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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1)
【요한복음 강좌(21)】 ‘종교적인 말과 정치적인 말." 信天함석헌
종교적인 말과 정치적인 말
그런데 다른 데서 보면 이제 예수님하고 기성종교하고 충돌되는 점이 어디 있나 그러면, 종교적인 문제 때문에 있는 것같이 배웠는데, 그래 오늘 안식일을 범했다, 혹은 제가 사람이면서 하나님이라고 그랬다, 하나님을 모독했다, 그게 그러면 진짜 말로도 그럴 겁니다. 자기네와 생각이 다르다고, 그런데 여기 나오면 고소 조건에 예수를 죽여야 된다하는 그 이유를 말하는데, 그런 문제는 안 나오고, 사람들은 다 자기 걱정을 하지 않았어요?
이제 그 아래로 내려가 보면 또 있습니다. 호산나를 부르고 그러니까 “어, 당신들 괜히 그러지. 세상이 다 예수한테로 가는데 뭘 그래.” 그게 대세가 그렇게 되는 걸 이제 말을 합니다. 그러는 걸 이렇게 참작을 해서 보면 두 가지가 있어요.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본래 질투하는 것이 자기네와 종교에 대한 생각이 달라. 더구나 하나님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그런다든지, 뭐 안식일에 대해서 겉으로 어떻든지 그런 걸 고려 안한다든지, 그런 점이 맞지 않아서 그랬겠지만, 여기 와서는 그 문제보다는 저 사람이 저렇게 기적을 자꾸 하니까, 기적을 저렇게 해놓으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로 갈 거고, 그러면 로마사람이 와서 우리의 땅과 국민을 다 빼앗아 가지고 갈 거다.
그것은 종교적인 말이 아니고 정치적인 말입니다. 이제 그런 점이 주의할 점이라고. 그러니까 그럼 어느 몫이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진짜는 본래는 종교적으로 서로 다른데 있었는데 예수를 죽이려니까 그 정치적인 걸로 구실을 몰아서 이제 그럭하는 거라. 그건 왜 그러냐? 일반사람한테 그렇게 선전하는 것이 효과적이니까 그런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그러나 그보다도 한 번 더 깊게, 한 번 더 깊이 생각을 하면, 이 종교란 기성제도화한 종교라 하는 것하고 정치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그런 점에 정말 근본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노상 수단으로만 그러는 거 아니라, 이게 정말 여기서 자기네 그 실지 이해관계에 가서 그러는, 이게 여러 가지로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또 기적을 저 사람이 저렇게 행하니까 그대로 둔다면, 그러는걸 보면 예수께서 말하자면 민중을 이렇게 현혹을, 선동을 하기나 하는 것처럼 그렇게 보고 있는데, 여기에 이제 주의할 건 이런데 가만히 읽어보면, 오늘날과 거리가 대단히 있다하는걸 생각을 하고 이걸 봐야 될 겁니다.
거리 있는 건 뭔고 하니 이건 어디까지든지 민중은 여기 소위 요새 말하는 평신도는 없습니다. 여기는, 정치에도 그렇고 종교에도 그렇고, 평민이란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위에 있는 집권층이 쥐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러지. 예수에 대한 것도 평민더러 가르쳐줘서 뭐 이렇게 하려고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보다는, 위에서 작정을 해서 이런 사람 이런 거니까 접촉하지 말라, 그런 사람 하나님 사람이 아니니까 너 따르지 말라, 그러고 교회서 작정을 해서 여기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에서 쫓아낸다, 그렇게 결정해 버렸다고 그랬지. 믿는 사람더러 이렇게 가르쳐서 판단을 해가지고 도무지 그때 사회 상황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하는 거, 그런 점은 지금과 아주 매우 다르다 하는 거 염두에 둬야할 겁니다.
종교 유지를 위해 정치세력과 야합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이게 좋은 뜻으로 생각을 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유대나라란 어떤 형편이냐 그러면 독립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로마에 완전한 영토는 아니지만, 보호국모양으로 있는 그런 땝니다. 그 이름이 헤롯왕이라, 분봉왕 헤롯도 있고 뭐 그런 거 있지만, 실력은 로마의 제국 밑에 있어서, 그러나 제 나라라 하는 형태는 가지고 있지요. 있지만 실지는 로마에 속해있는 건데, 그러니까 이들 생각에는 하나님의 뺀 백성이라는 그런 생각이 지금도 꽉 들어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뺀 백성으로써 자기네에게 맡겨진 성경, 구약성경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 그 말씀이 유대교를 지켜간다 하는 것을 대단히 중대하게 생각해. 그것은 사실입니다. 역사적으로 공헌이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그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나마라도 전해왔지. 만일 그 생각 안했더라면 안 됐을 거야. 그러니까 그런 점은 현실 면에서 한다면 매우 많이 봐줄 점이에요. 그러게 얼마나 했느냐 그러면, 꼭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대적이 와도 주일날 오면, 안식일에 오면 나가 싸움을 하질 않아, 그러기 때문에 대적이 올 땐 될 수록은 안식일 골라서 왔다는 거 아니요? 골라왔지만 안식일 범할 수는 없으니까 될 수록은 가만히 있다고. 그래 오는 놈도 나쁘지만, 그런 약점을 이용을 해서 이제 침략을 왔다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하여간 그렇게까지 지켰다 그러는, 그런 점을 이제 생각을 해, 동정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그거 왜 그랬냐? 그러면 뭐 이제 이렇게 되면 그나마 옛날 그 하나님 말씀이라고 이걸 유지해 가려면, 안식일을 이렇게 지키지 않고는 현실문제로 할 때 방도가 없다고. 아마 그쯤 그렇게 됐을 거야.
지금 우리가 보면 외양에 그런 거 지키려면 지키는 거야 그러겠지만, 그때 현실로 하면 이 사람들로 하면 좋게, 남의 나쁜 점만 말고, 좋은 점으로 해석을 해보면, 이건 율법에 대한 열심, 그걸 될 수록은 그 율법에 대한 마음이라는 게 물론 좁아진 마음이에요. 아주 좁은 의미의 “우린 뺀 백성이다,” 그런다든지 하는 그런 생각에, 지금으로 보면 그대로 허락할 수 없는 마음이야. 하여간 그래도 지금도 있는 기본 생각한다면 펀더멘탈리즘(fundamentalism) 그 신앙모양으로, 생각이 그렇게 된 사람들이거든, 그러니까 좁기는 좁지만 어느 정도 거기 그 뭣이 있다고 하는, 그런 건 인정해 주는 거. 그런 게 없지 않아 있는 거, 그렇지만 그것만이 아니야. 이들이 정치적으로 장난을 한다고 로마사람이 조금 있다 보면 압니다.
이렇게 여기서 뭐라 그런가 하니 “아, 저 예수라는 사람이 저대로 말을 저러면 민중이 다 그리로 따라 갈 터이고, 그러면 로마사람이 와서 우리나라의 백성을 다 먹어치울 거 아니냐?” 이렇게 큰 걱정이, 그러니까 이놈 둘 수가 없지. 이게 그 내세우는 건데, 그런 사람이 조금 있다가, 불과 며칠 있다가 빌라도한테 가 가지고 어떻게 하게든 “저 예수 죽이자,” 합작을 하고 그러지 않아요? 그러면 이 사람들의 이 마음이라는 거 우리가 대개 알아요. 그러면 참 미운 것이 자기네 종교를 위해서는 그 더럽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는, 그런 게 이것이 이때만 그러냐? 그러면 어느 시대에든 종교가라는 거 이렇단 말이야.
지금은 보세요. 지금은 지금대로 현 종교를 유지해 가기 위해서 정치세력과 타협을 하고 야합을 하는 일이 없겠냐? 방식만 다르지 그건 상기도 마찬가집니다.
그러고 지금은 그런 시대, 말을 안 하니까, 지금 뭐라 그래, 기독교 사람 말을 하고 그래, 가령 우리가 말해. ‘전쟁 반대’ 전쟁해서 안 된다면 “공산주의자가 있는 한 그럼 어떡하겠습니까?” 그게 마치 뭣과 같은가 하니, 저사람 말대로 한다면 로마사람이 와서 우리들의 곡물과 땅을 다 빼앗아 갈 거야?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유 뭐 그대로 평화주의자가 된다면 그게 다 공산주의자 주자는 말입니까?” 그거 다 똑같은 말이지. 다를 거 있어요?
이렇게 2천 년 전에 일로 보고 하질 말고, 오늘날 일로 이제 번역을 하면, 우리에게는 그럼 이것이 어떻게 있느냐, 이점을, 그래야 이 문제가 이제 어느 만큼 어려웠더냐? 또 왜 그것이 나오나? 알 수 있어. 예수가 도대체 그러면 이건 뭘까요? 그러면 이 말만 보면 직접은 알 수 없어요. 왜 예수 따라가는 사람이 많으면 로마사람이 왜 와서 다 먹어치우겠나? 왜 어찌해 그런단 말이겠나? 그런 아무것도 무슨 예수님이 언제 로마에 가서 로마사람 하고 가서 야합을 한단 말입니까? 뭐 그런 것 아무것도 없거든, 도리어 예수님도 로마사람한테 말 많이 감시받고, 성경에 별로 그렇게 나타난 것 없습니다만, 종래 마지막에 빌라도가 예수를 죄가 없는 줄 알아.
거기 본질은 저 종교문제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러는 건데 그래도 가지고 와서 그러지만 죄 없는 줄 알면서 내 주는 건 뭐냐? 아 이놈들이 뭐라고 해. 저사람 둬두면 그럼 당신 가이사 백성이 아니오? 그러고 왜 그런가 하니 그전에, 예수 나시기 전에 한 백년, 수 백 년 전에도, 마카비2)라고 하는 사람도 반란을, 유대 종교를 가지고도 종교적으로 로마사람의 기반을 벗어보려고 반란을 일으키고, 그런 일이 있어.
“선생님 하시겠다면 목숨 내 대겠어요”
그러니까 이것도 말하자면 그런 사람 아닌가? 로마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건 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요새 말로하면 순전한 종교가로 보질 않아. 순전한 종교가로 본다면 빌라도도 놔주었을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보지를 않아요. 또 민중 편에서나, 민중 편에서도 순종교적이 아니야. 그러게 뭐냐 그러면, 다른데 있는 말이지만 억지로 예수님을 끌고 가서 임금을 막 삼으려고 그랬다고 그러지 않아요?
그건 뭐냐 그러면, 로마세력에 대해서 “우리 혁명합시다.” 혁명에 앞장서달라고 혁명에 “두목 돼 달라”고. 그 말이거든, 임금으로 삼는다는 건 그건 어찌해 그러냐? 그러면, 이날까지 오면서 이스라엘사람들이 기다린 것이 선민으로서 기다린 걸 보면, 메시아 오기로 했는데, 그 메시아란 뭐냐? 그러면 군인이에요. 군인, 훌륭한 정치가가 오면, 능력을 가지고 모든 대적을 다 몰아내고 그래. 유대나라에서 모든 외국군대를 몰아내고 그렇게 하고 독립을 시키는 그런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 생각은 어떠냐? 안 그렇게 하거든,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억지로 이 사람들은 뭐 “아, 저렇게 죽은 사람도 살리고 놀라운 사람인 다음엔 못할 거, 이게 정말 메시아인가보다,” 그래서 떠들어서, 떠들어서 뭐 “선생님만 나왔다면 우리 뭐 목숨이라도 바치고 하겠소.”그랬을 겁니다. 그 사람, 예수님까지 기다릴 거 있어요. 우리 집에도 있다면 있다는 거 뭐요? 정중하게 “선생님 뭐 하시겠다면 목숨 내대겠어요, 우리 다 각오했습니다.” 그리고 나한테도 오는 사람이 있는데, 예수님한테가 그 말 안했을 리가 없어요.
그렇지만 거기 안 넘어가는 게 예수님이에요. 그건 왜 천연히 그 본 메시아라고 그러기만 하면 달라, 이제 그 점이 참 놀라운 점이에요. 예수님이 돌아가시기도 그래 돌아가신 것이고, 기독교나 사회종교가 나온 것도, 세상이 구원이 되길 그걸로 인해서 이제 구원 되는 거야. 이건 지내놓고 보니까 알지. 그때에서 보았다면 이게 얼마나 알기 어려운 문제였겠나? 그러니 그게 나타나 가지고 “여보, 당신 메시아면 메시아라고, 아니면 아니라” 그러고 “제발 사람 살려, 마음이 죄서 못 견디겠소,” 기면 기다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그래야죠. 그러리만큼 고 안타깝게 그런 것이, 그 교파적으로 나쁜 마음도 있지만, 또 하난 그때 실정으로 그 사람들의 마음에 그럴 수가 있었다고, 그런 줄 알면서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나, 그러면 털끝만큼도 그런 색체가 없어. 아주 “내나란 이 땅에 있지 않다”, 분명히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그런 점 생각하여야. 그럼 유다가 배반한 것도 그것인 줄도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그렇게, 그렇게 돼서 이 비극이 나오는데, 그럼 고런 말을 조금 더 요렇게 조건을 따지면서 말한다면 왜 이 사람들이 예수님이 언제 정치적인 선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그런 하자는 것도 아니고, 로마사람한테 뭐 나라를 팔아넘기는 것도 아니지만, 많은 민중이 예수를 다 따라간다면 로마사람이 와서 우리나라를 보면 그럴 꺼다 하는 거, 무슨 까닭일까?
하나로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어. 예수라는 사람이 만일 민중의 저렇게 호위를 받아가지고, 고대로 호산나, 호산나 그러는걸 보면 가능성이 없지 않아요? 하시기만 하려면 큰 이렇게 했을 거야. 그런데 그럭한다면 어드런가 하니 아, 정말 이건 로마사람이 군대를 들어 밀어가지고 뭐 우리나라 이러한 이것조차도 남지 않게 할 꺼다, 예수가 그런데서 두령노릇이나 하지 않을까? 이런 의심을 해서 그랬다고 그렇게 해석 할 수도 있어요. 그런 가능성이 있거든, 예수님 물론 안하시지만.
그렇게 해석을 한다면, 그럼 어떻게 되는가 하니, 이 사람들은 뭐냐 그러면 나라를 팔아서라도 종교는 그대로 가지고 갔으면, 그랬다 그 말이야.
옛날식에 하는 이 종교를 유지해 가기 위해서는 말이야. 로마사람 밑에 이렇게 독립 못하고 있으면서도 이거래도 좋지. 거기 간 건 로마하고 붙어먹는, 그러면 종교라는 건 그럴만한 가치가 있나? 그럴 필요 있나? 그게 종교이겠냐?
교회가 유지돼 가기 위해서는 공산당 밑에라도 어느 정도 복종을 하고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그런다든지, 일본사람 밑에서도 어느 정도 협조를 해야 하지 않겠냐? 그런다든지, 그런 식이 다 똑같은 식 아니냐? 종교에 설 때에 종교를 위해선 ‘하나님 말씀을 유지해가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타협이 부득이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런 논리가 나온단 말입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할 건 그렇게 하고 된 것이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교회일까? 인간으로 하면 그러고 싶어요. 아, 이거 뭐 당장 뭐 하고 교회당 다 불살라버리고, 무찌르고, 헤쳐 버리고, 뭐 기독교 믿는 사람 다 죽인다고 그러는데, 어떻게 되거나 목사 한 사람이 “나는 죄인이 될 셈 치고라도” 가령, 그러니까 조금 의협심을 발한다고 그래서 공산당에게다 좋게, 좋게 얘기해서 그래가지고 나가서, “책임은 내가 질거니 당신들에게 묻지 마시오.” 그렇게 하고 자긴 가서 공산당에 이렇게 발라마친 소리를 하고 해서 어느 정도 교회모임은 자유를 얻었다. 그런다면, 여러분이 잘했다 할 겁니까? 못했다 할 겁니까? 참 진리에서 의미에서 할 땐 “야, 죽으면 죽었지. 우리 그것 고맙지 않소. 그게 거기 하나님의 교회라 할 것 없소.” 그래야 옳을 건데, 인간인지라 그렇게 나가기만 할까? 거기 그 어려움이 많이 있지 않나?
교회 안까지 파고 들어온 정치
이런 문제가 이게 오늘날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문젭니다 이게, 일단 이것은 게까지 공산당이란 데가, 그러니까 조금 먼 것 같아서 그렇지, 5·16 정권이라고 그럽시다. 그럼 어떻게 되나? 마찬가지야. 5·16 정권은 정말 하나님 뜻에 합한 거라고 판단했을까? 기독교인들이, 목사님들이, 정의에 아주 이 나라를 건지기로 혁명이라고 했을까?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랬나? 그건 뭐 요새도 그래요.
삼선 뭐, 이건 별문제, 옳고 그르고 내놓고 합시다. 가령 이걸 내놓고 얘길 해도 다 어드런고 하니, 내가 실지 만나지 않았습니다. 더러 듣는 말들은 뭔가 하니, 이런 때에 말로 이거 제발 문제없습니다. 아까 평지풍파라고, 이런 문제없이 지내가자면 뭐로 보던지 앞이 조금 나아지겠는데, 괜히 이건 뭐 여러 가지 구실을 붙여가지고 하던 사업 우리가 있어 계속해야한다, 공산당에게 저 사람 있어야 된다. 그렇게 한다면 쓸데없는 구실이고, 그밖에 사람이 삼천 명씩, 삼천만씩이나 있는데, 사람의 씨가 그렇게 모자라겠습니까? 없겠습니까?
그러니까 괜히 그건 구실이고, 구실이고 그렇게 해가지고 이제 이렇게 하는데, 적어도 이 옳은 이성을 도리대로 하라 그런다면 말이야, 아니 형사도 안 따라다니고 누구 뭐하지 않던 맘에 있는 대로 말해라, 그런다면 제발 삼선 안하면 좋지. 아마 다 그럴 거예요. 난 삼선 반대하는, 선전하느라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만, 우리 양심으로 말하면 그럴 터인데, 그럼 이게 문제가 이렇게 그냥 지내갔으면 이 나라를 위해서 참 행복하겠는데, 괜히 이런 걸 일으켜 가지고 학생들 이렇게 하고, 서로 불상사를, 죽지는 않았습니다만, 이런 일이 나니, 이게 야단나지 않았습니까? 이거 이렇게 우리가 문제를 좀 확대해서라도 강경하게 이건 옳지 않다고 하는 표명을 하면 어떻습니까?
이런 말을 하면 뭔가 하니, “나는 뭐 맡은 교회도 있고” 뭐 어쩌고 해서 “나 표면에 못 나서.” 그건 뭐에다 써먹자는 교회냐? 그 말은 도대체 우리가 여기 이게 이천 년 전에 일로 생각을 하면, 우리가 신랄하게 비판을 할 수 있을 거예요. 허나 오늘날 우리 일로 그렇게 구구하게, 하나님이란 상당히 어느 정치부에 계시는 하나님이지, 기운을 어디 펼 수 있겠냐?
또 그다음에 이제 딴 조건을 생각해. 그럼 어디까지가 종교고, 어디까지가 이제 정치냐? 현실에 역사에서 얘기하면 사실 이렇게 정교가 분리되는 것은, 종교가 더 순수하게 종교적이기 위해서 종교이기 위해서 그러는 건데, 실지로는 교회라 그런다하면 가톨릭 같은 덴 물론이라고, 정치가 안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정치가 거기 들어가, 정치가 여기 있는 정부하고 뭐 이렇게 이래야만 그러는 거 아니라, 교회 안에 그 일이 주로 정치라 그 말이야.
가령 어떤데서 무슨 감독을 뽑기 위해서 투표를 뭐 백번인가 몇 번을 해도 된다, 안 된다. 그거 정치지 그게 종교요? 종교 될 리가 없어요. 무슨 가령 뭐 전도를 파견을 한다, 뭐 여러 가지 구체적으로 교회 질이라고 그럽니다만, 그런 문제로 가보면 그게 순전히 정치적인 그 활동을 하고 정치적인 태도를 하고 있지. 신앙적이 아니라 그 말이야. 가령 신앙적으로 어때. 이천 년 전에 이들이 순전히 하나님을 믿는 신앙적으로 한다, 그런다면 어드러겠나? 설혹 예수라는 사람이 협잡꾼이 돼서 민중을 유혹을 시켜가지고 휘두르고 그런다 하더라도, 저걸 가만 두면 안 되지.
그런 결론은 안 나올 겁니다. 종교는 그런 결론을 안 하는 데라야지. 왜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나오는 거니까 우리가 죽이려고, 우리가 어디 해버려야지. 그것은 믿는 태도가 순수하게 종교적이라면, 종교적이라면 하나님의 사람 아니라 대적이 당장 우리 멸망시키기 위해 왔다 그러더라도, 폭력으론 안 돼.
왜 그런가 하니 폭력은, 그래 이제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예수님하고 충돌되는 점이, 그런 점이 퍽 크게 관계됐을 거다, 이쪽으로 해도 그러고 어느 쪽인지 몰라요. 자기네 형식상의 종교를 유지해 가기 위해서 로마와 타협, 자기네가 타협하려고, 그러니까 로마에 팔아먹고 어느 정도 식민지 노릇을 하더라도 우리 좀 “우리 종교만은 유지하게 해 주십사” 그런다면 빌라도한테 “아이 고맙습니다. 덕택에 그저 우리 일합니다.” 이러면서 하여간 이런 따위 사이비종교를 가져가기 위해 그런 건지, 그러지 않으면 또 어드런가 하니, 사실 생각하기를 저거 예수라는 사람 뒀다가 민중이 모르고 온통 이렇게 다 그리로 넘어가서 말이야. 예수의 말을 듣다가 로마사람이 정말 와서 다 이렇게 할 땐, 우리 아무것도 다 없어지지 않냐? 그렇게 해서 종교적인 자기네 나라, 종교적인 입장에 서서 나라 걱정을 정말해서 그랬는지, 그건 진실 된 마음에도 그럴 수 있어요. 그렇게 하는 경우에 예수가 걱정 되는 건 무엇이 걱정이 됐겠냐? 그런다면 예수의 평화주의가 주로 문제 돼서 그러지 않았나?
예수님 생각의 근본은 평화주의
그래 여기 분명히 나타나진 않았으니까 모르긴 모르겠습니다. 뭐라 하는지 모르지. 그저 저 사람만 민중이 다 따라가면, 로마사람이 와서 우리나랄 다 먹어치울 터니까 그런다, 그런 거 예수가 인기를 얻어서 그렇게 돼 가면 왜 망하게 된다 하는, 여기 분명히 따져 말 안 해 모르지만, 이쪽으로 붙이고 하거나 저쪽으로 붙이고 해석을 하거나 간에, 예수님의 비평하는 주장하는 목적 된 것은 뭔가 하니, 그의 그 평화주의, 예수님이 평화주의를 썼던 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닌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런 건 모독이, 그건 종교적으로 하면 그렇지만, 그게 정말 그렇게 모독이 돼 그런다면 말이야. 자기네들이 로마한테, 그 사람한테 가서 아첨을 하면서까지 하려고 그러지 않았을 거예요.
종교문제라 그러지만 “아, 우리는 가이사의 백성입니다. 가이사 밖에 우린 임금이 또 다시 없습니다.” 뭐 그런 소리까지 해가면서 했을 리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어쩌면 이들이 하는 거라면 철두철미 아주 정치적이라고, 종교적인 태도가 아니고 아주 수단을 써요, 정략을 써요. 모여서 저 자식을 그냥 두면 안 되지, 어떻게 해야지 하는 게 벌써 정치지 종교가 아니라 그 말이야. 종교에선 그런 일 절대 없어요. 날 죽이는 사람이 뻔히 뭔지 알면서라도 미리 비밀리에 회의를 해가지고 어떻게 습격을 해서 그 자식을 없애려 하는, 그런 것에 그런 건 종교적인 입장에 설 땐 종교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구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 종교의 태도는 죽고 사는 것이 전혀 하나님한테 달렸다, 하나님에게 달렸다 하나님에게 달렸으니까 반항을 한데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진리로 하는 거지 말이야. 폭력을 쓰고, 수단을 써서 거 어디 있는지, 있는 곳을 알아가지고, 불의의 습격을 해가지고 잡아다가 그런 수작 안한다, 그런 데가 이것이 종교라 그러지만, 정치 노름이에요.
완전히 정치노름 그런데, 그것이 이천 년 전에만 그런 거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종교라 하는 기성종교라고 하는, 교회라 이런 걸 만들고 나면 자꾸만 그렇게 되게 돼. 그렇게 되게 된 약점이 거기에 있다 그 말이야. 교회 없이 살 수 없지요. 없어요. 거기가 참 어려운 데야. 참 어려워 그러니까 그런 점에 있어 예수님은 아주 딱 분명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목숨이 죽으면 죽었지 수단 방법은 난 안 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일하는 식으로, 능력이 죽은 사람도 살릴 리만큼 그렇게 훌륭하신 그 능력이 있는 분이지만, 자기의 일신의 무슨 문제를 해결하기, 피하기 위해서 능력을 썼다는 일 없어요. 뭐 배가 고팠는데 자기 어떻게 안 먹고 뭐 어떻게 했다든지 그런 일 없어요, 개인의, 자기의 육신의 안위를 위해서 능력을 그렇지 않아. 그러니까 근본이 예수님의 생각에서 아주 근본 우리가 주의할 건 어디까지든지 평화주의야?
그래 대적도, 아주 교법사들이야 이런 사람들의 제일 맘에 아니꼽게 들리고 둬선 안 되겠다 하는 소리가, “내 원수를 사랑하라”든지, “대적을 위해 기도하라”든지 이런 소리가 다 마치 어떻게 들렸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을 이 교법사나 가야바 이런 사람들 물론 아주 간악한 사람들이에요. 자기네 이 세력을 위해서 시기가 나서, 예수 주로하면 시기 때문에 예수 죽인거지. 나라 위한 때문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라란 걸 내세웠다 하는 데가 우리가, 우리는 그때 그 사람들 뭐 자기네 시기 때문에 그런 거지 그러지만, 그것은 아니에요. 내세웠으면 남이 그 내세운 그 조건을 들어가면서 반박을 해야지, 그건 아니라고 거짓말로 한 거라고, 내세웠는데 그게 내세울만한, 그 세우면 이일을 될 만한 무엇이 있다, 도리에 맞는다, 수긍이 될 수 있다 하는 점을 생각하기 때문에 내 세우는….
그러니까 그 점을 생각해, 그러니까 이들의 본심을 말하면 사사, 자기네 시기 때문에 그래 그랬는지 모르지만 순수한 의미에 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다는 것보다도 인간적인 욕심에 그랬을,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그렇지만 내세우 것은 나라라 내세웠다, 나라라 내세우는데 뭔가 하니, 저 사람 둬두면 우리 민족과 국토가 다 외국에 넘어가고 말테이니까, 팔기엔 저가 실지로 많이 파는 사람인데도, 남한테 말한 땐 그럴 테니까 우리가 저사람 그냥 둘 수 없다, 그렇게 하고 해서 분명히 종교인데, 종교가인데 그를 죽이는데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서 이렇게 했어. 그랬다하는 데가 주의할 점, 그건 왠가 하니 이렇게 말하면 민중도 인정할 꺼다, 그 생각이 그 속에 들어있다 그 말이야. 그러지 않고는 그런 말 안한다고 자기네가 실지 그렇게 믿었대도 믿지 않으면서도 그 말할 수 있는데 믿지 않으면서도 그 말했을수록, 말하자면 뭔고 하니 요샌 정치에서도 그런 것 잘하잔…
내 실지와 내놓는 그게가 가령 어드런고 하니 저번에 어디 가 강연했더니 그 이튿날 중앙정보부에서 찾아왔습디다. “선생님 주민등록증을 중앙정보부에서 만들어 낸다고 그런 말씀했다지요?” “아니 나 그러진 않았소. 주민등록 하는 것 난 반대 한다 그랬고 중앙정보부 얘기 했는데 둘을 얘기했는데 그래 그랬지 내가 아무리 무식하기로서니 중앙정보부에서 주민등록증 만든다고 그랬겠소” 그러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또 기탄없이 “국민들이 중앙정보부란 것을 굉장히 미워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무슨 테러 사건이 나면 틀림없이 중앙정보부에서 만들었다 그렇게 압니다. 나는 있는 대로 당신에게 말해드립니다.” 그러니까 “아휴, 터무니없습니다. 우리 그런 것 아닙니다.” 선생님 모르시지 이 공산주의자 색출해 내려면 간첩 색출해 내려면 아주 절대 필요하다는 거예요.
“나도 기술적으로 말하면 그걸 인정하겠소.” 그건 물론 그러겠지요, 난 기술적인 그 문제를 말하자는 거 아니라 근본을 말하자니까 그래 난 말하는 거요. 내 이제 반공이라는, 그러게 아주 강조하는 것이 그래요 반공이라는 거 나도 그랬어, “세상에서 그건 압니다. 중앙정보부라는 것이 반공을 진짜로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압니다.” 그랬더니 그건 아주 좋아서 “그렇습니다”.
반공은 반공이지만 반공을 왜 반공도 아니지 반공만이 아니라 난 몰라요 중앙정보부에서 하는 내용을 난 모르니까 모르지만, 일반 세상에서 하는 걸로, 내가 그 소리도 다 했어. 뭘 그래 일반 세상에서 알기는 지금 중앙정보부에서 하는 것은 삼선개헌을 절대로 추진하려는 100% 그 일만 하고 있다더라.
지방에서 인심조사를 해보니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3년은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야단이 나서 요새 열심으로 그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건 절대 안 그럽니다.” 중앙정보부 사람말대로 아니 그런다, 아직은 그러지만 일반인이 믿는 것으로 하면 그 사람들은 하는 일이 공산당 반대하는 것보다는 딴 데 있는데 그걸 하기위해 반공이라 것을 나타내다 주민등록이라 해서, 나는 내 소신으로 주민등록이 색출하는데 편의도 있겠지만 주목적이 그것보다 다른데 있다.
다른데 있으면서도 반공이란 것을 내세우겠나, 이 국민이 반공이라기만 하면 뭐든지 허락을 할 수 있게끔 상황이 그렇게 됐다, 고게 중요한 때라 그 말이야. 그러니까 이때 유대사람으로서는 무슨 옳지 않은 짓을 해도 우리나라가 망해요 ‘우리나라가 로마사람에게 망해 버리지 않아?’ 그럭하면 다 민중이 인정을 하리만큼 상황이 그렇게 돼 있다 그 말이야. ‘로마 밑에 있지’ 그러면 과연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종교의 자유, 도리라 진리라 이런 것을 어느 정도 억누르면서도 나라의 명맥이 유지되기 위해서 다른 나라와 타협을, 그럴 필요가 있겠나? 이게 우리 현대에 있어서 종교 믿어 가려면 실지로 당하는 문제입니다. 이제 어떡할 거냐. 아마 여기 자신 있게 분명하게 대답할 사람 많지 않을 거요. 대단히 어려울 겁니다, 대단히 어려울 겁니다. (녹음21, 32:20)
1) 1969.7 요한복음 11장
2) 유대에 대한 종교적 탄압으로 마키비 형제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유대인의 반란. 마카비 혁명(BC.167-BC.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