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법
동파전집 중 십팔대아라한송
불사는 부처님 앞에서 하는 일
묵묵히 수행하면 진아 보게 돼
사천 다솔사 응진전 / 글씨 청남 오제봉(菁南 吳濟峰 1908~1991).
我作佛事淵乎妙哉 空山無人水流花開
아작불사연호묘재 공산무인수류화개
前聖後聖相喻以言 盆花浮紅篆煙繚青
전성후성상유이언 분화부홍전연료청
(내가 하는 불사는 깊고도 미묘하여라./ 사람 없는 빈산에 물 흐르고 꽃이 피네./ 앞과 뒤의 성인은 모두 말씀으로 일깨우시고,/ 화분의 꽃은 붉은빛, 향로의 연기는 푸른빛을 띠네!)
이 주련은 북송 시대 문인이자 소동파(蘇東坡)로 널리 알려진 소식(蘇軾 1036~1101)의 글을 모은 ‘동파전집(東坡全集)’ 가운데 십팔대아라한송(十八大阿羅漢頌)에 나오는 내용 일부를 간추린 것이다. 사구(四句)로 이루어진 시문이기에 주련의 글이 여덟 자로 이루어져 있다.
십팔대아라한을 줄여서 흔히 십팔나한(十八羅漢)이라고 한다. 이들은 18위(位)에서 영원히 세간에 머무르며 정법을 지키는 존재다. 아라한은 사과(四果)의 성자 부류 가운데 가장 마지막 과(果)다. 부처님도 아라한과에 속한다. 아라한은 인천(人天)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진인(眞人)이라는 뜻이다. 응진(應眞), 응공(應供) 등으로 한역한다. 나한은 본래 십육나한(十六羅漢) 정도로 나타나는데 중국은 십팔나한을 만들어 이를 정착화 시켰다. 10세기경 장현(張玄 ?~?)과 관휴(貫休 832~912)가 나한을 그림으로 나타내었으며 그 뒤 혜홍각범(惠洪覺範 1070~1128) 스님과 소식 등이 송(頌)과 찬(讚)을 짓기도 하였다. 특히 소식은 집에 나한상을 봉안하고 매번 차(茶)를 올렸는데 차가 흰 우유로 변하였다고 기록한다.
불사(佛事)는 전각을 짓거나 탑을 세우고 불상을 봉안하는 것을 말함이 아니다. 불교에서 행하는 일들을 총칭하여 가리키는 표현으로 결국 부처님 앞에서 거행되는 모든 일을 말한다. 소동파가 말하는 불사는 선(禪)을 염두에 두고 나를 찾아가는 이들을 칭한 것이다.
연호(淵乎)라는 표현에서 연(淵)은 깊고 어두움을 뜻하기에 심현(深玄)이라고도 한다.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篇)에 보면 ‘선생이 이르기를, 대체 도라는 것은 깊숙한 채 안정되어 있고 시원하게 맑은 것이다. 금석(金石)의 악기라도 이 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공산무인(空山無人)은 사람 없는 산 중을 말하기에 이는 적요(寂寥)함이다. 적요하다는 것은 번뇌와 망상이 없는 자리, 본래의 자리에서 보면 내가 곧 부처라는 것이다. 수류화개(水流花開)는 물은 흐르고 꽃이 핀다는 내용이다.
전성후성(前聖後聖)은 모든 성인을 말함이다. 이미 이 세상에 다녀간 성인과 장차 출현하게 될 성인을 가리키기에 곧 삼세의 제불(諸佛)과 제성(諸聖)을 말한다. 상유이언(相喩以言)에서 상(相)은 모두 말씀으로 일깨웠다는 표현이다. 이어지는 원문의 문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여포곡 이의막전(口如布糓 而意莫傳), 입은 마치 뻐꾸기지만, 그 뜻은 정작 전하지 못함이로다.’
모든 성인이 가르침을 주건만 마음이라는 것은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법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방편이나 비유에 빠져 진심(眞心)을 찾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분화(盆花)는 분(盆)에 심어 놓은 꽃을 말함이고, 부홍(浮紅)은 아주 진하게 붉은 꽃을 말함이다. 전연(篆煙)에서 전(篆)은 전자(篆字)를 말하는 것이다. 대개 전서(篆書)는 언뜻 보기에 꼬불꼬불하므로 여기에 연기를 뜻하는 연(煙)을 더하여 살펴보면 전자(篆字) 모양으로 꼬불꼬불 올라가는 향로의 연기를 말한다. 요(繞)는 향을 피우는 연기가 감도는 것을 말한다.
화분의 꽃은 꽃대로 본분사가 있지만, 그 상(相)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향로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말없이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수행도 그러하다. 묵묵히 수행하는 자가 진아(眞我)를 볼 수 있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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