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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의 향기♣ No2468
7월26일 [연중 제1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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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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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 오늘 미사**
https://m.youtube.com/watch?v=MiJoYkcZdz0
++서울주보++
http://pf.kakao.com/_xhGxjBxb/54228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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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하늘나라 문을 열어본 사람>
벌써 몇달째 뵙지 못했던 저희 수도원 '단골 할머님'께서 오셨기에 반가운 마음에 차를 한 잔 대접했습니다.
'자식들이 다들 효자이니 해외 효도관광이라도 다녀오셨겠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면 도로를 걸어가시던 중 한 운전자의 부주의로 대퇴부를 크게 다친 할머님께서는 장장 4개월 동안이나 병원 신세를 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그동안 꼼짝도 못하시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냐? 지금은 좀 어떠시냐?' 고 여쭸는데, 할머님 대답은 저를 더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70평생 처음으로 그렇게 넉달 동안 꼼짝없이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처음 한두 달은 심신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통증도 컸지만, 가해자가 그렇게 원망스러웠고 미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석 달째 들어서면서 마음을 바꿔먹게 됐다. 하느님께서 내게 대피정 한번 하라고 이런 기회를 주신 것 같다."
아직도 운신이 온전치 못하신데도 할머님께서는 활짝 웃으시면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요즘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옆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머리도 다치지 않았고, 뼈도 제대로 붙었고, 정말 고마운 일이다. 병실에서 지낸 넉 달이 힘들었지만 내 평생 가장 좋았던 시간이었다. 정말 하느님을 만난 시간이었다."
만만찮은 고통 가운데서, 이해하지 못할 불운한 사건에서도 하느님 뜻을 찾고 하느님의 눈으로 만사를 바라보려는 할머님의 신앙이 참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 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할머님의 신앙고백을 들으면서 진정 그분은 하늘나라의 한 귀퉁이를 목격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나라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은 할머님처럼 이 세상의 생활양식을 조금씩 탈피하고 초월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늘나라의 문을 잠시라도 열어본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비본질적이고 부차적인 것, 잠시 스쳐지나가는 이 세상 것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이 세상 그 너머에 있는 더욱 가치 있고, 한층 의미 있고, 더욱 영원한 것, 다시 말해서 하늘나라를 추구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 중에 가장 큰 가치는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누가 보건 말건, 험악한 저잣거리에서건 거친 들판에서건 자신이 처해 있는 자리 어느 곳에서나 기쁘게 사는 사람, 열악한 상황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그 사람은 이미 천국을 맛본 사람, 천국을 사는 사람입니다.
월드컵 예선전을 바라보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도 비본질적인 것들, 엉뚱한 것들에 목숨을 건다는 것입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창창한 어린 선수의 인대나 무릎을 걱정하기보다는 오직 득점만을 생각합니다. 선수 생명에 치명적 태클이나 위험한 파울도 좋은 작전이라며 거칠게 몰아붙일 것을 강요합니다.
진지하고 깊이 있는 것들, 지적이고 영적인 것들은 대체로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고 기피합니다. 대신 즉각 효과가 나타나는 것들,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것들에 목숨을 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생활양식은 조금은 달라야겠지요. 우리는 세상에 있는 많은 대상들 가운데서 좀더 고상한 것, 한층 가치 있는 것, 더 의미 있는 것, 좀더 덕스러운 것, 더 아름다운 것, 더 변치 않을 것들을 추구하고 거기에 목숨을 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최우선적 과제는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신 하느님, 보물 중에 보물이신 예수님을 더욱 적극 추종하는 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라는 보물 중 보물을 발견한 진정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있어 다른 모든 것들은 비본질적이고 부차적입니다. '선택'에는 반드시 '포기'가 요청됩니다. 하늘나라를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을 삶의 이정표로 삼은 우리에게 있어 이제 예수님 이외의 부차적 요소들에 대한 점진적 이탈과 포기가 요청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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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인생 100% 성공하는 법>
(유튜브 묵상 동영상)
https://youtu.be/ke0YPOL6G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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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어머니는 제가 “이제 연세가 많이 드셨네?”라고 말하면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거야!”라고 노랫말을 되풀이하십니다. 그러면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내가 다 늙었다!”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는, “내가 많이 익었지?”라는 말을 듣는 것이 더 좋습니다. 과일도 익은 것은 맛이 있지만 늙은 것은 먹을 수 없습니다. 인생의 성공도 이것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늙지 말고 익어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늙는 것과 익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은 옳은 것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세계 최고가 된 파타고니아의 성공 비결과 ‘이본 쉬나드’의 60년 경영 철학을 공개한 최초의 책입니다. 파타고니아는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의 교복이라고 불리는 ‘파타고니아 조끼’의 주인공이자,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품절 대란을 일으키는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 기업입니다.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의 인생 목표는 바로 ‘지구’입니다. 지구를 보존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는 그 사랑의 마음을 평생 키워왔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암벽 등반을 즐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그가 개척한 북한산 길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벽에 박아 놓은 피톤들을 잘 빼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피톤의 머리가 너무 쉽게 부러졌기 때문입니다. “산에 갔을 때는 그곳에 갔던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철학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는 등반에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대장장이 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파타고니아입니다.
그는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란 캠페인을 했습니다. 고쳐서 쓰면 되지 뭐하러 새로 사느냐는 것입니다. 지나친 소비가 지구를 죽이고 있음을 알았기에, 자신의 제품부터 소비를 줄이라고 소비자들에게 호소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제품은 물론 타사의 제품까지 가져오면 다 수리를 해 주었습니다. 수리되지 않는 물품은 만들지 말자는 것이 그의 경영 철학 중 하나입니다.
그는 옷에 들어가는 소재인 면을 일반 목화로 쓰지 않고 유기농 목화를 쓴다고 합니다. 목화는 많은 농약을 주어야 하기에 땅을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농부와 결탁하여 훨씬 비싼 재료인 유기농만을 사용합니다. 그런데도 매해 꾸준한 성장률을 경신하며 전 세계에서 열광적인 팬을 거느리게 된 기업을 일구었습니다.
만약 이본 쉬나드가 돈을 버는 것에만 전념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는 늙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 안에 사랑의 씨앗을 키우는 것에 전념하였습니다. 그 씨앗을 키우면 성숙합니다. 사람은 성숙에 먼저 집중을 해야지 성공에 집중하면 안 됩니다. 성숙은 내면의 변화입니다. 성숙에 집중하면 성공을 하지 못하더라도 존경받는 모습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행복’입니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내가 일하고 있는 그 밭에 묻혀있습니다. 내가 어떠한 일을 하건 그 밭에 행복이 묻혀있습니다. 다만 행복은 행복을 찾는 이들에게만 보입니다. 그 가치를 아는 이들에게만 보입니다. 그래서 ‘밭에 묻힌 보물’ 다음 비유로 ‘값진 진주를 찾는 상인’의 비유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금은방을 하시는 한 자매님이 지인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지인은 인도 여행 중에 어떤 착한 사람에게 싼값으로 진주를 한 무더기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사를 할 때도 꼭 챙겨 다니며 10여 년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보석상을 하시는 분이 그것을 보고 “아니, 왜 가짜를 그렇게 열심히 들고 다녀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결국, 그것들의 신세는 묵주 팔찌 재료가 되었습니다. 진주도 양식보다는 자연산이 훨씬 비싸고, 양식도 민물양식과 해수양식이 있는데 바다에서 길러진 것이 더 비싸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그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이 상당히 다양하여 정말 비싼 진주의 가치는 그것에 관심이 있어서 많은 공부를 한 전문가만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밭에 보물이 있어도 그것만을 절대적으로 원하여 그것을 위해 철저히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그 보물을 발견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것을 원해야 인생의 성숙이 시작됩니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나의 성숙만을 바라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원하지만,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을 함께 초대하여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을 하였습니다. 이때 어떤 학생이 “그렇게 부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워런 버핏이 먼저 “인성입니다.”라고 대답했고, 빌 게이츠도 동의하였습니다.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인성의 성숙’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안에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고 그것들을 제거해 나가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늙으면 실패하는 것입니다. 익으면 성공한 것입니다. 인생 100% 성공하는 방법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기 위해 에너지를 쓰면 됩니다. 나의 밭에는 언제나 나의 인성을 성숙하게 만들 수 있는 보물이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나의 인성적 성숙을 얻기 위해 나의 모든 에너지를 그것에 쏟을 수 있다면 그 인생은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익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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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오늘 복음의 하늘 나라에 대한 비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또 우리의 모든 상황을 포기해야할 만큼 중요한 ‘하늘 나라’ 또는주님의 ‘말씀’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그물의 비유는 지난 주일의 가라지의 비유와도 유사하다.
그러면서 선과 악의 ‘결정적’ 구분과 선택에 관한 종말론적 상황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13,49-50). 이것은 항상그리스도를 ‘철저히’ 선택하라는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제1독서: 1열왕 3,5.7-12: 너는 지혜를 달라고 청하였다
솔로몬 왕조가 시작되었을 때, 솔로몬은 나라를 잘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도록 가장 소중한 것, 즉 ‘지혜’와 ‘분별력’을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다.(7-9절) 재력과 권력이 그의 품위를 높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한 것들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덕망이 없다면 그는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고 만다.
이러한 모습은 일반 사회 뿐 아니라 교회의 역사 안에서, 지금 현재도 드러나고 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이 “장수나 부귀나 원수 갚는 것”(11절)을 청하지 않고 지혜를 청한 것을 칭찬하시며, 그에게 “슬기롭고 명석한 머리”를 주실 뿐만 아니라 다른 은총도 무수히 베풀어주신다(12-13절).
솔로몬의 이 기도는 모든 사람들의 생활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을 꿰뚫어본 기도이다. ‘선과 악을 가려내고’ 공동체에 유익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명석한 머리‘는 더욱 그렇지 않은가? 교회 안에서도 책임을 맡은 입장이라면, 바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그들의 행복이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찾는다는 이유로 세상을 멀리하거나 이웃에게 무관심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은 현세의 모든 것을 통하여 어디서나 그분을 발견하고, 솔로몬이 백성들을 위해 하느님께 청했듯이 우리 형제들을 위해 청하기를 바라신다.
복음: 마태 13,44-52: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과 진주에 대한 비유에는 다 같이 값진 보물을 찾자마자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팔아버리고 그 보물을 얻으려 애쓰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44; 46 참조). 그들은 그들이 발견한 엄청난 가치, 그것은 그리스도의 현존 즉 하늘 나라에 압도되어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그것을 소유하려고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어떠한 모험도 무릅쓸 수 있는 ‘용기’를 드러내게 된다.
여기서 이제 그리스도와 복음에 비길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망설일 수 있겠는가? 그분 때문이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10,39)
그러나 이것이 어려운 것은 그러한 가치를 알면서도 그것을 잡기 위해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또 그것을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는 하찮은 일들을 포기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밭에 묻혀있는 보물이나 유일한 진주를 얻을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인간적인 모든 것은 우리 자신 안에 ‘새롭게 변모’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현존이 그렇게 작용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그러한 활동 즉 ‘새롭게 변모’시키는 활동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온전히 자신을 내 맡겨야 한다. 이때에 우리는 그 보물과 진주를 갖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지혜’이다.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참된 제자의 모습을 이렇게 비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옛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52절). 이 비유는 마태오의 개인 체험 뿐 아니라 그의 복음을 연상케 한다. 그의 복음은 구약성서의 모든 내용(옛 것)이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빛에 비추어 재해석된 무한한 가치를 지닌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은 신앙의 유산으로 전해진 복음의 무한한 ‘부’를 더 깊게 하고,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삶을 통하여 앞으로 나아가라는 권고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세대가 처음부터 발굴해서 세상에 드러내야 할 ‘보물’의 진가를 발견하고 또한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이다.
제2독서: 로마 8,28-30: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하셨다
사도 바오로 역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해 깊이 사고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주시는 사랑의 선물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영원으로부터 생각하셨고(에페 1,3-14) 모든 것을 우리의 ‘선익’을 위하여 마련하시고 ‘미리 정하셨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29절)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때에 하늘 나라가 확장되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바오로 사도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계획 속에 우리를 ’영광스럽게 해주실‘ 계획까지도 세워놓으셨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올바른 응답을 드리고 그분을 ’다시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참된 지혜란 무엇인가?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뜻에 항상 일치하려고 하는 삶을 통하여 그분을 소유하는 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참된 지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아버지 하느님과 일치하셨던 그리스도는 지혜 자체이신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를 닮으려 진정으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삶이 된다면 우리는 진정한 지혜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을 닮을 수 있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것들을 팔 수 있을 때, 하늘 나라와 그분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그 지혜와 함께 참된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참된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하고 또 우리의 삶을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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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오늘의 묵상
[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님]
솔로몬은 하느님께 지혜를 받은 인물로, 사람들은 흔히 ‘지혜’ 하면 그를 떠올리고 성경이 전하는 그의 판결은 지혜의 예로 꼽힙니다(1역대 3,16-28 참조). 솔로몬은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는 하느님의 질문에 ‘듣는 마음’을 청하고 그것을 통하여 백성을 통치하고 분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의 청원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가 ‘장수’나 ‘부유’나 원수를 없애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바랄 법한 것들이 아니라 ‘듣는 마음’을 청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청원대로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같은 내용을 전하는 2역대 1,1-12를 보면 솔로몬은 하느님께 ‘지혜와 지식’을 받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마음은 생각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두 이야기 사이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롭고 분별할 수 있는 임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듣는 마음’입니다. 그의 지혜와 지식은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솔로몬에게 지혜와 분별하는 마음이 소중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비유를 통하여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십니다. 바로 ‘하늘 나라’입니다. 하늘 나라는 숨겨진 보물과 같고,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도 같습니다. 또 하늘 나라는 고기를 잡아들이는 그물과도 같습니다. 이렇게 하늘 나라는 보물처럼 값지고, 값진 것을 찾아가는 상인처럼 역동적이며, 그물에 든 고기처럼 모든 사람을 모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의 시작에 우리 안에서 활동하며 완성을 향하여 가는 하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선포의 말씀을 ‘듣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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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마태 13,44-46)
이 두 비유는 ‘하늘나라의 복음’을 들은 사람의 ‘기쁨’과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관한 비유입니다. ‘하늘나라의 복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고,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것이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전부 포기해서라도 얻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 두 비유는, 비유 안에 들어 있는 가르침을 생각하면,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지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보물을 차지하여라.”이고,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는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 진주를 사라.”입니다. 두 비유에 들어 있는 실천 지침은 두 가지입니다.
1.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라(처분하여라).
2. 보물을(진주를) 차지하여라.
<여기서 가진 것을 다 파는(처분하는) 것은 단순히 밭의(진주의)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물이 묻혀 있는 밭’을(진주를)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가진 것을 다 파는 것이 아니라, 보물(진주)만이 영원히 가지고 있을 가치가 있는 것이고, 다른 것들은 전부 다, 계속 가지고 있을 가치가 없기 때문에 버리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라는 말씀은, 하늘나라가, 또는 하늘나라의 복음이 숨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전해 받았을 때의 기쁨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농사를 짓다가, 즉 밭을 갈다가 ‘우연히’ 보물을 발견한 사람일 수도 있고, 그 밭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 것을 알고서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마침내 발견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발견했든지 간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보물을 차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다가 우연히 복음을 듣게 되는 사람도 있고, 구원의 진리를 갈망하면서 찾아다니다가 복음을 듣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듣게 되었든지 간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복음을 들었을 때의 기쁨과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이라는 말씀은, 보물을 발견한 것에 대한 기쁨과 그 보물을 차지하려는 노력을 강조하는 표현일 뿐이고, 이 말씀 자체에 특별한 뜻은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또는 ‘하늘나라의 복음’은 아무도 독점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고, 모든 사람이 함께 차지해야 합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보물을 차지한 사람은, 자기의 기쁨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모든 사람에게 말해야 하고, 그리고 자기가 차지한 보물을 모든 사람에게 자랑해야 합니다. (‘복음’, 즉 기쁜 소식을 감추는 사람은 없습니다. 감추면 복음으로서의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 3,7-9ㄱ)
여기서 ‘해로운 것, 쓰레기’라는 말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일을 방해하는 것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이고,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이고, 바리사이이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에서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인데(필리 3,5-6), 그것들은 세속 생활에서는 이로운 것들이었지만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생활에서는 해로운 것일 뿐이고 쓰레기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신앙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신앙생활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가문, 신분, 직업, 학위, 학력 같은 것들이 세속 생활에서는 도움이 되더라도, 신앙생활에서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한다면, 그것들은 해로운 것들이고 쓰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 5,10-11)
“예수님께서는 밖에 나가셨다가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루카 5,27-28)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말은,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반면에,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19,21-22)
여기에 나오는 부자 젊은이는 예수님을 따르고 싶은 마음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재물을 버릴 수 없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고, 결국 재물을 선택했고, 예수님을 따를 수 없음을 슬퍼하면서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전부’를 요구하시는 분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다 가지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를 전부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우리가 전부 버리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속한 것들을 전부 다 차지할 수 있습니다. (주일 미사 참례는 ‘세속에 속한 것들을 모두 버리고’ 주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미사 중에는 휴대 전화기를 끄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세속에 연결되어 있는 것들을 전부 차단해야 온전히 주님께 집중할 수 있습니다. 만일에 미사 참례 중에 마음과 생각이 세속을 향해 있다면, 그것은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않은 것이고, 주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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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가톨릭 평화신문 미주지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돌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의 돌잔치에 아이들이 고를 수 있는 물건을 준비하는 겁니다. 쌀, 실, 붓, 돈, 마패와 같은 것을 놓습니다. 요즘은 청진기, 마이크, 게임기, 비행기와 같은 것을 놓는다고 합니다. 돌잡이 물건도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잡은 물건에 따라서 부모님은 아이들의 미래를 축하해 줍니다. 어떤 물건을 잡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미래를 축하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래 살고, 잘 먹고, 성공하고, 자손을 많이 보는 것입니다. 새로운 의미의 돌잔치도 있다고 합니다. 지인들이 가지고 온 축하예물을 모아서 아이의 생애 첫 기부를 하는 겁니다. 가난한 이를 위해서, 아픈 이를 위해서, 난민을 위해서, 독거노인을 위해서 생애 첫 기부를 하는 겁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누군가를 위해서 봉사하는 삶을 배울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인생에 있어서 필요한 3가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공감이 가기에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오프라 윈프리의 말은 이집트 신화에서 죽음의 강을 건너는 사람에게 저승의 사자가 하는 질문과 비슷합니다. 첫째, 나는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임을 알았다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 유명해지기 보다는 위대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유명해지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위대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이 납니다. 누구나 위대해 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재능으로 봉사하면 됩니다. 셋째, 항상 옳은 일을 하라는 겁니다. 단순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은 때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은 때로 고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옳은 일을 충실하게 한 사람은 영광의 세계, 영원한 생명에로 나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가톨릭 교리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하느님을 믿고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만들어주신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사용합니다. 하느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버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부귀보다 가난함을 택할 수도 있고, 건강보다 질병을 택할 수도 있고, 장수보다 단명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면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나라가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표징과 말씀이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셨음을 믿는 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솔로몬은 하느님께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은총을 청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 옳고 그름을 식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 시련의 때가 와도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지혜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키와 같습니다. 지혜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열쇠와 같습니다. 지혜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과 같습니다. 지혜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진주와 같습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 권력과 영화는 지혜를 따라오는 부산물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항상 겸손과 함께 있습니다. 겸손을 잃어버린 지혜는 바벨탑이 되기도 합니다. 겸손을 잃어버린 지혜는 손잡이 없는 날카로운 칼과 같습니다. 겸손이 없는 지혜는 줄 떨어진 연과 같습니다.
오늘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병 때문에, 돈 때문에, 욕심 때문에, 나이가 많기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사랑을 하다가, 가진 것을 나누다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이라는 바다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름이 긴 것 같지만 가을이 멀지 않았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없이 긴 것 같지만 어느새 귀밑머리는 하얗게 변하고 해가 서산에 걸린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가장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하느님께 청하면 좋겠습니다. 그토록 소중한 것을 찾았으면 잘 간직하고 지켜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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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하늘나라>
마태오 13,44-46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 그물의 비유, 비유를 끝맺는 말씀)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하늘나라>
하늘나라는 숨겨진 보물
하늘나라는 보물을 찾는 사람
하늘나라는 보물을 찾는 길
하늘나라인 사람이
하늘나라로써
하늘나라를 품는다
하늘나라는 사랑
하늘나라는 사랑인 사람
하늘나라를 이루는 길은 사랑
사랑인 사람이
사랑으로써
사랑을 품는다
하늘나라는 정의
하늘나라는 정의인 사람
하늘나라를 이루는 길은 정의
정의인 사람이
정의로써
정의를 이룬다
하늘나라는 살림
하늘나라는 살리는 사람
하늘나라를 이루는 길은 살림
살림인 사람이
살림으로써
살림을 산다
하늘나라는 하느님
하늘나라는 하느님 닮은 사람
하늘나라를 이루는 길은 하느님의 뜻
하느님 닮은 사람이
하느님의 뜻으로
하느님을 모신다
하늘나라가
하늘나라로써
하늘나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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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김학수 베드로 신부님]
<보물을 찾았나? 아니 아직!>
불충한 목자와 믿음 없는 양들(즈카르야서 13장, 에제키엘서 34장)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태오 5장 37절)
‘현실에 무감각한’ 무지가 “악의 평범성”을 초래한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교회, 사회에서 이웃에게 너무 쉽게 악을 범하면, 교회도 사회도 제대로 설 수 없고 쇄신할 수 없다.
신앙과 삶의 현장에서 좋은 진주를 발견하고도 욕심이나 교만 때문에 그것을 놓치고, 좋은 고기를 잡고도 잘못 골라내는 실수를 범한다. 선택과 결정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결과도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고” (다니엘서 13장 52절), “거짓말을 하며” (다니엘서 13장 59절) 독식의 욕심(열왕기 상권 21장, 다니엘서 13장, 마르코 14장 참조)을 갖는 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되면 그가 누구이든지 상관없이 뒷조사를 시켜 교구에 투서를 넣게 만드는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교회의 공동선이 아니라 사익을 추구하다 보니, 인재 양성과 노후대책을 소홀히 했다. 아직도 자리를 꿰차고 있다. 본인은 차르였지만 착한 목자라고 과대 포장했다. 부끄러운 일. 그것을 묵인한 우리는 비겁했다.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는 하늘 나라를 발견한 기쁨이 너무 커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사도 결코 아깝지 않다. 그만큼 하늘 나라는 그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신앙인의 자세이자 삶이다.
그물의 비유는 가라지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종말의 심판을 예고하기에, 하느님 백성인 그리스도인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하느님을 믿고 말씀과 가르침에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거스르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비뚤어진 생각과 간악한 마음” (지혜tj 1장 3절-4절)을 내려놓고, 사목은 열정적으로, 일은 공정하고 정의롭게, 재정은 투명하게, 사랑이신 주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복음화”를 이루며, 하느님 나라를 향해 성령과 함께 힘차게 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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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임상만 대건안드래아 신부님]
<가진 것을 다 팔아>
한 농부가 밭에서 일하다가 아주 큰 보물을 발견하게 되자 그는 너무 기뻐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샀다.
유다인들은 대체로 귀한 보물을 땅속에 깊게 묻어두었는데 전쟁이 많다 보니 전사하거나 포로 혹은 피난 생활 후에 영구 귀가하지 못하는 경우로 인해 이 보물들이 다른 농부에 의해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보물은 율법에 따라 현재의 땅 주인 소유물이기에 발견한 사람은 먼저 그 밭을 사야만 합법적으로 보물을 취득할 수 있었다.
공자는 「논어」를 시작하면서, 인간에게는 ‘배우는 기쁨이 있다’고 말한다. ‘學而詩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즉,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냐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배움으로 얻은 것보다 한 단계 더 올라간 기쁨을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발견하는 기쁨’이다.
발견하는 것이 배워서 알게 되는 것보다 훨씬 비약된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능력으로 배워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를 발견하게 되는 기쁨은 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참 진리와 보물인 이것을 발견하게 되면 지체없이 결단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신비를 알게 되는 발견의 기쁨은 우리 인생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궁극적 기쁨이라고 가르쳐 주신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진리와 생명이시며,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그분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보물이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그 보물을 얻기 위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하고 헌신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일상 속에서 엄청난 가치의 보물을 발견하도록 허락하신다.
그러나 보물을 발견했다고 해서 즉시 자기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동안 일궈온 기존의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한다.
그래서 농부는 밭에 묻힌 보물을 얻기 위해서 자기 소유를 다 팔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이라는 보물을 발견한 우리도 그 가치를 알고 있다면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어부로서 가장 소중한 배를 버렸고 사도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소중해서 그가 소유했던 모든 것을 포기함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얻으려고 모든 것을 쓰레기처럼 여기고 버렸다고 한다.(필리피서 3장 8절)
이 같은 헌신을 통해 비로소 그들이 발견한 하느님 나라를 완전히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주님의 밭’인 교회 안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보물을 얻을 수 있도록 농부의 지혜로운 삶을 구해야 하겠다.
우선 교회에서 주님을 발견하여 온전히 자기를 헌신할 수 있는 지혜, 우리가 만난 주님을 소유할 수 있도록 자기 소유를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지혜 그리고 우리가 소유한 주님 안에 머무르는 기쁨을 깨닫는 지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복음이라는 보물을 발견하게 해 주셨으니 내 소유를 다 팔아 이 보물을 내 것으로 만들며 살겠다는 고백보다 더 좋은 지혜로운 삶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콜로새서 2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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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박찬길 미카엘 신부님]
<‘사람, 하느님의 소중한 보물’>
솔로몬은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열왕기 상권 3,5)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열왕기 사권 3,9) 하고 응답한다.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이란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는 지혜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제1독서를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어서 하느님의 지혜를 얻게 되면 나머지 것들은 그냥 덤으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참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보물에 비유하여, 이 보물을 찾은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서라도 그것을 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보물을 발견한 기쁨에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 그 보물을 소유하는 것, 이것이 하느님을 알게 된 신앙인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순교자들은 진정한 보물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버렸다. 하느님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전 재산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바쳐도 아깝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느님께 보물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인간이다. 인간은 실로 하느님께서 포기할 수 없는 놀라운 보물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위대한 보물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고 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얻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당신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을 내놓으셨다.
인간을 사기 위해서 그 아들마저도 아낌없이 파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하느님의 소중한 보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보물은 무엇일까? 무엇을 얻기 위해 우리의 삶을 희생하고 있는가? 우리가 잘못 선택한 보물들은 참 보물을 얻는 데 큰 방해가 될 수 있다. 열심히 수고하고 땀을 흘려서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해야 하지만, 그러나 진정한 보물은 하느님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느님만이 우리의 보물이요, 하느님의 나라만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얻어야 할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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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죽을 때까지 갖가지 병을 앓으면서도 곡식과 채소로 된 음식만을 그것도 아주 조금씩밖에 들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병은 점점 악화하였지요.
그래서 곁에서 간호하던 형제들이 성인의 건강을 염려해서 몰래 음식에 약간의 고기를 넣어서 요리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이 설교하던 광장에 군중을 모이게 한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세속을 떠나 형제회에 입회하였으며 형제들을 인도하는 저를 보고 거룩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고백합니다만, 저는 아프다는 핑계로 고기와 그 국물을 먹었습니다.”
자신이 원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느님과의 약속이기에 이렇게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아는 일을 사람에게 숨기지 않는 성인의 솔직함과 겸손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솔직하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거짓된 말을 하는 것이 지금 우리 모습이 아닐까요? 그래서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과 이기심에 휩싸이고 맙니다.
사람에게 솔직한 사람이 하느님께도 진정으로 솔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과연 하느님께 솔직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솔직한 삶을 살아야만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는데 말이지요.
‘하늘 나라’라는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이것을 사들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 노력을 다 기울입니다. 밭을 사야 한다면 가진 것을 다 팔아서 밭을 사고, 진주를 사야 한다면 역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해서 진주를 삽니다.
이처럼 ‘하늘나라’는 모든 것을 다 처분해서라도 반드시 들어가야 할 곳임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무엇이었고, 지금 하는 최선은 무엇입니까? 이 노력과 최선이 바로 하느님께 솔직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삶이 아닌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남들 위에 군림하기보다는 남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 8,29)라고 말씀하시지요. 우리가 모두 주님과 같은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그 힘으로 주님의 모습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 앞에 솔직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1열왕 3,5)라고 하느님께서 솔로몬에 질문했을 때, 솔로몬은 지혜를 청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청하시겠습니까? 솔직하게 대답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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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알프레드 프루프룩의 연가(T.S 엘리엇)>
나의 풀 먹인 모닝코트, 물을 먹여 턱까지 세운 옷깃, 화려하고 점잖으며 조촐한 핀을 꽂은 넥타이,
사람들은 말하지 근데 저 사람 팔과 다리가 너무 가늘잖아! 나는 늙어가….
나는 늙어가…. 마치 밑단을 접어서 젊은 척 좀 해 볼까?
머리에 뒷가르마를 타면 어떨까 나는 흰 플란넬 바지를 입고 펄럭이며 해변을 걸을 거야.
그리고 우리는 익사했다.
T.S 엘리엇의 시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꾸며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하긴 ‘젊음’만큼 멋져 보이는 옷은 없으니 그 멋을 위해 꾸미는 것입니다.
그렇게 ‘멋짐’을 간직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죽음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멋보다 영적 멋을 키워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남에게 보이는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잘 보이지 못합니다.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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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참보물>
-발견의 은총, 발견의 기쁨-
우리는 방금 화답송 후렴을 참 흥겹게 노래했습니다. “주여, 내 당신 법을 얼마나 사랑하였나이까” 이렇게 주님 가르침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가 진짜 참보물을 발견함으로 샘솟는 기쁨을 지닌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여러분은 부유합니까?
여러분은 자유롭습니까?
여러분은 보물이 있습니까?
한 번 뿐의 인생, 참으로 행복하고 싶고 부유하고 싶고 자유롭고 싶고 보물을 지니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누구나의 소망일 것입니다. 한 번 뿐인 인생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살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문득 아주 예전 50여년 전 초등학교 시절, 봄-가을 소풍 때의 추억이 떠오릅 니다. 소풍이 거의 끝나갈 무렵의 보물찾기입니다. 보물찾기가 시작되면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곧장 서둘러 흩어져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찾기에 바쁩니다. 곱게 접어져 있는 보물 종이를 찾는 것입니다. 종이엔 보물 상품이 적혀있고 그것을 받습니다.
보물의 내용이 아니라 보물 쪽지 종이를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 발견의 기쁨이 핵심입니다. 보물을 찾지 못해 상도 못받고 귀가할 때 그 쓸쓸했던 느낌도 생각납니다. 때로 보물 쪽지를 여러개 찾은 동무가 하나라도 주면 고맙고 맘씨 좋은 선생님이 찾지 못한 동무들에게도 골고루 작은 선물들을 나눠줬을 때의 위로도 잊지 못합니다.
소풍과 보물찾기, 참 기막힌 상징입니다. 한 번 뿐의 인생 소풍후 보물을 찾지 못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귀가歸家하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하겠는지요. 보물이라고 다 보물이 아닙니다. 가짜 보물도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참보물인줄 알고 기뻐했는 데 막판에 가서 가짜 보물로 드러난다면 그 인생 얼마나 허망하겠는지요.
참보물을 찾아야 합니다. 참보물이 무엇입니까? 누구나에게 활짝 열려 있는 참보물의 발견은 그대로 은총입니다. 바로 오늘 하늘 나라의 비유인 보물의 비유, 진주 상인의 비유, 그물의 비유가 참보물찾기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발견의 은총입니다. 참으로 은총처럼 뜻밖에 참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고 간절히 찾을 때 참 보물 진주를 발견하여 살 수도 있습니다.
이런 참보물을 발견했을 때의 공통점은 기쁨이요, 모든 것을 투자하여 이 보물을 구입한다는 것입니다. 하여 이런 참보물을 발견했을 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쳐 구입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공통적, 본질적 욕구일 것입니다. 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선 수도자들입니다.
마음이 답입니다. 참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절실한 마음으로 항구히 한결같이 참보물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무지無知에 눈멀어 참보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평생 가난하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이란 말이 이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 보물을 아무리 많이 소유했어도 마음의 갈증渴症과 허기虛氣는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참으로 마음의 갈증과 허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참 보물은 무엇이겠는지요.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의 솔로몬이 참 슬기롭습니다. 참보물을 선택하는 솔로몬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 대한 근원적 물음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께서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여러 가지 답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곧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자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하느님께 이런 참보물인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의 참보물을 선물받았을 때 솔로몬의 기쁨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입니다. 바로 참보물은 하느님 은총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가톨릭 교회의 불세출의 대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성인의 전기에 나오는 다음 일화는 늘 읽어도 새롭고 공감이 갑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성인은 경당의 십자가 예수님 앞에서 기도하고 있었고 지나던 수사가 문틈에서 나오는 대화 소리를 들었습니다. 성인은 그가 그리스도교 믿음의 신비에 대해 쓴 것이 정확한 것인지 주님께 심각하게 묻고 있었습니다. 그때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성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토마스야, 너는 나에 대해 참 잘 썼구나! 놀랍다. 너에게 무슨 상급을 주었으면 좋겠느냐?”
토마스가 그분께 드린 답변은 예수님의 친구들과 제자들이라면 언제나 그분께 드리고 싶은 다음 내용입니다.
“주님, 오직 당신뿐, 당신외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Nothing but youself, Lord!)”-
얼마나 통쾌, 유쾌, 상쾌한 답변인지요. 세상에 유일한 참보물 예수님 당신 하나만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참 대단한 욕심이요 정말 지혜로운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파스카의 예수님을 모신자가 최고의 부자요 복자福者요 자유로운 자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지혜인 예수님을 모시면 줄줄이 보물들이 줄을 잇기 마련입니다.
이런 참 보물 예수님을 지녔을 때 참으로 세상 가짜 보물들, 우상들로부터 초연한, 이탈의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도대체 세상에 부러울 것도, 탐낼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절로 ‘주님 맛’앞에 사라지는 ‘세상 맛’들입니다. 가난과 정결과 순종의 복음적 권고도 저절로 이뤄집니다.
도대체 행복의 샘, 지혜의 샘, 사람의 샘이신 참보물 예수님을 모신 충만한 삶인데 무엇이 아쉽겠는지요. 저절로 마음 깊이에서 샘솟는 고백일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부러울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걱정할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두려울 것 없어라.”
그러니 참 보물은 예수님 하나뿐입니다. 하느님 하나뿐입니다. 하늘나라 하나뿐입니다. 셋인 듯 하나지만 하나입니다. 한 실재의 세 측면이 예수님, 하느님, 하늘나라입니다. 참보물 예수님과 함께 살아 갈 때 그물의 비유대로 최후의 심판을,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갑니다. 모두가 하느님 그물 안에, 하느님 수중 안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우연인 듯 하나 결국은 하느님 섭리의 필연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바오로의 말씀대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 참보물 예수님과 하나된 지혜로운 이들에게는 결국 모든 것이 잘 될 것임을 압니다. 주님은 제자들은 물론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이것들을 깨달았느냐?”
참보물 예수님을, 하느님을 깨달았느냐 묻습니다. “예!”제자들처럼 힘차게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깨달아 있는 그대로 보고 알 때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니 깨달음의 은총, 깨달음의 발견입니다. 한두번이 아니라 평생 깨달음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이요 더불어 주님과의 일치도 깊어지며 참으로 무지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고 행복하고 부유한 내적 삶을 살게 됩니다.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처럼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헌것도 꺼내는 자유자재의 집주인처럼 될 것입니다.
그러니 참보물을 찾아 밖에 나갈 것은 없습니다. 내 몸담고 있는 일상의 제자리가 보물밭입니다. 참보물 예수님이 숨겨져 있는 보물밭입니다. 다음 예닮기도, 행복기도의 고백 그대로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보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나라 천국이옵니다.”-
참보물 예수님과 일치되어 눈이 열릴 때 온통 선물이요 보물입니다. 보물 가득 숨겨진 보물밭입니다. 예수님이 으뜸 참보물이라면 우리 보이는 형제자매들 역시 보물입니다. 여기 수도형제들 하나하나가, 아니 미사에 참석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 하나하나가 신의 한수요 하느님이 보내주신 하느님의 선물, 하느님의 보물입니다. 바로 참보물인 형제자매들은 다음 꽃과 산같은 존재입니다.
-“꽃이 꽃을 가져 오다니요! 그냥 오세요. 당신은 꽃보다 더 예뻐요!
산이 산에 가다니요! 그냥 있으세요. 당신은 산보다 더 좋은 산이예요!”-
그러니 하느님의 선물, 하느님의 보물인 형제자매들을 소중히 대해야 하고 아껴 보살피고 배려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무지에 눈멀어 참보물 하느님을, 이웃을 잊고 살았다면, 또 평생을 살아도 참보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가짜 보물 속에서 가짜 인생을 살았다면 이보다 허무하고 허망하고 억울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예전 나눴던 일화 둘이 생각납니다.
-“신부님은 우리 수도공동체의 보물입니다!”란 저의 찬사에 노선배 수도사제의 “아닙니다. 보물寶物이 아니라 고물古物입니다.” 참 유쾌한 유머입니다. 고물이란 겸손이 바로 보물인생 사제임을 입증합니다.-
-“신부님, 보속補贖이 아니라 빛나는 보석寶石입니다.” 면담고백 성사후 보속으로 써드린 말씀처방전에 기쁨의 환호로 응답한 수녀님 고백도 잊지 못합니다.-
정말 참보물인 주님의 말씀 또한 참보물입니다. 오늘 화답송도 참보물 말씀예찬처럼 들립니다.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 수천 냥 금은보다 제게는 값지옵니다. 저는 당신 계명을 금보다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당신의 법 하도 놀라워, 제 영혼 그 법을 따르나이다. 당신 말씀 밝히시면 그 빛으로, 미련한 이들이 깨치나이다.”-
복중의 복이 하느님 복입니다. 금수저, 은수저로 태어나지 못하고 흙수저로 태어났다 자조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두 갓수저로 태어난 부자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도 어제 갓수저가 뭔가 궁금하던중 인터넷을 통해 알고 웃었습니다. 갓은 영어로 God(갓, 하느님), 그러니 갓수저는 하느님 수저, 하느님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참보물인 당신을 선물하시어 우리 모두 참보물이 되어 행복하고 부유하고 자유로운 갓수저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어제 써놓은 ‘꽃자리’란 시를 나누며 강론을 마칩니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
꽃자리이니라.
어디든 자리 잡으면 오늘 지금 여기가
참보물 주님을 만나는 꽃자리 좋은 자리이기에
다니고 싶은 곳이 가고 싶은 곳이 없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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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청주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나의 보물 제1호>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이 무엇일까? 나름대로 여러 가지를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물에 대해 기대하는 만큼 중하게 지키고 보호하고 간수하려 애쓰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입니다.
여러분의 보물 제1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을 보면 무엇을 보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값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그 보다 못한 것을 처분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큰 것을 얻기 위해 그보다 작은 것을 포기하는 것은 희생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갖고 모두를 소유하고자 합니다. 그러다가 모두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큰 것을 위해 보다 작은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것도 큰 은총입니다. 하늘을 희망하면서도 세상을 꼭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기쁨이 크면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물은 그 보물 앞에서 빛을 잃어버립니다. 억제할 수 없는 기쁨 때문에 아무리 갚진 것이라도 하잘 것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야말로 보물1호는 양보할 수 없는 보물입니다.
바오로사도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둔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피3,8) 그리고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필리피1,21) 바오로에게 있어서 주님을 얻게 되는 것은 모두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오로의 진정한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마르코 10,17이하를 보면 ‘부자 청년의 비유’(하느님의 나라와 부자)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어떤 사람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결국 그는 영원한 생명을 갈망 하면서도 자기의 소유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진정한 보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양다리 걸치기, 어중간은 없습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애쓰지 않는 사람이 보물을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보물을 얻으려는 사람은 어떠한 대가라도 치를 수 있는 희생적인 투신이 꼭 필요합니다. 그야말로 ‘봄에 씨를 뿌려야 가을에 거둘 것이 있는 법’입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곡식 단 들고 올 제 춤추며 노래하리라. 뿌릴 씨를 가지고 울며 가던 그들은 춤추며 환호하리라.”고 시편은 노래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 라는 보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우리 가운데’(루가 17,21) 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묵시21,3)
그러므로 진정한 보물을 아는 사람은 그만한 기쁨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화는 지금 여기서부터 주어졌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보화가 있습니다”(성 암브로시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보물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보물로 얻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또한 이웃의 보물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진정한 보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 못지않게 내가 다른 사람의 보물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가기 때문입니다.’(마태7,21)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은 손을 잘라도 도박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손이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손이 크다.’ ‘손버릇이 나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마음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아무리 고운 손이라도 나쁜 짓을 하는 손은 고운손이 아닙니다. 아무리 거친 손이라도 선한 일을 하면 고운 손이 됩니다. 손의 주인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감옥을 갈 때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죄를 지은 마음은 손으로 가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단속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천상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기뻐해야 합니다.
학창시절 보물찾기 하던 생각나십니까? 선생님이 숨겨놓은 쪽지는 먼 데 있지 않았습니다. 돌 틈에 있었고, 나뭇가지에도 있었고 그냥 길바닥에 흘려놓은 것은 아닌 줄 알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보물은 먼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볼 눈이 없었고 찾는 정성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상품도 타지 못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말합니다. “무엇으로도 마음을 흩뜨리지 말며 무엇 때문에 놀라지도 마라. 모든 것은 지나가나 하느님은 변하지 않는다. 하느님을 차지한 자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
하느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이요, 모든 것을 얻어도 하느님을 차지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우리의 보물 1호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을 그분의 이름으로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모두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주길 희망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나라의 보물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삶의 자리에 있고, 이웃 안에 있습니다. 보물을 잘 찾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꼭 천상의 행복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 자신이 이웃의 소중한 보물이라는 것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보물을 보물로 볼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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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알타반의 말씀 사랑♡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늘 나라를 엿보게 해 주십니다. 사실 성경에서 하늘 나라는 공간적 개념이라기보다 하느님과 그분 주권이 미치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마태 13,44)
모두가 소유하길 바라는 것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여 있으면 너도 나도 달려가 취하려 할텐데, "하늘 나라"라는 보물은 숨겨져 있다고 하십니다. 보물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 얻으려는 이에게는 자신을 드러내고, 보물인 줄도 모르고 관심조차 없는 이에게는 영영 숨어 있는 것이 하늘 나라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하느님을 찾는 이들과 하느님을 찾지 않는 이들로 나뉩니다. 물론 그 안에도 열성과 지향에 따라 무수한 층위가 존재하겠지요. 가령 하느님을 찾는 이들 안에는 열렬한 사랑꾼도 있지만 지적 탐구를 위해 신학을 하는 이도 있고 도덕적 의무를 이행하는 정도로 하느님 이름을 취하는 이도 있을 겁니다.
반면 하느님을 찾지 않는 이들 안에는 하느님 현존을 불신하고 거부하는 이부터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대항하는 자, 그저 무관심하거나 무용하게 여겨 외면하는 부류까지 다양하겠지요 . 그러니 하늘 나라는 숨겨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가치를 아는 이의 눈에만 드러나는 신비니까요.
하늘 나라의 가치를 아는 눈, 그 시력이 곧 지혜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에서 솔로몬이 주님께 청한 바지요.
"듣는 마음을 주시어 ...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1열왕 3,9)
대개의 사람이 추구하는 장수나 부, 복수와 권력 쟁취가 아닌 지혜를 청한 솔로몬에게 주님께서는 크게 탄복하시며 청하지 않은 것까지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지요.(1열왕 3,13 참조) 지혜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축복입니다.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추구하는 "지혜"를 얻은 이는 모든 것을 얻은 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마태 13,45)
예수님은 또 하늘 나라가 상인과 같다고 하십니다. 상인은 좋은 물건을 구해서 좋은 가격에 팔아 이문을 남기는 사람이니, 물건을 보는 안목과 기준이 남다르겠지요. 알아보는 눈이 있는 이가 골랐으니 일단 가치는 보장된 겁니다.
상인은 값진 진주를 발견하면 가진 걸 모두 처분해 그것을 삽니다. 찾아다니고, 발견하고, 주저없이 처분하고, 선택하고, 소유하는 역동적 추진력이 느껴집니다.
바로 하느님(하늘 나라)의 모습이 그러하겠지요. "우리 각자"라는 값진 진주를 발견한 하느님께서 망설임 없이 가진 것을 처분해 우리를 사셨습니다. 이를 속량이라고 하지요. 하느님은 당신 생명으로 우리의 값을 치르고 우리를 얻어내신 분입니다. 그러니 하늘 나라는 이미 우리를 소유했습니다. 우리 역시 하늘 나라를 소유했고요.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태 13,47)
그런데 하늘 나라 그물 안에는 아직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이 혼재해 있습니다. 밀밭에서 함께 자라는 가라지와도 같지요.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듯이, 그물 속 내용물의 선별 작업도 "세상 종말"까지 유예될 것입니다.
힘들지만 그때까지 "가라지"나 "나쁜 것들"을 인내하고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제2독서에서는 이렇게 밝힙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당장은 양분을 갈취하고 성장을 저해하며 생명력을 빼앗는 듯 보이더라도, 하느님의 큰 그림 안에서는 선을 향해 서로서로 작용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아무도 끝을 모릅니다. 오직 주님만 아시지요. 그러니 끝날 때까지는 아직 끝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벗님! 하느님의 더 큰 선, 더 큰 영광을 위해 묵묵히, 인내로이 이 지상의 순례길을 견디며 나아갈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청합시다. 아직 많은 것이 불완전하고 고통스럽지만, 하늘 나라를 찾는 지혜 덕분에 우리는 이미 하늘 나라를 소유했고, 하느님도 진주를 알아보는 사랑의 혜안으로 우리를 소유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하늘의 시민입니다.(필리 3,20 참조) 하늘의 시민인 벗님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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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회 양주분회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절대 최고의 가치를 지닌, 내 목숨을 내어주고서라도 얻고 싶은 것, 그것은 무엇일까?
참된 행복, 참된 기쁨, 참된 보물, 그것은 무엇일까?
오늘은 연중 17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줍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어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2열왕 3,5)라고 묻자, 솔로몬은 대답합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1열왕 3,9)
이처럼, 솔로몬은 백성을 분별 있게 통치할 “듣는 마음”(레브 쇼메아)을 청합니다. 여기서 ‘듣다’(샤마)라는 동사는 단순히 듣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은 것을 받아들여 수용하는 것, 곧 주의 깊은 경청과 이를 통한 전인적 소통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는 ‘소통하는 듣는 마음’에서 옵니다. 곧 ‘말씀을 듣고 들음 말씀을 받아들여 수용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줍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로마 829)을 밝히면서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 8,29)
그러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모상”이 되는 일입니다.
<복음>에서 중요한 것은 “와 있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로 비유됩니다. 오늘 <복음>은 먼저, 그 ‘값진 보물’인 “하느님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44)
그 보물은 멀리 하늘 위에, 높이 매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땅,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나의 일터인 내 공동체, 내 가정, 이 세상이 바로 보물이 묻혀있는 “밭”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보물”은 우리 공동체와 이 세상에 그리고 사람 서리에, ‘이미 와서 묻혀있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서, <제1독서>에서 말하는 “듣는 마음” 안에, <제2독서>에서 말하는 우리 안, “당신 아들의 모상”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 17,21)
그렇지만, 그 보물은 누구나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밭을 충실히 일구고 가꾸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45)
그것은 우리의 머리 속, 관념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진주를 찾아다니는” 행동 안에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길을 찾는 발길 그 안에, 진리를 더듬는 손길 그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신앙의 행위, 신앙의 여정 그 안에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그 진주는 누구나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찾아다니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했다고 해서, 혹은 그것을 만났다 해서, 그것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이미 와 있는 이 “하늘나라”를 어떻게 해야 얻을 수가 있을까?
오늘 <복음>의 두 비유에는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마태 13,44.46)
이는 “보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가진 것을 다 파는 일” 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물을 발견하고 찾았다 해도, 그것이 곧바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 그 보물을 차지하려면, “먼저” 그 보물을 사기 위하여 가진 것을 다 팔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가진 모든 것보다 더 값지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목숨까지도 팔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 나아가서 자신마저도 팔아야 하는 이 일이 쉽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한 애착과 자애심 때문입니다. 아직은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서 힘이 빠지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아님을 인정해 가고, 자신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보물은 결코 자신을 팔지 않은 채, 타인이 가진 것으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진 것을 다 파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값진 것을 “사는 일”입니다. ‘사는 일’이 본질인 것이지, ‘파는 일’이 본질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보물을 발견했다 해도, 또 가진 것을 다 팔았다 해도, 그 보물을 실제로 사들이기 전에는 아직 그 보물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살 때라야 비로소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물”이 있기에, 우리는 그 “보물”을 차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분명한 것은 하느님 나라는 “먼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 나라”가 우리를 이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루카 17,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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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하늘나라는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태 13,47)
주님!
하늘나라의 그물에 저를 몰아넣으소서.
당신 말씀의 그물로 덮어씌워 당신 뜻 안에 가두소서.
세상의 바다에 저를 던지소서. 당신의 그물이 되게 하소서.
당신이 몰아 온 온갖 고기를 모아들일 뿐, 고르지 않게 하소서.
제가 그물일 뿐 그물의 주인이 아니며,
그물의 주인이 아니듯 고기의 주인도 아님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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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시녀회 소보둥지 김연희 마리아 수녀님]
(5분 아침묵상)
https://www.youtube.com/watch?v=WbwqsfPaGKI&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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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마태 13, 44)
보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들
밭에
있습니다.
우리들 밭에서
보물이 나옵니다.
여행은
가 보지 않고서는
모르고
삶은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삶은
보물같이
숨겨져 있기에
신비롭습니다.
하늘 나라는
삶이라는 밭에
숨겨진 나라입니다.
보물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이 모든 것은
보물이 됩니다.
우리 삶 속에 있는
하늘 나라입니다.
보물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
안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살 그 마음으로
삶을
살 수 있다면
이미 우리는
하늘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를 아는
우리들이길
기도드립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삶에 집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보물입니다.
하늘 나라는
온전히
하느님께
집중하는 충만한
나라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할 때
더욱 아름다운
우리들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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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2013. 10. 24
연희동성당 류상현 스테파노
■묵상글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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