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판문점 선언을 한지 5주년이 되는 날이다.(중략)
<한겨레> 종이 신문에서 이 글의 제목 (정전 70주년, 아무도 관심 없는 DMZ)을 보고 인터넷 검색을 하는데 나오지 않는다. 위 제목 옆에 박경만을 넣으니 나온다. 박경만 기자는 비교적 잘 아는 사이이다. 박기자의 글을 그동안 여러편 봤지만 오늘 글은 이전 글들보다 깊고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된다. 글 내용에 기초하면 한국에서 맥아더가 비판 받는 대표적인 요인은 38선을 넘어 진격한 것과 중국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웠다는 점인 것 같다. 이 글에는 제시되지 않고 있지만 6.25 전쟁 당시 북한에 원자탄을 떨으뜨리려고 했다는 증언과 증거도 많다.
또, 이 글을 보니 박정희 보다는 백선엽이 더 비난 받을 인물이란 생각이 든다. 이유는 박정희가 만주에 있는 일본 사관학교를 다니고 장교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백선엽 처럼 독립군 토벌 부대에서 직접 활약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도토리 키재기란 생각도 든다. 판문점 선언 5주년을 맞이한 현재와 5년전은 달라도 무척 다르다. 그 이유와 원인은 무엇인가? 무척 답답하고 불안과 우려의 시대이다.
이병호 남북교육연구소장· 교육학 박사
원문보기 : 정전 70주년, 아무도 관심 없는 DMZ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전국 프리즘]
휴전선 비무장지대(DMZ)의 접경지대인 강원도 철원군 철원평야에 두루미 한쌍이 먹이를 찾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박경만 l 전국부 선임기자
정전협정과 한-미 동맹이 체결된 지 70년이 됐다. 국가보훈처와 한-미연합군사령부는 이를 기념해 최근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을 선정하고, 영상을 제작해 지난 20일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송출했다고 한다. 10인의 영웅에는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과 백선엽 당시 국군 1사단장이 포함됐다. 보훈처는 맥아더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하여 전세를 역전시켜 대한민국을 구한 영웅”이라 전했고, 백선엽에 대해선 “대한민국 최초 대장으로 한국전쟁 당시 국군 제1사단을 지휘하여 다부동 전투에서 미군과 함께 북한군 3개 사단을 격멸했다”고 소개했다. 두 사람의 공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사실관계를 두고도 논란이 많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인 1947년 일본 점령군 사령관이던 맥아더는 “한국인은 일본인과 달리, 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한국인에겐 강력한 통치자가 필요하다”며 한국인을 깎아내리는 발언을 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지휘력과 결단성을 과시했으나, ‘38선 돌파’를 밀어붙여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도 받는다. 38선 돌파가 중국의 개입을 부를 것이라고 우려한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맥아더는 “중공군 개입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크리스마스 때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맥아더가 이렇게 큰소리칠 때 중국인민지원군은 이미 압록강을 건너고 있었다. 이후 맥아더는 워싱턴의 훈령을 무시하고 원폭 투하, 만주 폭격 등 확전을 주장하다가 1951년 4월11일 트루먼에 의해 미 극동군 겸 유엔군 총사령관직에서 전격 해임됐다.
첫 육군 대장인 백선엽은 100살이 된 2020년 7월 숨진 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안장 당시 일제강점기 독립군 토벌 전문부대였던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하며 친일·반민족 행위를 했다는 경력 때문에 논란을 빚었다. 백선엽은 단군 이래 최대 사학 비리처로 불리는 선인학원을 동생 백인엽과 함께 설립했고, 서울 강남에 2천억원대의 대형 건물을 가족 명의로 소유한 자산가이기도 했다. 5·16 쿠데타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의 필립 하비브 정치담당 참사관은 본국에 보낸 기밀문서에서 “백 장군은 다른 참모총장들보다도 더욱 부패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기술한 바 있다. 군인으로서 성과에 대해서도 이견이 적지 않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2기인 박경석 장군은 백선엽이 지휘한 다부동 전투를 두고, “낙동강 전선은 월턴 워커 중장이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을 지휘해 워커 라인으로 불렸다. 백선엽의 제1사단은 8개 사단 가운데 하나였는데, 공적이 부풀려졌다”고 주장했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은 한국 사회는 여전히 승전의 추억, 영웅 만들기에 취해 있고 잔혹한 전쟁에 대한 반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반도 비무장지대(DMZ) 일원에는 전쟁 기록을 새긴 전적비들이 수도 없이 서 있지만, 돌에 새긴 전쟁의 교훈은 오직 ‘적군 섬멸’을 결의하는 군의 다짐뿐, 이름 없이 산화한 젊은 영령과 학살된 민간인에 대한 애도, 생명의 존엄함에 대한 성찰은 없다.1977년 국방부 전사편찬위가 펴낸 <한국전쟁사>를 보면 한국전쟁 기간 민간인 피해자는 남한에서만 사망·실종 76만1343명으로, 그 수가 군인에 비해 3배나 많다. 전쟁은 군인의 것이었지만 피해는 민간인의 것이었다. 전쟁을 군인들의 역사로만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반도 전역을 잿더미로 만든 전쟁의 폭주는 3년 만에 멈췄지만, 전쟁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미봉책으로 체결된 정전협정은 아직도 미해결 숙제로 남았다. 전쟁의 긴 그림자는 전쟁을 알지 못하는 까마득한 젊은 세대에까지 막대한 짐이 되고 있다. 인간사의 곡절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연은 스스로 전쟁의 상처를 복원하고 희귀 동식물을 불러들여 디엠제트를 생물 다양성의 보고로 만들었다. 역사가 밀어낸 디엠제트는 지금 부활의 땅으로 거듭나고 있다.mania@hani.co.kr