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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처음 산행 계획을 세울 때는 '청평역 → 호명산 → 기차봉 → 호명호수 → 608봉 → 발전소 고개 → 주발봉 → 가평역'의 19km 구간을 7시간 동안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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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산[虎鳴山]
높이: 632.4m
위치: 경기도 가평군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청평리에 우뚝 솟아오른 632m의 호명산은 옛날 산림이 우거지고 사람들의 왕래가 적었을 때 호랑이들이 많이 서식하여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오곤 하였다는 데서 명명되었다.
산행을 위해서는 여러 개의 변형코스를 잡을 수 있으나 기존 코스 외에는 잡목이 우거져 헤치고 나가기가 곤란하므로 길을 따라 올라야 수월하다.
호명호수
호명호수는 국내 최초로 건설된 양수식 발전소의 상부 저수지로 호명산의 수려한 산세와 더불어 넓은 저수지는 백두산 천지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절경이다. 가평읍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산유리에서 하차, 또는 청평면 상천역에서 하차하여 호명호수까지 등산하며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다. 호명호수와 더불어 산 아래로 길게 펼쳐진 계곡은 훌륭한 휴식처로서 등산과 함께 그 묘미를 즐길 수 있으며, 호명호수 팔각정에서 내려다보는 청평호반 역시 일품이다. 계곡 중간의 상천 낚시터는 강태공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호명호수공원은 진입광장, 휴게광장, 산책로, 연결로, 벽천의 공원 시설과 키다리정원, 난쟁이정원, 화단 등의 조경 시설, 휴게 데크 10개소의 휴양시설 외에 화장실 2개 동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 한국의 산하
지난 토요일 제천 동산을 다녀오고, 다음 일요일에는 영월의 선바위산에 오르기로 했다. 해서 두 산행 사이에 8일이라는 공간이 생겨, 체력 유지를 위해 수요일 어딘 가를 다녀오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평일 산행을 진행하는 산악회에서 수요일 산행을 찾아보니, 유일하게 오르지 않은 산은 보성의 오봉산이다. 해서 2월 초 예약했으나, 성원 미달로 5월로 연기돼, 화요일이나 목요일에 갈 만한 산이 있나, 찾아보니, 화는 아예 없고, 목은 안동 천등산이 있어, 신청했다. 그리고 그 산에 관해 아는 바가 없어, 구글링해봤으나, 산악회의 산행 계획 외에는 어디에도 정보가 없다. 산이 높은 것도, 코스가 긴 것도 아니고, 그저 봉정사를 품고 있는 동네 뒷산에 불과해서다. 아직 가지 못한 오지 산도 많은데, 동네 뒷산을 가기 위해 안동까지 다녀올 이유가 없어 보여 취소했다. 그리고 이런 때를 대비해 계획은 세워놓고, 아껴두었던 수도권 산을 뒤져보니, 호명산과 축령산이 있다.
사실 축령산이나, 호명산은 등산방 정기 산행지로 염두에 두고 있는 산인데, 축령산은 오른 적은 있으나, 당시에는 서리산까지 연계하지 않아, 서리산까지 코스 확인이, 호명산은 아예 초면이라, 정기 산행을 위해 답사가 필요하다. 그런데 3월은 봄철 산불 예방을 위해 많은 산이 입산 금지다. 염두에 두고 있던 천고지도 확인했으나, 다 대상이라, 5월 이후로 연기했다. 물론 과거에는 무시하고 올랐으나, 나이를 먹어 패기가 사라져서인지, 요즘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시키는 대로 한다. 고로 두 산도 입산 가능 여부를 산림청 '2023 봄철 등산로 통제구간' 사이트로 들어가 확인했다. 그 결과 축령산은 대상이나, 호명산은 아니라, 고민 없이 선택했다.
이번 호명산행 코스는 처음 계획을 세워둔 것과는 반대로, 가평역에서 시작해 청평역에서 끝낼 예정이다. 앞선 산꾼의 산행기를 보면 청평역에서 시작하는 게 쉽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나, 시간에 맞게 청평역에 정차하는 'ITX-청춘' 열차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거꾸로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17km에 달하는 구간이라, 정기산행으로는 길어, 청평역과 상천역 사이의 10km 내외의 구간을 집중적으로 확인한다. 산행 준비는 평소와 같고 다만, 지난 설악산 서북 능선 산행 때 들고 갔던 핫팩 조리 시스템을 들고 가, 라면으로 점심을 먹을 예정이다. 가까운 천마산의 산악날씨에 의하면 당일 기온은 영상 4~5도, 바람은 3~5m/s 내외라 체감온도는 영상 1~2도 사이로 약간 추울 예정이다. 하지만, 지난 동산 때와 같은 봄·가을용 등산복을 입을 예정이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조망으로 유명한 산인데, 당일, 날이 흐려 조망이 좋지 않을 거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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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청량리역발 춘천행 8시 11분 ITX-청춘 열차를 예매해, 집에서 7시경 나가, 불광역에서 7시 22분 오금행 열차를 타고, 종로3가역에서 청량리행 1호선으로 갈아타면 된다. 해서 알람을 6시에 맞췄다. 애초 10시에 산행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초행이라,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9시 산행으로 변경했다. 물론 등산방 정기 산행 때는 10시 시작이다. 이른 시간 기상임에는 다름이 없으나, 평소 안내 산악회 기준보다는 1시간을 더 잘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예정대로 기상해 아침을 먹은 후 교통 앱으로 마을버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이 시간대에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건 오랜만이라, 7시 22분 열차를 타기 위해선 언제 집에서 나서야 하는지 몰라서다.
집에서 가까운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불광역으로 가는 버스는 두 개의 번호가 있는데, 둘이 교대로 도착하면 좋은데, 꼭 붙어 다녀, 하나의 번호와 다를 바 없다. 역시 7시 이후, 정류장에 들어오는 첫 번째 버스도, 7시 10분경 두 번호가 같이 도착한다는 정보다. 그리고 최소 10분 후인, 7시 20분경, 다음 버스가 정류장에 오니, 예매한 ITX-청춘을 타기 위해서는 10분 버스를 타야 한다. 해서 7시 5분경 준비해 둔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서, 10분에 나란히 들어오는 버스 중 뒤차를 탔다. 평일이고, 좀 이르기는 하나, 출근 시간이라, 승객이 앞차에 몰려, 그나마 뒤차가 한가해 보여서다. 그런데 불광역에 도착한 시각이 7시 15분으로 22분 차가 아니라, 그 전 차를 타도 된다. 어쨌든 불광역으로 가는데, 그 입구에 줄을 서서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버스 정류장도 아니고, 뭐지?
결과적으로 계획보다 일찍 청량리역에 도착해 승차장 의자에 앉아 노닥거리다, 8시 10분에 들어온 춘천행 ITX-청춘을 타고 가평역에 도착한 시각이 8시 55분이다. 열차가 마석역을 지난 후 배낭에서 미니 스패츠를 꺼내 착용했으니, 이미 산행 준비는 끝난 상태라, 바로 역 밖으로 나가, 먼저, 역 광장 주변 둘러봤다. 그런데 가평역에 대단히 오랜만에 온 거 같아, 확인해 보니, 2018년 3월 17일 낙진, 창우, 흥수와 명지산, 연인산 연계 산행을 위해 이용했던 게 마지막이다[산행기]. 고로 5년 만의 방문이고, 시기도 비슷하다. 결과적인 얘기나, 주발봉, 호명산도 명지지맥 상에 있어, 그때나 지금이나 명지지맥 산행을 위해 가평역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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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의 코스를 확인하기 위해, 역 광장 한쪽에 있는 '가평군 관광 안내도'로 살펴봤는데, 주발봉은 찾아볼 수도 없다. 고로 앞선 산꾼의 산행기를 본 기억을 더듬어 가는 수밖에 없다. 역 옆의 공영주차장에서 시작했다는 글을 본 기억이 있어 오른쪽으로 보니, 주차장이 있다. 그 방향으로 가 산행을 시작하기 전, 산행의 난이도를 확인하기 위해 등산 앱으로 가평역의 고도를 찾아봤다. 93m! 예상보다 낮다. 청평호 주변이 200m가 넘어, 비슷한 고도가 아닐까 예상했는데, 하류라 더 낮다. 그리고 내 기억에 호명산이 600m가 넘고, 주발봉은 정보가 없어 모르나, 400m는 넘지 않을까 생각된다. 고로 최고봉 기준 표고차 500m가 넘어 예상보다 크다. 지난 토요일 다녀온 동산이 들머리인 갑오고개와 표고차가 350m에 불과했으니[산행기], 오르는 높이만 계산하면 호명산이 제천 동산보다 높다!
산행 계획을 세울 때 7시간 안에 주파할 생각이었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높아, 목표 달성이 싶지 않을 거 같다. 이번 산행 코스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 하며, 주차장으로 가서 보니 그 옆에 산으로 향하는 길이 있는데, 입구를 철봉으로 차단했다. 그리고 차단봉 10여 미터 위에 큰 글씨로 '출입 금지'였나, '등산로 없음'이었나 입간판이 서 있다. 그 큰 글씨 밑에는 작은 글씨로 '사유지' 어쩌고 하는 게 보인다. 낭패다! 이때 필요한 게 지도라, 핸드폰을 꺼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두 등산 앱이 공통으로 역광장 기준, 오른쪽의 공영주차장이 아니라, 그 20여 미터 위에 등산로가 있는 거로 나온다. 해서 보도를 따라 위로 올라가자, '주발봉 등산 안내도'가 서 있다. 산행기에선 보지 못한 안내도다.
안내도의 지도가 산행에 별 도움을 주지는 않았으나, 여기가 공식 등산로의 들머리라는 걸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제 역할은 다했다. 해서 다음 산행을 위해 가평역과 들머리 위치, 그리고 그사이의 대략적인 거리를 알 수 있게 기록을 남겼다. 이후 정규 등산로 겸 ATV용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하려고 보니, 왼쪽 급경사에 인적이 있어 그걸 따라 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나뭇가지에 달린 산악회 리본이 있다. 입구에 있는 안내도를 보나, 산세를 보나, 원 소스 멀티 유즈라고 자전거 길과 등산로가 같은 길이나, 바퀴 달린 게 갈 수 있는 길은 가지 않는다는 산꾼의 고집이 능선을 따라 별도로 길을 만든 거로 보인다. 나 또한 그 산꾼 중 하나라, 급경사를 올라, 능선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예상대로 등산로를 따라 100여 미터 올라가자 자전거 길과 합류한다.
아주 당연히 산꾼이 여기까지 와서 자전거 길을 이용하지는 않을 거라, 그 위에 올라서 능선을 자세히 살폈다. 예상대로, 자전거 길을 따라 뒤로 2~3m 거리에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희미한 등산로의 흔적이 있고, 그 뒤 나뭇가지에 산악회 리본이 달려 있다. 물론 능선을 따라 산꾼이 만든 등산로로 주발봉, 밥주발을 엎은 모양이라 붙인 걸로 보이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를 향해 갔다. 그런데, 그 길도 중간에 자전거 길과 다시 합류했고, 이번에는 자전거 길 자체가 능선 위의 등산로를 깔아뭉개고 만들어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따라 전진해야 했다. 와중에 길목 곳곳에서 다른 자전거 길과 합류하다가, 산행 시작 후 20여 분이 지나 처음 만난 이정표까지 이어졌다. 다행히 그 이후에는 산악자전거 길과 합류하는 일은 없었다. 정확히는 능선을 따라 묘가 이어져 자전거 길을 만들지 못한 거로 보인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날이 화창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벌써 땀이나, 묘지 가운데에 배낭을 내려놓고, 넥워머와 바람막이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올 들어 처음 보는 생강꽃을 기록으로 남기며 주발봉으로 향해, 9시 55분에, 첫 번째 목표 2.5km 거리에 있는 이정표를 만났다. 그리고 5분가량 더 가자, 사유지임을 알리는 철조망이 등산로 왼쪽으로 이어진다. 가끔 왼쪽으로 보이는 한강 건너 산세를 기록으로 남기며 가는데, 저 앞 나뭇가지에 반가운 리본이 보여 그걸 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를 잡고 보니, 리본과 옆으로 '명지지맥 360.8 부뜰이, 라는 명패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까지 오며, 이 정도면 이름을 가진 지맥인 거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명지지맥 일부다. 호명산이 한강에 접하니, 명지지맥의 끝이 아닐까?
낙엽송 사이로 보이는 봉우리가 주발봉이 아닐까 생각하며, 그 봉우리를 향해 가는데, 오른쪽 아래로 양쪽 끝에 황금색 돔을 가진 거대한 건물이 보인다. 그 앞에는 지붕에 십자가가 꽂힌 교회로 보이는 건물도 있다. 누가 봐도 예수교 계열의 종교 단체다. 물론 현재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처음에는 예수도, 개신교도 사이비 취급받았으니, 정말 그들 말대로 메시아일지도 몰라, 아니, 메시아가 아니면 또 어떤가, 난 어떤 종교 집단이든 사이비 취급하지 않는다. 어쨌든 정체가 궁금해 등산 앱의 지도를 봤다. '꿈의 동산, 놀이공원'이다. ‘꿈의 동산?’ 어디서 들어봤는데, 그 궁금증은 귀가해 해결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구글링했다. 그 결과 놀이동산에 관한 칭찬 일색의 글로 도배됐다. 도배된 글을 보면 볼수록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다음'을 누르다가 드디어 발견했다. 신천지 소속이다! 그럼, 도배는 신도가?
지도에서 꿈의 동산 놀이공원이라는 걸 확인한 후 앞을 보자, 울창한 숲 사이로 봉우리가 보인다. 오늘의 첫 번째 목표인 주발봉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엎어놓은 밥그릇처럼 보이지 않는다. 숲으로 전모가 노출되는 걸 막고, 모든 사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니, 닮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현재 보이는 것만 가지고 주발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엎어진 밥그릇을 향해 가는데 왼쪽으로 숲을 없앤 개활지가 있다. 그리고 약초를 심었으니,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도대체 어떤 약초를 재배하는 건지 추측하며, 7분 정도 봉우리를 향해 올라가자 이정표가 나온다. 주발봉 0.2km! 가평역 6.2km! 현재 시각 10시 45분, 그럼 1시간 45분 만에 6.2km를 왔다는 거다. 이 속도면 7시간이 아니라, 6시간 내 주파할 수 있다.
이정표를 떠나, 100여 미터를 올라갔다고 생각하는데, 등산 앱은 반응이 없고, 앞에는 가평의 산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초소가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땅에 나무를 박아 정성스럽게 만든 계단이 위로 향한다. 이번 산행에서 처음 보는 정성이 담긴 등산로다. 등산로가 아니라, 군인들을 위한 건가? 주발봉은 산꾼이 관심을 두지 않는 봉우리라 등산 앱이 반응이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10시 50분, 등산 앱이 드디어 반응한다. 정상 반경 50m 내다. 동영상을 찍으며, 초소 옆을 지나, 정상으로 향하며 보니, 단파를 잡기 위한 안테나가 설치된 철탑이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정상 바로 아래에는 식탁인지 평상인지 구분이 안 되는 물건과 긴 의자가 두 개가 놓여 있는 쉼터가 있고, 평평한 정상에는 주발을 엎어놓은 형상의 정상석이 있다. 그리고 그 왼쪽에는 쉼터와 갑판 전망대도 있다. 정상의 모습만 봐서는 등산객이 많이 찾는 봉우리다.
남아도는 게 시간이고 급한 거 없는 산행이라, 먼저, 쉼터의 의자로 가서 배낭을 내려놓고, 얼린 차와 안 얼린 차를 꺼내, 산행 중 녹은 차가운 차를 마시고, 안 얼린 차를 아직 얼음이 있는 병으로 옮겼다. 다음, 바로 옆의 전망대에서 보이는 게 뭔지 확인했다. 북한강과 춘천지맥이다. 물론 날이 흐려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주발을 엎은 형상의 정상석으로 가서 삼각대를 설치해 인증을 남기고, 오랜 세월 풍파에 시달려 알아보기 쉽지 않은 지도로 코스를 검토했다. 그렇게 정상에서 해야 할 모든 걸 마치고 배낭을 둘러메고 정상을 떠나며, 이정표를 확인했는데, 발전소 고개 2km, 호명호수 4km다.
정확히 11시에 주발봉을 떠나, 5분이 지난, 11시 5분에 이정표를 통과하며 남은 거리를 확인했다. 발전소 고개 1.9km, 주발봉 0.3km! 정상에 있던 이정표와는 다르다. 이러니, 이정표를 믿을 수 없는 거다. 어쨌든 다음 목표를 향해 계속 전진하는데, 가야 할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봉우리에 도착했다. 고개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는 위치에서 앞에 펼쳐진 능선을 감상하며, 호명호수의 위치를 가늠해 봤다. 양수발전을 위해 만든 인공호수라,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을 거다. 그럼, 여기서 보이는 봉우리 중에는 없고, 저 끝에 보이는 봉우리 아래일 확률이 높다. 어쨌든 앞에 보이는 봉우리의 고도가 높지 않기를 빌며, 고개로 내려가 다시 위로 올라가는데, 저 앞 등산로 한쪽에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는 등산객이 있다. 오늘 여기서 등산객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의외다.
휴식 중인 등산객이 방해되지 않게, 그 옆을 조용히 통과해, 계속 전진하는데 옆으로 임도가 보인다. 그런데, 도로의 바닥 표시가 최근에 그린 거다. 그리고 임도에서는 볼 수 있는 표시다. 고로 임도가 아니라, 차량이 운행하는 도로라는 건데, 여기에 뭐가 있다고 도로가? 와중에 저 멀리 힘겹게 고개로 올라오는 버스도 보인다. 깜짝 놀라 자세히 살폈다. 시내버스다! 응? 여기에 정기 버스가 다닐 정도의 마을이 있나? 그럼, 버스로 여기까지 올라와도 되네? 머릿속의 버스로 이동 후 코스에 관해 구상하며, 가는데, 등산로가 끝나고 도로가 나타났다. 능선을 자르고 만든 도로로 발전소 고개다. 그런데, 양쪽에 철조망이 막고 있다. 아니, 이정표까지 있는 등산로를 철조망으로 막아 놓으면, 등산객은 어쩌란 말인가?
아무리 멍청한 사람들이라도 경기 둘레길을 철조망으로 막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처사라, 문이 있나, 철조망을 유심히 살펴봤으나, 문은 보이지 않고, 길 건너, 정자가 서 있는 것만 보인다. 해서 철조망의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 그걸 넘어 발전소 고개에 내려서서 보니, 왼쪽에는 공사가 한창이다. 그 공사 중인 곳의 철조망을 자세히 보니, 문이 있다. 다만, 공사로 막혀 있을 뿐. 그리고 무언가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서 있어, 도로 개통 기념이라 생각하고, 다가가 비문을 읽어 보니, '제18회 아시아 여자 사이클 선수권 대회' 기념이다. 이 도로로 고개를 넘는 사이클 대회를 기념하는 비다. 옆의 정자도 그때 만든 건가? 현재 시각 11시 35분 점심시간이다. 반대편 능선으로 올라가는 문이 있는 걸 확인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정자로 올라갔다.
11시 36분 정자에 올라, 배낭을 벗어 두고, 라면을 끓일? 데울? 도구를 꺼내고, 산행 시작 때와는 달리, 강한 바람과 더 흐려진 날씨에 기온이 낮아졌는지 추위를 느껴, 벗어 배낭에 넣어두었던 넥워머와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라면이 준비되는 동안, 주변을 둘러봤는데, 가장 눈길을 끈 건 건너편 철조망에 걸려있는 광고다. 자전거 용품, 식당 등인 걸 보면, 많은 자전거 동호인이 찾는 도로라는 방증이다. 물품은 관심 밖이고, 식당은 유심히 봤는데, 라면이 3천 원이다. 문제는 식당이 어디 있느냐? 최소 1km 정도는 내려가야 할 거 같아, 포기했다. 그런데, 그 추위의 설악산 서북능선보다 라면 데워지는 게 늦어, 12시 15분경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됐다. 고로 데우는데, 40분 가까이 걸렸다. 이래서 평소에 안 들고 다닌다. 어쨌든 뜨거운 물을 부은 컵라면보다는 나은, 데운 라면을 가져간 김치와 메추리알 장조림과 함께 점심으로 먹었다.
12시 21분경 점심을 먹은 후, 내가 있었다는 모든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정자에서 내려와 '발전소 고개'의 고도를 확인했다. 411m! 오차를 고려하면, 400m가 채 안 되는 높이다. 그럼, 호명호수가 400m 이상의 높이에 있다는 얘기다. 점심시간이 너무 길었다고 생각하며, 등산객은 열 수 있으나, 멧돼지는 열 수 없는 철책문을 열고 들어가, 반대편에서 철책 사이로 손을 넣어 다시 잠갔다. 그리고 호수를 향해 가는데, 막 배를 채워서 그런지, 쉽지 않다. 12시 38분 정자에서 600m 거리의 이정표를 지나, 10분가량 올라가자, 땀이 나기 시작한다. 날이 따뜻해진 게 아니라, 힘들어서다. 해서 넥워머와 바람막이를 벗어 다시 배낭에 넣었다. 복장을 재정비하는 동안, 가쁜 숨을 가라앉히고, 다시 호수로 향해 12시 56분에 호수에서 0.6km 거리의 삼거리에 도착했다. 삼거리에는 이정표가 있는데, 좌로 내려가면 ‘발전소 사택’이다. 거리는 2km! 여기서 사택까지 등산로를 만든 건 직원과 그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겠지?!
발전소 사택 갈림길을 지나 가쁜 숨을 헐떡이며, 봉우리에 올라서자, 왼쪽 나무에 무언가 매달린 게 있어, 자세히 살폈다. '무명봉 608'과 알 수 없는 그림이 그려진 명패다. 앞선 산꾼의 산행기에서 참고한 코스 중 608봉이다. 그리고 발전소 고개에서 수직으로 200m를 넘게 올라왔으니, 힘든 게 당연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등산 앱으로 고도를 확인했다. 626m다. 20m 내외로 높게 나오니, 608봉이 맞다. 그건 그렇고, 마치 지도나 생선 뼈처럼 보이는 저 그림은 무슨 의미일까? "ㅅㅁㅍㅎ"은? 수수께끼를 풀며, 무명봉을 떠나, 7분 정도 가자, 저 위로 언덕이 있고 거기에 주발봉에서 본 것과 같은 철탑과 이정표가 보인다. 그리고 그 이정표를 보고 있는 남녀 한 쌍의 등산객도! 분위기로 봐서 호명호수가 멀지 않다. 사실 사택 갈림길에서 600m 이상 왔다!
내가 놀란 눈으로 그들을 보는 걸 느꼈는지, 그들도 나를 보고 놀라는 듯하더니, 어디론가로 떠났다. 그들을 보며, 분명 발전소 고개에서 양쪽의 등산로를 주시했지만, 차량 외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봤는데, 이들이 언제 올라왔을까? 혼자 생각하다가, 반대편에서 왔을 수도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모든 게 명쾌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철탑과 이정표가 있는 곳에 오르고 깜짝 놀랐다. 아스팔트 도로다. 봉우리 정상이 아스팔트 포장 헬기장이고, 그 좌우로 왕복 2차선 도로가 뻗어 있다. 말인즉 차를 타고 여기까지 올 수 있다. 고로 조금 전에 본 한 쌍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정표에 의하면 호수까지는 아직 300m가 남았다. 그런데, 이정표가 양쪽 길 중 어디를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다. 해서 먼저, 산꾼이라면 도로로 호수로 가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등산로를 찾았다. 있다. 헬기장 건너, 관목 사이로 좁은 길이 보이고, 그 위에 산악회 리본도 있다.
산꾼을 자처하는지라, 아주 당연히 리본이 알려준 도로 조림수를 뚫고, 들어가자, 희미한 인적마저 없는 급경사 낙엽 쌓인 숲이다. 황당해서 이리저리 오가며 인적을 찾았으나, 없어, 다시 헬기장으로 돌아 나왔다. 그리고 우회전해 도로로 20여 미터를 내려가다가 무언가 이상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으나, 애매하다. 그런데 감은 이 길이 아니란다. 해서 또 다시 헬기장으로 돌아와 반대편 도로로 내려갔다. 그 도로를 따라 50m가량 가니, 다시 갈림길이다. 우회전하면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고 직진은 호수로 가는 포장도로다. 잠깐 고민하다가 등산로로 가는 게 맞을 거 같아, 우회전해 10여 미터를 가다가 이것도 아닌 거 같아,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포장도로로 호수를 향해 내려가, 1시 20분에 상천역 갈림길에 도착했다. 등산방 정기산행 때 상천역 방향에서 올라오거나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호명산 방향이 막 내려온 길이다. 호명호수에서 호명산 가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중이다!
일단 호명산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 게 우선이라, 여기저기 정보가 될만한 건 다 찾아다니며 확인했으나, 이거다 하는 건 찾지 못했다. 이제 의지할 건 두 등산 앱이다. 해서 등산 앱을 번갈아 확인하며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호수를 한 바퀴도는 순환도로를 따라가면 되다는 걸 확인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며, 호수 순환도로를 따라 어느 방향으로 가도 된다. 다면, 호수 반대쪽 끝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면 된다. 반대쪽에서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저 인공물이 호수 전망대다. 그리고 호명산 가는 길은 그 호수 전망대 뒤에 있다. 그 언덕에 호명산으로 가는 길이 있다는 걸 모르고 그저 등산 앱이 가리키는 호수 순환도로를 따라 인공 호수를 감상하며, 가다가, 호수 가운데 자라, 그리고 산기슭의 '한국전력 순직 사원 위령탑'을 구경하며, 반 바퀴를 돌았다.
호수를 따라 돌며, 곳곳에 있는 전망대에서 경치를 감상했으나, 날이 흐려 잘 보이지 않았다. 와중에 여기저기 온갖 곳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어, 호명산 방향은 어디가 하고 찾아봤으나, 없다. 그런데, 뒤에도 무언가 있는 거 같아 뒤로 돌아가서 보니, 호명산은 직진하란다. 3.6km에 1시간 30분이 걸린다는 정보다. 아니, 가장 중요한 호명산을 안 보이는 곳에 감춘 이유가 뭘까? 호수를 찾는 관광객은 호명산에 관심이 없다는 얘긴가? 어쨌든 제대로 온 것에 만족하며 계속 순환도로를 따라갔다.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가서 주변을 둘러보니, 오른쪽으로 꽤 높은 봉우리가 있다. 호명산이라기에는 너무 가까워, 등산 앱의 지도로 확인해 보니, 호명산 가는 길목에 기차봉이라는 봉이 있다. 위치상 기차봉이라 결론 내렸다. 이제는 명확해졌다.
기차봉 가는 길을 찾으며 순환도로를 따라 계속 도는데, 앞에 작은 언덕 위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있어, 일단 올라가 보기로 했다. 과히 높지 않은 언덕을 올라가자, 헬기장으로 올라가기 직전 이정표를 보고 있던 두 남녀가 거기 있다. 나보다 한발 앞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복장을 보니, 등산객이 아니라, 관광객이다. 순환도로를 돌 때, 2인용 자전거를 타는 남녀를 본 후라 놀랍지도 않다. 어쨌든 언덕 정상은 호수 전망대다. 해서 먼저 전망대 끝으로 가 호수의 전경을 감상하고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돌아 나오자, 전망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이정표가 서 있고, 거기에 호명산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이 있다. 이제는 저 화살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현재 시각 1시 37분, 호명산까지 1시간 30분. 그럼, 3시 정도면 호명산 도착이다. 호명산에서 청평역까지의 정보는 없으나, 4시 도착을 목표로 했다. 그럼, 휴식 포함 전체 산행에 7시간이 걸린다.
신이나 호명산 방향으로 고개를 내려가자, 저 앞에 또 철책이 가로막고 있다. 이정표는 그 철책 너머에 있다. 그런데, 철조망이 무색하게 그걸 따라 10m만 가면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그 중간에 활짝 열린 문도 있다. 이런 철책을 여기에 왜 설치한 걸까? 세금이 남아돌아서? 그래도 예의상 철책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가다가 문으로 나가, 이정표를 확인했다. 범우리 갈림길로 호명산 3.3km, 기차봉 1.6km다. 갈림길을 떠나, 500m가량 가자, 길은 좌로 꺾이고 다시 이정표다. 기차봉 1.1km, 호명산 2.8km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지금까지의 등산로와는 달리, 곳곳이 암릉이라 약간 위험하고, 가끔 반대쪽에서 오는 등산객과 인사를 나누며 서로 길을 양보하기도 했다. 그렇게 흙길과 암릉이 교대로 나타나는 길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가는데, 등산 앱이 기차봉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그때 시각이 2시 16분이다.
역시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향해, 메시지가 나오고 4분 후인 2시 20분에 도착했다. 기차봉은 바위 봉우리로 정상석 대신 입간판이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물론 이정표 역할도 한다. 해서 타이머를 이용해 입간판과 같이 인증을 남겼다. 정상에서는 보이는 게 없어, 인증과 정상 표지만 기록으로 남기고 바로 호명산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호명산을 향해 가며 왼쪽을 보니, 한강인지 호수인지 모를 게 보인다. 양수발전은 상부댐과 하부댐이 있게 마련인데 상부댐은 호명호수고, 그러면 하부댐은 어디에 있는지 계속 찾으며 왔으나, 보이지 않았는데, 저 아래 보이는 게 하부댐이 아닐까? 하부댐이 궁금해 구글링해보니, 예상대로 청평댐이 하부댐 역할을 하고 있다. 고로 저 아래 보이는 것도 하부댐 일부다! 그리고 앞의 울창한 숲 사이로 봉우리가 보이는데, 호명산이라 하기에는 너무 가깝다. 고로 그 뒤에 호명산이 있다는 거고, 호명산까지 순탄하지 않을 거라는 예고다.
시루떡 같은 바위가 즐비한 곳을 지나, 2시 41분에 호명산까지 580m 남았다는 이정표를 통과해 길을 재촉하는데, 2시 50분에 등산 앱이 호명산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그 소리를 듣자 힘든 건 끝났다는 안도감이 든다. 다 왔으니 놓치는 게 있으면 안 돼, 가끔 좌의 한강과 우의 상천역을 동영상으로 찍으며 정상을 향해, 3분 후인 2시 53분에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헬기장으로 한쪽에 무언가를 닮은 듯한 정상석이 서 있고, 정상 직전에는 쉴 수 있는 의자도 있다. 먼저, 배낭을 벗어 의자에 내려놓고 카메라와 삼각대만 들고 정상으로 가, 정상에서 보이는 것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중에는 호명호수의 핵심인 댐도 있다. 호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댐이 있어야 함에도, 그 위치가 명확하지 않았는데, 호명산에서는 바로 정면으로 보였다. 뻗어가는 능선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기차봉이고, 그 옆의 하얀 게 호명호수를 만든 댐이다.
정상에 있는 이정표도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에 의하면 청평역까지 2.8km다. 그걸 보자, 4시 전에는 산행을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정상석을 찍은 후, 삼각대와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남기고, 의자로 돌아가 시원한 물을 마음껏 들이켰다. 그리고 배낭을 둘러메고 정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삼각점을 기록으로 남겼다. 울창한 숲사이로 보이는 청평댐을 감상하며 내려가, 3시 3분 대성사 갈림길을 통과하고, 3시 19분 전망대에 도착했다. 호명산 정상의 높이가 632m고, 청평역이 100m 이하라, 짧은 거리에 수직으로 500m 이상 내려가는 길이라 당연히 급경사다. 해서 약간 위험하기는 하나, 속도는 빠르다. 안전을 위해 빠른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어 전망대로 가, 뭘 보라는 건지 확인했다.
청평댐이다! 전망대에서 청평댐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며 한숨 돌린 후 다시 급경사로 내려가자, 이번에는 저 앞에 운동기구가 보인다. 동네 뒷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마을이 멀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운동기구 한쪽 나무 아래에 물통이 있고, 물통으로 향하는 파이프가 보여, 여기서 고로쇠 수액? 궁금해 가까이 다가갔다. 고로쇠 수액이 아니라, 지하에서 올라오는 물을 받는 거다. 문제는 그 물통으로 물을 넘겨주는 파이프에 '음용 금지'라는 경고문이 매달려 있다는 거. 음용 금지된 물을 받는 이유가 뭘까? 경고를 무시하고 한 모금할까 하다가, 청춘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 그리고 청평역이 멀지 않아, 하산주로 뭘 먹을까 검색하며 내려가는데, 다 닭갈비다! 비록 경기도 가평이나, 춘천이 멀지 않다는 방증이다! 간단하게 순댓국 같은 뜨거운 국물에 이슬이 정도를 원했는데, 닭갈비는 과해 이번 산행의 하산주는 집에서 하기로 했다.
나무계단으로 내려가, 호명산행의 들머리이자 날머리에 도착한 시각이 3시 39분이다. 정확히는 산행이 끝난 시각이다. 목표한 시각보다 많이 단축했으나, 역에 도착해야 산행이 끝난 거고, 배는 고픈데, 이 동네에서 하산주를 하지 않기로 한 이상 빨리 집에 가는 게 급선무라 청평역으로 서둘러 갔다. 와중에 날머리에서 청평역까지도 1km에 달해 노닥거릴 여유가 없다. 그렇게 청평역으로 향하며, 조종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는데, 건너편 천가에 몇 사람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 천렵을 하는 거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이 날씨에 그것도 평일에 야유회는 더 말이 안 된다. 놀기보다는 일을 하고 있는데 도대체 뭘 하는지 궁금해하며 다리를 건너는데, 나만 궁금한 게 아닌지, 다리를 건너던 사람이 다 가던 길을 멈추고 아래를 보고 있다.
아무리 봐도 사금 채취다. 몇 해 전 TV에서 잠깐 본 거 같기도 하다.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역으로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역이 바로 코앞인데, 길은 밭을 빙 돌아가고 있다. 상식적으로 동네 주민이나, 등산객이나 돌아갈 사람들이 아니라, 어딘가 가로지르는 길이 있을 거다. 찾아봤다. 역시! 밭둑을 따라 난 지름길이 역 앞으로 바로 가고 있다. 주저 없이 밭둑을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청평역으로 향해 3시 46분에 도착했다. 그리고 서둘러 개찰구를 통과해 승차장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아, 스트레칭으로 다리 근육을 풀어주고, 미니 스패츠 등 산행에 필요한 것들을 해체해 배낭에 넣는 거로 가평역에서 출발해 청평역까지 달린 호명산 열차 산행을 마감했다. 그 시각이 3시 5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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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면, 지하철 앱으로 녹번역까지 가는 가장 빠른 코스를 탐색했다. 16시 청평역발 상봉행 열차를 타고, 상봉에서 문산행 열차로 갈아탄 후 회기에서 하차 후, 서동탄행 열차로 다시 갈아탄 다음 종로3가에서 대화행 열차를 타면 1시간 31분 만에 녹번역에 도착한다는 정보다. 고로 경춘선, 경의·중앙선, 1호선, 3호선으로 차례대로 그것도 환승 거리를 잘 계산해 타야 한다. 해서 빠른 환승 차량과 문 번호까지 외워서 앱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여 5시 50분경 집에 도착했으니, 1시간 50분이 걸렸다. 물론 마지막은 녹번역에서 버스를 탔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최단 시간과 최소 환승을 비교해봤는데, 고작 8분 빠를 뿐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나? 그런데, 최소 환승도 2회 환승이라, 최단 시간보다 1회 적을 뿐이다! 그런데, 오전에 청량리까지 가서 'ITX-청춘'으로 가평역까지 걸린 시간과 별 차이 없어 보인다는 게 문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소나기로 온몸의 땀과 먼지를 씻은 후, 한우를 구워, 손수 담근 알코올 30도의 인삼주와 함께 무사 산행을 기념하는 하산주를 마셨다. 역시 술은 독할수록 좋고 안주는 고기가 최고다!
애초 계획과 달리, 진행 순서를 바꾼 '가평역 → 주발봉 → 발전소 고개 → 무명봉(608봉) → 호명호수 → 기차봉 → 호명산 → 청평역'의 17.85km(트랭글) 구간을 6시간 50분 동안 달렸다. 이동 5시간 58분, 휴식 52분! 휴식의 대부분은 발전소 고개 정자에서 라면으로 점심 먹은 시간이다.
다른 교통수단으로 변경이 필요 없는 열차 산행지를 하나 더 추가한 것만으로도 대단히 만족한 산행이다.
날이 흐려 조망은 좋지 않았으나, 그런데도 호명호수와 한강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상천역에서 시작해 청평역으로 내려오거나, 그 역이면 대략 10km 내외에, 산도 높지 않아 등산방 정기 산행으로 적격이라는 걸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