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속이 너무나 빠르게 비워지고 있다.
일주일에 두세번 마트엘 가고, 갈 때 마다 봉지봉지 잔뜩 음식물을 사들여 냉장고속을 꽉꽉 채워넣는데도 말이다. 이곳에 온 후론 그야말로 종일 부엌에서 지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국에서 보다 서너배 쯤은 더 많이 음식을 만들고 있다. 한국에서 남편은 대개 아침만 집에서 먹었었다. 늦게 나가는 날은 점심까지 집에서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늘 귀가가 늦었던 터라 저녁은 대개 밖에서 해결을 하고 들어왔다. 우리집 아이들은 내 식성을 닮았는지 아침에 제아빠 아침으로 준비된 밥과 국, 막 볶아내고 무쳐낸 반찬들이 항상 서너개씩 있어도 마다하고 만두국이나, 칼국수, 잔치국수, 비빔국수 같은 일품요리나 떡볶기 같은 스넥류 음식을 즐겼다. 그나마 큰아이는 아침을 제외하곤(그런데 이 아침마져 늦게 일어나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다반사니 대충 차에서 먹을 수 있는 finger food(손가락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음식, 김밥이나, 빵, 튀기거나 찐 만두등과 같은)를 챙겨보내야 했다) 다 학교에서 해결을 하니 저녁은 나와 작은아이만 늘 간편하게 해결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은 무엇보다 먹거리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다. 길거리 음식도 많고, 외식거리도 다양하고, 집에서 배달을 해 먹을 수 있는 음식까지 지천이다. 밥하기 귀찮으면 그 중 하나를 선택하기만 하면 간단히 끼니가 해결되니, 나도 종종 그랬었다. 바깥음식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이것들이 주부를 노상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내야하는 일로부터 많이 해방을 시켜줄 수도 있다.
밖에 뭐 적당히 먹을 만한 것이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늘 집에서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 이곳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다.
이곳에 오자 남편은 삼식(三食, 세끼를 집에서 먹는 남자를 일컫는 이름이라나)이가 되어 버렸다. 중간중간 간식까지 챙겨야 하니 거의 오식이 수준이다. 아이들은 점심을 학교에서 먹지만 미국학교의 hot lunch라는게 거의 미식가 수준인 우리 아이들 입맛에 찰리가 없다. 신발벗기가 무섭게 층계를 오르며 먹을것을 찾아대니 아이들도 거의 세끼를 다 집에서 먹는 격이다. 안 그렇게 살다 식구들 세끼를 꼬박 챙기려니 사실 여간 고된게 아니다. 살림이 다 갗추어져 있지도 않으니 더 불편하고 해먹을게 사실 한국처럼 다양하지도 않으니 더 그렇다.
거기다, 남편은 오기 직전 받은 검진에서 당뇨수치가 높게 나와 빨간불을 달고와 식이요법을 함께 하고 있다. 더 먹을게 없다. 무엇을 상에 올려야 하나 끼니때 마다 고민이다. 밥은 남편 것과 아이들이 먹을 것을 따로 짓는다. 남편 것은 현미에 잡곡만 섞어 지어 입속에서 왜그락 왜그락 하니 큰아이는 못먹겠다고 한사코 도리질이다. 그나마 작은아이는 고소하다며 조금씩 먹어주니 다행이다. 나는 건강 생각해서 먹어주자 생각은 하지만 그 밥과는 영 친해지지가 않는다. 그러니 따로 밥을 지을 수 밖에 없다. 남편은 논문을 쓰느라 밤샘을 한 아침에도 밥을 꼭 한 공기 이상을 먹어주는, 철저히 '밥힘'으로 사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먹던 밥을 맘대로 먹을 수 없다니... 다른것으로 충분히 뱃속은 채워졌을거 같은데도 그 심리적 공허감 때문인지 자꾸자꾸 뱃속이 허하다며 먹을걸 찾는다. 그래서 채워넣고 채워 넣는데도 울집 냉장고속은 이 식신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다행한 것은, 이곳 물가가 한국보다 싸다는 것이다.(재료비는 특히 더 저렴하다)
그러나 처음으로 미국장에 들어서자 나의 금전관념은 미국식으로 바뀌어져 버렸다. 미국돈 10달러와 한국돈 만원 조금 넣는 금액은 내게 더이상 같은 가치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만원이란 돈은 아무렇지도 않게 주머니속에서 부서지거나 쉬이 쓸 수 있는 금액이었지만 미국돈 10달러는 뭔지 모르게 한국돈보다 큰 금액으로 여기져 쉬이 쓸 수가 없다. 사실 미국돈 10달러는 마트에서 많은 것을 살 수 있는 돈이다. 커다란 바케트빵 두개(1.99)와, 오랜지 4파운드 백 하나(1.99, 중간이상 크기의 오렌지가 8개 정도), 자몽 4개(1불), 나머지 5불로 소고기(부위별로 가격이 다르나 내가 보통 사는 chuck roast란 부위)도 1키로 정도 살 수 있다. 10불의 가치가 이 정도로 크다. 그런데 물건가격이 한국에 비해 저렴한데도 또 '그때는 안그랬는데...'란 생각이 앞서 쉬이 손에 잡혀지지가 않는다. 확실히 그때, 5년전보다는 물건값이 오르긴 한거 같다. 미미한 차이긴 하지만... 지난주엔 집근처의 Hyvee란 마트를 갔는데 어린아이 머리통 만한 후지사과가 눈에 띄었다. 한 입 베어 물면 상큼달콤한 과즙이 입속 가득해 질 것 같은, 빠알갛고 큰, 탐스럽게 생긴 놈이었다. 파운드당(1 Lb는 453g 정도임) 1불 59센트였는데 무게를 달아보니 한파운드가 넘게 나갔다. 한국이라면 사,오천원은 족히 될거 같아 보였으니 많이 싼 편이었지만 슬며시 제자리에 갔다놓고 1불 99센트하는 캔탈로프(cantalope, 멜론, 주황색의)를 대신 집어들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처음 마트에 갔었을 때가 떠오른다.
모두가 너무나 비싼 가격 때문에 이걸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과일을 줄창 달고 살았던 우리 아이들은 한국의 그 비싼 과일 가격에 눈이 휘둥그래지고 열린 입을 닫지를 못했었다. 더 헷갈렸던건 과일의 질과 가격이 천차만별하다는 것이었다. 미국 마트에 가면 같은 종류의 과일들은 대개 한 종류로 한 가격이다. 이런 상황이니, 미국에선 부자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마트에서 집어들 과일의 질은 같다는 얘기가 된다.(100% 그렇지 만은 않아서 대개란 말을 썼다) 그런데 한국의 마트에서 나는 내 눈 앞에 있는 상중하 질의 과일을 보고 어느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막막해졌었다. 주머니 사정이 크고 좋은 상품의, 그래서 가격이 비싼 것을 맘대로 고를 수 있다면야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과일 하나를 고르면서도 내 얄팍한 주머니 사정을 확인하는게 되니 씁쓸한 기분이 들겠다 싶었다.
마트 마다 가격차이가 나는건 예전이나 다르지 않다.
집 근처에 가깝게 Wal-mart 나, Hyvee, Dillons같은 대형마트가 있는데 세 곳을 다 다녀 본 결과 Hyvee가 가장 가격이 저렴하다 싶어 그곳을 즐겨 갔었다. 그런데 어느분이 Checkers란 곳이 다른 대형마트 만큼 산뜻하지는 않지만 좀 더 저렴하고, 그래서인지 물건의 유통이 빨라 과일이나 채소가 더 신선하다고 귀뜸을 해주셔 지난 주말에 들려보았다. 역시 그랬다. 10, 15분 쯤 운전을 해야하지만 급하지 않는한 그곳에서 장을 보게될 거 같다.
오늘은 월요일(1월 17일), 마틴 루티 킹 목사의 생일이라 휴일이다. 토요일 부터 아이들은 3일째 집에 있다. 아침을 먹고 나니 또 점심을 해야할 시간이다. 삼일째, 이곳은 해가 나지 않았다. 해가 없는 이런 날은, 기온이 오른 밖은 해가 났던 다른 날보다 훨씬 푸근한데도 집안에선 외려 을씨년스럽기가 한량없다. 지난 번 동양장에서 사온 오징어에 파 듬뿍 썰어넣고 오늘은 부침개를 부쳐 볼거나....알싸름한 국순당 막걸리도 한 잔 곁들였으면 좋겠지만 꿈꾸지 말자...여긴 미국이다.
첫댓글 더 나이가 들어 아이들이 곁을 떠나면 그래도 그 때가 살맛났다고 생각한답니다. 알뜰하게 살림을 하시는 모습 글로 대하니 반갑습니다. 건강하십시요.
지나고 보면 또 그때가 좋았다라고 생각이 들 그런때가 제게도 오겠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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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와 만원짜리의 비교도 참 재미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잡곡 섞인 밥 아버지와 함께 
린다는 심정으로 먹도록 배려하세요. 엄마도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려 줄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당뇨는 본인이 운동을 빠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운동과 산행을 꾸준히 함으로서 80을 넘기는 분도 있습니다.
약을 먹을 단계도 아니고 본인이 잘 관리를 하고 있으니 괜찮아지리란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외식을 너무 많이 하고 잘먹는 한국음식문화의 결과로 얻어진거 같아요. 현미밥은 한국에선 지금처럼 왜그락하지 않았었는데...아마도 쌀을 잘못구입한게 아닌가 싶어요. 담에 한국장가면 다른것으로 찾아봐야겠어요. 덜 왜그락거리면 큰아이도 충분히 먹을거 같은데...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현실에 만족할 줄아는 사람이 제일 부자라고 하더군요.타국에서 부자로 살으시다. 귀국하세요
고맙습니다. 그러겠습니다. 여전히 재미있게 살고 계시죠? 선생님의 구수한 이야기가 그립습니다.^^
미국에서의 생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좋은 글도 많이 쓰고 가족 모두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올해는 카페지기로 활동하시느라 더 바쁘시겠군요. 건강하시고 나날이 마음따뜻한 시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공감하는 글에 감사드려요. 가족 모두 날마다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설명절은 잘 지내셨는지요? 여긴 너무 춥습니다. 눈도 많이 내리고...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어요.
오랜 만이지?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나네. 여전히 열심히 적응하며 지혜롭게 살고 있구나. 반갑다. 가족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안녕 .... 또 소식 전할께
네...언니..고맙고..반가워요. 카페엔 종종 들려 다른 분들 소식은 보는데...언닌 통 걸음을 안하셔서 궁금했어요. 일간 전화드릴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