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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구강암 말기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간병하며 SNS에 쓴 3년간의 일기다. 말기 암 판정부터 수술 결정, 항암과 방사선 치료, 이후 회복과 쇠약을 반복하기까지 책 속의 여러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지은이가 어머니를 간병하는 모습 속에서 오히려 어머니가 홀로 두고 떠날 아들을 위해 인생 수업을 가르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지은이 역시 책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어머니 간병 시간은 나의 인생 수업 시간이었다. 이토록 멋진 수업을 내가 어디서 또 받아볼 수 있을까.”
목차
프롤로그_ 발이나 얼굴이나 다 같은 한 몸인데
1부│ 나 아직 살아 있니?
암 수술에 대한 조언을 구합니다 │어머니와 고춧가루 │ 코로나보다 어머니가 더 무서워요 │ 기저귀를 갈아드리며 │ 어머니라는 의사 │ 나 아직 살아 있냐? │ 어머니와 함께하는 여행 │ 엄마라는 호칭 │ 그래 살아야겠다 │ 양로, 양육의 기쁨 │ 최선의 치료법을 찾아가는 과정 │ 파안대소 │ 네가 건강해야지, 나만 살면 뭐해 │ 간병은 끊임없는 공부
2부│ 어머니의 레시피
어머니가 드디어 김치를 담갔다 │ 어머니의 무 요리가 달았던 까닭 │ 환자에게 속지 않는 법 │ 다시 받은 어머니 밥상 │ 어머니 열무김치의 비밀 │ 원조 도시농부 어머니 │ 주독에 절은 속이 확 풀리는 맛, 황태국 │ 어머니를 살리고 있는 힘 │ 근심 덩어리 아들 │ 검은 머리가 나다 │ 다만 더는 외로움 없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 어머니의 레시피로 만든 파래김치 │ 어머니의 진짜 겨울 별미, 굴뭇국 │ 어머니는 진정한 나의 하느님 │ 죽음을 이겨내고 차려주신 생명의 밥상 │ 엿기름은 쌀락쌀락한 가을에 길러야 달아 │ 예쁜 우리 엄니 │ 어머니의 물김치 레시피 │ 어머니와 코로나 백신 │ 조리로 돌을 걸러 해주신 잡곡밥 │ 무 물김치보다 맛있는 배추 물김치 │ 관음보살을 친견하다 │ 어머니와 꽃게찜
3부│ 내 삶의 스승이신 어머니
고양이들은 참 욕심이 없어 │ 삽을 잡은 어머니 │ 수박 주스와 삶은 감자 │ 어머니의 달걀볶음밥 │ 어머니의 메모 │ 밥 먹는 것이 제일 힘들어 │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지 │ 보약보다 중요한 것 │ 사랑을 줄 수 없는 고통 │ 한 해를 더 살다 │ 입에 좋은 거 말고 몸에 좋은 거 먹어라│ 가장 귀한 차례상 │ 어머니는 한결같은 내 삶의 스승 │ 부질없는 약속 │ 홍합국 끓여 먹어라 │ 잔소리를 해도 든든해 │ 후회
4부│ 어머니와 함께한 3년간의 동행
어머니의 노트 │ 응급실 │어머니와 바다 │ 나, 요양원 안 갈래 너랑 살래 │ 어머니를 속이다 │ 어서 장례식장 가자 │ 인천의료원 가봐라 │ 2년만 더 살게 │ 사는 게 지겹다 │ 어머니가 나를 살렸다 │ 너는 환잔데 나는 환자 아니야 │ 절대 나가지 마라 │ 죽으면 다 흩어져버려 │ 어머니와 럽스타그램 │ 슬픈 전복죽 │ 너 통영 갔니? │ 유언장을 쓰는 시간 │ 끝날 때까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 살아 있으니 행복해 │ 나 좋은 거 좀 먹이지 마라 │ 어머니와 소나무 │ 2년 다 살고 나면 어떡하냐? │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는 고통 │ 아직은 때가 아니다 │ 말 없는 말씀 │ 궁즉통, 궁극에 달하면 통한다 │ 페이스북 인드라망, 온 세상이 어머니를 돌보다 │ 고향 가는 길 │ 임종
에필로그_ 또 하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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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강제윤
1988년 『문학과 비평』을 통해 등단한 시인. 문화일보의 '평화인물 100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청년시절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로, 인권운동가로 살았으며 3년 2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98년, 귀거래사를 부르며 보길도로 귀향했으나 고향에서의 삶도 순탄하지 않았다. 보길도의 자연하천을 시멘트 구조물로 바꾸고 고산 윤선도 유적지에 대규모 댐을 건설하려는 행정관청, 토목업자들과 맞서야 했다. 그 결과 자연하천을 지켰고 33일간의 단식 끝에 댐 건설도 막아냈다. 하지만 2005년 어느 날, 문득 떠돌며 살고 싶은 열망에 이끌려 다시 고향을 떠났다. 지금껏 거처 없는 유랑자로 자발적 가난의 삶을 살아간다.
태생적 섬사람이며 섬 활동가다. 시인,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전라남도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자문 위원, 경상남도 ‘섬 발전 자문 위원회’ 자문 위원. 20여 년 동안 400여 개의 섬을 탐방하고 기록해 왔으며 난개발로 파괴되어 가는 섬들과 소외와 차별 속에 고통 받고 있는 섬 주민들의 기본권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그동안 멸실 위기에 처한 보길도 고산 윤선도 유적지와 자연 하천, 여서도 300년 돌담, 백령도 사곶해변, 관매도 폐교 등 여러 섬들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지켜냈다. 섬 정책 연구, 여객선 공영제와 섬 주민 교통권 보장, 섬 응급 의료 체계 도입, 섬 주민 연합 조직 설립 등에 주력하고 있다. 또 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으로 9년째 매월 한 차례씩 섬 답사를 이끌고 있다.
『올레, 사랑을 만나다』『섬을 걷다』『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숨어사는 즐거움』『보길도에서 온 편지』『어머니전』 『바다의 황금시대 파시』 『그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자발적가난의 행복』,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 『섬을 걷다』 등의 책을 펴냈다.
책 속으로
어머니는 어떤 스승으로부터도 얻을 수 없는 귀한 가르침을 주셨다. 병상에서도 날마다 아들이 인생을 지혜롭게 살 수 있도록 일깨워주셨다. 발과 얼굴이 똑같은 한 몸이란 크나큰 깨우침을 주셨고, 늘 겸손해야 한다고 타일러주셨다. 고추장을 담글 엿기름은 “쌀락쌀락한 가을에 길러야 달다”는 요리비법도 전수해주셨다. 툭툭 던지는 말씀 하나하나가 어떤 스승의 말씀보다 지혜로웠다. 그런 어머니 말씀을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그래서 어머니 간병 시간은 나의 인생 수업 시간이었다. 이토록 멋진 수업을 내가 어디서 또 받아볼 수 있을까?
---「프롤로그」중에서
‘손맛’이라는 ‘거짓말’! 어머니는 무슨 음식이든 대충 뚝딱뚝딱 만들어도 다 맛있었다. 그것이 그저 손맛이라고만 생각했다. 타고난 솜씨가 좋아서 손맛이 있어서 대충 해도 맛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어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뚝딱은 결코 뚝딱이 아니고 대충도 절대 대충이 아니다. 요리가 재빠른 것은 대충 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 숙련된 기술이 있어 손이 빠른 것이다. 특별한 재료가 없어 보이는데 뚝딱 만들어도 맛있는 것은 MSG 조미료 때문이 아니라 음식의 기본 맛을 내는 장류를 몇 년씩 발효시켜 지극한 정성으로 미리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된장, 고추장, 간장, 젓갈을 만들고 삭히는 정성과 시간들은 참으로 고단하고 지난하다. 그 정성과 시간이 농축된 장류가 바탕에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그저 슬렁슬렁 뚝딱뚝딱 해도 손맛이 좋아 음식이 좋은 줄만 알았던 것이다. 어머니의 땀과 정성, 시간을 견디는 인내심이 어머니의 음식을 완성했던 것이다. 그 깊은 정성의 결과물을 ‘손맛’이라고만 퉁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손맛은 없다. 손맛이라는 거짓말이 있을 뿐. 맛의 비결은 손맛이 아니라 정성이다.
---「엿기름은 쌀락쌀락한 가을에 길러야 달아」중에서
어머니는 나를 전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신다. 무조건 곁에만 붙어 있으라 하신다. 내가 나가면 방문 요양사가 와도 쫓아버리시겠다고 협박도 하신다.
“어머니, 왜 못 나가게 해요. 일하고 돈을 벌어야 먹고 살죠.”
“그래도 나가지 마. 일도 하지 마.”
“왜 못 나가게 하는지 이유를 알려주세요, 어머니.”
“네가 나 살라고 해서 살고 있으니 꼼짝 말고 옆에 있어.”
어머니는 고집을 꺾지 않으신다.
“일 안 하면 못 먹고 살 텐데 그럼 어찌 살라고요?”
“내 노인연금 있잖아. 한 달에 30만 원씩 나오잖아.”
“그걸로 어떻게 살아요?”
“살 수 있어. 가만있자. 한 달에 30만 원이면 1년에 얼마더라.
250만 원.”
“아니죠. 360만 원이잖아요.”
“아냐 250만 원이야.”
“네, 네, 어머니 말이 맞아요.”
“그럼 2년만 더 살란다. 2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마.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어.”
“그래요. 어머니, 우선 2년이라도 더 살아요. 나중 살 것은 나중에 생각하고요.”
어머니는 어떻게든 자식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야 할 이유를 찾으셨나 보다. 며칠 전까지 스스로 이미 죽었는데 장례를 안 치러준다고 떼쓰시던 어머니. 얼마나 버텨주실지는 모르지만 다시 살겠다는 의지를 보이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2년만 더 살게」중에서
“어머니, 오늘은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요? 많이 아파요?”
“아니. 사는 게 지겨워. 그만 좀 살고 가면 좋겠는데.”
“무슨 소리세요? 저랑 사는 게 지겨워요?”
“아니. 내 인생이 지겹다고. 목숨이 너무 질기다고.”
“또 살기 싫어지셨어요?”
“너 고생 그만 좀 시켰으면 좋겠는데.”
“고생은 무슨 고생이요.”
“2년은 더 사신다고 했잖아요. 2년만 더 살아요, 어머니.”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신다.
어머니는 살기 싫으신 게 아니라 자식 고생시키는 것이 미안하시다. 대체 어머니는 뭐가 그토록 미안하신 걸까? 평생 못난 자식들 위해 희생만 하시고 이제는 말기 암으로 사경을 헤매면서도 뭐가 자꾸 미안하신 걸까. 아들은 어머니 고생시킨 생각을 하면 피눈물이 나는데. 한없이 선하고 인자하신 어머니. 평생 그 누구한테도 피해를 주고 사신 적 없던 어머니. 풀 한 포기도 남의 것은 손대지 말라고 가르치셨던 어머니.
“울 엄니 기운 좀 내셔” 하며 안아드리자 싫지 않으신 듯 어머니 눈가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어린아이가 된 어머니. 이제 어머니는 음식이 아니라 자식의 사랑으로 살아가신다. 어린 내가 어머니의 사랑으로 살았듯이.
---「사는 게 지겹다」중에서
위중한 어머니를 모시면서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평생 불효하며 어머니를 고생시켰던 것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늘 죄송한 마음이었다. 어째서 어머니를 더 일찍부터 돌봐드리지 못했을까 후회막급일 뿐이다. 어르신 중에는 섬망이 오면 더러 폭력적으로 변하는 분도 있다는데 어머니는 언제나 너무도 유순하고 다정하셨다.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쓰셨다. 마침내 정신이 혼미해졌을 때도 자신의 고통보다 자식 걱정을 먼저 하셨다.
자신의 고통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가 인간인데 그 초인적인 자세가 어찌 가능했을지 지금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 어머니가 평생 삶 속에서 엄청난 인내와 정신의 수양을 쌓았기에 가능했던 듯하다. 그러므로 어머니를 모시는 시간은 고난이 아니라 오히려 비할 데 없이 큰 은혜의 시간이었다. 어머니를 모시며 많은 삶의 가르침을 받았다. 어머니는 내 일생의 가장 큰 스승이셨다. 그토록 큰 스승을 어머니로 모시고 태어난 나는 얼마나 행운아였던가. 무한한 영광이었다.
---「임종」중에서
출판사 리뷰
말기 암 어머니와 함께한 3년의 시간
“어머니, 당신의 선한 영향력이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2019년 10월 어머니가 구강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10년 전쯤 치주암 수술을 받으시고 완치된 적이 있었지만, 아들에게는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아들은 밖으로만 떠돌며 어머니를 제대로 돌봐드리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웠다. 죄책감과 후회가 클수록 어머니의 치료와 간병에 대한 노력도 커졌다. 많은 이들이 완치가 어려운 말기 암에, 연세도 많으시기에 어머니의 수술을 만류했지만, 식사조차 제대로 못 하시고 고통스러워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아들은 수술을 단행했다. 그리고 항암 치료와 서른 번의 방사선 치료까지 함께 견뎌냈다. 다행히 수술과 치료는 잘 마무리되었고, 아들의 지극한 간병으로 상태도 많이 호전되는 듯했다. 하지만 방사선 치료로 인해 입안의 정상세포까지 파괴된 어머니는 음식을 제대로 드시지 못해 점점 쇠약해지셨다. 그리고 구강암 진단 3년 만인 2022년 10월 영면하셨다.
이 3년 동안 아들은 페이스북에 어머니의 발병부터 치료 과정을 일기 쓰듯 꾸준히 올렸다. 이야기를 읽은 많은 사람의 응원과 조언, 그리고 다양한 도움 덕분에 어머니를 더 잘 돌봐드릴 수 있었다. 병석에 누운 후 어머니는 틈만 나면 아무 일도 못 하고 누워 있는 당신이 가치 없는 삶을 살고 계시다 한탄하셨다. 그래서 아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머니의 말씀과 의지에 감동받고 있는지 알려드리고 싶었다. 당신의 선한 영향력이 더 넓은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여드리고,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살아오셨는지 알려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이 책은 태어났다.
아픈 어머니에게서 배우는 인생 수업
“얼굴하고 발하고 똑같지. 다 같은 한 몸인데.”
말기 암 환자를 돌보는 일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시포스의 노동과 비슷하다. 수고로움에 비해 효과가 크지 않으며, 환자가 회복되는 듯하다가도 또다시 나빠지기 일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은 이 모든 과정에 감사했다. 간병의 수고로움보다는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 더 좋았고, 그 시간을 통해 어머니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위해 죽을 끓이고, 제철 과일을 갈아 주스를 만들고, 기저귀를 갈아드리며 모자간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졌다. 어머니는 자신을 돌보는 아들에게 황태국?굴뭇국 끓이는 법, 동치미와 열무김치 담그는 법, 고추장 담그는 법 등 요리법을 전수해주었고, 인생을 좀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남에게 피해 주고 살지 마라”, “입에 좋은 거 말고 몸에 좋은 거 먹어라”, “고추장 담글 엿기름은 쌀락쌀락한 가을에 길러야 달다”, “얼굴하고 발하고 다 같은 한 몸이니 발도 깨끗한 수건으로 닦아라”,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라”. 흔하디흔한 말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아들에게 이 말들은 그 어느 경전의 경구보다 더 크게 다가왔으며, 그 어떤 스승의 말씀보다 지혜로웠다.
페이스북을 통해 구현된 인드라망(因陀羅網) 공동체
“노인 한 분을 돌보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한 아이를 올바로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관심을 가지고 돌보고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르신 한 분을 돌보는 데도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저자가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나이 들어 노동력을 잃고 거동이 불편해진 부모님들은 결코 잉여인간이나 피부양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부모님들이 만든 세상에 살고 있고 그분들이 지어 올린 성채에서 안락을 누리고 살면서도 그 고마움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뿐 아니라 연로해진 부모 세대를 짐스러워한다. 우리의 부모는 피부양자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 이룩한 사회적ㆍ개인적 자산을 아주 조금 쓰다 가는 것뿐이다. 결국 대다수는 세상에 물려주고 가신다. 그러므로 부모님들은 더 당당히 요구하고 누리다 가실 권리가 있으며, 우리 사회는 더 많은 권리를 누리게 해드릴 의무가 있다. 병들고 약해진 부모님은 결코 짐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무게’다.
저자가 페이스북에 어머니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다양한 조언과 도움의 손길이 답지했다. 여수와 완도에서는 지인들이 전복을 보내오고, 중국 선양의 페친이 백두산 산삼을 보내주고, 호주, 캐나다, 미국에서도 어머니의 치료를 위한 다양한 의료 정보와 조언들을 알려주었다. 전 세계가 저자의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애를 쓴 것이다. 페이스북이 의식 속에나 존재하던 ‘인드라망 공동체’를 현실 세계에 구현시켜준 것이다. 노인 한 분을 돌보는 것은 어느 한 사람, 혹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함께 노력해야 할 의무다. 그렇기에 “노인 한 분을 돌보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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