 상식하는 식품이 되었나보다. 이 도시의 언덕에는 이런 스타일의 소규모 호텔이 성업 중인데 인터넷에 난 광고를 보고 찾아오는 개별여행자들로 북적인다. 나이든 부부가 배낭 여행자들의 건강한 모습이 보기 좋아 말을 붙여보니 독일에서 왔단다.
아침에 일어나니 원숭이가 발코니를 오간다. 스리랑카는 원숭이 천국으로 수 십 마리가 동네 한 식구로 산다. 사람을 겁내지도 않는 이놈들을 위해 아래 집 대문 기둥 위에는 원숭이용 밥그릇이 따로 있다. 살펴보니 나무를 옮겨 다니면서 과일도 따먹고 새끼끼리 장난을 치며 놀고 있다. 놓아먹이는 개가 원숭이를 보며 짖어대는데, 원숭이의 한심하다는 표정이 가관이다. 마치 ‘이봐, 견공(犬公) 왜 그래? 우리 원공(猿公)이 자네들 보다 고등동물인 걸 모르나? 자네 실력에 나를 따라올 것 같아? 신경 끄고 자네 볼일이나 보는 게 때?’ 하는 것 같다.
동양에서 제일 큰 식물원이라는 페라데니아 보타닉 가든은 싱가포르 식물원보다 조금 커 보이는데 입장해보니 나무의 키가 엄청나다. 입구 바로 옆의 난초 온실은 건성으로 지나친다. 희귀종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난에 대해 무지하여 변별력이 없으니 귀하다는 향기도 어떤 종류가 좋은지 모르겠다. 어마어마하게 큰 야자나무가 양쪽으로 도열한 야자나무 길을 지나니 좌측으로 한 나무(母木) 줄기에서 3방향으로 뻗친 가지가 또 뿌리를 내린 땅에서 다시 줄기가 나와, 결국은 3개의 자목(子木) 형제나무와 어미나무가 함께 엉클어져 그늘을 만든 거대한 벤자민을 보니 자연의 현란한 조화와 생명력에 대한 경탄이 절로 나온다.
마할웰리 강과 언덕길 사이에는 대나무 군락이 굵기를 자랑한다. 띄엄띄엄 심어진 게 아니라 한 묶음씩 심었는지, 한 뿌리는 아닐 것 같은 대의 굵기를 재어보니 놀랍게도 60cm가 넘고 키도 30-40m 됨직하다. 왕실에서 조성했다는 이 식물원에는 지름이 30cm나 되는 코코넛열매의 무게가 20kg이라는데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반지르르하고, 스리랑카 지형을 본 따 만든 연못의 분수 옆길을 걷는 한적함도 즐길 만하지만, 중앙의 잔디 정원 한 가운데에 넓게 퍼진 세계제일이라는 벤자민이 가장 볼거리다. 높이는 과히 높지 않으나 옆으로만 뻗어가서 약 500평에 그늘을 지우고 있는데, 가지 중간 중간에는 지주목이 늘어지는 줄기의 무게를 받치고 있다. 두 어 시간 산책을 하니 마음은 평화롭고 하늘이 가운데로 확 뚫린 넓은 야자수 길이 눈에 어른거린다
한 나무에서 3개의 뿌리를 내린 벤자민
500평을 그늘 지우는 세계제1의 벤자민
첫댓글 멋진 기행문에 찬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