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를 읽으며 / 박미숙
서울에 사는 친구가 책을 보내왔다. 유홍준의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이다. 고맙다고 인사했더니, '최인아 책방 북 클럽(Book Club)'에서 보내온 편지를 보여 줬다. 최인아 대표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으며 느꼈던 감동을 잊을 수 없는데, 이 책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글쟁이’가 자신의 글을 쓴 ‘문장 강화’로 읽혀 추천한다고 했다.
'최인아 책방'이 궁금해 찾아봤다. 삼성 최초 여성 임원과 제일기획 부사장까지 지냈던 최인아 씨가 강남 한복판에 만든 중형 서점이자 강연, 모임, 콘서트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독서 모임 회원에게는 책방 식구들이 신간을 두루 살펴 선정한 책을 한 달에 한 권씩 보내 준다. 어째서 읽어 볼 만한 책인지를 쓴 편지도 함께 보낸다. 이 책은 2024년 11월 1일에 발행된 따끈따끈한 신간이며, 한 달도 되지 않아 2쇄도 나왔다. 책방에서는 회원들에게 추천한 책 작가와의 만남도 주선하는데, 12월 28일에 유홍준과의 대화가 계획되어 있다고 한다.
그간 친구가 보내 준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 『의사의 반란』,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등의 책을 읽고 나면 곧 화제가 되는 것을 보고, 책을 고르는 안목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알아보니, 역시나 2년 전부터 독서 모임 회원이었다고 한다.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는 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썼던 글들을 모은 산문집으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생만사」, 「문화의 창」, 「답사 여적」, 「예술가와 함께」, 「스승과 벗」 등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그의 삶에 영향을 준 사람, 문화유산, 예술, 시대적 갈등 등 다채로운 내용을 다룬다. 그래서 ‘유홍준 잡문집’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이 미술평론가, 문화유산 전문가로 소개되지만,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중요한 모습은 ‘글쟁이’라고 했다. 책의 부록에는 <좋은 글쓰기를 위한 열다섯 가지 조언>도 실려 있어 그것부터 읽어 보았다. 다 나열하기는 어려운데, 결론은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쓰는 것이 대중적 글쓰기이다. 그래서 글쓰기의 진정한 프로는 쉽고, 짧게, 간단하게 쓸 줄 안다. 그러나 내용은 내용대로 충실히 갖추어야 한다."라고 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력서> 부분에서 유홍준이 뛰어난 이야기꾼인 것과 어떻게 하여 그 책이 쓰였는지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소설가 송기원이 ‘문단 패거리’들과 함께 남도 답사를 부탁했고, 폭설로 차에서 열한 시간이나 있었는데, 유홍준이 여덟 시간을 답사와 인물 관련 얘기를 하고도 끝이 나지 않아 이야기꾼으로 엄청난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고 한다. 송기원의 '황홀한 말발'을 '환상적인 글발'로 옮겨 보라는 권유에도 잡문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사회평론』 창간호부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연재하다 백낙청 선생님의 제의로 책을 냈다는 것이다.
그의 민주화 운동 경력을 다룬 <감옥에서 부모님께 보낸 편지>, <김지하 형이 옥중에서 지도한 글쓰기>를 읽으며 존경심이 더 깊어졌다. 그러다 문득, 윤석열을 탄핵하려고 여의도에 백만의 인파가 모인 오늘, 그는 이 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검색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보통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리던데 그걸 하지 않아서 못 찾는 것인지,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인지 생각하던 순간, ‘유홍준의 구설수’가 적힌 글이 눈에 띄었다. 문화재청장 시절, 예산으로 자신의 책을 사들여 방문객에게 기념품으로 나눠 주고 인세를 챙겼다, 미술사 배경 지식이 짧아서 책에 오류가 많다, 기자들에게 오만하게 행동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평소 ‘글이 곧 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한참 작가에게 심취해 있었는데, 환상이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최인아 책방’과 유홍준의 책이 널리소문나서 가치가 더욱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주 글쓰기의 방향으로 잡았는데, 글을 계속 써야 할지 망설여지기도 했다.
몇 가지 논란이 있더라도 그가 이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이며 글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책을 읽으면서 단조로운 내 인생의 폭을 조금이라도 더 넓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