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날이 계속되고 있어 올해 광복절 행사를 안 할까도 생각했으나 73년전 광복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애국자들이 쉼 없이 활동을 해왔기에 독립을 이룬 것이라 생각되어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먼저 대천공원과 체육 광장 입구 그리고 모정원안에 광복절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장산 일꾼들이 붙여주었다. 너무 더워 강근호.이정희여사의 가족들과 애국지사 강근호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남우)회원으로 조촐하게 광복절 행사를 하려고 했었는데 작년에 이어 경북 의성에서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신해운대역에 내려 찜질방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오신 박석하님과 해운대 신시가지주민들이 몇 분 오셨다. 송정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장산까지 양재명씨도 왔다.
특히 20대 젊은 대학생이 뚜벅뚜벅 거침없이 모정원으로 들어섰다. 보통 광복절등 국가 기념행사는 어르신들이 많이 참석하는데 젊은 사람이 오니 신기했고 이후에 신보성씨 가족들이 같이 오셨다. 부모님이 광복절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여 관이 아닌 가족들과 주민들이 주최하는 모정원 행사에 오고 싶어 땀을 흘리며 찾아온 것이라 했다.
국기에대한 경례 / 애국가 / 묵념등의 행사와 차를 올리는 헌다 그리고 모두들 나와서 향을 꽂는 헌향을 했다. 이 회장이 73년 주년 광복절의 의미와 일주일후인 1910년 8월 22일 국권이 일본에 빼앗긴 날과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잊지 말자고 했다. 강지사의 아들 강귀철씨는 시민회관에서 열리는 부산시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고 대신에 딸인 강정화씨가 멀리서 모정원까지 찾아오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렸다.
마지막으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공식적인 행사를 마쳤다. 행사를 위해 준비한 음식으로 더위를 달래고 젊은 대학생이 강근호 지사를 더 알고 싶다고 하여 평소에는 닫혀있는 기념관을 열고 정화씨가 설명을 해 주었다.
기념관에는 1910년 국권이 강탈되자 자신의 모든 자산을 팔아 남만주로 이주하여 신흥 무관 학교를 창설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였던 우리나라 초대 부통령인 이시영 (李始榮)님의 사진이 있었다. 정화씨가 그의 증손녀인 이정희여사님과 1920년 청산리대첩에 중대장으로 강근호(강화린)지사의 삶에 대해 찾아온 주민들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독립운동의 흔적과 더불어 강지사와 이정희 여사의 결혼 그리고 강지사가 죽고 이여사가 해운대 장산에 아들, 딸을 데리고 장산에 와서 장산을 개척하던 이야기와 장산마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젊은 대학생은 충남대 고고학과에 다니는 학생인데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 너무 대견했다. 젊은 사람이 100여년전의 피맺힌 역사를 알고 그것을 기억하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좋은 것 같았다.
안락동에서 오는 분이 장산을 자주 찾아온다고 하여 기념비앞에서 정화씨와 함께 사진을 찍었고 나라를 구해주었다고 고맙다고 했다. 행사를 마치고 내려 가는 도중에 오랜만에 단비를 맞았다. 푹푹 찌고 목마른 땅에 비가 한방울 한방울 내리더니 소나기같이 많이 내려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 비를 많이 맞았지만 너무 시원했다.
일본에 빼앗긴 독립을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라를 되찾기 위해 수없이 죽어간 독립군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청산리대첩때 주민들은 일본군에 거짓 정보를 알려주었기에 독립군들은 승리할 수 있었지만 이후 일본군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청산리의 살아있는 사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학살했다. 그런 과거를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이고 그것은 평화롭게 행복하게 독립국가인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