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골퍼는 첫 번째 티 박스에서 상당한 압박을 받고 두려움을 느낀다. 연습 스윙을 많이 하거나 호흡을 길게 가져가고 자기만의 비법을 통해 긴장을 해소하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은 경우가 많다.
핸디캡이 1인 필자도 그런 막연한 압박감에서 한 번도 쉽게 벗어난 적이 없었다. 단지 오랜 경험을 통해 최고의 처세란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 것이란 사실에 위로를 받을 뿐이다.
첫 티 박스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그 실체에 접근해 부숴버리기 보다는 적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심리적인 압박감은 트레이닝과 경험을 통해 조금씩 타협하며 적응할 수 있다. 평범한 인간은 경험이란 범주를 결코 벗어날 수 없고 경험의 또 다른 이름은 과실이기 때문이다.
전에 충청북도 대표로 전국시합에 나간 적이 있다. 예선 1라운드에서 컷을 하고 개인전과 단체전을 모두 하는 3라운드 경기인데 1라운드 첫 홀의 티 박스에서 상당한 압박감에 시달렸다. 스트레칭을 많이 했고 내가 친 공은 높고 길게 날아 페어웨이 한 가운데 안착할거란 긍정적인 사고를 했지만 긴장감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그 때 다른 조에서 라운드하려고 온 전북대표인 선배를 만났다. 바람은 심하게 불고 비도 부슬 부슬 내렸는데 단체전이란 책임감이 어깨를 우울하게 누르고 있던 상태였다. 지금 내가 겪는 감정의 충돌을 이야기 하자 선배는 단순명료한 대답을 했다.
“첫 티샷은 극도의 두려움을 준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이번 시합에 참가한 모두가 그런 압박과 공포심에 시달리며 티 박스에서 기다린다는 것이다."
상당히 인상적인 말이었다. 나는 3라운드 내내 선배의 말을 생각하며 플레이했고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 골프장엔 맞바람이 불어 드라이버와 스푼이 완벽하게 맞아도 투 온이 되지 않는 미들 홀이 있었고 바람 때문에 150야드를 스푼으로 쳐야 하는 몇 개의 홀도 있었다. "모두가 고통스럽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은 압박감을 이기는데 큰 도움을 줬다.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오랫동안 명상을 한다. 그들은 뇌에 있는 모든 생각을 죽여 무념무상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해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생각이다. 인간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끊임없는 생각에 얽매여 살아가야 한다. 생각한다는 것, 이것은 가장 쉬운 것이지만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근원이 된다.
골프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밝은 면이 지배하면 퍼팅도 잘 떨어지고 거의 모든 샷이 안정적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어두운 생각에 지배를 받으면 치명상을 입고 절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친구들과 라운드를 하면 첫 티 박스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스트레칭을 많이 하라”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중에 밝은 면이 당신 생각을 온통 지배하게 하라.”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꼭 해주는 말이 있다. "당신이 가장 잘 맞았던 그 순간의 드라이버를 기억하고 단호하게 실행하라."
나는 모든 준비 중에 “가장 잘 맞았던 드라이버에 대한 근육의 기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골프는 근육이 기억하는 운동이고 골퍼의 근육 어딘가에 최고의 스윙을 했던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의 잔재가 남아있을 것이다.
가장 좋았을 때의 기억들, 갑자기 3퍼팅이 계속되거나 일시적인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이런 기억의 되새김질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다. 초반 홀은 실수를 해도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곳에 에이밍 하고 완벽한 샷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평소보다 스윙을 조금 크게 가져간다는 느낌으로 샷을 하면 결과가 좋다. 골프에서 가장 치명적인 저주는 압박을 받아 스윙이 작아지는 것에서 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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