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질통에 사모래를 진 적이 있었는데 꽤 무거워 높은 데까지 올라가려면 한 번씩 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무거운 질통을 지고 올라갈 때 순간 누가 뒤에서 받쳐 줘서 하나도 무겁지 않았습니다. 고마운 분이구나 싶어서 “누구세요?” 하며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서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쳐 주셨다고 생각하니 기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이 죄인도 이렇게 도와주십니까!’ 하며 눈물이 쏟아져서 한참 동안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부터 몸이 가벼워 질통을 지고도 훨훨 나는 듯이 다녔습니다.
메리야스 염색 공장에서 근무할 때 조회 시간 되어 첫 순서로 찬송을 인도하는데 갑자기 온몸이 불 속에 들어간 것처럼 후끈하며 뜨거워져
그 후 메리야스 염색 공장에서 일할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공장장님이 출장 가시면서 저한테 직원 조회를 주관하라 하셨습니다. 저보다 직급이 높은 분도 계시고 어른들도 많으신데 제가 어떻게 앞에 나서나 싶었습니다. 떨리고 걱정돼서 ‘하나님! 함께해 주세요.’ 하고 계속 기도드리며 조회를 준비했습니다. 조회 시간이 되어 첫 순서로 찬송을 인도하는데 갑자기 온몸이 불 속에 들어간 것처럼 후끈후끈하며 뜨거워졌습니다. 예전 집회 때 불성신을 받은 일이 떠올라 ‘함께하시는구나!’ 하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준비한 대로 작업 상황을 발표하고 정리하며 무사히 조회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제과부에서 일하며 카스텔라 생산반장을 맡았습니다. 계란을 듬뿍 넣어 만든 신앙촌 카스텔라는 인기가 좋아 3교대로 생산해도 모자랐습니다. 변변한 먹을거리가 없던 시절 신앙촌 카스텔라는 특식이자 별미였습니다. 계란을 많이 넣다 보니 흰자 노른자 거품 내는 작업도 오래 걸렸는데, 직원들이 연구해 기계를 만들어서 일손도 덜고 빨리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덕소신앙촌 제과부에서 짝을 지어 경쟁하던 때가 있었는데 서로 경쟁하며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이 재미있어 바쁜 공장에서 찬송하며 일하다 보면 향취가 진동하고 어느새 피곤이 눈 녹듯이 사라져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껴
1962년에는 전북 이리에 신앙촌 카스텔라 분공장을 세우게 됐습니다. 저와 직원들 열한 명이 가서 카스텔라 기계를 설치하고 생산하는 방법도 가르쳤습니다. 한 달 동안 신앙촌 밖에서 생활하게 된 우리는 신앙인다운 행실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리제단 부인회 총무님 집에서 숙식을 했는데 매일 새벽에 일어나 집 마당과 골목까지 깨끗하게 쓸었습니다. 낮에 생산하고 밤에 포장하느라 바쁜 중에도 몸가짐과 언행을 단정히 하려 애썼습니다.
부인회 총무님의 남편은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으로 전도관에 다니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수업 시간에 우리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집에 사는 그분의 조카가 들려준 이야기였습니다. 그분은 평소 이단이라는 말에 신앙촌을 좋게 보지 않았는데 신앙촌에서 온 직원들이 부지런하고 예의 바른 모습에 놀랐다고 했습니다. 카스텔라 공장도 가서 보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학생들에게 신앙촌 사람을 본받으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일을 계기로 더욱 신앙인답게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평소 신앙촌을 좋게 보지 않았던 이리제단 부인회 총무 남편은 신앙촌 직원들의 부지런함과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감명 받아
그해 와부읍 덕소리에 덕소신앙촌이 세워진 후에도 저는 계속 제과부에서 일했습니다. 덕소에서는 직원 두 명씩 짝을 지어 OX 경쟁을 했습니다. 이기면 쌀이며 빵, 계란과 고추장부터 구두와 이불까지 풍족하게 상을 주셨습니다. 서로 경쟁하며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바쁜 공장에서 찬송하며 일하다 보면 향취가 진동하고 어느새 피곤이 눈 녹듯이 사라져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촌에 들어오기 전 오로지 먹고살려고 고생하며 일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신앙촌에서 열심히 일해 걱정 없이 살면서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복된 일인가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일을 열심히 하면 내가 은혜를 줘서 죄가 씻어진다`라고 하신 말씀 듣고 더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러 다녀
1972년 5월 기장신앙촌에 입주한 후에는 수예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그 후 1985년 즈음으로 기억되는데 하나님께서 공장별로 직원들에게 안찰을 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안찰 받고 나올 때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일을 열심히 하면 내가 은혜를 줘서 죄가 씻어진다.”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공장 일을 더 열심히 하고 틈틈이 봉사도 하러 다녔습니다. 마침 축복일마다 교인들이 아침식사를 하는 식당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을 도우러 갔습니다. 그때 시작한 식당 봉사를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축복일에 정성껏 반찬을 담다 보면 하나님께서 그 식당에서 만찬회를 열어 주시고 축복해 주시던 모습이 떠오르곤 합니다.
저는 지금 생명물식품 주식회사의 대표를 맡아 일하고 있습니다. 나이 여든에도 건강을 주시고 일할 수 있게 해 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면 하나님 존영 앞에 무릎을 꿇고 하루를 돌아봅니다. 오늘 죄를 멀리하려 애썼는지, 하나님 뜻대로 살았는지, 은혜 받으며 일하는 시간이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저에게 남은 시간 동안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저 천국 들어가는 날 주 앞에 가리라.” 하는 찬송가처럼 하나님 허락하신 귀한 일 속에서 열심히 살아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첫댓글 잘보고가요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