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북부 스코틀랜드에는 ‘파란 색의 사람’이라는 뜻의 정령인 '블루맨'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옵니다. 이들은 턱수염이 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블루맨이라는 이름처럼 온 몸이 파란 색을 띄고 있습니다.
블루맨들은 스코틀랜드를 둘러싼 북해의 차가운 바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람이 잔잔하고 햇빛이 비추는 좋은 날씨가 오면, 바닷물의 표면 아래에서 조용히 잠을 잡니다.
그러나 바람이 세차게 불고 폭풍우가 불어 닥치면, 잠에서 깨어나 본격적으로 활동합니다. 그들은 바다 위로 올라와서는 지나가는 배를 붙잡은 다음, '쇼니'라고 불리는 블루맨들의 지도자가 그 배에 탄 선장을 향해 두 줄의 시를 외치면서, 이렇게 강요합니다.
“방금 전 내가 지은 시의 뒷말을 당신이 지어내서 화답하라! 만약 당신이 그럴듯한 시를 지어서 답을 한다면, 우리는 그냥 바다 속으로 돌아가겠다. 하지만 당신이 시를 지어내는데 실패하면, 그때부터는 우리가 당신의 배로 쳐들어가 모조리 노략질을 한 다음, 배를 뒤집어서 당신을 포함한 모든 선원들을 바다에 빠뜨려 죽게 할 테다!”
그러면 선장은 자신을 포함한 선원들의 생명과 화물을 지키기 위해서, 쇼니가 부른 시에 화답하는데 그 내용들은 대략 이렇습니다.
쇼니: 검은 모자의 사람을 당신은 어떻게 부르는가?
당신의 자랑스러운 배가 바다를 가르는 대로?
선장: 나의 빠른 배는 가장 짧은 길을 고른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선을 따라서 간다.
쇼니: 내 부하들은 화가 나 있고, 그들은 준비하고 있다.
파도 아래로 당신을 끌고 가기 위해서.
선장: 나의 배는 빠르고, 나의 배는 노력한다.
만일 배가 침몰한다면, 당신의 소굴은 부숴질 것이다.
이처럼 쇼니를 포함한 블루맨들이 외치는 약탈과 살육의 열망을 담은 시에 대해 선장이 저렇게 능수능란하게 반박하는 시를 지어 대꾸한다면, 블루맨들은 그 배를 손상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여 그들이 사는 해저 동굴로 돌아가서 배가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하지만 만약 선장이 시를 짓는 재주가 없어서 대답을 못한다면, 블루맨들은 그 즉시 잔인한 해적 떼로 돌변하여 배를 모두 약탈하고 뒤집어서 선원들을 몽땅 바다에 빠뜨려 죽인다고 합니다.
이 블루맨은 다분히 해적에 대한 공포가 만들어낸 존재입니다. 실제로 스코틀랜드는 서기 8세기 무렵부터 지금의 노르웨이나 덴마크에서 쳐들어온 해적인 바이킹들한테 줄곧 약탈을 당해온 역사가 있습니다. 어쩌면 블루맨은 스코틀랜드 주민들이 바이킹들을 보고 받은 정신적 충격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러한 추정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습니다. 서기 859년 비요른과 헤스테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이킹 지도자 두 명이 부하들을 이끌고 지금의 북아프리카 도시인 나도르를 습격하여 ‘파란 사람들’과 ‘검은 사람들’을 납치해서 노예로 부려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에 대해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바이킹들이 납치해 온 파란 사람들은 파란색 외투를 걸친 북아프리카의 원주민인 투아레그 부족이고, 검은 사람들은 흑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인보다 검은 색의 피부를 가진 투아레그 부족과 흑인을 처음 본 스코틀랜드 원주민들이 그들을 마치 바다 속에서 사는 무서운 정령인 블루맨이라고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주장도 있습니다. 블루맨의 유래는 바이킹이 데려온 투아레그족이나 흑인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원주민 부족인 픽트족이라는 의견입니다. 픽트족은 스코틀랜드의 원주민이었고, 온 몸에 파란 염료를 칠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픽트족들이 배를 타고 남쪽의 잉글랜드 지역을 약탈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블루맨이라고 여겼다는 주장입니다.
한편 스코틀랜드의 민간 어원에 의하면, 블루맨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뜻은 “두려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폭풍이 몰아치는 어두운 밤에 바다에서 불쑥 솟아나서 배를 약탈할 기회를 노리는 블루맨들은 옛날의 뱃사람들한테 공포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출처: 유럽의 판타지 백과사전/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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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선장의 지혜가 남달라 살아남겠군요 ㅎ
상대를 존중하되 자긍심이 대단한?
자기 힘에 대한 믿음?이 깔려있는...^^
파란 사람들,,, 부도지의 靑弓씨 족속이 연상되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