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서 감 상 문
[작성자 : 조 영 주]
나는 비(雨)를 좋아한다. 거리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기보다 따뜻한 실내에서 평온하게 바라보는 시원한 빗줄기가 좋다. 비 오는 날 베란다에 앉아창가에 부딪히는 빗방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우두커니 앉아‘물멍’이 아닌 ‘비멍’을 때린다. 한참 동안넋을 놓고 쏟아지는 빗물을 바라보노라면 마음 깊숙한 곳이 씻겨 말끔해지는 기분이 든다.
“우두커니”란 서적을 구입한 것은 오롯이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백발의 노부와그 아버지를 안쓰럽게 쳐다보는 젊은 딸의 뒷모습이 그려진 표지도 잔잔했다. 몇 년 만에보는 만화책인지 모르겠다. ‘2020 부천만화대상’ 대상수상작이라 기대감도 있었다.
이 책은 작가부부의 실제 체험담을 각색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주인공 승아는남편 영우와 함께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막내인 승아는 연애시절부터 자신이 아버지를 모셔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중년의 나이에 어머니와 이혼한아버지는 막내딸을 살뜰히도 보살피며 반듯하게 키워냈다. 그런 아버지를 승아는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7년간의 연애 끝에 고민하던 영우는 장인을 모시고 살기로 결심하고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구순에 가까운 아버지는 몇 해 전부터 깜빡깜빡하는 일들이 잦아졌다. 사물의이름을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승아와 영우는 나이 탓일 거라며 무심히 넘겼다. 아버지의 건망증은 날로 심해졌다. 승아는 언니와 가까운 곳에 살고 싶어져 청주의 아파트로 이사를 한다. 사는 곳이 바뀌자 아버지의 치매의심 증상은 더욱 심해졌고 간혹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낯선 얼굴표정으로 승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걱정이 된 승아와 영우는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 큰 병원에서 치매전문검사를 받는다. 결과는 중증치매. 치매가 뇌 속에 깊숙이 진행되고 있다는 의사의 선고였다. 승아는 좌절했지만,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으로 묵묵히 힘든 시간들을 견뎌낸다. 착하고 예쁜 딸이라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쓰였다.
조용하고, 꼼꼼하고, 내성적이던 아버지는 의심 많고, 화를 자주 내며, 애먼 소리들로 자식을 아프게 하는 고약한 노인이 되어버렸다. 참아내기 어려운 병증이었다. 설상가상 승아의 임신으로 아버지와 부딪히는 일이 잦아졌다. 승아와 언니는 결국 부친을 요양병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아버지는 얼마 후 요양병원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아버지한테서 받은 수많은 좋은 것들과 내가 아버지에게 저지른 수많은 잘못들이 떠올랐다. 고마움, 미안함, 원망, 후회들이 한데 섞이더니, 그리움만 덩그러니 남았다.’라는 작가의 고백이 가슴 속에 아프게 차오른다.
요양병원에서 치매로 9년이나 투병하셨던 시아버님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하루 종일 우두커니 침상에 앉아 아들을 기다렸다. 세 딸의 얼굴도, 며느리와 손주의 얼굴도 잊으셨지만 하나뿐인 아들의 얼굴과 이름은 마지막까지 또렷이 기억하셨다.
치매환자로, 혹은 치매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일상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모두가 당면한, 혹은 당면하게 될 이야기다. 치매라는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어르신들은 상상과 현실을 자주 헷갈려 하신다. 마음에도없는 독한 말들을 가족들에게 쏟아내기도 한다. 잠시나마 치매어르신의 입장에서생각해보니, 당신 자신도 얼마나무서울까 싶어 마음이 돌덩이처럼 가라앉는다.
어느 새 딸들이 자라 대학생이 되었고 나는 오십대 중반을 살아내고 있다. 치매라는 질병에 걸리지 않기를 기도해 보지만 내일 일은 누구도 알 수가 없다.그저 오늘 하루하루를 가족들과 친구들과 아름다운 추억으로 채워가다 보면 성긴기억의 빈틈을 빼곡히메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